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극장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자리는 무대와 객석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극장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고안하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작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극장은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이자 사회적 소통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weekly@예술경영]은  월간 고양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누리]와 공동기획으로 공연예술생태계의 거점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는 극장의 운영사례를 싣는다./ 편집자 주
정부 산하 예술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신진연극인들이 창작의 결과물을 자유롭게 선보일 무대가 여전히 극히 적다. 제도권 밖에서 작업하며 작품을 선보일 기회에 목말라있던 재능 있는 신진 연출가들 12명이 이번 첫 해 청년연극제를 통해 각기 다른 연극적 방법론과 연극미학을 보여준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청년연극제는 4,5년 전부터 논의가 있어왔지만 이번에 펑차오 극장이 개관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한 해 베이징 연극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와 경향으로는 제1회 청년연극제(靑年戱劇節) 개최, 차오창디(草場地) 등 대안예술공간의 활성화 그리고 펑차오(蜂巢) 극장의 개관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렇게 연극제와 공간을 주목하는 것은 베이징 연극계의 현안이라 할 차세대 연출가의 부재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중국의 현대연극, 특히 80년대 이후 소위 신시기(新時期)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연출가로는 1982년 중국 최초의 소극장 연극인 <절대신호>(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가오싱지엔(高行健)의 희곡)를 연출한 린자오화(林兆华), &lsquo;신연극&rsquo;, &lsquo;순수연극&rsquo;의 기치를 내걸고 전통극의 혁신을 시도해온 리리유이(李六乙), 9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조리극에서 뮤지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극적 실험을 보여준 멍징후이(孟京辉)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베이징인민예술극원이나 국가화극원 등의 예술감독과 상임연출을 맡고 있는 동시에 외부에 별도로 본인의 창작스튜디오(戱劇工作室)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평차오 극장 외관, 극장 로비에 달린 벌집 모양 조명

베이징 연극, 차세대 연출가 부재로 고민

특히 린자오화와 리리유이는 &lsquo;一老一少&rsquo;라 불리며 베이징인민예술극원(北京人民藝術劇院, Beijing People&rsquo;s Art Theatre Troupe)의 개혁을 이끌어온 쌍두마차로 평가받고 있다. 린자오화가 최초로 시도한 소극장연극은, 사회주의혁명의 정당성과 제도적 우월성을 주 내용으로 하던 당시의 대부분의 연극에 염증을 느낀 관객들이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원하기 시작하던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지난 20여 년 간 각기 다른 시기에 설립된 인민예술극원소극장, 동방선봉극장, 북병마사극장(현재는 중앙희극학원에 귀속) 등에서 공연된 수많은 작품들이 그간 중국 현대연극의 무대를 풍성하게 해왔다.

그러나 정부 산하 예술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신진연극인들이 창작의 결과물을 자유롭게 선보일 무대가 여전히 극히 적은 것도 사실이다. 절대 다수의 공연장과 공연단체가 국공립이고, 민간극단이나 개인이 이들 장소를 대관하고 공연 허가증을 얻는 것 자체가 그다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제도권 밖에서 작업하며 작품을 선보일 기회에 목말라있던 재능 있는 신진 연출가 12명이 작년에 처음 열린 청년연극제를 통해 각기 다른 연극적 방법론과 연극미학을 보여준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청년연극제를 가능하게 했던 핵심인물들 중에는 국가화극원 산하 동방선봉소극장 푸웨이보 대표와 한때 중국연극계의 이단아, 실험극의 기린아 등으로 불렸고, 현재 펑차오 극장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연출가 멍징후이(孟京輝)가 있다. 이 두 극장 모두 청년연극제 외에도 다양한 실험극을 포함, 신진 예술가와 새로운 공연예술을 위한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청년연극제는 4, 5년 전부터 논의가 있어왔지만 이번에 펑차오 극장이 개관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청년연극제와 개관작 <코뿔소의 사랑>

예술감독 멍징후이
지난해 개관한 펑차오 극장은 베이징 유일한 민간극장이었던 북병마사(北兵馬司)극장이 몇 년 전 경영난으로 도산하고 중앙희극학원(교육부 산하)의 부설극장으로 귀속된 후 남아있는 수도 베이징의 유일한 민간극장이다. 물론 최근 들어 카페 등을 개조한 작은 바 형태의 공연장이나 대안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백여 개가 넘는 소극장이 자리 잡고 있는 서울 대학로와 비교하면 설비나 규모면에서 정식 극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민간극장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덩치에 비해 믿기 힘든 사실이기도 하다.

