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FACP)은 아시아 영토에 속하는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민간 예술단체 및 매니지먼트들의 공연예술 사업 관계자들이 주축이 되어 1979년에 창설한 단체다. 그 이후로 매년 1회씩 나라를 돌아가며 총회를 개최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공연예술 관련 정보와 스케줄, 프로덕션을 공유하며 서로의 관심사와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는 한편, 아시아의 문화적 자산을 세계무대에 소개, 확산시키는 것을 연맹의 주요 사업으로 한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며 그 규모가 점점 늘어났고 현재 국제 이사를 파견하는 정회원국으로는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호주, 마카오, 말레이시아, 몽골 등이 있으며, 준회원국으로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있다. 주요 의사 결정 기구로 이사회를 두고 있으며 이사회의 구성은 회원국별로 1~4인을 선임하고 있다.

현재 마사미 시게타가 FACP 회장을 맡고 있고 부의장으로는 박인건 KBS 교향악단 전 사장과 진신 첸, 아틸라 쇠리야자야, 비비안 휘-첸 쿠로 구성되어 있다. 이 FACP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임원진이나 구성원들을 명기할 때 국적을 사용하지 않고 도시 이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여러 민족적, 국가적인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국적 대신, 공연의 중심이자 문화의 출발점인 도시를 앞세워 보다 순수한 공연예술의 가치와 도시의 경쟁력 및 상호 소통과 교류 협력을 우선시하고자 하는 단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아시아 뮤지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2015년 8월 제33회 FACP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 입장에서는 지난 1985년과 1994년에 이어 서울에서는 세 번째, 2002년에는 제주와 2008년에는 전주에서 개최하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유치해 왔다. 특히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총회는 서울 뮤지컬 페스티벌과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프리페스티벌과 같은 기간에 개최되어 보다 많은 콘텐츠와 관계자들이 모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뮤지컬 시장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2박 3일간 리셉션을 비롯하여 다양한 주제 강연 및 토론, 공연 관람이 이어지며 국내 음악 관계자들에게 있어서는 국외의 상황을, 초대 손님들에게 있어서는 국내의 공연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알찬 스케줄로 구성되었다.

이번 총회의 주된 관심사는 뮤지컬과 같은 대중 무대예술이었다. 충무아트홀을 중심으로 한 만큼 이번 스케줄의 중심인 20일에 열린 다양한 강연 또한 대부분 뮤지컬과 각 도시마다의 대중적인 무대예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일본과 서울을 제외하고 아직 아시아 시장 대부분에서 뮤지컬 장르가 상업적으로 활발하지 못한 탓에 FACP의 국내외 참가자들의 관심은 이 장르를 어떻게 시장에 론칭할 수 있는가에 집중되었다. 그 가운데 극단 ‘사계’의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교토극장의 고문으로 활동 중인, 일본 뮤지컬, 연극계의 전설적인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인 오자와 이즈미의 강연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의 강연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자전적인 성장기에 가까운 만큼 이후 등장한 교수들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과 교훈을 주었다.

오자와 이즈미가 선택한 주제는 <뮤지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는 극단 ‘사계’의 홍보 영상을 먼저 보여 주었다. 프로덕션 그 자체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이 아니라 제작사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물인 만큼 극단 ‘사계’가 아시아 시장에서 갖는 위상을 가늠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알라딘’, ‘인어공주’, ‘캐츠’, ‘맘마미아’, ‘미녀와 야수’와 같은 히트작들의 클립들을 중심으로 화질과 편집, 음량 조절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담긴 멋진 홍보 영상물이었다. 이어서 극단 ‘사계’에 대한 역사를 설명해 나갔다. 시종일관 그의 강의에는 자신감과 진취성이 돋보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의 창조력과 전문 경영의 앙상블

1953년 창립, 62년째 된 극단 ‘사계’는 이제는 고용 인력만 1,100명에 작년 공연 횟수 3253건, 연 매출 2천억 원에 이른다. ‘적재적소의 기획력’과 ‘역발상’, ‘미래 관객을 공략한 선투자’를 중요한 성장 요소로 제시한 그는 회사 창립 10년 후인 1963년에 도약의 발판을 이루었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중소극장에서 활동하다가 1,300석 규모의 도쿄 니세이 극장에 진출하며 표현력도 커졌고 어린이를 위한 공연도 시작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극단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1973년에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았는데 수도권을 벗어나 일본 전역에서 공연을 시작해 3,000여 개의 공연장에서 1억 3천만 인구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문화집중 현상을 분산하고 지방으로 확산하여 수입구조를 다변화한 것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연극은 문학의 한 장르라고 말하며 현대극에 연극적인 양식을 더한 결과 일국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극 양식을 발전시켰다고 언급했다. 일본(중국 포함)은 전통적‧대중적으로 무대극 문화가 발전해 왔고 이에 많은 극장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로서, 이러한 전통이 취약한 한국에서도 극장/극문화 중심의 문화 거점이 하루빨리 확보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대목이다.

