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국제공동제작의 현황

정명주 나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와 국제공동제작 매뉴얼이라는 책을 제작한 바 있다. 7-8년 전 국제공동제작이 대한민국 공연계의 화두였고 다들 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뜨거웠던 열기가 사라진 현재 문제점과 어려움이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만큼 국제공동제작이 이루어지고 있고, 실제 현장 제작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안성수 2010년 예경에서 기획했던 한국-핀란드 커넥션에 참여한 적 있다. 핀란드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WSH 비주얼 아트 그룹을 만나 1차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한국의 안무가와 무용수, 핀란드 비주얼 아티스트가 만나 만든 < Double Exposure>라는 작품이었다. 독일, 러시아, 에스토니아 등 투어를 많이 다니다 보니 이를 조금 다른 형식의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가 핀란드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시벨리우스가 태어난 도시인 헤미린나의 베르타케다스 극장, 예술의전당과 공동 제작으로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인 <투오넬라의 백조(The Swan of Tuonela)>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두 극장과 WHS, 성수안픽업그룹이 함께 작업한 이 작품은 6일 동안 헤미린나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경우 유통에 있어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핀란드 투어를 앞두고 있다. 계속해서 유통시킬 생각이다.

정명주 함께 작업할 예술가를 어떻게 찾게 되었나?

안성수 예경에서 그들의 비디오를 보여 줬고 WHS 비주얼아트그룹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접촉했다.

정명주 협업하고 보니 어떠했나? 한국에서 혼자 작업할 때와 외국의 전혀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와 작업해 보니 기대해 본 결과가 나왔나?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 만들어졌나?

안성수 기대한 바대로 배울 수 있던 것이 많았다. 특히 작업의 효율성이라든지, 예산 세우기, 합당하게 진행시키기, 기획력 등등. 과하지 않고 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진행이 되었다. 작품에 있어 새로운 특징은 라이브 뮤지션들과 함께했다는 점이다. 처음 기획했을 때 시벨리우스 재단으로부터 시벨리우스 음악을 모티브로 작곡을 다시 해서 그 곡을 연주할 수 있게 허락받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명주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만나 영감을 받고 예술 세계를 확장하고 싶어 국제공동제작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하게 되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들고 더 고생스럽다고 말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어떠했나?

안성수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재정적인 문제는 한국에서 극장과 제작 투자를 하겠지만 핀란드 측에서 펀딩을 해 주기 때문에 그곳 컴퍼니에서 월급을 받는 입장이었다. 그게 더 가난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원영오 나는 2002년부터 공동 작업을 8번 정도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도 있다. 극단, 복합장르 예술가 등과 협업했으며, 함께 작업한 국가로는 호주와 멕시코가 있다. 지난 3월 호주 캐슬마인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다. 이 작업은 토니얍컴퍼니와 공동 작업한 것으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공동 작업은 작품당 3년 정도 작업 기간이 소요된다. 예산상 이유도 있고 극단이다 보니 다른 단체들과는 다른 집단성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 측 관계자들과 작업할 때에는 아티스트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가능하냐가 가장 중요하다. 2007년 작업의 경우 애니메이션, 미디어, 사운드디자이너, 뮤지션 등 아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했다. 이런 작업에서 중요한 과제는 참여한 예술가가 과연 예술적으로 수평한가였다. 아시아 청년 예술가들이 개별적으로 협업하고 각자 작업을 확장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쇼케이스까지만 진행하고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한 작업도 있다. 예술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확장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예술가들에겐 제일 중요한 시발점이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막상 진행했을 때, 성향이 판이하게 달라 내부에 큰 갈등이 있었다. 더 이상 불행을 겪지 말자고 의견이 모아져 각자 좋은 팬으로만 남기로 했다.
이러한 여러 경험을 통해 공동 작업이라는 것이 재정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비슷한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큰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다.

정명주 토니얍컴퍼니와의 공동 작업에서는 업무 분장, 재정적 부담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나?

