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즐기기 위해 악기를 연주한다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 즐기는 수준까지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고 하면 “체르니 몇 번까지 쳤니?”라는 질문을 받을 테지만, 행복하게 체르니를 연주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보다는 10번씩 반복해서 연습해 오라는 숙제가 고역이었던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젊은 부모들은 그런 피아노 학원의 기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면서도 피아노는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런 수요에 부응한 피아노 학원이 바로 ‘피아노 에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의 필요에 맞추어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와 같은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 낸 것이 ‘피아노 에그’이고, 이는 ‘뮤직인큐베이터’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된 성하영의 고민과 노력이 만들어 낸 열매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 연주를 전공하셨는데, 가르치는 일을 선택한 연유는 무엇인가요?
대학교 4학년 때 피아노 교수학 수업이 있었어요. 그때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건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불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유학을 가는 것보다는 먼저 공부를 더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가게 되었죠. 대학원에서는 이론을 많이 접했고요, 졸업하고 나서 조교 생활을 하면서 실질적인 경험들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외부의 사설 교육 업체에서 제가 있던 대학과 산학 협력을 통해 교재도 만들고 교수법도 개발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여하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대학에서 만난 이인 선생님과 백경화 선생님, 두 분과 뭔가 해 보자고 마음을 맞추게 되었죠. 그 친구들도 그때는 개인 레슨만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음악 교육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각자 레슨 끝나고 밤에 저희 집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애들을 더 잘 가르칠까 고민하면서 교안도 짜고 그렇게 하다가 뮤직 인큐베이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이들 음악 교육은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중요한데 아이들이 그 시간을 무척 기다리고 좋아하더라고요. 아, 이게 희망이 있구나 싶었죠. 그래서 처음엔 그저 집에 모여서 하던 연구를 뮤직인큐베이터라는 이름으로 키워 본 거예요.



가르치는 것을 고민하다가 뮤직인큐베이터를 시작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이었나요?
저희가 개인 레슨을 하는 학생 중에 너무 지겨워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만 모아서,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새로운 그룹 교안을 짜서 내밀었어요. 이렇게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4명 정도 학생을 모아 가지고 레슨할 수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조금 넓은 홀을 빌려 접이식 책상을 들고 다니면서 수업을 한 거예요. 그런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아이들 음악 교육은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중요한데 아이들이 그 시간을 무척 기다리고 좋아하더라고요. 아, 이게 희망이 있구나 싶었죠. 그래서 처음엔 그저 집에 모여서 하던 연구를 뮤직인큐베이터라는 이름으로 키워 본 거예요. 원룸 오피스텔에 그랜드 피아노 하나 가져다 놓고, 책상에, 컴퓨터, 프린터 놓고 사업자 등록해서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해 보다가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지금의 피아노 에그를 시작하게 된 거고요.


뮤직 인큐베이터에서의 연구가 ‘음악으로 아름답게 변화하는 아이들’이라는 피아노 에그의 교육 철학을 만들어 낸 것이군요.
네, 거기서 새로운 교안도 짜고 애들에게 다양한 수업도 해 봤고요. 지금 피아노 에그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아빠와 함께하는 콘서트’, ‘하우스 콘서트’ 같은 것들은 다 그때 해 본 것들이에요. 소규모로 아담하게,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독주회를 하는 거죠. 거대한 홀에서 드레스 입고 연주회 하는 거 사실 아이들한테 스트레스거든요.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고, 그게 또 트라우마로 남게 되고요.


▲ 키즈 하우스 콘서트


그렇게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가장 힘든 건 시간이 없다는 거죠. 일이 너무 많아요. 악기 전공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악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실상 스무 살 정도에는 굉장히 많은 테크닉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더 이상 큰 연마 없이도 그냥 애들을 가르칠 수 있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별 준비 없이 핸드백 들고 애들 집에 방문해서 바이엘, 체르니 가르치고 오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수업을 하는 사람도 수업을 받는 사람도 발전이 없어요. 저희는 새롭게 수업하면서 애들 교안을 분 단위로 다시 짰어요. 처음 5분 동안에는 뭘 하고 그다음 10분 동안에는 뭘 하고 이런 식으로 아이의 필요에 맞춰서 상세하게 준비를 했죠. 그게 엄청난 일이거든요. 준비가 많이 필요해요. 외국에 갈 때마다 새롭게 나오는 교재들도 구해서 보고, 계속 공부해야 하고. 그리고 단순히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학원 청소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행정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까지. 레슨은 정말 생활의 일부고, 레슨 끝나고 난 다음에 밤에 연구를 하거나 잡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늘 일이 많아요.