1883년 ‘캐츠’ 공연이 현재의 극단 ‘사계’의 출발점으로 꼽을 수 있는 중요한 변화였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에 다섯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첫 번째, 가설극장. 도쿄 상연 시 기존의 극장은 ‘캐츠’의 오리지널 무대를 상연하기에 시설이 빈약하고 건축적인 문제가 있어 전용 상연을 위한 철골구조의 가설무대를 만들어 사회적인 임팩트를 주었다. 두 번째, 티켓 발권. 컴퓨터 온라인 예매를 시작하여 마켓 요구를 바로 받아들여 대응할 수 있게 되었고 발권 하루만에 티켓이 매진되어 사회적인 이슈를 몰고 왔다. 세 번째, TV CF. 미디어에 유료 광고를 하며 대규모 장기공연에 따른 예산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수입이 높아졌다. 네 번째, 기업 협찬. 아지노모토에서 협찬을 시작,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협찬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 동호회. 프로덕션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을 모아 이벤트를 해 주면서 청중을 직접 관리, 현재 그 수는 19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개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첫 번째와 막 시작 단계인 네 번째, 다섯 번째가 전문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대목이었다.

극단 사계의 전용극장(왼쪽)과 ‘캐츠’ 공연(오른쪽)(사진출처: 극단사계 공식 홈페이지)

▲극단 사계의 전용극장(왼쪽)과 ‘캐츠’ 공연(오른쪽)(사진출처: 극단사계 공식 홈페이지)

그 결과 도쿄와 열도 전역에서 롱런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극단 ‘사계’가 50년째 꾸준히, 그리고 매우 정성 들여 기획하고 있는 ‘마음의 극장’이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공연으로서 아이들을 처음 공연장에 오게 하고 극장에 대한 실전경험을 쌓게 만들어주며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꾸준하게 무대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따뜻한 가족 뮤지컬로서 일본 전역에서 무료로 공연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제야 구민 회관을 중심으로, 지자체 중심의 어린이들을 위한 뮤지컬을 하기 시작했는데, 직접 극단을 운영하지 않는 지자체가 외주만을 주어서 운영하는 것은 전문성과 교육성, 예술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고용에 대한 안정성 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직 문제가 크다. 예술은 항상 예술가의 창조력과 전문적인 경영인과의 앙상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만큼 지자체(혹은 국가)의 집중적이고 전문적인 지원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국가 경쟁력을 위한 제3의 힘 ‘문화력’

오자와 이즈미상이 힘주어 강조했듯이, 예술적인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관객도 없고 발전도 없다. 과연 예술적인 질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는 어떤 정책과 방향을 잡아왔을까. 예술은 돈을 잡아먹어야 발전할 수 있는 숙명을 타고 났지만, 그 단계를 넘어야만 진정한 문화이자 국가적 경쟁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법이다. 최근 이어령 교수가 한 사설에서 언급한 제3의 힘인 ‘문화력’ 또한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우리도 이를 위한 전제 조건들을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생산력으로서의 ‘문화력'이 중요한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후 이영조, 챈 치에 라우, 아미한 보니파시오-라몰레테 교수들이 <공연예술 산업화와 예술교육>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고, 마사유키 세키타, 나호천, 잉 첸 자우가 <아시아 공연예술의 산업적 발전>을, 레온 고, 전계수, 빈센트 디 예수가 <뮤지컬과 영화의 만남: 산업 전망>에 대한 강의를 이어나갔다. 학교에서의 분석이나 방향성 제시도 중요했지만 아무래도 감독이나 제작자, 수입사 등 비즈니스 무대에서 직접 경험을 하며 운영을 하는 사람들의 강의가 훨씬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비전이 있었다. 그것은 이 FACP라는 조직 자체가 현장과 비즈니스 중심인 동시에 도시의 문화 수준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FACP 콘퍼런스 현장(사진출처: FACP 서울총회 사무국)

▲FACP 콘퍼런스 현장(사진출처: FACP 서울총회 사무국)

전체적인 운영은 대단히 매끄러워 세계적인 문화 콘퍼런스로서의 수준을 충분히 반영했다. 특히 효율적인 동시통역과 합리적인 시간 배분,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한 행사 진행을 통해 한국의 회의 문화 수준이 매우 높아졌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첫째 날 동대문 DDP 야외공연장에서의 무대도 훌륭했고, 둘째 날 한국의 수준 높은 KBS 교향악단 공연을 서울의 대표적인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에서 단체 관람하게 한 것도 바람직했다. 이번 총회의 주제가 뮤지컬이었지만 참석자들의 면면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공연장과 매니지먼트 중심이었던 만큼 국악과 뮤지컬, 교향악단, 극장 등 서울의 문화 전반을 모두 일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하게 읽혀졌다.

박제성 필자소개
박제성은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 및 서울바로크합주단 예술고문, 진주이상근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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