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승기, “연극연출가의 저작권법상 지위 - 안무가, 감독과 비교하여”, 『인권과 정의』, 대한변호사협회 2015년 5월호, 108면.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

제네바의 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도 스텝이 날아오고 미국에서 로스쿨 교수도 부르고 제법 부산스러운 저작권 국제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회를 보느라 온종일 행사장에 있다가 우르르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WIPO에서 온 스태프에게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느냐’고 물었더니 며칠간 더 머무르며 한국의 저작권 등록 제도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대단찮은 제도를 왜 공부하느냐고 핀잔을 주자 그는 정색을 하였다. 한국의 등록제도가 깜찍하여서 멕시코에 소개하려는데 자신이 확실히 시스템을 알아야 거간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므로 서울에 남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제도라면 일단 한 수 아래로 보는 촌스러움을 들킨 것 같아 퍽 민망하였다.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은 크게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으로 나눈다.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권리이다.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권 등 이른바 산업재산권은 특허청에 출원하고 심사를 거쳐 등록되었을 때 비로소 권리가 발생한다. 그러나 저작권은 등록과 무관하게 권리가 발생하고 그것이 산업재산권과의 큰 차이점이다.






저작권이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권리임에도 우리 저작권법은 등록 제도를 두고 있다. 세상에는 저작권 등록 제도가 없는 나라가 더 많다. 2000년경,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가 설립한 저작권 회사 “The Really Useful Group"(RUG)이 <캣츠>를 공연하던 국내 극단을 상대로 공연중지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RUG는 자신이 저작권자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로 미국 저작권청에 등록한 저작권 등록증을 잔뜩 내놓았다. 약간 의아하였지만 ‘요즈음 웨스트 엔드보다 브로드웨이 매출이 더 좋아서 미국 자료를 내나보다’하고 넘어갔다. 창조산업의 종주국인 영국에 저작권 등록 제도가 없다는 사실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알았다.

등록제도의 기능

그렇다면 우리 저작권법상 등록 제도는 어떠한 기능을 하는 것일까? 저작권법은 ‘저작권 등록’과 ‘권리변동 등록’을 규정하고 있다. ‘저작권 등록’이란 저작자가 자신의 이름, 저작물의 제목 등을 등록하는 것인데, 이렇게 등록을 하면 저작자로 ‘추정’을 받는다. 어차피 내가 창작한 저작물에 대해서 번거로운 등록 절차까지 거쳐 저작자로 추정 받을 이유가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추정력의 기능이 만만치 않다. 저작권은 보호기간이 무척 긴 권리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권리를 누리고도 여기 덧붙여 70년 동안이나 더 효력이 있다. 그 저작물이 계속하여 활용되고 있는 저작물이라면 저작자/저작권자가 누구인지 문제가 될 리 없다. 그런데 세상에 쏟아지는 엄청남 양의 저작물 중 보호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용되는 저작물은 대단히 희귀하다. 가령 누구인가가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저작물을 수십 년 시간을 건너뛰어 무단 이용한다면 나는 적법한 저작권자로서 권리주장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이때 무단이용자가 ‘당신이 저작권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면 현실적으로 입증이 난감해진다. 창작 활동이란 요란스런 광고 없이 조용히 외롭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므로 저작권 분쟁에서 입증의 어려움은 예상외의 복병이 될 수 있다.

한편 ‘권리변동 등록’은 이중양도에 대처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세상에는 흉악한 저작권자가 적지 않다. 만일 어떠한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권을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에게 팔아먹었다면 거래 시점을 따져 먼저 저작권을 산 사람이 권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매수인이 다 같이 애매하고 정리되지 않는 입장에 빠질 뿐이다. 이때 매수인 중에 저작권자와 사이에 양도등록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거래 시기가 늦었다 하더라도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우선하여 유효한 저작권자가 된다(법은 이러한 효력을 ‘대항력’이라고 한다).

저작권 등록의 효과도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저작권법은 저작권 등록을 저작권 침해 소송의 요건으로 만들었다. 변호사가 대량 배출되어 분쟁이 넘쳐나는 사회이니만큼 저작권 등록비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보면 맞겠다. 나아가 등록을 해야 소송에 이겼을 때 침해자로부터 내 변호사 보수도 받아 낼 수 있고, 손해배상 범위도 높이 책정할 수 있다(법정 배상). 이 중 법정 배상 규정은 2011년 한·미 FTA 시행과 함께 우리 저작권법에도 도입하였다.

저작권 등록의 현황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된 저작물은 2012년 30,470건에서 2014년 35,842건으로 매년 완만하게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저작물, 미술저작물,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도형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등 유형별로 통계를 관리하고 발표한다. 그런데 이중 연극저작물 등록건수는 매년 수십 건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는 2010년 25건, 2011년 20건, 2012년 24건, 2013년 58건, 2014년 35건이 등록되었다. 2014년 기준 어문저작물이 5,867건, 미술저작물이 8,195건 등록된 점과 비교하면 등록건수가 지나치게 적어 보인다. 그렇다면 연극저작물은 왜 이렇게 등록건수가 적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는 먼저 연극저작물의 저작자가 누구인가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전체 저작권 등록건수 ▲ 전체 저작권 등록건수

저작물 종류별 등록 건수 ▲ 저작물 종류별 등록 건수

연극저작물의 저작자는?

