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이미지란 무엇인가?

인간은 언제나 움직이는 이미지에 매혹되어왔다. 20세기 동안 활동사진과 예술이 발전해온 만큼, 움직이는 활동사진인 애니메이션, 혹은 무빙이미지는 뒤늦게야 예술에 포함됐다. 영화 이전 시대 pre-cinematic의 시대에서도 프락시노스코프가 발명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움직이는 무언가의 창조적 활동에 매료되는 본능이 있다. 1889년 시각극장 Theatre Optique에서 영화의 원형적 형태 Proto-cinema를 만들었다. 이미지는 더 많은 거울과 더 큰 광원이 결합한 원시적인 프로젝터에 의해 스크린에 거꾸로 투사되었다.



Theatre Optique ▲ Theatre Optique

1920년대 무빙이미지
초현실적인 무대, 영화, 연극, 춤의 결합

바우하우스(Bauhaus) 역시 건축을 통해 모든 예술을 통합한다는 궁극적 기치 아래 새로운 기술의 융합과 실험을 했다. 인간, 공간,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인 무대는 바우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실험장소이자 유희공간으로 기능했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의 무대공방과 공연 예술을 이끌었던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는 음악, 사진, 영상, 신체, 글자 및 디자인을 융합해 독특한 시도를 했다.



Oskar-Schlemmer_Bauhaustänze-Metalltanz-1929 ▲ Oskar-Schlemmer_Bauhaustänze-Metalltanz-1929

이렇게 일찍이 무대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아직은 활발한 실험이 다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공연영상이라 하면 공연 후의 기록을 남긴 영상물도 있고, 공연의 트레일러처럼 홍보를 위한 트레일러 형식의 영상물도 있다. 나는 시각예술가로서, 무대에서 공연하는 퍼포머와 즉각적으로 호흡하는 공연영상예술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공연영상은 테크니션과의 협업이 중요

빛과 소리와 움직임. 무대는 이 세 가지를 모티프로 하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사전제작된 무빙이미지가 있다 하더라도 무대를 컨트롤하는 테크니션과의 호흡과 연습, 최적화된 장비세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영상물을 준비해왔어도 공연장을 장악하는 테크니션과의 협업이 잘 안 되면 매끄러운 공연이 되기 어렵다. 그리고 공연영상물에 대한 아티스트 피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퍼포머와의 교류, 초대로만 집중된 공연은 수준을 보장하지 못한다.

한국에선 2000년 이후 공연예술이 활성화되며 다양한 무대연출이 시도되었다. 다만, 무대영상은 무대를 위한 영상으로만 자리매김,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과 공연무대의 복합적인 협업은 드물다. 왜일까? 공연예술에서 무대설치에 지급되는 비용은 무척 적고, 준비기간은 짧다. 작가의 아티스트 피는 더욱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무빙이미지와 공연영상을 협업하기 위해선 시각예술 외에 다양한 뮤지션, 무용가들과 평소에 공연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자신의 작업도 보여주는 교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네덜란드 코르조극장의 공연영상 제작 환경

나는 2015년 9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역사 깊은 코르조극장(Korzo Theater)에서 서울 커넥션(Seoul Connection)이란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가민씨의 모놀로그 공연에 코르조 측에서 제안한 일본 출신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현대무용가 겐조 쿠수다(Kenzo Kusuda)가 함께하는 무대로, 겐조와는 처음 호흡을 맞췄다. 헤이그 도착 전에 코르조극장 측과는 이메일로만 연락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엔 가본적도 없었고, 현지 테크니션들과 이메일로만 공연무대준비를 해야 돼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2003년 <제1회 디지털댄스페스티벌>을 통해 무용가의 안무에 맞추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무대영상으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나는 스테이지 영상은 실험적인 설치무대로 여겨진다. 공연영상을 잘 준비하기 위해선 해당 예술가, 음악가, 무용가의 공연내용과 무대를 연출하는 시각예술가의 컨셉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움직이는 빛과 타이밍을 현대적인 장비로 구현하고 제어하기 위해선 컴퓨터의 적절한 최신프로그램과 공연장과의 매칭이 잘 되어야하고, 충분한 리허설도 필수다.





