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현대미술은 여느 때보다도 해외 미술시장 진출에 대한 강한 요구가 진행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경제 불황으로부터 국내 미술시장은 여전히 침체기이나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해외 미술시장으로의 진출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움직임은 점점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매해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에 대한 논의는 세미나, 콘퍼런스, 대담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내 실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진단, 토론이 활성화된 반면, 국제적인 전문가들과의 콘퍼런스는 국내에서 드문 편이라 이에 대한 요구는 근래에 더욱이 커져 왔다. 이 시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마련된 ‘한국미술 해외 진출 전략 국제 컨퍼런스’는 변화하는 국제 미술 무대의 지형도를 파악하고, 해외 무대를 향한 전략을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심층적으로 논의하고자 마련된 뜻깊은 자리이다. 3주간의 콘퍼런스 중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아시아,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에 서다’가 지난 2월 4일 DDP 살림터 3층 디자인 나눔관에서 개최됐다. 해외 진출 모색을 향한 국내 미술 현장의 높아진 열기를 증명하듯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컨설턴트, 딜러 등 여러 전문 인력과 미술 애호가, 작가, 미술학도 등이 강의실에 빼곡히 자리한 가운데, 한국 미술계의 요구에 뜨겁게 응답한 본 콘퍼런스를 살펴보고자 한다. 콘퍼런스에는 아시아미술의 주요 허브인 홍콩에서 초청된 매그너스 렌퓨(Magnus Renfrew), 제한 추(Jehan Chu), 원앤제이 갤러리의 패트릭 리(Patrick Lee)의 강연이 백남준 미술관의 서진석 관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_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센 도약

첫 번째 강연자 매그너스 렌퓨는 아트바젤 홍콩의 전 디렉터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아트바젤 홍콩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아시아 미술시장을 국제적으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주역이다. 현재 그는 세계적인 옥션회사 본햄스(Bonhams)의 아시아 지역 총괄 대표로서 아시아 경매시장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렌퓨의 강연은 ‘아트바젤 홍콩이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성장하기까지’를 주제로 하여, 미술시장의 불모지인 홍콩이 아시아 최고의 현대미술 허브로 거듭나게 된 성장 스토리와 더불어 성공적인 전략들을 공유하였다. 그는 서구 중심이 아닌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 아트마켓을 형성하기 위해 “수준 있는 갤러리를 선별하기 위한 엄격한 심사 과정”, “지리적인 다양성을 추구한 지역 분배”, “심포지엄, 연계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 발굴을 통한 아트페어 접근성 증대”, “홍콩 현지 미술계로부터의 지지와 미술관, 비영리 기관과의 적극적인 파트너십” 등을 주요 전략으로 꼽았다.





그가 2008년 홍콩 아트페어를 준비하던 시기는 아시아 미술시장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던 상황이라 서구 갤러리들의 참여 자체가 첫 난관이었다. 준비 당시 5개 갤러리부터 시작하여 2008년 첫 아트페어 개최 시 101개 갤러리(19개국), 2012년에는 두 배가 넘는 255개(38개국)로 전 세계의 수준 높은 갤러리를 대거 홍콩으로 입성시켰다. 렌퓨는 7년 전과 오늘날의 홍콩에 대해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고 회상한다. 문화적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 그의 노력은 아트페어 부대 프로그램에서 더욱 획기적으로 진행됐다. 첫회 25개였던 프로그램을 심포지엄, 렉처, 워크숍, 필름, 토크, 퍼포먼스 등 200여 개의 문화행사로 확장시켰다. 아트페어를 마켓 개최가 아닌 “홍콩이라는 도시 전체가 부각되는 행사”로 임한 그의 도전은 2014년의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도시 경관을 스펙터클하게 한 초대형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에서 빛을 발한다. “아트페어가 상업적인 행사에서 문화적으로 중요한 행사로 발돋움한 순간”이란 그의 말은 세계 미술시장이 문화적 가치를 선도하는 변혁을 시사한다. 성공적인 미술시장 진출을 위해 그가 시도한 전략들은 경제적 이익 창출에 앞서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현대미술의 퀄리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아시아 마켓의 잠재력 조건들을 파악하고, 이를 최상의 퀄리티로 이끌어낸 그의 조언 “가격이 아닌 퀄리티를 좇으라”가 우리 미술시장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국 갤러리의 국제무대 진출 전략과 가능성

