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올해, 시비우국제연극제시비우아트마켓(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 & Sibiu Performing Arts Market)에는 전 세계 70개국의 예술가, 단체, 기획자 등이 모여 427개의 행사를 67개 장소에서 치르며 하루 추산 65,000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이는 가히 동유럽 최대 규모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규모의 축제 및 마켓이 배우 한 명의 열망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데에 있다. 본 축제 및 마켓을 주관하고 있는 루마니아 시비우 국립극단 라두 스탕카(Radu Stanca)의 대표 겸 ‘배우’인 콘스탄트 키리악(Constantin Chiriac)은 1993년, 루마니아 작은 도시인 시비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하여 최초로 본 축제를 기획하였다. 이듬해인 1994년 시비우연극제는 국제 행사로 명칭을 바꾸고 8개국의 공연을 초청하였는데, 이렇듯 소규모로 시작했던 축제가 2000년 7회 때에 참가국 수를 54개국으로 늘리는 데에 성공하였고, 2005년 12회 때에는 68개국 2000여 명이 참가하며 대규모의 세계 축제로 발돋움하였다. 이후의 성숙기를 거쳐 다시 10년 후인 올 2015년, 하루 추산 6만여 명이 몰려드는 국제적 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한 명의 배우의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이토록 큰 규모의 국제 행사로 도약하였다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

본 축제가 배우 한 명의 열망으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성공적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비우 국립극단의 단원을 비롯한 시비우의 주민 전체의 뜨거운 노력이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축제 및 마켓에는 축제에 참가하러 온 관람객 및 아티스트, 기획자 등의 원활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수십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존재하는데,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16세의 어린 청소년들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자원봉사자들은 축제 개막 전부터 사전 교육을 받아 참가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를 마치고 축제 내내 전반에서 활발하게 활약한다.

대부분의 국제 공연 축제는 부족한 자금으로 인해 자원봉사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축제가 자원봉사자의 활동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해 주는가가 그들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이는 축제의 질과도 직결된다. 본 축제 및 마켓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역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자긍심이 높을 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가하러 온 해외의 아티스트들과의 교류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루마니아 시비우 지역 주민뿐 아니라 불가리아, 헝가리, 일본, 한국 등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이 본 축제 및 마켓의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시비우 관광청

▲출처: 시비우 관광청

루마니아 시비우 국립극단 ‘라두 스탕카’의 활약

본 축제 및 마켓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전 세계 70여개 국가들이 참여하여 427개의 행사를 치렀는데, 국제 교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루마니아 시비우 국립극단의 <파우스트> 등의 공연 외에도, 한국에서도 <햄릿>, <맥베스>, <파우스트> 등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 명성의 리투아니아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Eimuntas Nekrosius)의 <더 북 오브 욥(The Book of Job)>, 유럽 지역에서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 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Klaus Maria Brandauer)의 사무엘 베케트 원작,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krapp's Last Tape)> 등의 우수한 작품들이 본 축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 밖에도 세계적 안무가 콜벤 아미르(Kolben Amir)의 <찰리 만델바움(Charlie Mandelbaum)>, 바락 마샬(Barak Marshall)의 <원더랜드(Wonderland)> 등이 공연되었다.

본 행사의 주최 기관인 시비우 국립극단 ‘라두 스탕카(Radu Stanca)’는 특히, 연일 주요 레퍼토리 공연을 상연하였는데, 본 행사를 다녀간 여러 연극인들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실비우 푸카레트(Silviu Purcărete) 연출의 <파우스트(Faust)> 외에도, 조지 태보리(George Tabori) 원작, 알렉산드루 다비자(Alexandru Dabija) 연출의 <나의 투쟁(Mein Kampt)> 외 이오네스코 원작, 미하이 마니우티우(Mihai Maniutiu) 연출의 <수업(The Lesson)>, 소포클레스 원작, 실비우 푸카레트 연출의 <오이딥(Oidip)>, 레싱 원작, 아르민 페트라스(Armin Petras) 연출의 <나탄의 현자(Nathan the Wise)>, 페터 바이스 원작, 찰스 뮐러(Charles Muller) 연출의 <마라 사드(Marat/Sade)> 등의 공연을 통하여 루마니아 국립극단으로서의 저력을 실감케 해 주었다. ‘라두 스탕카’의 작품 중에서도 본 참가자는 독재와 탄압의 역사를 딛고 국민 스스로 혁명을 통하여 민주화를 이루어 낸 루마니아의 역사적 의지를 고스란히 반영해 낸 <나의 투쟁>과 <수업>, <마라 사드> 공연을 통해 깊은 영감과 울림을 선사받을 수 있었다. 루마니아는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정권을 국민 스스로의 민주화 혁명으로 몰아낸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공연화하고 이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필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라두 스탕카’는 해외의 아티스트들과의 국제 협업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 일본 연출가 쿠시다 카즈요시(Kushida Kazuyoshi)가 연출한 일본 작가 고보 아베의 작품 <유령은 여기 있다(The ghost is here)>와 독일 샤우슈필 슈투트가르트(Schauspiel Stuttgart) 국립극단과의 공동 제작 <나탄의 현자>가 공연되며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신진 프로듀서 및 축제 기획자들의 교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다