원영오 토니얍컴퍼니 단원에 대한 모든 비용은 그쪽에서 지불한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공연할 때 소요되는 기획 제작 비용, 기술적인 부분을 우리가 부담하나 아티스트피는 토니얍컴퍼니에서 담당한다. 마찬가지로 호주의 공연 현지에서 필요한 기술적 비용, 인력, 필요한 제반, 기획, 홍보 등은 그쪽에서, 우리 멤버에 대한 아티스트피는 우리 쪽에서 해결한다. 재정적으로도 가장 리스크 없이 진행한 작업이다.

정명주 공동제작의 방식은 아주 여러 가지가 있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컴퍼니 성격에 따라 만남의 성향은 달라지겠지만) 극단 노뜰처럼 한국의 컴퍼니와 외국의 컴퍼니가 만날 경우, 각 나라에서 소요되는 재정적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 같다. 안성수와 같이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예술적인 리더십을 인정받아 해외 기관과 협업할 경우, 재정적 부담은 그쪽에서 전적으로 해결하고 프로듀싱하면서 예술적인 부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예술가에게 주는 것 같다.

원영오 작품의 프로세스가 다르다. 뮤지션 등 다른 분야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는데, 아무래도 극단이다 보니 연출가의 강력한 리더십과 콘셉트 중심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 반면 토니얍은 다원예술가들이 균형 있게 작업하다 보니 각자 참여할 때 개인의 미학적 성취감을 반영하며 작업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분명히 나아간다.

이경성 이제 막 시작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경험보다 시작하며 받은 질문을 공유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왜 공동 제작을 하는가?", "교류하는 아티스트, 극단과 어떤 미학적 질문을 공유하는가?", "공동 제작이라 했을 때, 하나의 언어로 만드는데 그것이 어떻게 각 문화권에서 유효한가?"이다.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업은 2013년부터 진행한 호주 렌터스극장과의 공동 작업이다. 이 작업은 "거리에서 어떻게 영화적 체험을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부터 워크숍을 진행했다. 아직 최종 작업은 발표하지 않았다. 워크숍 과정에서 형식 실험이 있었는데, 일차적으로는 호주 멜버른 CBD라는 복잡한 도심에서 관객을 두 그룹으로 나눠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을 따라 팔로우업하는, 즉 그들의 산책 자체가 프레임이 되는 프로젝트였다. 그들의 시야 안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프레임했다. 올봄에는 이 작업을 한국에서 진행했다. 도심에서 한 번 해 봤으니 서울의 지형을 잘 담아내는 부암동에서, 우리 동네를 소개하는 콘셉트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을 바탕으로 어떻게 우리가 초기에 가졌던 질문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질문이나 전략이 날카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4년 진행해야 하니 예산이 어찌 충당될 수 있을까, 그만큼 이 작업이 효율적인가 걱정되었지만 나에게는 긴 교류 과정 자체가 훌륭한 훈련이자 연습이 되었다.
최근 페스티벌 봄에서 필리핀 극단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호주 아티스트들이 콘셉트를 만들어 와 우리가 한국적 맥락 안에 그걸 적용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정부 상을 참여자들과 만들어 보고 이상적인 도시를 구축해 봤다. 커다란 종이에 도시를 그려보고 이상적인 리더를 뽑아 발표했다. 페스티벌 봄에서 진행할 때에는 한국 관객의 특성상 참여가 저조했으나 형식 자체가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으니 갈등은 없었다. 갈등이 없으니 정치의 과정도 없고 다 이상적인, 좋은 게 좋은 나이브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참여자들도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그 후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자기 발언을 하는 것을 열망하는 커뮤니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너도나도 나가서 이상적인 도시상을 얘기하려고 했다. 똑같은 방법을 적용했을 때 한국에서는 동시대적이지 못하다, 나이브하다고 평했는데, 다른 문화에서는 동시대적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고 그 안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내는 등 동시대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보편적인,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형식을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동시대적인 작업은 그 공동체 안에서 유효한 작업이다. 국제 공동 교류라고 했을 때 너무 유니버셜리티에만 집착해서 어디에나 통용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러한 작품 자체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명주 공감한다. 우리나라에서 잘 됐으니 영국에서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물론 음악 감독의 성향도 있겠지만) 영국의 뮤지션 같은 경우 젊은 세대의 공연에서는 숨 같은 퓨전 음악 팀을 선호하고, 프랑스나 네덜란드는 전통 공연, 명인의 공연을 선호하더라. 투어를 해도 팀을 두 개로 나눠서 진행해야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예술 기관, 어떤 장소(venue)에 가는지, 권역별, 성향(센터)별 특성 파악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렌터스극장의 도시 투어 프로젝트는 관객이 무엇을 얻어 가게 하고 싶었는지 그 목적이 궁금하다.