두 번째 강연은 원앤제이 갤러리의 공동대표인 패트릭 리가 ‘한국갤러리, 해외 미술시장으로 도약하기’를 주제로 국내 신진 갤러리가 어떻게 국제무대에 진입하게 되었으며, 어떠한 전략으로 한국미술을 프로모션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아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원앤제이 갤러리는 현재 아트바젤, 프리즈, 아모리쇼 등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패트릭 리는 2015년 아트바젤 홍콩의 갤러리 선정 위원에도 합류하였다. 갤러리스트로서 국제무대에 진출 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당신의 미션은 무엇인가”를 손꼽았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적으로 홍보하는 수단으로, 우리 작가들이 해외에 지속적으로 등장 가능”한 플랫폼이 되고자 한 갤러리스트의 의지가 있었기에 해외 진출을 도전적으로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패트릭 리는 미술시장이 독립된 아트마켓이 아니라, 미술계의 다양한 활동들과의 영향 관계로부터 형성되는 상호적인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갤러리와 작가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미술관, 언론사, 컬렉터, 어드바이저 등 미술계의 여러 관계망이 전체적인 시스템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술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매그너스 렌퓨가 홍콩에서 “무에서 유로” 도전했듯, 패트릭 리 또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경험을 지닌다. 그렇다면 10년 전 처음으로 소규모 아트페어에 나갔던 신생 갤러리가 어떻게 현재 세계 최고의 미술시장까지 진입할 수 있었을까? 이를 실현시킨 배경으로 그는 해외 미술계 인사와의 인맥 형성, 네트워크 구축을 강조한다. 아트페어 기간에 열리는 VIP, 관계자 파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나가며, 좋은 사람들의 추천과 소개로 해외 미술계에서의 네트워크를 확장시켜나갔던 것이다. 패트릭 리는 주요 아트페어에 입성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닌, 갤러리의 작가 진과 프로그램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둘 것을 당부한다. “한국 미술의 잠재적 생태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홍보”하자는 그의 강연은 국내의 갤러리스트, 미술 인력이 자각한 현재의 요구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해외 미술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들을 공유한 자리였다.

컬렉터들의 요구와 아시아 미술시장의 전망

세 번째 강연은, 홍콩의 미술품 컨설팅 회사 버밀리언 아트컬렉션(Virmillion Art Collections)의 대표이자, 개인 및 기업 컬렉션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는 제한 추가 ‘Love, Honor, Invest : 오늘날의 컬렉터들의 성향 분석’이라는 주제로 이어나갔다. 그는 어드바이저 외에도 홍콩의 비영리 공간 ‘Para/Site Art Space’ 이사 등 미술계의 여러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네트워크가 미술시장에서의 강점이라고 소개한다. 앞서 강연한 패트릭 리와 같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제한 추가 중점을 두는 것은 바로 네트워크에 관여하는 것이다. “현재 미술계의 생태계는 아주 복잡하다. 다이내믹하고 변화가 빠른 이곳에서 우리가 한 가지만을 기억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술계가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나와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네트워크에 관여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앞선 두 강연에 이어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제한 추의 강연은 무엇보다 컬렉션 어드바이저라는 자신의 역할을 살려, 미술시장에서 컬렉터의 관점과 현재의 흐름을 소개했다. 그는 오늘날 컬렉터의 요구를 세 가지 관점에서 조언했다. 컬렉터는 “미술계로부터 인정받은 좋은 작품을 원하고(예술적), 가치가 유지되는 작품을 원하며(경제적), 자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원한다(사적).” 그는 이러한 컬렉터들의 관점과 성향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외 미술시장에 도전하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미술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신진 미술학도, 미술시장 예비 인력을 위해 동시대 미술경향에 대한 공부(주요 큐레이터, 딜러, 매거진, 비평가, 컬렉터 등 전반적인 동향 분석)와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 해외 미술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미술계 시스템을 경험하는 등 국제적 미술인이 되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트콜렉터 로버트 & 카렌 던컨
(Robert and Karen Duncan)

▲ 아트콜렉터 로버트 & 카렌 던컨
(Robert and Karen Duncan)액

홍콩의 아트콜렉터 
윌러엄 림(William Lim)

▲ 홍콩의 아트콜렉터
윌러엄 림(William Lim)



강연 이후 세 강연자와 사회자 서진석이 참여한 관객과의 토론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질문들과 분석적인 논의로 이어졌다. 갤러리에서의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는 요건, 한국 현대미술의 중화권 그리고 세계 미술시장으로의 경쟁력, 중국 경제 둔화로 인한 컬렉터들의 변화, 국내 아트페어에 대한 의견 등 국내외의 미술 동향에 대한 질문들은 세계적 흐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가늠하고 전략적으로 다음 행보를 가고자 하는 요구였다. 이번 콘퍼런스는 바로 2000년 후반(한국 미술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선 시기)에 급격히 성장한 아시아 마켓을 중심으로 하여 변화하는 세계 미술의 지형도와 한국 미술의 효과적인 진출 전략, 전망을 심도 있게 논의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오늘날 미술시장은 그 나라의 문화적 가치를 증명하는 거울이 되었다. 한국 미술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길목에 있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숙제가 많지만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어 세계 무대로 확산될 문화적 가치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사진 제공_(재)예술경영지원센터 해외전략사업실 국제교류팀

※ 참고링크
[리뷰] 한국미술 해외진출 전략 컨퍼런스Ⅱ―데이터와 미술시장

심소미필자소개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전시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을 기획했다. 현재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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