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무용을 전공하고 자연스럽게 무용수로서의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교육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무대를 보면 여전히 설레지만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다고 한다. 현재 대구문화재단 문화사업부에 근무하고 있는 장정아는 고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해 왔지만, 일찌감치 전공을 살린 ‘직업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무용뿐 아니라 예술 실기로 대학에 입학한 많은 전공자들은, 대학 교육을 거치는 동안 창작자로서 역량을 키워 졸업 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위 ‘데뷔’할 날을 꿈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예술가로 활동하기에 현장의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고, 오랜 시간 열정과 노력으로 갈고닦은 자신만의 예술적 자질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자니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 보건대, 변화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냈던 게 무엇보다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행정적인 업무를 시작한 건 이제 갓 3년, 지금의 그는 자신만의 경험을 살려 현실을 반영한 ‘예술지원’의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전문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현재 대구 지역에서 일하고 계신데, 문화예술 관련 인프라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조금 다른 시각에서 그간의 경험들을 얘기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용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무용을 하셨던 건가요?
사실 대구가 고향이고,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 살았어요. 이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일도 하다가 다시 내려간 건 이제 3년쯤 됐습니다. 무용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인데, 이 얘기를 하려면 먼저 대구 지역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역의 문화예술 현실이란 게 서울이나 수도권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대구는 좀 달랐어요. 시립무용단의 위상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그러다 보니 대학의 전공 학과나 예술고등학교들도 경쟁력을 갖추게 됐거든요. 자연스럽게 여러 학원들이나 교육 기관들이 생겨나면서 기반이 더 탄탄해졌죠. 저는 심지어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교 무용 수업을 통해 전공까지 결심하게 된 경우예요.


정말 좋아서,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열정으로 시작한 건데, 그랬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서 더 현실을 절감했던 것 같아요.
입시를 할 때까지도 모든 것의 중심에 내가 있었는데, 막상 대학에 가니 그저 공연단에 소속된 한 명의 무용수일 뿐이었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학교 교육을 통해 무용을 전공하게 된 거군요. 환경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네요. 지역의 문화예술 기반이나 교육 기관의 현황 또한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요. 그렇게 해서 무용을 전공으로 선택한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말하자면 저는 어릴 때부터 무용을 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걸 전공하게 된 경우는 아니잖아요. 정말 좋아서,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열정으로 시작한 건데, 그랬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서 더 현실을 절감했던 것 같아요. 입시를 할 때까지도 모든 것의 중심에 내가 있었는데, 막상 대학에 가니 그저 공연단에 소속된 한 명의 무용수일 뿐이었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연습실이 대학로에 있었는데, 지금 와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땐 언제나 기다리는 시간뿐이었던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나의 계획 같은 건 세워 보지도 못하고 그저 시간만 흘려보냈죠. 아마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와서 그런 걸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땐 철저한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가 현실의 벽을 깨닫게 되는 거죠.


현실을 깨달았다고는 해도, 이미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들이 대폭 줄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파구를 찾는 게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런 와중에 수업 시간에 ‘강사풀 제도’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됐어요. 연극, 국악 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이제 막 무용 쪽에서도 학교 교육 현장에 지도교사를 파견하게 되었다는데 실제로는 그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이 없었죠. 저도 처음에는 막연한 궁금증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의외로 무용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준비만 한다면 누구든지 대상자가 될 수 있더라고요. 그런저런 이유로 당시에는 그게 길이 될 수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실은 궁극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였어요. 다만 그 경험이 이후 대학원에 진학할 때 예술행정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계기가 되긴 했죠.


▲ 2015 세계문화예술 교육 주간-교육 체험 존


무용 강사를 하다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건가요? 예술행정을 전공했다고 했는데, 학교 수업에서는 어떤 것들을 배웠나요?
대학 다니면서 내내 무용수와 강사를 병행한 거고, 졸업 후 2년 정도는 강사 일을 계속했어요. 그러면서 대학원에 가게 된 건데, 그때 처음 들었던 수업에서 재미있는 사례들을 접하게 됐죠.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임재진 감독님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였는데, 그걸 계기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페스티벌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여러 페스티벌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죠. 그러다 지산록페스티벌을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현장 실무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록페스티벌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잖아요. 일을 하면 할수록 명확히 느껴지는 이질감이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오히려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일을 해 보고 싶다 결심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결과에 중점을 둔 사업을 하다 보니 내 근간이 되었던 순수예술과의 거리를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거든요.


록페스티벌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잖아요. 일을 하면 할수록 명확히 느껴지는 이질감이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오히려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일을 해 보고 싶다 결심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결과에 중점을 둔 사업을 하다 보니 내 근간이 되었던 순수예술과의 거리를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거든요.


자기 전공 안에만 갇혀 있다 보면 그렇게 오랜 기간 예술 영역에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모든 걸 포기해 버리기 쉽거든요. 근데 저는 그걸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요. 어떻게든 자신이 해 왔던 걸 연계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서요.



공부를 하면서 현장 실무를 병행했으니, 게다가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을 접해 봤으니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겠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꼭 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중요한 건 연결 고리를 찾는 거예요. 뜬금없이 어떤 변화를 주는 건 어렵잖아요. 다양한 방식의 시도가 가능할 텐데, 저는 대학원 수업에서 접하게 된 사례들을 통해 경험을 넓혀 가고 생각을 전환하는 기회를 만들었던 거죠. 그리고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무용 전공자들과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얘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자기 전공 안에만 갇혀 있다 보면 그렇게 오랜 기간 예술 영역에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모든 걸 포기해 버리기 쉽거든요. 근데 저는 그걸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요. 어떻게든 자신이 해 왔던 걸 연계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서요.


대구문화재단에 입사한 지는 3년쯤 되셨다고요. 아무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그곳의 문화예술을 직접 경험했으니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무엇보다 지역 문화재단에서 일하려면 그 지역을 명확히 알아야 해요. 저는 그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또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워 가고 있는 중이고요. 그런 면에서는 처음에 맡았던 바우처 사업이 제게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대구 지역에서 수익 모델을 가지고 문화예술 관련 활동을 하는 다양한 업체들을 만났거든요. 지역 전반에 걸쳐 그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이전에 페스티벌에서 수익 사업을 했던 경험도 도움이 되었고요. 지금은 교육 쪽 일을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예술단체와 학교를 연결하는 일인데, 제 자신이 학교 교육을 통해 무용을 전공했던 만큼 그 중요성을 알고 있어서 일하면서도 공부가 많이 돼요. 또 제가 직접 강사로 활동해 보기도 했으니 현장의 목소리들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고요.


▲ 2013 문화이용권사업 해피서포터즈 발대식 & 교육 현장


결국 그간의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업무에 보탬이 되는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떤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해 가실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공부하고 일하면서 기초 예술에 대한 지원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걸 보다 명확히 느끼게 됐어요. 제가 무용을 전공했으니 더 많은 이들에게 무용을 알리고 싶기도 하고요. 실제로 일하는 중에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사람들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행정 업무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그들을 위한 매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사실 교육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사업의 결과를 바로 수치화하거나 시각화할 수 없어서 난감할 때가 있는데요. 궁극적으로 현장 예술가들을 위한 것이면서, 기초 예술을 탄탄히 하는 좋은 사례들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저도 아직 입문기에 있지만, 예술행정 분야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예술을 전공한 분들이 자기가 가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예술 전공자들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역량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필자소개 필자소개
김슬기는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