1) 김복기, 「2013 아트바젤홍콩」, 『아트인컬처』, 2013. 10, 94-101쪽.

“아시아 현대미술의 정체성은 규정 가능한가?”

이는 지난 3월 27일(금)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재)부산문화재단 공동주관으로 열린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 NEXT(Next Expert Training)의 ‘NEXT SALON(이하 넥스트 살롱)’에서 논의된 화두다. 김복기 대표(아트인컬처 대표, 경기대 교수), 구로다 라이지(Kuroda Raiji)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Fukuoka Asian Art Museum, 이하 FAAM) 수석 큐레이터와 알리아 스와스티카(Alia Swastika) 족자카르타 비엔날레(Biennale Jogja, 이하 족자비엔날레) 예술감독의 강연 및 토론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 하지만 그것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아시아적 가치의 다양한 면모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아시아의 경제 성장과 현대미술 인프라 지원 증가

강연자 겸 모더레이터인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는 우선 아시아가 현대미술의 핵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 배경을 ‘경제 성장’에서 찾았다. 특히 중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은 현대미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든든한 자본 마련으로 이어진 계기라고 봤다. 최근 10년 사이에 약 2,000개의 미술관이 탄생할 정도로, 현대 미술계 ‘압축 성장’의 표본이라고 제시했다. 베이징 금일 미술관과 울렌스 현대아트센터, 상하이 민생(民生) 미술관과 와이탄(外灘) 미술관 등 사립 미술관들의 국제적 명성과 2000년 이후 상하이비엔날레의 국제전 전환이 아시아 현대미술을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도 현재 대규모 ‘문화 투자’를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투자 자본 규모의 경쟁적 확장은 결국 아시아 내의 국가 간·도시 간 ‘문화 마케팅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1) 1990년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로 대변되는 “서구 중심 대(對) 비서구 주변”의 위계 붕괴와 더불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미술 인프라 성숙과 글로벌 아트마켓 돌풍, 비엔날레를 통한 동시대성 확보, 세계 아트 씬에서 다층화되고 있는 아시아 작가들의 약진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다시 아시아미술의 부흥의 촉매가 되었다는 것이다.

화성 성벽 위에서 바라본 <제작공간 다시> 전경(왼쪽)과 뒷마당에서 진행된 공간 개소식(오른쪽)

▲ ‘아시아 현대미술의 지형’이라는 주제로 강연중인 김복기 대표

국경을 초월하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정체성

하지만 자본 투자는 언제나 가능성의 떡잎을 보고 이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김복기 대표는 아시아 현대미술 씬의 태동과 성장 배경을 1980년대부터 키워드 중심의 계보학적 고찰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현재 아시아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봤다.

1980년대는 ‘아시아적 혼돈 속에 함의된 아시아미술의 독자성’에 기초한 ‘아시아 미술의 구심점 찾기’의 서막, 1990년대 초는 고정적 실체 만들기에서 ‘유럽 근대 예술을 뛰어넘는 주요 열쇠가 돼야 한다’는 지적, 1990년대 후반은 다문화주의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아시아’를 대항적 가치로 놓지 않고 수평적 교섭(negotiation)과 혼성(hybrid)의 시점에서 독해하는 자세, 2000년대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 교류를 추진하고,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 국경 초월 협동 작업 활성화 및 아시아미술에 관한 대규모 국가별 전시의 부활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특히 그가 강조한 ‘국경 초월’은 아시아 현대미술 ‘정체성 개념’ 확장을 집약하는 키워드였다. 국경의 개념이 변화함에 따라, 아시아 현대미술은 현대미술의 모든 표현 방법을 빌리면서 특수한 지역적 현실을 반영해 집합적·보편적 의미를 획득하는 가장 새로운 예술이라고 봤다.

이어진 강연에서 구로다 라이지는 아시아 미술관 현황과 FAAM을 소개하고, 중국 난징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진행됐던 아시안 뮤지엄 디렉터 포럼(Asian Museum Director Forum) 참가기를 공유했다. 그는 급증하는 아시아 현대미술 인프라 확장 추세에 맞춰 ‘네트워킹’과 ‘프로덕션 플랫폼’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아시안 아트 뮤지엄 디렉터 포럼은 아쉬운 자리였다고 밝혔다. 뮤지엄 디렉터 포럼이지만 현대미술관 운영에 능통한 미술관 경영전문가, 큐레이터, 스페셜리스트의 부족으로 포럼이 미술관 미션, 일반적 전시 소개에 머물렀고, 아시아 미술과 미술관 정책에 대한 제안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아울러 FAAM은 부산, 타이완, 싱가포르 등 타 아시아 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미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아시아미술의 계통 조망 작품전(展)을 기획하고, 지역 미술관으로서 작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며 아시아 작가 컬렉션 및 전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리아 스와스티카는 족자비엔날레가 장기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고 있는 “적도(Equator)”라는 주제를 소개했다. 족자비엔날레는 오픈 플랫폼으로서 2011년부터 2022년까지 현대미술담론의 새로운 방향 제시를 목표로 국제시각예술의 지형, 지정학, 경제적, 민족학적, 정치적 관점에서의 글로벌리즘의 역사, 사람과 대륙 간의 관계를 투영하고 응답하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지식 생산의 연결 모델을 제시하는 일련의 전시 행사와 예술 활동을 펼치는 모든 프로그램으로 설명하면서 적도에 위치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해당 국가의 아티스트와 협업, 창작, 전시를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 전시는 2011년 인도와 함께 ‘섀도 라인스(Shadow lines)’, 두 번째 전시는 2013년 아랍과 진행한 “낫 어 데드 엔드(Not a dead end)”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으며 ‘이퀘이터 페스티벌(Equator Festival)’을 함께 진행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알리아 스와스티카는 두 번의 전시를 통해 비엔날레가 주변 사회⋅문화까지 포용하고 관련 지식인, 활동가 등의 지적 토론을 집합하는 오픈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구로다 라이지 큐레이터알리아 스와스티카 예술감독

▲ 구로다 라이지 큐레이터(왼쪽)와 알리아 스와스티카 예술감독(오른쪽)
(클릭시 사진 확대)

Q&A – 아시아는 과연 하나인가?

