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약 력/·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 전문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연극 교육연구소 인터 부소장/·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상임연출가/·판소리창작 공연단체 판소리만들기    자 예술감독
/연 출/·2004 <가믄장아기>/·2011 뮤지컬 <재주 많은 다섯 친구> <소년이 그랬다>/·2012 <겨울이야기>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어쩌면>/·2013 <구름>, <사천가>/·2014 <억척가>/수 상/·2012 서울어린이연극상 연출상/·2010 서울어린이연극상 극본상, 작품상, 연기상

트럼펫, 튜바, 트롬본, 색소폰, 드럼 퍼포먼스 브라스 밴드인 미스터 브라스의 대표 전우공. 그는 묵직한 관악기를 사랑하는 연인처럼 안고 때론 웅장하고 때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한다. 미스터 브라스가 결성된 지 벌써 여섯 해. 그간 멤버 교체는 있었지만, 특별한 갈등이나 대립은 한 번도 없었단다. ‘하고 싶어서’ 하니까 ‘되더라’는 활짝 웃는 리더의 얼굴이 아무래도 그 비결임이 분명하다. 브라스 밴드는 어떻게 결성되고, 또 어떻게 그들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지 묻고, 들어 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브라스 밴드를 하고 계시는데, 먼저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미스터 브라스라는 공연 팀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우공이라고 합니다. 팀 이름을 통해 예상 가능하시겠지만, 미스터 브라스는 다섯 명의 남자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입니다. 7년 정도 됐네요. 지금까지 소외 지역, 문예회관, 일반 기업 행사 등에서 공연해 왔어요. 올해는 저희 공연이 문예회관 우수공연 작품으로 선정되어, 문예회관 콘서트홀을 돌며 국악과 함께 협업하는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하셨던 공연을 찾아보니, 국악기와 함께 구성한 연주가 있더라고요. 보통 국악과 협업이라고 하면, 타악기와 서양 악기의 조화를 상상하게 되어 생소했는데, 해금과 가야금이었나요? 현악기와 관악기가 서양 악기와 섞이니 독특하면서 참 좋았어요.
처음에는 미스터 브라스도 기존의 클래식곡, 악보로 나와 있는 5중주 연주만 주로 했어요. 그런데 브라스 음악이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낯선 편에 속하거든요. 중간에 팀 내에서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그때 영입된 멤버가 재즈를 전공한 친구였죠. 그 이후 클래식과 재즈 음악이 자연스레 섞이게 된 거예요. 해 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클래식 음악만 할 때보다 음악적으로 신선하기도 하고, 자극도 되고요. 그러다 보니 국악과도 협업하게 되었고 지금은 장르를 제한하지 않고 가요, 클래식, 재즈, 국악 등 다양한 곡을 소화하려고 합니다.

음악 전공자이신가요?
네. 음대 졸업하고, 군 생활도 군악대로 했어요. 멤버들도 전부 음대 출신이에요.

음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무용이나 미술도 그렇겠지만, 특히 음악은 어릴 때부터 훈련된 사람들이 주로 전공하게 되잖아요.
저는 경우가 조금 달라요. 원래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관악부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됐어요.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관악부가 있는 학교가 많았는데, 다니던 학교에서 윈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기에 무작정 찾아갔죠. 그전에는 전혀 음악을 해 본 적이 없고요. 전공자들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 차원의 팀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친구들이 들어왔어요. 그 후 2학년, 3학년 선배들로부터 조금 조금씩 기초를 배워 나가고 독학으로 연습해서 악기를 익혔죠.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엘리트 코스라는 게 있어요. 예중, 예고 나오고 유학 다녀오고 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인데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음악은 계속하고 싶었고, 그 방법을 찾다 보니 팀을 구성하게 된 거죠.


팀을 지속하려면 계속해서 공연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제안서나, 지원서 등을 써야 하죠. 평소에 해 본 적 없는 일들을 과제로 떠안게 되니까 그에 대한 부담이나 어려움은 당연히 있어요.