악기 전공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악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실상 스무 살 정도에는 굉장히 많은 테크닉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더 이상 큰 연마 없이도 그냥 애들을 가르칠 수 있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별 준비 없이 핸드백 들고 애들 집에 방문해서 바이엘, 체르니 가르치고 오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수업을 하는 사람도 수업을 받는 사람도 발전이 없어요.


저희 셋도 처음에는 예술을 하는 어리바리한 선생들이다 보니 돈 버는 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업자를 운영하면서 비로소 돈을 번다는 게 정말 중요한 거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죠. 어찌 되었든 지속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정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거거든요.



말하자면 지금 예술가이자 교육자이자 사업가로서 활동하고 계신 거잖아요. 어디에 더 중점을 두시나요?
저희 셋도 처음에는 예술을 하는 어리바리한 선생들이다 보니 돈 버는 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업자를 운영하면서 비로소 돈을 번다는 게 정말 중요한 거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죠. 어찌 되었든 지속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정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거거든요. 저희의 비즈니스 모델은 피아노 개인 레슨이에요. 다른 프로그램들은 홍보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 운영은 하지만 수익이 나지는 않거든요. 예를 들어 음악 캠프 같은 것은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는 데 비해서 수익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중요한 건 활동은 다양하면서도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유지가 된다는 거죠. 1, 2년 안에 폐업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런데 여러 활동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면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야 하는 일상적인 것에 소홀해지기 쉽거든요. 그렇게 하면 다 무너져요.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냥 개인 레슨만 해도 되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실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레슨을 하려고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는 건 아니니까요. 소비자인 어머니들의 요구도 들어드리지만 휘둘리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의 교육 목표는 전공자, 비전공자를 구분하지 않고 피아노를 즐기게 만드는 것이고, 그렇게 확실한 우리만의 철학이 있다는 걸 주지시키죠. 그게 나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거예요. 무엇보다 아이가 변하면 학부모들이 저희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거든요.


‘학원’을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사실 저희가 시작할 때 자영업자 폐업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어요. 그리고 피아노는 요즘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이 없는 악기이기도 하고요. 악기에도 유행이 있어서 최근에는 피아노 학원들이 많이 문을 닫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믿음이 있었다면, 클래식 음악이라는 건 영원불멸하다는 거였어요. 우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걸 할 수밖에 없고, 클래식 음악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분명 피아노 학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 시장이 좁아진다 해도 남은 사람들이 전부 다 우리를 찾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오픈했어요.


▲ 음악 캠프 ‘내가 만든 악보’


그런데 내가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고, 굳은 의지로 시작을 했다고 해도 그걸 알리고 사람들이 찾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요.
처음에는 전단지 돌리기도 해 보고 별거 다 해봤는데, 소용이 없었고요. 요즘은 아무래도 검색을 많이 하니까, 홈페이지와 블로그에서 홍보하는 것이 유효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시장의 요구를 파악해야 하죠. 우리는 예술을 하는 거지만 비즈니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잖아요. 내 생각을 한 줄 문장으로, 한 장 글로 요약하는 것도 연습이더라고요. 지금 나와 있는 교재도, 저희 블로그에 올려놓은 콘텐츠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만들게 된 거예요. 새로운 교재에 대한 니즈가 있는데, 그에 부응할 내용을 저희가 가지고 있었던 거죠. 결국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한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도 여러 경험 속에서 제 길을 찾은 건데, 결국은 어떤 일에서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충대충 시간 때우면서 하면 남는 것이 없어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한테 안 맞는 일을 하더라도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무조건 최선을 다하면 얻는 것이 꼭 있거든요. 될 것 같은 일만 하고 싶겠지만 그건 누구나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어요. 아니, 꼭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진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거예요. 자기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공부도 많이 하고, 교육자라면 계속 책도 보고, 학생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하고요. 학생들이 다 다르거든요. 학생의 상황에 따라서, 물론 그거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의 교육 목표를 파악해야 하는 거죠. 굉장히 예민해야 해요. 예술을 하시는 분들은 다 자신만의 예민함을 가지고 있으니, 그걸 얼마나 실행력 있게 밀어붙이고 필요한 것들을 매일매일 해 나가느냐.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필자소개 필자소개
이가원은 HS애드에서 PD로, 월간 『한국연극』에서 기자로 근무하였다. 현재 대학원에서 예술치료를 공부하고 있으며 사)한국연극치료협회 연극심리상담사 양성과정과 수원여대 연기영상과에서 연극치료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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