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임풀스탄츠 포스터

▲ 의도적으로 모자이크를 처리한 2015 임풀스탄츠 포스터

38도가 넘는 오스트리아, 너무 덥고 힘이 들어 ‘나는 여기를 왜 여름휴가를 내서 왔을까’ 하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오려는 순간, 강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뻘뻘 땀 흘리고 연신 부채질하며 웅성거리던 스튜디오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피나 바우쉬는 이야기 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춤추게 하는가”. 춤은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폭력과 테러가 만연한 이 시대에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며 우리는 이 시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비단 무용수, 안무가뿐만 아니라 춤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들도 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임풀스탄츠(ImPulsTanz)가 존재합니다.”

순간, 내가 그토록 임풀스탄츠에 오고 싶었던 이유가 다시금 생각났다. 1년 넘게 차곡차곡 저금을 하고, 휴가를 아끼고 아껴 떠나온 임풀스탄츠에서의 나의 첫 여름휴가는 이스마엘 이보(Ismael Ivo)의 강렬한 선언처럼 마음에 거센 요동을 일으키며 시작되었다.

‘비엔나 국제무용제(Vienn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라고도 불리는 임풀스탄츠(ImPulsTanz)는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에서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1달간 개최되는 세계 최대 무용 축제 중 하나이다. 마스터들의 레퍼토리부터 새로운 예술형식을 실험하는 신진 안무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무용 작품이 소개될 뿐만 아니라, 안무가, 무용수, 일반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리서치 프로젝트 등이 함께 개최되어 전 세계의 전문 무용인뿐만 아니라 무용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다. 매년 비엔나 전역의 14개의 극장에서 50-60편의 작품이 소개되고, 150명의 무용 강사 및 안무가들이 이끄는 무용 워크숍이 250회 이상 개최되며, 12만 명의 관객이 참가하는 페스티벌의 규모가 그 위상을 가늠해 보게끔 한다.

총감독 칼 레겐스부거과 공동 예술감독 이보 이스마엘

▲ expression15에서는 모든 워크숍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다(왼쪽)
총감독 칼 레겐스부거과 공동 예술감독 이보 이스마엘(오른쪽)(사진출처: KAROLINA MIERNIK)



이쯤 되니 몹시 궁금해지는 한 가지, 도대체 이 어마어마한 페스티벌은 왜 그리고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80년대의 유럽은 ‘피나 바우슈가 탄츠테아터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고, 포사이드는 새로운 숨을 발레에 불어넣고, 프랑스에서는 국립안무센터들이 대거 설립되기 시작한’ 현대무용 격동의 시기였고, 오스트리아에서도 ‘탄츠테아터 빈’이 결성되는 등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져갔다고 한다. 페스티벌 총감독인 칼 레겐스부거(Karl Regensburger)와 페스티벌 공동감독이자 안무가인 이스마엘 이보(Ismael Ivo)는 비엔나에서도 현대무용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1984년 워크숍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6명의 무용교사가 주축이 되어 2주간 진행된 소규모 워크숍 페스티벌, 임풀스탄츠는 작지만 강하게 시작되었다!

1988년부터는 공연과 워크숍을 겸한 페스티벌의 모습을 갖춰, 알랑 플라텔, 마리 쉬나르, 라라라 휴먼 스텝스, 로사스, 에미오 그레코 등 해외 주요 안무가 및 단체들을 초청하기 시작하며, 현대무용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고 흐름을 이끌어 가는 대표적 국제무용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15 임풀스탄츠,
무용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탐구하다

