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청년, 인생 UP!/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청년 문화예술인과 예술 현장 진입을 앞둔 예술가, 그리고 예술경영 전공자 등을 위한 문화예술 인력 현장 사례집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를 출간한다. 문화예술계 30인의 선배 예술가, 예술경영인들의 진로 사례를 발굴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예술 현장 직업군들을 소개하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의 진로 개척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사례집은 문화예술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 개발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기획 및 자문 회의를 통해 예술 현장 분야별 전문가 30인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된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활용 가능한 실질적인 진로 현장의 다양한 사례들을 담아냈다./남인우/한지영/송현민/이지향/황정인/김혜진/전우공/성하영/장정아/김현아/이희문/박귀섭/이기쁨/최보윤/이홍이/김현옥/이경성/유영봉/윤민철/김지명/박경린/양지윤/홍성재/이대형/홍은주/선미화/성유진/강선애/변홍철/서희영


최보윤 약 력/·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무대예술아카데미 졸업/· STAGEWORKS 조명디자이너/· 한양대학교, 단국대학교, 호원대학교 출강/연 극/· 2013 <다정도 병인 양하여>, <목란언니>, <사보이 사우나>, <터미널>, <말들의 무덤>, <왕은 죽어가다>, <칼집 속에 아버지>/· 2014 <나는 나의 아내다>, <투명인간>, <알리바이 연대기>, <1984>, <배수의 고도>, <템페스트>, <히스토리 보이즈> <정물화> /· 2015 <강철왕>, <게공선>,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쉬또젤라찌>/음 악/· 2014 비빙 콘서트 <피-避-P project>, 한승석&정재일 <바리 abandoned>/· 2015 이적 소극장 콘서트 <무대>, 디토 페스티벌 – 정재일.지용.성민제 <Untitled>, 비빙 <이종공간>, 유키 구라모토 콘서트/수 상/· 2013 제34회 서울연극제 조명상

조명 디자인은 공연이 관객을 만나기 직전 가장 마지막 순간에 배우와 무대, 의상, 분장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모든 시각적 질감을 빚어내는 일이다. 이것은 대본을 분석하고, 장면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내 도면을 그려 빛을 구성하고, 극장에 들어가 그것을 구현해 내는 일련의 과정을 아우른다. 조명 디자이너 최보윤은 빛의 구성이 미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이며, 조명은 감각에 따라 결정되지만 그 결정에는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으려면 공간과 빛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책상 앞에서 고민하는 만큼 극장에서 땀 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늘 맡은 일정에 쫓기지만 머리로만 계산했던 것이 실제 무대에 펼쳐지는 순간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쾌감이 찾아오게 마련. 공연의 마니아 관객이었던 그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공연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여정은 바로 이러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 것이다.

애초엔 공연예술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결국 그것을 직업으로 삼게 되셨다고요. 공연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대학 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일본 방송 하나를 보게 됐는데, 그게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 공연이었어요. 그 이후 거기에 완전히 빠져 버렸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던 땐데, 제 딴에는 전공을 살려서(웃음) 팬클럽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는 마니아가 돼 버린 거예요. 그러다 결국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러고 나니 더더욱 열병이 심해졌죠. 학교에 있는 대규모 계단식 강의실은 그 구조가 극장하고 좀 비슷하잖아요? 수업을 듣다 보면 어느새 강단에서 배우들이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 이러다 내가 미치는구나 싶었죠. 결국 공연 보는 게 이렇게 좋으니 나는 뮤지컬 연출을 해야겠다고 결론 내리게 됐어요.


말 그대로 성공한 ‘덕후’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그런데 뮤지컬 연출은 실상 지금 하고 계신 일과 꽤나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어떤 경로를 통해 조명 일을 선택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공연을 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알아봤는데, 실기로는 연극영화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어차피 배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어서 결국 연출 전공으로 수능을 다시 봤어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스물여섯에 또 1학년이 되었죠. 연출 전공이라 스태프 분야를 두루 경험해 보긴 했지만, 그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물론 없었어요. 그런데 처음 조명 스태프를 맡았던 공연이 ‘젊은 연극제’에 나가면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를 쓰게 된 거예요. 손으로 직접 그린 도면을 들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저에게는 정말 너무나 큰 모험이었죠. 지금도 달오름에 가면 당시 극장 감독님을 뵙는데, 사실 그땐 제가 이 일을 하게 되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암전 상태에서 첫 번째 큐를 가는데 달오름극장이 환하게 밝아 오는 게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죠. 내 손 움직임 하나에 모든 것이 바뀌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경험이 굉장히 강렬했고, 그래서 결국 조명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신 거군요. 그런데 학과에 조명을 가르치는 수업이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실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웃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암전 상태에서 첫 번째 큐를 가는데 달오름극장이 환하게 밝아 오는 게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죠. 내 손 움직임 하나에 모든 것이 바뀌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애초에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니, 조명을 메모리하는 콘솔이라는 기계도 제 손에 너무 익숙했고요. 물론 지금은 이렇게 얘기하지만 사실 그때 그 여름방학이 저에겐 엄청난 고민의 시기였습니다. 나는 연출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을 거듭한 결과 조명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다행히 그땐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에서 운영하던 무대예술 아카데미에 지원해 조명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스승이신 김창기 선생님을 만났고, 당시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기들, 후배들과 지금도 여전히 함께 팀을 꾸려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태프 분야의 작업은 대개 선배나 스승으로부터 도제식으로 배우게 되잖아요. 그때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 팀으로 활동한다고 하셨는데 ‘STAGEWORKS’라는 이 무대조명 디자이너 팀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나요?
맞아요. 말하자면 우리는 김창기 선생님과 그 제자들, 그리고 다시 그 제자들이 연결된 팀인데 배우고 훈련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해요. 어시스턴트로 참여하더라도, 단지 디자이너를 돕는 게 아니라 내가 이 공연의 디자이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도록 배웠죠. 그래서 리허설을 보거나 필요한 이미지를 찾는 등 디자인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있어요. 팀으로 움직이니까 하나라도 더 실험해 보고, 그러면서 같이 발전할 수 있어서 좋죠.