이경성 워크숍에서 질문지를 줬다. 실제 거리를 걷지만 우리를 따라올 때 영화적 체험이 어느 순간 느껴지는지, 체험되는지, 그것들이 가능한가 얘기하고 다음 작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이 궁금했던 점을 듣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형태의 워크숍이었다.



왜 우리는 공동제작을 하는가?

제레미 나이덱 한국에 온 지 11년 차다. 한국-호주 협업 1세대인 연출가 故 로저 린드가 멘토였다. 그는 90년대부터 한국인들과 이 작업을 해 오다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개척한 공동제작에 대한 접근법을 나와 내 동료들이 계승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기반의 협업과는 조금 다르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양국의 배우를 하나의 극단으로 유지하고 양성하는 것이다. 나는 로저 씨의 부재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해진 상황에서 한국에 와 그것을 추진하려다 관계까지 계승하게 된 케이스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의 주제인 “왜 우리는 공동제작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하자면,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과의 협업을 통해 만든 작품을 호주에 소개하는 데에 희열을 느끼고, 그 자체에 열정이 있다. 나같이 생긴 사람들도 발언권이 주어지는 이런 작업 환경을 좋아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와 작업 현장을 통해 얻은 경험을 가지고 다른 동료들에게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이는 나에게 굉장히 큰 양분이 되었다. 국제공동제작이 정치적인 이익이나 각국의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답을 해 보자면 각국의 소프트파워, 브랜드와 이미지를 좀 더 개선하면서 궁극적으로 문화를 도구로 활용해 정치적인 어젠다까지 추진하게 된다. 또 이런 식의 접근법이 많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예술가들은 하나하나 자기 주변에 변화를 일으킨다. 내가 하는 것은 트랜스컬처, 다문화적, 문화의 경계를 초월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작업을 함으로써 사회를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대안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여긴다. 국가 간의 분쟁, 관계 등 그런 것에 예술가들이 반응하며 작업을 한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면 긴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서 예술가들은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호주야말로 다름이 공포를 자아내는 대표적인 사회의 예이다. 이런 다름 속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협상을 한다.

정명주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가? 국제공동제작을 통해 그 역할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또한 왜 공동제작을 더 하고 싶고, 예술가로서 이를 통해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안성수 예술가로서 예술도 하고 계획을 하는 것이다. 현재 2017년까지 계획이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유통시켜야 한다. 그런데 핀란드 측과의 작업이 계속 유통되니 거기에서 나오는 재정을 바탕으로 무용수들과 이후의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계속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정명주 쉽게 말해 더 큰 시장이 거기 있고, 우리나라에서만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작업을 가지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니까 그 기회를 찾아서 가고 예술적으로도 풍성해진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미학적인 세계가 확장되는 게 사실이니까.

