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8일 양일간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와 워크숍을 연달아 열었다. 이 행사는 지난 6월 9일 열렸던 정책토론회의 후속 행사로 미술품 유통 및 감정체계를 선진화하고 새로운 법제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행사였다. 양일간의 행사에는 기자와 미술 유통 관계자, 비평가와 학생,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참석하여 사안의 시급함을 보여주었다. 세미나가 열리기 며칠 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이우환이 위작으로 기소된 작품을 전량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커진 상태여서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게다가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하고 있는 미술품 유통 법안의 ‘시안’이 발표되는 자리라 화랑과 시장 관계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지난 6월의 행사가 주로 국내 관련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면, 이번 심포지엄은 프랑스와 미국의 권위 있는 감정가 단체 관계자가 직접 내한하여 두 나라의 실상과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자리였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전문감정가협회(CNES) 부회장 미셀 르나드(Jean Michel Renard)와 미술품 유통 및 경매 관련 법률 전문가 알렉시스 푸놀(Alexis Fournol)이 참가했고, 미국에서는 뉴욕에 거점을 두고 있는 미국감정가협회(AAA)의 대표 린다 셀빈(Linda Selvin)이 참여했다.

민간 감정재단의 엄격한 감독을 따르는 미국

첫째 날은 각국의 미술품 유통, 감정, 법률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이 있었다. 프랑스 감정 시스템과 감정사 제도에 대한 발제에서 미셸 르나드는 프랑스 감정전문가의 독립성을 국가가 특별히 규정하지는 않으나 실제 활동하는 감정전문가들은 협회에서 자격을 부여할 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린다 셀빈 미국감정가협회 회장은 진위를 중시하는 한국과 자산으로서의 가치판단을 중시하는 미국이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고, 미국의 미술품 감정사 협회의 구조와 감정사 인증을 받기까지의 요건에 관해 설명하였다. 미국의 경우도 국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민간에서 자율적인 규율과 교육 및 인증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으나, 감정가들의 요건은 국회와 국세층의 인정을 받는 민간 재단인 감정재단 TAF(The Appraisal Foundation)의 엄격한 감독과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국 감정재단(TAF)의 가이드라인
미국 감정재단(TAF)의 가이드라인

양국 모두 감정가들의 교육과 윤리적 자세를 중시했으며, 미국의 경우는 국제표준과 개인 소유물(동산) 가치평가의 요건을 따르는 만큼 미술품 감정사의 시장과 금융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제도가 엄격한 만큼 프랑스나 미국 모두 이들 전문 감정사들의 견해는 금융 거래나 세금, 혹은 사법적인 판단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며, 특히 미국의 경우 자격인증 감정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세금 부과와 법정에서 공신력 있는 법적 문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린다 셀빈(Linda Selvin) 미국감정가협회 회장 린다 셀빈(Linda Selvin) 미국감정가협회 회장
알렉시스 푸놀(Alexis Fournol)
프랑스 예술법 전문 변호사 알렉시스 푸놀(Alexis Fournol)
프랑스 예술법 전문 변호사

엄격한 법적 제재를 받는 프랑스 미술품 거래

한편 알렉시스 푸놀 예술법 전문 변호사는 프랑스에서 미술품의 거래, 즉 갤러리, 아트 딜러, 옥션 활동이 동일한 법적 제재를 받고 있으며, 그 내용은 엄격하고도 구체적으로 성문화되어 있음을 실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현재 미술품 유통 이력제나 등록제 실행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관심 있게 보아야 할 지점이었다. 이어 고려대학교 이대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전한 미술품 유통을 위한 법제화” 방안의 시안을 제시하였는데, 현재 한국 미술계는 민간 시장의 자체 규율이 실패한 만큼 국가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자체 개선노력을 주장하는 화랑계의 주장과 날 선 각을 드러냈다.

첫 번째 날의 심포지엄은 발제에 이어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박우홍 한국화랑협회 회장, 최원근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 회장을 비롯하여 예술법 관련 변호사와 컨설턴트가 참여하였고, 필자는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이자 미술품감정 관련 프로그램 참가자로서 토론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토론은 결국 국가의 개입이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유통업계의 긴장이 노출된 자리로, 참관한 문체부의 담당자는 앞으로 관련자 단체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되 법제화의 속도를 늦추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시작된 토론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시작된 토론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시작된 토론

전작도록인 카탈로그 레조네 사업의 중요성 강조

두 번째 날 심화 워크숍은 미술품감정 교육에 집중하였다. 양국의 구체적인 감정사 양성제도와 프랑스 미술 감정의 법적 이슈들이 사례를 통해 발표되었다. 예술법 전문변호사 알렉시스 푸놀은 사법적 판단에서 작가의 진술보다 기록이 우선되며, 이를 위해 미술가의 전작도록인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 사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열띤 질문이 이어진 이날 워크숍 참여자들은 진위 논란을 떠나 도래한 미술 산업 시대에 국제적인 표준 거래의 필요성과 미술품에 관한 기록과 아카이빙의 중요성, 감정가 교육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서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천경자와 이우환의 위작 스캔들로 떠들썩한 작금의 한국 미술계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 인접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 미술이 발전하기 위한 전환기의 현상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점은 고무적이었다.

미셀 르나드(Jean Michel Renard)
프랑스전문감정가협회(CNES) 부회장
미셀 르나드(Jean Michel Renard)
프랑스전문감정가협회(CNES) 부회장
8일 진행된 감정 교육 및 법적 이슈에 관한
심화 워크숍 8일 진행된 감정 교육 및 법적 이슈에 관한
심화 워크숍

이번 행사를 위해 미국과 프랑스 감정가협회 관계자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촉박한 섭외에도 응하여 내한한 것은 한국 미술에 관한 미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실질적인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이는 K-Art라는 국가의 산업 전략을 넘어, 한국미술이 더 이상 서구의 주변이 아닌 자체의 전통을 가진 독자적인 문화권역이라는 세계 미술지형의 수정 국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품 유통과 감정에 관한 법제화를 국가의 시장 간섭이 아닌 문화 발전의 토양을 고르는 노력으로 수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일간의 행사는 연일 기사화되고 뉴스로 방영되었다. 그만큼 시급하고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프랑스의 알렉시스 푸놀 변호사는 한국에서 미술계 이슈가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다양한 관련 종사자들을 한 테이블에 이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한국미술의 잠재성과 역동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미술계의 열기 속에서 간과되지 말아야 할 것은 미술품 창작의 주체인 작가, 시장을 견제할 수 있는 학술의 가치이다.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품감정 관련자로서 양일간의 행사에 토론자와 진행자로 참여한 후 새삼 느낀 점이다.

  • 김미정
  • 필자소개

    김미정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 박사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 한국미술가 전작도록사업 ‘이중섭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 상임연구원이다. 2012년부터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지원한 ‘차세대 감정가 양성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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