<사보이 사우나>(2013) 빛의 색과 포그를 사용하여 현실을 벗어난 환상의 공간을 디자인

▲ <사보이 사우나>(2013) 빛의 색과 포그를 사용하여 현실을 벗어난 환상의 공간을 디자인


그런데 ‘조명 디자인’이라 함은 보통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죠?
우선 대본을 읽고 연출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죠. 연출가가 세계를 만들어 낸다면, 조명 디자이너는 그곳이 어떤 빛으로 채워져 있을지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 이후 연습을 보면서 생각을 구체화해요. 빛이 비치는 양상에 따라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니까 배우들의 움직임도 눈여겨보고요. 장면에 따른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나서 그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서 연출과 공유하죠. 그런데 사실 그렇게 찾은 이미지들이 아무리 좋아도 조명기로 그걸 만들어 내려면 제한된 조건에서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미리 도면을 그리지만 극장에 들어가 실제로 구현해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계속 시도해 봐야 하는 거죠. 빛을 구성한다는 게 감각적인 일 같지만 또한 굉장히 과학적인 일이에요.


사실 그렇게 찾은 이미지들이 아무리 좋아도 조명기로 그걸 만들어 내려면 제한된 조건에서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미리 도면을 그리지만 극장에 들어가서 실제로 구현해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시도해 봐야 하는 거죠. 빛을 구성한다는 게 감각적인 일 같지만 또한 굉장히 과학적인 일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구상하고 계획했던 것을 실행한다든지 구현해 볼 방법이 없으니 정말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더구나 극장 셋업 기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현실에서는요.
사실 그런 점이 저하고는 정말 잘 맞는데, 뭘 해도 벼락치기를 좋아해서요(웃음). 조명 일이란 게 대개 나흘에서 일주일 사이 모든 걸 해내야 하니까, 디자이너는 매 순간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하고 또한 그걸 수행해 낼 행동력을 갖추고 있어야 해요. 주변을 봐도 셋업 과정 중 그런 시간의 압박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내가 미련을 갖고 고민만 하고 있으면 그만큼 배우가 무대에 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이렇게 일하다 보니 성격도 덩달아 급해졌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죠.


그만큼 함께 작업하는 연출가와의 호흡도 중요할 것 같은데, 그간 어떻게 작업의 반경을 넓혀 오셨나요? 최근엔 작업을 정말 많이 하시잖아요.
제가 작업을 많이 찾아서 한다기보다는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췄던 분들과 계속해 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막 조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이 작업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다만 이제 그들이 중견 작업자가 되어서 한창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시기라 저도 많은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거죠. 특히 우리 팀 같은 경우는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 공연의 조연출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있고, 그래서 그 또래 조연출 그룹이 왕성한 활동기로 접어들면 조명 디자이너로 같이 커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함께 고생하면서 작업하니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되어 가는 거죠.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작업하면서 한계에 부딪히거나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은 없으신가요?
처음 대극장 작업을 했을 때의 압박감이 기억나요. 공연에 참여하시는 다른 스태프 분들도 다들 쟁쟁하셨고, 무엇보다 큰 공간이 주는 위압감이 있었거든요. 그런 곳에서는 사소한 실수 하나도 쉽게 눈에 들어오니까 겁을 좀 먹었던 거죠. 그런데 다행히도 이전에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그 극장과 빛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금세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사실 조명 디자인이라는 게 책상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고, 그러다 보니 극장에서 하는 일을 육체노동으로 여겨서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를 보면 저는 좀 안타까워요. 현장 작업에 매끄럽게 연착륙할 수 있으려면 극장 공간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공간이 다르니 빛도 다르고 심지어는 극장마다 콘솔도 달라서 그 기계들에 익숙해져야 해요. 이미 얘기했지만, 조명 일이 시간에 쫓기는 작업이다 보니 콘솔을 잘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는 것과 직결되는 거라서요..


<게공선>(2015)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형광등을 이용한 조명 디자인

▲ <게공선>(2015)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형광등을 이용한 조명 디자인


조명 디자인이라는 게 책상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고, 그러다 보니 극장에서 하는 일을 육체노동으로 여겨서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를 보면 저는 좀 안타까워요. 현장 작업에 매끄럽게 연착륙할 수 있으려면 극장 공간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좋은 조명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건을 이미 충분히 얘기해 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이 작업의 특성에 비추어 청년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연출가는 많아 봤자 1년에 세 작품 정도를 공연하는데, 매 작품들이 바로바로 평가받고 또 그 결과가 다음 기회로 연결되잖아요. 그러니 한 번의 공연이 매우 중요한데 그 작업에 어떤 디자이너를 쓰고 싶겠어요. 당연히 자신이 믿을 수 있고, 자신의 작품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겠죠. 경험은 없지만 의지만 있는 디자이너를 쓸 수는 없는 거잖아요. 반면에 조명 디자이너는 부지런히 작업하면 한 달에 한 작품도 할 수 있으니, 작품 수로만 따지자면 스태프들이 연출보다 훨씬 빨리 경험을 쌓을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쌓이는 시간들을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작품을 함께 해 보자고 연출가들이 제안할 만큼, 나를 신뢰할 때까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사진촬영_장우제

※ 참고링크
문화예술 청년, 인생 UP 지원사업 가이드
문화예술청년, 인생 UP 데이트: 문화예술선배 30인의 서른 가지 길


김슬기 필자소개
김슬기는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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