안성수 두 번째로 만든 <투오넬라의 백조>의 경우 예전에 제작 투자를 한 것이기 때문에 공연을 할 때마다 그 이름이 따라다닌다. 예술극장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정명주 유럽의 한 페스티벌에서 축제 감독들이 모여 엑스티스톱이라는 펀딩을 제작한 적 있다. 예술가들을 한번만 초청해 축제에서 공연한 후 버리지 말고 그 예술가가 계속 무엇을 하는지 팔로우업을 하면서 다른 스태프를 찾아 주는 프로젝트였다. 헝가리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연극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헝가리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펀딩이 어려웠고, 이에 서유럽의 관계자들이 모여 그를 지원하겠다고, 하고 싶은 걸 만들어 보라고 했다. 이에 예술가들은 예술적인 콘텐츠를 책임지고 페스티벌 감독들이 모여 재정적인 걸 책임지는 공동제작을 했더라. 페스티벌끼리 공동제작을 한다고 하면 리드 페스티벌이 생겨 그쪽에서 예술적인 면을 확인하겠지만 다른 페스티벌들은 재정적으로 작품을 지원하며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그런 식의 공동제작이 예술가들에게는 최고의 공동제작이 아닐까 한다. 재정적인 부담은 덜어 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런 것 말이다.

이경성 예술가 자체가 어쨌든 문화산업 안에서 성장한 사람이고, 어떻게든 그 울타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맥락에서 온 아티스트와 만났을 때 제3의 어떤 게, 예술언어든 생각이든 미래에 대한 사유든 간에 가능성이 분명 확장되는 것 같다. 가능성을 계속해서 공유를 하는 게 작업을 이어 나가는 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지속하고 싶다.

원영오 처음 시작했을 때 근본적인 고민은 생존이었다. 단체나 스스로가 가진 예술적 성향이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 더 많은 관객을 스스로 찾아가야만 작업자로서 예술가로서 계속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공동제작은 스스로 관객을 찾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나와 함께 작업하는 구성원들은 새로운 문화나 환경, 사람에 대한 학습이 예술가에게 필요한가, 요즘 같은 시대에 예술가들이 왜 생존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스스로에게 가지게 되었다. 두 가지가 중요한 목표이고 가치인 것 같다.

정명주 일반적으로 예술이 왜 있어야 하느냐고 할 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대답은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고 잊고 지내는 것들을 깨닫게 해 주는 어떤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기능을 예술이 해 준다.”라는 것이다.



국제교류 활동, 과거와 현재

정명주 10년 전과 지금, 국제적인 교류 활동에 있어 달라진 점을 느끼는가?

안성수 서울이라는 곳에 대한 관심이 외국에서 높아진 것 같다. 한국에 와서 문화를 보고 아티스트를 데려가서 소개하는 작업을 많이 하려고 하더라. 빠른 변화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내년 한·불 상호교류로 샤이요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신작을 요청하더라. 보통 기존의 안정된 작품을 고르는데 그들이 신작을 요구하는 건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는 반증이다. 많이 변했다.

정명주 이경성 씨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이경성 국제 공연을 처음 갔던 건 2010년 에든버러 공연 때였다. 당시에는 정신없이 가서 공연만 하고 왔다. 거기에서도 축제보다는 아트마켓의 느낌이 컸다. 스스로 유통에 관한 개념이 없어 공연을 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 어떻게 작업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작업하는가, 처음 파트너를 누구로 찾느냐가 진짜 중요하더라. 서로 다른 예술 작업을 해 오던 사람과 만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정명주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에는 한국의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실제로 에든버러에서는 한국 공연 <한 여름 밤의 꿈>을 일본 공연이라고 소개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2016년까지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이고, 2017년은 영국이다. 이에 무용 커넥션 사업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외국의 프로모터들이 한국의 작품을 찾으러 오고 있다. 또, 한국 사람이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협업을 계획하기에 좋아졌다. 그러나 이게 반드시 장밋빛 아름다운 길만은 아닌 듯하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어떤 것이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원영오 97년에 국제 활동을 시작했고, 2000년 중반 넘어 본격적으로 아트마켓이 생겨났다. 예전에는 축제 자체가 소규모의 마켓 기능을 했다. 과거에는 그것이 가진 작품에 대한 고유한 개성, 축제 미션과 부합하는 작품의 성향, 연결되는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주였다면 요즘은 마켓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어서 훨씬 더 좋은 여건이 되었다. 반면, 많은 예술가들이 오히려 시장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작업을 하는 경향이 많이 생겨나게 됐다. 그러다보니 예술가들 상호 간에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접점, 소통, 예술적인 나눔, 만남, 이런 고유한 정체성이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우리도 공동 작업을 하자고 제안 받았는데, 그들은 한국의 시장이 커졌고 공동 작업을 했을 때의 이득을 고려하는 등 시장 중심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제안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 같다. 시간을 가지고 예술가를 좀 더 이해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아가는 게 앞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아트마켓이 언제까지 장밋빛일지 모르겠으나 예술가들끼리 무엇을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한 번씩 해 봤으면 좋겠다.

