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예술경영》 301호는 ‘한국 장애인 예술경영의 현주소’ 특집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 결정 우선 순위가 아직 낮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예술과 예술경영’ 담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따라서 《Weekly@예술경영》은 4월 20일(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의 ‘장애인 예술단체 운영과 관련 정책 현황’, 활동 아티스트들의 창작 활동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살펴보고, 영국의 장애 예술단체 운영 실제와 제반 예술 환경 조망을 통해 한국 장애인 예술경영의 앞날을 가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통계짚어보기  국내 장애인 예술단체 운영 현황/칼럼          장애 예술인 창작 활동의 사획적, 제도적 장벽과 개선방안/해외동향      영국 장애인 아크로바틱 씨어터의 단체 운영 – 재원 조성, 프로그램 개발, 단원 교육 등

영국에는 대략 60여 개 이상의 장애인 공연 예술 단체들이 연극, 음악, 무용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의 내셔널 포트폴리오 재정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매년 지원받을 예술 단체들을 선정하여 3년 단위의 재정 지원을 하는데 2015년부터 2018년까지 664개의 예술 단체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내셔널 포트폴리오에 의한 재정 지원은 3년간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예술 단체들이 선호하지만 엄격한 평가를 통해서 선정하는 데다 일단 선정되어 3년간 재정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다음 내셔널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에서 탈락할 경우 심각한 재정적 위기를 맞게 된다. 한국의 공연예술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예술 단체들 역시 런던 심포니, 로열 오페라단, 발레단과 같은 몇 개의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개인 및 기업 후원을 받는 것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내셔널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을 비롯한 영국 예술위원회의 각종 재정 지원금에 상당 부분을 의존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한국과 비교해서 영국의 공연예술 관객층이 두껍다 하더라도 유명 뮤지컬을 공연하는 런던의 상업 극장들을 제외하고는 연극이나 무용 단체들이 입장권 수입만으로 매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공연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영국의 장애인 공연 단체들의 경우에도 유료 관객 점유율 높이기와 단원 훈련과 관리가 어렵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장애인 예술 단체들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셔널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에 의해 지원받고 있는 소수의 장애 예술 단체들은 매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투어 공연을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서 그들의 고정 관객을 확보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두 사례인 극단 그라이아이(Greaea Theatre Company) 칸도코 무용단 (Candoco Dance Company)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범한 진리가 통하는 극단 그라이아이
- 좋은 작품이 풍성한 지원·후원으로 이어진다

극단 그라이아이(Graeae Theatre Company)는 2012 런던 장애인 올림픽 오프닝 세리머니를 맡아 세계적으로 알려진 영국의 장애인 극단으로 1980년에 설립된 이후 매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극단이 위치한 런던을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하고 있다. 그라이아이라는 극단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눈 하나와 이 하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세 자매의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함께 일하고 나눈다’는 극단의 정신을 보여준다. 2012 런던 장애인 올림픽 오프닝 세리머니는 그라이아이의 예술감독 제니 실리(Jenny Sealey)가 공동 감독으로 참여하였고 극단 그라이아이는 이 오프닝 세리머니의 한 공연을 맡아 밴드 오비탈 (Orbital)이 디제잉하는 강렬한 전자 음악들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평등’, ‘권리’ 등이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는 듯한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 밖에 극단 그라이아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흔들리는 장대타기 등의 퍼포먼스도 포함된 이 공연은 팔다리가 없는 거대한 여인상이 등장함으로써 마무리되는데 이 또한 거대한 움직이는 인형을 주로 사용하는 극단 그라이아이 공연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극단 그라이아이는 많은 수의 관객들에게 노출될 수 있고 동시에 이목을 끌 수 있는 대형 규모의 야외 공연 작품들을 지역의 공연예술 축제들을 통해서 보여왔는데, 이러한 공연들이 《가디언》을 비롯한 영국 주요 일간지에서 소개되거나 축제에 참여한 관객들의 SNS를 통해서 홍보됨으로써 극단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예로 그라이아이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프로메테우스 잠에서 깨다, Prometheus Awakes>는 2012년 그리니치 항구 국제 축제와 스톡턴 국제 강변 축제에서 공연한 초대형 야외극으로 이 작품을 위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오프닝 세리머니를 맡았던 스페인 극단 라 푸라 델 바우스(La Fura dels Baus)와 협력했고 청각장애인 예술가 사이먼 맥커운(Simon McKeown)이 그리니치 공원에 위치한 퀸스 하우스에 디지털 프로젝션을 이용하여 대형 배경을 만들었다.

▲ <프로메테우스 잠에서 깨다. Prometheus Awakes> (사진출처: 극단 그라이아이 홈페이지)