축제 기간 중 열린 시비우아트마켓에는 특히, 신진 프로듀서 및 축제 기획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력 프로듀서, 축제 기획자의 ‘페스티벌 리딩(Festival Reading)’과 ‘예술을 마케팅하기(Marketing the Arts)’ 세미나 및 토론은 큰 도움이 되었다. ‘페스티벌 리딩’에는 BAM(Brooklyn Academy of Music)의 넥스트 웨이브(Next Wave) 축제 예술 감독인 조셉 멜릴로(Joseph V. Melillo)와 홍콩 아트 페스티벌의 축제 예술 감독 그레이스 랭(Grace Lang)이 패널로 참가하였는데, 그간의 축제 운영 경험을 상세히 발표하고 이후에 계속된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신진 기획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간 국제 예술 경영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국제 기획자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캐나다의 에스더 섀런(Esther Charron)의 진행으로 치러진 ‘예술을 마케팅하기’ 세미나는 진행자인 에스더의 예술 경영 노하우 외에도 세미나에 참석한 프로듀서들의 다양한 국제 교류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었다. 아직 마켓이 크게 활성화되지 못해 각종 세미나의 참석자의 수는 20명 내외였는데, 이는 오히려 참가자 간 친밀하고 상세하게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그 밖에 마켓에서 진행된, 축제 초청 공연의 안무가 콜벤 아미르(Kolben Amir), 바락 마샬(Barak Marshall)과의 워크숍 및 미팅은 배우로서 공연계의 경력을 시작한 필자에게 특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본 워크숍 및 미팅에는 ‘라두 스탕카’의 배우를 비롯한 축제 및 마켓에 참가한 배우 및 무용수 등이 다양하게 참여하였다.

마켓 마지막 날인 19일에는 마켓 참가자들을 위한 아스트로 뮤지엄(Astro Museum) 방문 소셜라이징 미팅이 마련되었는데, 그간의 워크숍, 미팅, 세미나, 프레젠테이션 등으로 친분을 쌓은 각국의 국제 교류 전문가들의 결속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시비우국제연극제 및 시비우아트마켓은 여러모로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우려를 지울 수 없게 만드는 점이 있다. 현재 시비우는 2021년도 유럽 문화 수도 선정을 앞두고 이의 유치를 위하여 축제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일견, 질보다는 양적인 발전에만 치중되어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본 행사의 주최인 ‘라두 스탕카’가 연일 놀라운 수준의 레퍼토리 공연을 상연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해외 초청작의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네크로슈스, 콜벤 아미르, 바락 마샬, 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망스러운 수준이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여느 국제 공연 축제나 비슷한 형편이겠지만, 초청료의 예산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적인 예산을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축제의 질을 판가름하게 된다. 시비우 축제가 적은 돈으로 초청할 수 있는 공연을 다수 초청하여 축제를 양적으로 팽창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 장기적인 전략수립 면에서 봤을 때 시비우 축제가 해외 아트마켓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이에, 국내의 국제 교류 전문가가 향후 국내의 공연 예술 단체의 진출 가능 시장으로서의 본 축제 및 마켓을 고려할 때에는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비우국제연극제는 관객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장으로서 공연예술가에게는 꿈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거의 매 공연마다, 심지어 밤 11시에 상연되는 공연에도 관객들이 가득 들어찬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 관객들은 열심히 공연한 예술가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본 축제에서 공연한 공연예술가들에게 이러한 관객들의 열정적인 반응은 평생에 남을 해외 공연의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기에 국내 단체의 국제 교류 전문가가 해외 진출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본 축제 및 마켓은 다양한 각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홍혜련 필자소개
홍혜련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공연창작집단 뛰다’에서 전속 배우로 활동하며 국제 교류 경험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후 국제 공연 코디네이터로 활동의 범위를 넓혀 ‘예술무대 산’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고 있는데, 영국 Dash Arts의 상임 연출가 팀 서플(Tim Supple)의 글로벌 셰익스피어 프로젝트인 ‘킹 리어(King Lear)’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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