이렇듯 임풀스탄츠는 주요 공연 프로그램에서 세계적 거장의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 왔지만, 2015년은 조금 달랐다. 특정 국가 및 주제에 대한 포커스를 두지 않는 페스티벌은 2015년은 특별히 오스트리아의 현대무용과 공연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오스트리아 안무 포커스’와 공연과 시각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되어 결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ImPulsTanz at Museum”이란 큰 주제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안무 포커스’에서는 ‘이게 과연 무용인지 연극인지 도대체 무엇인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확장된 안무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소개했다. 바바라 크라우스(Barbara Kraus)의 작품 에서 바바라는 춤을 추지 않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서 관객과 농담을 주고받다가 “여러분의 반응에 따라 공연이 달라진다.”라고 이야기하더니 길게 딴 머리를, 관객을 지목해 자르게 한 후, 머리카락을 경매에 부친다.(머리카락은 결국 총감독 칼에게 800유로에 낙찰되었다). 그리곤 임풀스탄츠의 첫 공연장이었던 샤우슈필하우스(Schauspielhaus)가 문을 닫는다며 모든 관객을 데리고 스테이지 투어를 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이들에게 맥주와 꽃을 주며 공연이 끝난다. 무용이라고도 연극이라고도 도대체 어떤 공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960-1970년대를 풍미한 ‘액셔니즘’을 보는 것 같아 재밌기도 하면서, 결국 공연은 예술가, 감독, 스태프, 관객이 함께할 때 존재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가슴 뭉클한 공연이었다.

샤우슈필하우스(Schauspielhaus)(왼쪽), Akemi Takeya (오른쪽)(사진출처: Karolina Miernik)

▲ 샤우슈필하우스(Schauspielhaus)(왼쪽), Akemi Takeya (오른쪽)(사진출처: Karolina Miernik)



또 다른 포커스인 “ImPulsTanz at Museum”은 비엔나의 주요 뮤지엄인 세계박물관, 현대미술관, 21세기 하우스에서 개최되는데 각 뮤지엄에 성격에 맞는 주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세계박물관에서는 샤머니즘과 오리엔탈리즘을, 현대미술관에서 액셔니즘을 주제로 펼쳐진다. 유럽의 가장 중요한 인류사 박물관이라고도 하는 ‘세계박물관(Weltmuseum)’에서는 전시되는 싱가포르 안무가이자 큐레이터인 초이 카 화이(Choy Ka Fai)의 은 아시아에서의 현대무용 및 안무 과정에 대한 무용 리서치 프로젝트로 안무가가 2012년부터 13개의 도시를 여행하며 100인이 넘는 아시아의 무용 창작자들과 인터뷰하여 아시아에서 안무 실험과 창작에 무엇이 영감을 주는지에 대해 조사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렇듯 확실히 임풀스탄츠에서는 우리 시대의 마스터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들의 작품들을 대거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서 페스티벌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느낀 건, 페스티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화려한 프로그램도, 엄청난 개최 규모도 아닌, 신진 안무가와 무용수들의 가능성을 믿고 성장의 과정을 함께 걸어가 줄 수 있는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풀스탄츠는 젊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 수 있는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여 프로그램으로 개발해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젊은 안무가 시리즈인 [8:tension]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성장을 장려하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

매년 8인의 젊은 안무가를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8:tension]이라 이름 붙여진 이 프로그램은 젊은 예술가들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적 시도를 장려하기 위해 2011년부터 시작되었다. 아크람 칸, 올리비에 뒤부아, 이안 칼러 등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안무가들을 육성해왔고, 2014년에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정금형이 초청되어 <유압진동기>를 선보였다. 페스티벌은 이러한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적 시도를 놓치지 않고 발견할 수 있도록 [8:tension]의 프로그래밍을 위해 별도의 프로그램 팀을 구성하고 있고, 마스터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부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현실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8:tension]의 일환으로 소개된 안무가 중 매년 심사를 거쳐 ‘유럽정원의 상(Prix Jardin d’Europe)‘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10,000유로의 상금과 예술적 탐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후년도 임풀스탄츠에서의 레지던시(스튜디오, 숙박, 이동 경비 및 일비)가 제공된다.

[8:tension]은 페스티벌 공연 프로그램 일환으로 페스티벌에 초청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작의 문턱이 매우 높지만, 낙담은 금물이다! 임풀스탄츠는 해외 안무가, 무용수들과 교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리서치 프로그램인 danceWEB과 다양한 리서치, 워크숍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1996년에 시작하여 올해 20회를 맞는 danceWEB은 5주간 개최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매년 공모를 통해 참가할 약 65인의 젊은 전문 무용수와 안무가를 선정한다. 에미오 그레코, 마크 톰킨스, 마틸드 모니에, 이보 딤체브 등 이름만 들어도 떨리는 예술가들이 참여자들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예술 멘토로 함께 참여해왔고 한다.

