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사람들'은 예술경영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미 있는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예술경영학회, 문화다움,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8인의 예술경영인들과 대화를 통해 동시대 예술 현장의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경영ㅇ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20여 년 서울살이 청산, 고향 부산으로의 귀환

이승욱 ‘플랜비 문화예술협동조합’ 상임 이사와의 인연은 ‘(사)문화다움’의 전신인 다움아카데미를 준비할 때부터이다. 이젠 거의 20년 지기에 가까운 오랜 동료이다. 강준혁 선생의 미학과 후배이기도 한 그는 다움아카데미가 개원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젊은 비주류 예술가들의 축제 판인 독립예술제(현 프린지 페스티벌)로 옮겨 교육보다는 문화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고, 몇 년 뒤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다시 문화 현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문화기획, 예술경영 분야의 한국형 틀을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에서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 가는 기대되는 젊은 기획자였다. 그러던 중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대학 시절을 포함 20여 년의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2009년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 가업인 식당을 이어받게 된다. 지켜보는 동료의 시각에서는 ‘그동안 보여 준 재능과 쌓은 경험이 너무 아깝다’라는 생각과, ‘아직 제대로 시작한 일도 없는데…’라는 아쉬움이 컸다.


‘촌스런’ 동네로부터 지역 문화 ‘제대로 보기’를 배우다

그런데 이승욱 이사는 2010년부터 생업으로 운영 중인 식당이 있는 광안리에서 동네 잡지 《안녕 광안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잡지는 재미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20호로 폐간하겠다는 계획 속에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역 문화 활동을 다시 시작할 때 잡지가 좋은 매개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기대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는 계간지로 발간되는 《안녕 광안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동안 서울 등 외부의 시각에 갇혀 촌스럽다고만 여겼던 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즐비한 카페촌의 조경도 촌스럽고 체육복을 입고 해변을 따라 운동하는 시민들의 일상도 어색했던 그가 소위 세련된 문화를 찾기 어렵다고만 여겼던 광안리에서 부산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의 활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부산 지역 문화의 색깔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고층 빌딩 숲을 자랑하는 해운대의 현대적 도시 풍경 너머, 광안리 민락촌 전통 어촌 문화와 해녀들의 삶, 슬리퍼에 체육복의 시민들이 운동하는 해변가, 그 건너편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셀카를 찍는 관광객의 모습은 더 이상 그에게 어색하거나 촌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래된 전통에서 비롯된 근대적 삶의 흔적, 초현대적 문화가 뒤섞여 재미있고 독특한 부산 문화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하며 그 가치를 문화적으로 의미화하는 작업을 ‘안녕 광안리’를 통해 꾸준히 시도하게 된다. 또한 이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산 문화 현장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나누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모색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부산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일들을 작당(!)하고 도모하는 계기들을 만들게 되는데, 그동안의 전형적 틀을 다소 깬 잡지 창간 파티가 도화선이 되어 2010년 여름 광안리 바닷가에서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광안리에서 처음 열린 이 행사는 젊은 사람들만 모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모여 즐겼다. 그는 이것이 광안리 일상 문화의 혼종성이 잘 드러난 예였다고 말한다.


≪안녕 광안리≫ 창간호

▲ ≪안녕 광안리≫ 창간호

2012 광안리 사운드웨이브페스티벌 _ 사진 신성원

▲ 2012 광안리 사운드웨이브페스티벌 _ 사진 신성원

부산 문화의 진가 ‘청년성’을 문화 현장으로 엮다

부산 지역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이승욱 이사가 다음에 주력한 것은 ‘부산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이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부산 문화의 진가를 ‘청년성’으로 해석하고 확장하는 일련의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1년 부산의 다양한 청년문화단체들이 부산대 일대에서 6개월간 진행했던 공연, 워크숍, 축제 등의 청년문화프로그램 ‘회춘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2012년 지역문화지 《안녕 광안리》,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독립문화공간 아지트), 부산노리단, 생활기획공간 통 등 부산 지역의 대표 청년문화단체들이 공동 기획한 것이다. 이 작업에서 대구, 광주, 대전, 인천, 서울 등 국내 다른 지역과 홍콩, 도쿄, 후쿠오카, 상하이, 베를린, 뉴욕 등 해외 여러 문화 단체, 젊은 예술가들과 폭넓게 교류 및 협력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는 크게 광안리 사운드웨이브 페스티벌, 거리예술-그라피티 부산, 청년문화아카데미로 구성되었다. 이 중에서 거리예술-그라피티 부산으로 진행된 독일 출신의 그라피티 작가 ECB(Hendrik Beikirch, 핸드릭 바이키르히)와 한국의 Kay2(구헌주)의 광안리 민락동 수변공원 인근 가로 7m 높이 56m의 주차타워 외벽에 나이 든 어부의 모습은 이제 광안리의 대표적 랜드마크가 되고 있기도 하다.


