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하나의 공연을 관람하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만나게 된다. 언론 매체 방송이나 기사, 티켓 예매 사이트의 요약 정보, 길거리 포스터나 브로슈어, 공연장에서 구입하는 프로그램북까지…. 헤아려 보면 표현 방식, 경로는 가지각색이지만 이 방법들의 목표는 동일하다. ‘공연을 대중에게 알리고, 관객의 발길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것.’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것은 예술가이지만, 그 공연을 완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관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연에는 관객이 필요하다. 좋은 공연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예술가들의 혼과 열정이 담긴 작품을 다양한 방법과 도구를 활용해 세상에 소개하는 사람, 국립발레단 홍보마케팅팀의 김현아 팀장을 만났다.


학창 시절에 전공 공부나 그 외의 범주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무용을 시작해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어요. 학부 때는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실기에 신경을 많이 썼죠. 1학년 때부터 무용이나 연극 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는데 하나의 공연이 무대화되는 과정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공연예술계에 이렇다 할 기획사가 전무한 시절이었는데, ‘이 무용수와 저런 공연을 올리면 좋겠다’는 식의 어렴풋한 그림을 그려 보기도 했죠.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는 법’을 배운 것이 정말 유효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공부법이란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필요에 따라 분류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인데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의 근간이 되는 것들이죠. 그러면서 공연 기획이나 홍보 쪽 일이 저와 잘 맞겠다고 생각했고, 그 방향을 정한 후에는 쭉 달렸던 것 같아요.


무용이나 연극 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는데 하나의 공연이 무대화되는 과정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공연예술계에 이렇다 할 기획사가 전무한 시절이었는데, ‘이 무용수와 저런 공연을 올리면 좋겠다’는 식의 어렴풋한 그림을 그려 보기도 했죠.



지금의 청년들에겐 졸업 후 자신의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인데요. 예술 현장에 발을 내디딘 후 지금까지 경험한 시간들을 입문기, 과도기, 발전기로 나눠 볼 때 각 시기별 과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원 졸업 후 홍대 앞에 있는 작은 소극장에 입사했는데 허드렛일부터 온갖 걸 다 했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시절이죠. 이후 입사한 지 1년 만에 경영난으로 극장이 문을 닫았고, 그 즈음에 정동극장 공채가 났어요. 당시 500:1 경쟁률에 도전해 성공했죠. 그땐 극장 자체 기획 공연이 정말 많던 시절이라 김용걸, 김지영, 김주원 같은 발레 무용수들이 무대에 자주 오르곤 했는데 기획 및 홍보 파트에서 일하게 됐죠. 처음엔 업무가 너무 막연해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요즘처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스스로 참 절실했던 때라 책에서 하라는 대로 업무에 적용해 보곤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기획자는 좀 더 치밀한 성격에 시간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알았고, 저는 오히려 순발력이 중요한 홍보 쪽 일이 더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동극장에서 공연 기획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면, 이후 논버벌 퍼포먼스 공연을 제작하는 회사에선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업무 성격상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많다 보니 그들에게 상처도 받지만, 결국 그들 덕분에 치유도 받는다는 걸 경험했죠. 당시 해외마케팅 총괄을 맡았는데, 5년가량 일하면서 업무의 실행 프로세스를 확실히 익힐 수 있었어요. 이후엔 첫아이 출산으로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국립발레단으로 인연이 이어지게 됐죠. 저는 국립발레단에서 홍보마케팅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이 발전기라고 생각해요. 집에선 남편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고, 두 아이들에게 인생의 기본을 다시 배우죠. 가족에게서 얻은 에너지들을 제가 하는 업무에 쏟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사람한테서 힘을 얻어요.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일을 열심히, 또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이유죠.


요즘처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스스로 참 절실했던 때라 책에서 하라는 대로 업무에 적용해 보곤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기획자는 좀 더 치밀한 성격에 시간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알았고, 저는 오히려 순발력이 중요한 홍보 쪽 일이 더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소 업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팀원들에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막상 가깝고 친한 사람들에겐 잘 못 할 때가 있지만요(웃음).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일을 꾸밀 때, 딱 한 번만이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아요. 정동극장 시절에 어떤 만남이든 추후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지속하라는 내용을 책에서 읽었는데, 그대로 실천해서 맺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게 어렵지만 중요하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기획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적극성도 필요하고요. 공연을 많이 보거나 관련 자원봉사나 인턴 같은 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어떤 관점으로 무슨 생각을 했느냐가 중요한 거죠.



공연 홍보마케팅 분야의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나 커리어를 꼽아 주신다면.
‘예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말이에요.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기획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적극성도 필요하고요. 공연을 많이 보거나 관련 자원봉사나 인턴 같은 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어떤 관점으로 무슨 생각을 했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저 ‘난 경험이 많고 뭐든 다 할 줄 안다’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합니다. 외국어를 포함한 언어를 다루는 능력도 빼놓을 수 없죠.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안 되거든요. 기본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인터넷이 아닌 ‘종이’ 신문 읽는 걸 추천합니다. 덧붙여 서점가 베스트셀러도 챙겨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죠. 저는 예술 외 타 분야 명사나 지식인들의 강의를 챙겨 들었어요. 다른 생각이나 관점을 경험하는 것이 지금 맡은 일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거든요.


일을 하면서 만족이나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홍보 담당자라면 자신이 맡은 공연이 매진을 기록하고, 호평받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낄 거예요. 국립발레단의 경우, 고정 관객층이 탄탄해서 과거엔 객석이 차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신작을 올리면서 당연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느꼈어요. 첫 시도이고, 모험이었으니까요. 예술감독 이하 모든 직원들이 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감사하게도 모두가 열심히 일했고, 공연도 매진이 됐어요. 다른 때보다 더 가슴 졸인 공연의 매진이라 더 많이 기뻤죠.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사람이 하는지라, 팀워크가 좋다면 어떤 일을 하든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 홍보마케팅팀에서 제작한 국립발레단의 공연 프로그램북


앞으로 국립발레단에서 새롭게 시도해 보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 관객 저변 확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팀원들과도 “우리나라 국민 중에 ‘국립발레단’이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죠. 실은 지금 국립발레단 공연은 어떤 작품을 하든 매진이 됩니다. 고정 마니아 관객은 확보되어 있죠. 하지만 실제로 ‘국립발레단’이라는 단체 자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고급문화’라는 편견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강수진 단장님도 이런 부분에 깊이 공감하셔서 지금은 국립발레단을 알리는 방법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갖게 된 개인의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제가 겪은 현장의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물론 저 역시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동안 제가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젊은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서로 신선한 동기부여를 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해요. 저도 누군가로부터 그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제 장점을 누군가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더 발전시킨다면 그건 분명 제게도 기분 좋은 일이죠.


앞으로 공연 홍보 및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하길 원하는 청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생각만 말고, 행동에 옮기세요!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어떤 성향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해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도 보수가 적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절을 보내고 나니, 당장은 아니어도 그 열정에 대한 대가를 언젠가 받게 되더군요. 그래서 길게 보는 게 중요해요. 내 눈엔 아닌 것 같아도 오늘의 노력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업계 사람들이 다 알 수밖에 없거든요.


생각만 말고, 행동에 옮기세요!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어떤 성향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해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도 보수가 적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절을 보내고 나니, 당장은 아니어도 그 열정에 대한 대가를 언젠가 받게 되더군요.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필자소개 필자소개
김선영은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월간 『객석』 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무대와 공연 뒤에 얽힌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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