나는 코르조극장 공연을 위해 자비로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 장비를 구입했다. 프로 비디오 플레이어(Pro Video Player)라는 장비인데 무려 1,000 달러 정도를 주고 구매했다. 이 장비는 여러 대의 프로젝터에 고화질의 멀티채널로 인터랙티브하게 제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특수효과를 접목해도 다른 저가의 프로그램에 비해 영상이 딜레이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미술 전시장의 경우 전시는 오픈해놓고 휴관일에 작품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은 당일 현장성이 전부다. 순간에 한 프레임에 영상이라도 튀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케이블이나 장비의 오류로 무대가 튀게 되면, 그 순간 음악가의 연주, 퍼포머의 동작은 분리되고, 관객의 몰입은 한 순간에 깨진다. 그만큼 긴박하고, 무대 뒷편의 연출가인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최근 몇 년간의 전시를 다 합쳐도 제일 긴장했던 순간이다. 혹시나 하는 버그가 생길까봐 정품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또 코르조극장에서도 도착한 순간부터 공연 날까지 매일 리허설을 했다. 다행히 무용가 겐조는 다양하게 시도하는 무대연출 리허설이 익숙한 듯,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연습했고, 나도 덕분에 더욱 완성도 있는 공연영상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조명 및 장비에 최대한 협조해줬던 소극장 테크니션 Bas가 없었다면 짧은 시간에 수준 높은 공연으로 완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네덜란드 공연 환경을 경험해보면서 느낀 긍정적인 세 가지 면을 짚어보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테크니션들은 극장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들이다. 서구인들은 주말과 퇴근 후의 개인생활을 철저히 고수한다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낸 급한 이메일에 담당자 포워딩까지 해주며 빠른 피드백 답장을 주었다. 주로 기술적인 공간과 장비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테크니션은 사안의 긴박함을 알고 책임감 있게 답장해주었다.
둘째, 귀찮았을지도 모르는 공간의 세부적인 조명, 타이밍을 공연에 최적화되도록 테크니션이 조율하고 맞추어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무대에 설치된 일부 기기를 숙지하는 법도 게스트 무대연출자인 내게 친절히 설명해주며 가르쳐 주었다.
셋째, 공연 일정이 모두 끝나고 코르조극장의 스텝에게 인사를 하려고 찾아갔을 때 테크니션의 방을 구경하게 되었다. 디렉터나 극장 사무실보다 훨씬 더 크고 잘 정비되어있는 멋진 테크니션의 방을 본 순간, 극장에서 어느 파트에 치중하고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기술자를 존중하는 그들의 태도랄까? 한국의 지쳐 보이는 조명 음향기사들과 달리 무척 싹싹하고 친절한 코르조극장의 테크니션의 태도는 이러한 존중과 자부심에서 나오는 거 같다.




필자소개강소영은 지구의 신성한 에너지를 시각과 소리로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 작업배경이 되는 곳은 주로 지구의 초기생태환경이 남아있는 곳과 국경선이 복잡하게 얽힌 곳이다. 2006년 남극 킹조지섬의 세종기지에 머물며 처음 극지를 접했던 그는, 2012년 뉴욕의 더 아틱서클의 예술가 탐험 레지던시에 선발돼 북극 항해를 했고, 북위 80도를 3주간 항해했다. 2013년에는 NASA우주생물학자들의 탐사일정을 비공식루트로 따라서 서호주도 다녀왔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동아시아의 경계의 섬들을 다니며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경기도 미술관, 대안공간 풀, 베트남 후에의 안딘 궁, 타이페이의 핑퐁아트스페이스 등에서 개인전을 했고, 2006 예테보리영화제 국제단편부문에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 최근 헤이그의 코르조극장에서 열린 ‘서울 커넥션’의 무대 연출을 맡은 바 있다. 현재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개관전 플라스틱 신화들, 문화역 서울284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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