음대를 졸업한 전공자들이 선택하는 다양한 진로 가운데, 왜 팀을 꾸려 활동하는 쪽을 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엘리트 코스라는 게 있어요. 예중, 예고 나오고 유학 다녀오고 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인데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음악은 계속하고 싶었고, 그 방법을 찾다 보니 팀을 구성하게 된 거죠. 팀원들과 그런 맥락에서 공감하는 것들이 있어서 같이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유지해 오는 것 같아요.


▲ 미스터 브라스 공연(2014)


밴드를 결성한 이후로도 그렇고, 지금까지 음악을 해 오면서 회의감이나 슬럼프가 찾아온 적은 없었나요? 만일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들려주세요.
실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슬럼프는 없었어요. 다만 팀을 지속하려면 계속해서 공연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제안서나, 지원서 등을 써야 하죠. 평소에 해 본 적 없는 일들을 과제로 떠안게 되니까 그에 대한 부담이나 어려움은 당연히 있어요. 팀원 중에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저뿐이다 보니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제 일이 되었거든요. 혼자 하는 게 너무 벅찰 때는 다른 멤버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는데, 생각만큼 가져오는 결과물이 좋지 않아서 지금은 그냥 거의 제가 해요(웃음). 분업이 안 되는 거, 처음에는 서운했는데요.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냥 제가 더 움직이면 되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게 혼자 일을 떠맡다 보면 빨리 지쳐 버리지 않나요? 엄연히 모두의 일인데, 혼자 그 일을 하는 걸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여 버리잖아요.
제가 쓴 제안서나 기획서가 통과되어서 원하는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될 때쯤 되면 힘들었던 것들도 다 잊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긍정적인 걸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것들이 바로 미스터 브라스를 지속시키는 힘이 된 거겠죠.
성취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디에 지원했는데, 우리가 선정됐어”라고 할 때, 팀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쁘고요. 지치지 않는 비법이 있다면, 일을 급하게 처리하지 않고 여유를 두고 시작해서, 차근차근 준비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미스터 브라스라는 팀으로, 또 음악가로서 활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사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쭉,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뭘 하든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음악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들이 거의 80~90퍼센트 정도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계속 음악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행복한 거고요.

금관악기 전공자들의 일반적인 진로는 아무래도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거죠?
그렇죠. 하지만 단원을 뽑는 곳이 거의 없어요. 수도권에 있는 교향악단이 여러 면에서 가장 안정적이긴 해도, 한번 입단하면 거의 20년 정도 한곳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새 단원을 뽑는 곳이 한 해에 열 군데도 안 될 거예요. 실력이 있어도 운이 없으면 힘들어요, 음악이라는 거. 그래서 관둔 사람도 많은 것 같고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쭉,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뭘 하든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음악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들이 거의 80~90퍼센트 정도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계속 음악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행복한 거고요.



전공이 분명할수록 직업이 보장되기보다는 길이 더욱 좁아지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사회가 예술 분야에 책임을 느끼고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요. 미스터 브라스가 좋은 사례를 보여 주세요.
감사합니다. 어깨가 무겁네요.


그런 점에서 지금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 특히 음악 전공자 후배들에게 짧은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생각해 보면 저 역시도 아주 계획적으로 일을 실천하고 있지는 못해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면서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발등이 조금 덜 타야 하니까, 제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알아보면서 팀을 이끌어 가고 있어요. 무엇보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실천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미루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더라고요. 아주 단순한 생각이라도 한번 실천에 옮겨 본 것과 생각만 한 채로 두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필자소개 필자소개
허영균은 LIG 문화재단 계간지 『interVIEW』의 에디터, (재)국립극단 학술출판팀 에디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프로그래밍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 동시에 프린지페스티벌, 다리 인큐베이팅, 하이서울페스티벌 등을 통해 창작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는 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를 운영한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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