임풀스탄츠, 무용을 모두에게 친숙하고 특별하게 만들다

“저는 전문 무용수도 안무가도 아닌데,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춤을 추며 느끼고 자극을 받고 싶어요!”라고 외치고 있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전 세계의 모든 무용을 접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임풀스탄츠는 그야말로 무용 천국이다. 150명의 무용 강사와 안무가들이 이끄는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현대무용, 발레, 부토, 어반댄스, 모던댄스, 즉흥 등 다양한 무용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한 달간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워크숍센터인 아스날(Arsenal)에서 살다 보면 트리샤 브라운, 로사스와 같이 마스터의 레퍼토리도, 아프리카 표현 무용도 익힐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뜨거운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작은 풀장과 스낵바도 별미이니 꼭 이용해보길 바란다!

워크숍 센터 아스날(Arsenal)(왼쪽), 워크숍 expression14(오른쪽)(사진출처: Karolina)

▲ 워크숍 센터 아스날(Arsenal)(왼쪽), 워크숍 expression14(오른쪽)(사진출처: Karolina)



그리고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이벤트!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동안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페스티벌 라운지’가 개최되는데, DJ의 음악에 춤추며 그날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라운지는 당일 공연한 아티스트와 단체의 리셉션 장소이기도 해서 공연에 출연한 아티스트와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총감독 칼 레겐스부거는 대중이 더 무용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페스티벌 라운지를 시작하게 되었고, 실제로 비엔나 시민들이 즐겨 찾는 행사라고 전한다. 머리가 희끗한 60이 다 되어 가는 감독은 매일 밤늦게까지 페스티벌의 수장으로서 네트워킹의 자리를 지킨다. 나는 성격이 소심한 편이어서 아직까지 네트워킹이 쉽지는 않은데, 일종의 직업병인지... 예술감독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라운지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새벽 1시가 넘은 그 시간에 감독과 만나 이야기하고 몸이 너무 피로해서 더 이상 즐길 새도 없이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는데,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아티스트를 맞이하는 감독의 모습에서 예술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져 괜스레 뭉클해졌던 적이 있다.

페스티벌 라운지(왼쪽), 워크숍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오른쪽)

▲ 페스티벌 라운지(왼쪽), 워크숍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오른쪽)



'아티스트가 작품을 위해 공연하고 싶은 장소를 찾으면 그 베뉴를 어떻게든 섭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칼 레겐스부거, 그래서인지 임풀스탄츠에는 베뉴가 공연을 완성시킬 정도로 공연의 느낌과 베뉴의 분위기가 정말 잘 조화되는 공연들이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올해로 32회를 맞이하는 임풀스탄츠, 전 세계 무용인들과 애호가들이 찾는 페스티벌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중심에는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꿋꿋한 열정과 예술가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페스티벌에 대한 호기심이 리서치 수준으로 변모해, 출장인지 휴가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여름휴가였지만, 무대 위 관객과 눈으로 호흡하는 예술가들의 열정에, 공연에 너무도 솔직히 답하는 관객들의 반응에, 춤으로 소통하는 무용인들과 대중들의 모습에,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담당자들의 열정에 참 많은 자극을 받았다.

독일어로 자극을 뜻하는 ‘impuls’와 무용을 뜻하는 ‘tanz’가 만나 탄생하게 된 임풀스탄츠. 유럽에 닥친 경제 위기로 페스티벌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무용이 무용수와 관객을 자극하고, 자극받은 이들은 다시 무용 작품에 자극을 주며 발전해온 지금의 모습처럼 계속 발전해나가는 임풀스탄츠의 모습을 응원하며 기대해본다.

정선경 필자소개
정선경은 해외네트워크를 통한 국내 공연예술의 해외진출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사업본부 시장개발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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