저작권법은 연극저작물을 ‘연극 및 무용·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이라고 규정한다(제4조 제1항 3호). ‘연극’을 독립한 저작물의 유형으로 할지 여부는 각국의 입법정책에 따른다. 일본 저작권법과 독일 저작권법은 ‘무용 또는 무언극 저작물’만을 보호대상으로 하고 ‘연극’을 따로 저작물로 규정하지 않는다. 미국 저작권법과 프랑스 저작권법은 ‘연극저작물’과 ‘무언극 또는 무용저작물’을 구별하여 ‘연극저작물’을 저작물의 유형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연극을 저작물의 유형으로 규정한다면 당연히 연극저작물에는 저작자가 있어야 한다. 저작자가 없는 저작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용에 대하여는 안무가를 저작자라고 하고 무언극의 저작자는 무언극을 만든 사람(mimer, pantomimist)이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상업무용의 안무가를 저작자로 인정한 하급심 판결도 있었다. 그러면 연극의 저작자는 누구인가?

우리 저작권법은 연출가를 ‘실연자’에 끼워 넣고 있다. 저작권법의 “실연자” 정의 규정은, ‘저작물을 연기·무용·연주·가창·구연·낭독 그 밖의 예능적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저작물이 아닌 것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주체를 ‘실연자’라고 하면서, 실연자에는 “실연을 지휘·감독·연출하는 자”가 포함된다고 규정한다(저작권법 제2조 제4호). 이 규정에 따라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금지가처분 사건에서 대법원은 연출가는 실연자에 불과하므로 공연의 금지를 구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2005. 10. 4. 자 2004마639 결정).

극본의 작가가 연극저작물의 저작자일 수는 없다. 작가는 연극 공연의 기초가 되는 어문저작물의 저작자일 뿐이다. 음악감독도 연극 공연에 이용된 음악저작물의 저작자일 뿐이다. 조명디자이너, 무대미술가에게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창작결과물에 저작권이 있는 것이지 연극 자체에 대한 저작권자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따져도 우리가 연극저작물이라는 저작물 유형이 있다면 그 저작자는 연출가일 수밖에 없다. 연출의 기능이 ‘실연’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재공연에 새로이 투입된 연출이 초연공연 연출의 틀을 벗어나지 않거나, 라이선스 공연에서 국내 연출가가 ‘협력연출’이라는 크레딧으로 공연에 참여하지만 실제로는 해외 저작권자(licensor)가 오리지널 공연의 복제물 수준의 제작을 요구하는 환경에서라면 그 기능은 실연에 그쳤다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현대연극에서 연출이 담당하는 기능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연출가는 저작자가 분명하다. 배우의 무대 상 위치와 동선을 결정하고(blocking), 블로킹과 연계하여 조명, 의상, 음악, 분장, 효과 등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방식, 그것이 연출의 창작성이고 연출가가 없이는 공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출가가 연극저작물의 저작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저작자가 없는 저작물 유형을 갖고 있다는 코믹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1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등록 담당자는 현재 미미한 연극저작물의 등록 건수가 대체로 안무가의 무용저작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 유럽과 미국에서는 무용을 저작물로 인정할지를 두고도 논란이 되었다. 즉흥적인 동작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가 있어야 한다, 무보(舞譜)가 필수적이라는 등으로 다툼이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극복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저작권법이 연극의 연출가를 실연자로 묶어 두고 있으니 연극저작물은 아예 저작권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연출가도 안무가와 마찬가지로 연극의 영상물, 스틸사진, 연출노트 등을 이용하여 저작권 등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 등록 활성화가 중요

저작권 등록은 산업재산권처럼 실체 심사를 하지 않으므로 등록 절차도 간단하고 비용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가끔 저작자 아닌 엉뚱한 이가 타인의 저작물을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 양 허위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저작권 등록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는 대체로 허위등록을 형사처벌하고 있고 우리 저작권법도 마찬가지이다(146조 제2항 제2호).

저작권 등록은 예술가의 권리를 확보하고, 저작권 거래의 질서를 지키는데 대단히 유용한 수단이다. 예술가들이 저작권 등록 제도의 유용성에 눈을 뜨면서 등록률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앞으로 예술저작물의 저작권 건수가 대폭 증가하기를 희망한다. 그 전제로서 연출가를 실연자로 파악하는 저작권법 규정도 개정되어야 한다.

※ 참고링크
저작권통계 2015년 제04권 제5호

홍승기필자소개
홍승기는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 민사소송법과 지적재산권법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이고, 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 언론진흥재단 감사,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등을 지냈다. 한국의 문화예술법 분야를 대표하는 법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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