정명주 축제 프로그래머들이 한국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이런 소재들이 잘 되겠거니 하고 전통 소재를 고른다든가 하는, 시장에 맞춰서 상품을 내놓는 태도를 안타까워했다. “예술가라는 건 자기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한 후,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게 정도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맞춰 처음부터 창작을 하는 것 자체는 예술 정신을 점차 잃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라고 말하더라. 내가 만든 예술 작품이 세계적인,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는 작품이면 좋겠지만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예술적인 세계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해 주길 바라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제공동제작의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국제공동제작을 하지 않고 동네에서 하면 된다.(웃음)

청중 미국에서는 펀딩이 되지 않으면 내년에 해야지 하고 여유 있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그것을 올해 안에 다 쓰지 않으면 큰일난다”라고 했다. 그래서 협업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정명주 중요한 지적이다. 지원 체계의 차이가 국제교류를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되고 있고 한국만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다르다. 지원금 액수가 너무 적어 다른 나라와 교류하는 데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아시아 쪽에서도 정부의 지원금 액수가 큰 곳이 있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처럼 열정은 아주 많은데 아직 정부에서 지원해 주지 못하는 곳이 있다. 심지어 유럽, 아시아와 작업할 때 서로 내는 제작금이 90 대 10밖에 안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 이 케이스에는 돈이 많은 나라에서 재정적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공동 제작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작업을 하면서 약간의 불편함이 생기더라. 한국의 펀딩 시스템이 1월 1일로 시작해서 12월 31일로 끝나는데 실제로 지원금을 주겠다는 약속이 3월이나 4월에 확정되기 때문에 1월에서 4월은 거의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게 12월까지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것이 예술가, 프로듀서가 끊임없이 정부를 설득해서 장기 플랜을 가능하게 하고 3년 계획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해외에서 작업하는데 어렵다고 하면 가끔은 예외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하든지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프로듀서들이 뼈저리게 느끼는 단점이다.

제레미 나이덱 정치적인 어젠다나 예술적인 어젠다에 있어서 한국기관과 국제기관들 간의 공통점이 많이 있다. 정치적인 어젠다와 문화적 어젠다 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예술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런 협약 체결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이다. 펀딩을 받게 되면 서류 작업 등이 굉장히 많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 파트너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에게는 낯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함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질문을 사전에 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 최대한 많이 예측해야만 성공률을 올릴 수 있다. 그런 태도나 자세가 협업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정명주 국제공동제작은 이 시대를 사는 아티스트라면, 특히 한국 아티스트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1년 내내 벌어지는 다양한 국제 행사를 통해 같이 작업하고 싶은 국제 아티스트를 만날 수도 있고 내가 공연하고 싶은 나라를 찾을 수도 있는 등 여러 길이 열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해외 컴퍼니와 같이 작업하며 견문을 넓히고 미학적인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사진제공_서울아트마켓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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