김복기 우선 구로다 라이지 큐레이터께서 생각하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특징은 무엇인가? 아울러 후쿠오카 시 미술관은 아시아 미술관으로 발전하였는데, 특화의 배경도 궁금하다.

구로다 아시아 예술의 근원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론’이라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식을 갖춘 사고방식, 보수적이고 제도적인 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술적 활동이 작가 자신의 현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도시 문제,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동시대성’을 띤다.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이 아시아 미술관으로 변모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1970년대, 오사카에서 한 엑스포가 있었는데, 아시아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국제적인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어서 많이 모였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문화운동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고, 후쿠오카 시 미술관에도 영향을 미쳐 아시아 관련된 전시를 개최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루게 됐다. 이후 시에서 문화 정책을 재정비할 때 ‘아시아 미술 허브 도시로 발돋움하자’는 정책을 1980년대에 펼쳤다. 후쿠오카에서 아시아 미술을 발현하려고 노력한 작가들의 노력과 시의 정책이 시너지를 이뤄 이런 결실을 만들었다.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또한 ‘교류사업’을 통해 아시아 작가들을 초청하고, 서로 자주 문화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다.

김복기 알리아 스와스티카 예술감독께 질문하겠다. 족자비엔날레에서는 반드시 전통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작품만 선정하는지 궁금하다.

스와스티카 전통예술은 어디까지나 시작점이다. 현대예술가들이 현대예술을 만들 때 전통예술을 그 출발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짚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볼 때 전통적인 것이 생활 곳곳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작가들의 성취, 발전, 지향점, 미래 등에 대한 관심이다. 이를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비엔날레의 정체성이다. 강연에서 언급한 “Equator”란 적도 부근의 국가들을 파트너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 국가들은 보편적으로 전통적 예술 기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슬람 문화 이야기도 이 국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족자비엔날레는 기본적으로 컨템퍼러리 현대미술 플랫폼이다.

객석 질문 알리아 스와스티카 감독께서 말씀해주신 각 국가들의 작품 창작 환경이 흥미롭다. 하지만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공존은 곧 지향점 길항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지형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스와스티카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에서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이 공존하는 것을 많이 본다. 우선, 현대미술은 전통미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또한 동시대성에 대한 질문이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전통 양식이나 전통 기법을 사용할 때가 많은데, 전통은 창조를 위한 좋은 자료가 된다고 본다. 우리의 동시대적 삶에서도 전통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전통적 이념이나 정서를 재료로 사용하고 표현하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다. 전통적 가치를 삶 속 깊숙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균형을 잡는 것이 일상이다. 작가들의 의무는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지속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항상 견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작가들은 비평적 시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시아 미술의 지형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우선 인도네시아는 고유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교육 시스템, 갤러리 운영 등이 있는데, 사실 동남아시아 안에서는 한계가 많다.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기관의 규모나 수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출판물이나 잡지도 충분치 않다. 따라서 동일한 관점으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없고, 아시아 내에도 여러 가지 다양성이 존재한다. 정의를 내리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다양한 관점과 정치 문화적 맥락을 현대미술을 통해 이해하는 것뿐이다.

구로다 첨언하자면, 족자비엔날레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종교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문화가 존재하지만 지배적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족자비엔날레는 세계 중심으로부터 떨어진 국가들이 모여, 이민 문화들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 따라서 비엔날레가 전통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지만 현대미술을 장려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으로 종교 문제를 이야기할 때, 종교 단체에서 이를 문제 삼아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문화계 내에서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복기 전통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화두다. 아시아 나라마다 그 전통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도 현대와 접목하면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이해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항상 아시아를 이야기할 때 하나의 결론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다. 북미, 유럽, 아프리카만큼 아시아 내에도 수많은 문화적 다양성이 상존한다. 이를 전제한다면, 당연히 전통에 대한 해석도 다를 것이다. 알리아 스와스티카 감독은 2012년 광주 비엔날레의 공동감독을 했다. 참여 소회가 궁금하다.

스와스티카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비엔날레 종료 후 공동감독과 운영진 6명이 좋은 친구가 되고,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아시아 각국의 차이가 곧 작품의 다양성으로 발현됐다. 이를 통해 ‘아시아 역사를 하나로 결론내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어떤 중동 출신 큐레이터 및 인도, 일본, 중국 등지에서 온 큐레이터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공감대 형성이 참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청중들에게 이런 차이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차이점들을 받아들이도록 훈련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에서는 이미 굉장히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것 같다. 물론, 컨템퍼러리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김복기 대표는 이야기를 맺으며, 자신이 준비한 강의 자료의 마지막 문단을 낭독하는 것으로 이번 논의를 갈무리했다.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다. 아시아는 하나였던 적도 없고, 하나일 필요도 없다. 따라서 통일적인 아시아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아시아 미술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가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를 잇는 통로는 식민지 경험, 아시아의 개발 역사 등으로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영원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문화의 통로로 존재해야 한다“


아시아 현대미술 지형도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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