ECB, 마린시티를 배경으로 한 민락활어민센터의 주차타워 벽화 _ 사진 김태정

▲ ECB, 마린시티를 배경으로 한 민락활어민센터의 주차타워 벽화 _ 사진 김태정

이승욱 이사는 ‘부산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청년 문화의 다양한 실천이 어떻게 부산 문화, 나아가 지역 발전 전략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안녕 광안리》에서 시작된 지역 문화 제대로 보기의 고민이 보다 구체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해석하는 부산 문화의 청년성은 단순히 세대적 특성이 아니라 개항과 더불어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면서 이루어 낸 부산의 도시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기질이다. 즉, 기껏해야 100년 남짓한 도시 역사를 가진 부산을 두고 한편에서는 전통과 뿌리가 없는 도시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새로운 문물을 장벽 없이 받아들이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형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한 진취성과 개방성의 기질이 부산 지역 문화 근저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에 천착한 부산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는 청년 문화의 창의적 상상력을 당위로서 인정받기를 요청하는 것을 넘어 지역 문화의 정체성과 발전 전략에 입각해 그 역할을 당당히 주장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김순임 <나는 돌> 2014 무빙트리엔날레

▲ 김순임 <나는 돌> 2014 무빙트리엔날레

이러한 노력은 2014년 ‘무빙 트리엔날레’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작동되었다. 2014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에서의 합리적 절차에 의해 확정시되었던 지역 출신 감독이 배제되고 해외 감독이 선정된 불협화음에 대항하는 대안적 프로젝트였다. 부산 청년미술인들의 자생적 노력으로 시작된 부산비엔날레는 그동안 안타깝게 지역 출신의 전시감독이 선정된 역사가 없었다고 한다. 2014년 선정될 뻔했던 전시감독은 단지 지역 출신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부산 대안공간 활동의 선두 주자이자 해외 유학과 전시 경험을 풍부하게 갖춘 인물이자 부산 청년 문화의 대안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로서,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부족함이 없던 터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부산비엔날레 정체성에 잘 맞지 않은 해외 감독이 선정되었다. 그래서 이승욱 이사를 비롯해 이에 대한 비판적 실천으로서 같은 생각을 가진 지역의 예술가들이 대안적 무빙 트리엔날레를 운영하였다. 무빙 트리엔날레는 메이드인 부산 및 부산발, 즉 부산의 시선으로부터 부산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로 추진되었고 주요 전시는 부산 여객터미널, 버려진 노인복지관, 60년대 돼지국밥집, 일제 강점기 때 만든 기상관측소 등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고 의미가 부여된 부산 지역 문화의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문화기획자들이여, 지역 속으로!

2014년 이승욱 이사는 2009년 이후 일련의 공동 작업을 통해 뜻을 같이 해 온 여러 사람들과 ‘문화예술협동조합 플랜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지역 문화기획자 양성을 위한 ‘청년문화아카데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문화 인력을 키우는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영도 깡깡이 예술마을이라는 지역 재생 프로젝트도 의욕적으로 준비 중이다.

그는 이번 대담에서 결론을 짧게 이야기한다. “문화기획자들이여 지역 속으로!”라고. 달리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이야기이다. 지역 속으로 문화기획자들이 들어가는 또는 지역 속에서 성장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지역의 눈으로 지역 문화의 가치를 해석하고 현장에서 구현하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수많은 예술 창작 활동, 문화 예술 교육, 지역 축제, 문화 마을을 비롯해 최근 전국의 이슈가 되는 문화와 지역 재생, 생활 문화 등의 일들이 그저 정책의 트렌드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도 지역 속 문화기획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부산의 지역 문화를 가치 있게 해석하고 구현해 가는 이승욱 이사의 연령은 중년이지만 문화기획자로서는 젊은 청년이다. 그리고 그의 청년성이 부산의 지역 문화에 또 다른 청년 문화로 다양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 기대한다.


사진 촬영_박창현(Chad Park)


추미경 필자소개
추미경은 영문학과 공연예술학, 비교문화를 공부하고 영국에서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1998년 설립된 ‘(사)문화다움’(구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창립 멤버로 시작해 현재 동 기관 대표를 맡고 있으며, 문화인력/축제/지역문화 분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문화, 문화도시/문화마을 관련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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