이러한 극단 간 혹은 극단 밖의 예술가들과의 협력 사례는 비단 극단 그라이아이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의 다른 장애인 공연예술 단체들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장애인 예술 단체들은 장애인 예술가로만 이루진 경우보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하는 단체들이 대부분이고 단체의 정체성에서 장애를 좀 더 부각시키고자 하는 경우에는 장애인이 선도하는 단체란 표현을 쓴다. 이러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아우르는 단원 구성은 장애에 국한되지 않는 작품 주제의 다양성과 함께 생산하는 작품의 수와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 관객들뿐 아니라 비장애인 관객들도 끌 수 있다는 것 또한 주요한 장점인데 많은 장애인 극단들의 작품에서 배우들이 무대에서 수화와 구화를 모두 한다는 것도 다양한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극단 핑거스미스(Fingersmiths)가 2014년에 투어 공연한 연극 <프로즌, Frozen>에서는 수화를 하는 배우와 구화를 하는 배우가 동시에 무대에서 한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수화와 구화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그라이아이는 대형 인형극 외에도 역시 대형 야외극이기는 하나 성격이 다른 작품들도 보여주는데 런던 2012 축제에서 보여준 ‘정원’(The garden)이나 2013년에 공연된 <팔다리가 없는 기사, The limbless knight>는 공중 곡예와 흔들리는 장대타기 등이 주를 이루는 야외극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유행한 서커스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이다. 이처럼 극단 그라이아이의 작품들은 상당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인데 이것이 그라이아이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라이아이의 2012-2013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13년 1년 동안 ‘프로메테우스 잠에서 깨어나다’와 ‘정원’을 포함한 네 개 작품의 공연에서 2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고 누적 관객 수는 8만여 명을 기록하였다. 총 977,961 파운드(한화 16억 6천만 원 상당)의 수입 중 57%는 영국예술위원회로부터의 재정 지원, 22%는 개인 및 재단 후원을 통한 수입, 13%는 박스 오피스, 교육 프로그램 운영, 장소와 장비의 대여를 통한 수입, 나머지 8%는 고용노동부로부터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지원금 수입으로 타 예술 단체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개인 및 재단 후원 수입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팔다리가 없는 기사. limbless knight> (사진출처: 극단 그라이아이 홈페이지)

단체의 튼튼한 미래를 준비하는 칸도코 무용단
– 교육프로그램 운영의 활성

다음 사례인 칸도코 무용단(Candoco Dance Company)은 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속해 있는 무용단으로 휠체어를 탄 무용수, 목발을 짚은 무용수들이 비장애인 무용수들과 함께 실험적이면서 혁신적인 안무를 통해 높은 수준의 공연을 보여줌으로써 무용계에 기여하고 있다. 1991년에 창단한 이후로 상당수의 레퍼토리 작품 공연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장애인 무용단이나 극단, 지역 대학과 무용단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새롭고 획기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가장 최근 작품인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Show Must Go On>가 2015년 3월부터 런던의 가장 유명한 극장 중 하나인 새들러스 웰스 극장(Sadler’s Wells Theatre)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투어 공연 중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유명 안무가 제롬 벨(Jérôme Bel)의 수상 작품으로 2001년 초연된 후 여러 무용단들에 의해 공연되다가 2015년 칸도코 무용단이 공연하는 것으로 공연 전부터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안무가 제롬 벨의 작품에 대한 칸도코 무용단의 조화와 해석에 대한 평가까지 공연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을 통해 칸도코 무용단은 평론과 관객 반응 둘 다, 모두 굉장히 좋은 평을 얻었는데 별 다섯 개가 가장 높은 평으로 유명 일간지 《가디언》은 별 5개를, 《타임스》는 별 4개를 주었다.

▲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Show Must Go On> (사진출처: 칸도코 무용단 홈페이지)

이 공연뿐 아니라 2014년의 <이것(혹은 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Let’s Talk About Dis>는 수화를 포함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신체적 장애와 특징을 가진 무용수들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유명 시각 예술가이자 안무가 헤테인 파텔(Hetain Patel)이 안무가로 참여하였고 앞서 언급된 극단 핑거스미스(Fingersmiths)의 배우들이 수화 연기자로 참여한 작품으로 역시 《가디언》으로부터 별 4개라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의 장애인 예술 단체의 많은 공연들이 평단의 평론은커녕 공연 소식란에서조차 언급되지 않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영국과 한국의 언론이 장애인 예술 작품을 다루는 관점부터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칸도코 무용단의 공연들은 같은 극장에서의 다른 세계적인 무용단의 공연들과 비교해 볼 때 낮은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찾는 이유는 높은 수준의 무용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칸도코 무용단의 사례는 한국의 장애인 무용단들뿐 아니라 비장애인 현대무용단들에게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 <이것(혹은 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Let’s Talk About Dis> (사진출처: 칸도코 무용단 홈페이지)

작품 활동 외에도 칸도코 무용단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예술전문 학교나 예술대학에서 교육받거나 다른 공연단 등에서 훈련된 장애인 공연예술가들의 수가 굉장히 적다는 점에서 많은 장애인 공연예술 단체들이 단원 영입과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칸도코 무용단은 더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에게 전문 무용 훈련을 받고 실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13세 이상 25세 미만의 청소년 무용단인 ‘칸도2(Cando2 youth dance company)’를 운영 중으로 지역의 무용단과 무용학교 학생들과의 협동 공연 프로젝트들도 함께한다. 그 외에 칸도코의 주요 교육프로그램은 장애인 학생들을 지도하고자 하는 무용 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로열 무용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Dance)의 무용 강사 과정에서 ‘장애인 통합 학급에서 무용 지도’ 과목을 맡고 있다. 칸도코 무용단은 유료로 무용 교실 운영, 교육 DVD판매, 유료 워크숍 등을 통해 부가 수입도 얻고 있다. 칸도코 무용단 역시 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은 예술위원회의 내셔널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재정 지원에서 얻는데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매년 약 400,000 파운드씩 지원받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영국의 극단 그라이아이와 칸도코 무용단의 사례를 한국의 장애인 예술 단체들과 비교해 볼 때 재원의 상당 부분을 예술위원회로부터 지원받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위 단체들이 매년 2-3편의 새로운 작품을 발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위에서 언급된 단체들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것은 영국의 공연예술계가 가진 두꺼운 관객층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미디어가 장애인 예술을 다루는 관점에서의 차이 등 수준 높은 예술적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 예술 단체들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장애인 예술가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한국의 관객들도 보다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사진_박혜신 필자소개
박혜신은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석사 졸업, 골드스미스 런던대학에서 예술 행정과 문화 정책 석사 졸업하고 현재 런던 미들섹스 대학 공연예술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브리티쉬 카운실 런던지부에서 근무 했다. 트위터,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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