중국의 공연예술계를 주류와 비주류로 단순 분리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국가대극원, 국가화극원, 기타 국공립단체에서 내놓는 비교적 보수적이고, 소위 말하는 주선율 성향의 작품으로 대별되는 한 축과, 차오창디 등에서 벌어지는 때로는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이렇게 두 카테고리로 양극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한국과 중국의 공연예술 교류도 전자에 집중되어 있어, 중국에 제대로 된 현대극이 존재는 하는지 혹은 셰익스피어나 지난 세기 초의 리얼리즘 연극만 올리는 것은 아닌지 그릇된 편견을 갖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양쪽의 소통과 교류가 거의 전무한 현 상황에서 개관한 펑차오 극장은 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우선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연출가 멍징후이 본인부터 국가화극원 상임연출로 몸담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다양한 실험작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적인 인기마저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멍징후이는 2003년 서울프린지네트워크가 주최한 &lsquo;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rsquo;에 <코뿔소의 사랑>이라는 작품으로 참가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ldquo;현재 중국에서 작업하는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rdquo;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ldquo;시스템, 제도&rdquo;라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연출가로서 그의 행보를 보면 상업적 의도가 뚜렷해 보이는 공연이나 대형 아동극 등이었다. 실험극의 기린아라는 호칭이 무색한 선택으로 보였다. 그러나 펑차오 극장도 멍징후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투자나 운영이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멍징후이는 한때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시스템이나 제도에 안주했다기보다 이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균형을 찾는 영리함까지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다는 자기 자신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는 혈기왕성한 연출가에서 이제 연극계 전체의 미래를 전망하고, 장기적으로 후배 예술가들을 위한 무대까지 마련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꽉 들어찬 객석, 젊은 연극인들의 사랑방

원래 영화관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현재의 30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변신한 펑차오 극장은 중국 현대극 역사상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코뿔소의 사랑>을 개관작으로 무대에 올리면서 무대디자인과 설치에만 인민폐 500만 위안(한화 약 11억 원)을 들였다. 개조한 극장의 무대너비는 15.8미터, 높이는 6.3미터, 깊이는 12미터이다.(통상적으로 현지 대극장의 무대너비가 14.5~15미터인 것을 감안할 때, 펑차오 극장의 규모는 좁고 낡았다는 소극장의 이미지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이미 10년째 매해 중국 전역의 도시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전석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이 작품 외에도 역시 멍징후이의 연출작이며 작년 한해 최다 공연회수를 기록한 <두 마리 개의 생활의견> 등 화제작들이 프로그램에 포진해 있어 일단 관객들이 새로운 공연장으로 발걸음하게 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민간자본으로 개관하긴 했지만 예술감독인 멍징후이가 국가화극원 소속이고, 청년연극제 등을 공동주관하는 동방선봉극장 및 베이징시 연극협회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어, 재원확보뿐 아니라 기타 제도적, 행정적 협조를 구하기 쉽다는 점도 중국적 특수상황에서는 상당한 장점이다. 멍징후이는 향후 5년은 적자를 감수할 준비를 끝내고 개관했다고 말하지만 평일 저녁에도 꽉 들어찬 객석과 어느새 뜻있는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이 극장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중국어로 &lsquo;펑차오&rsquo;는 벌집을 뜻하는데, 건물 3층에 위치한 이 극장의 곳곳에서 벌집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극장으로 향하는 회색 벽에 그려진 벌집무늬라든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치게 되는 벌집 모양의 조명, 1층 매표소 위의 벌집 이미지의 간판 등이 있다. 극장 이름이 펑차오인 것은 꿀벌처럼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국제 민간교류에서 힘쓸 터

개관작<코뿔소의 사랑> 포스터민간극장으로서 첫 번째 실험이었던 북병마사극장이 영국실험극제, 홍콩-마카오-대만 소극장연극제 등 다양한 실험극과 국제교류 기획공연으로 베이징 연극무대를 풍성하게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경영면에서 실패하였다면,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문을 연 펑차오 극장은 보다 장기적인 안목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공간운영계획을 가지고 있다. 개관 첫 해에는 앞서 언급했던 <코뿔소의 사랑> 등 중국 현대연극사에 길이 남을 만한 공전의 히트작들을 재 공연하는 것 외에도 이제 첫 테이프를 끊은 청년연극제를 매해 개최하여 젊은 연출가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현재 공연예술의 해외교류가 관 주도하의 연극제나 대형공연 위주인 상황에서, 예전의 북병마사극장이 그랬듯 민간극단 및 예술가와의 국제교류에도 힘쓸 예정이다. 특히, 초청공연 등 완성된 작품의 교류 외에도 공동작업이나 워크숍 등의 교류 활성화를 지향하고 있다. 연극 공연장으로 출발했지만 전시(회화를 포함, 멀티미디어 전시까지), 언더그라운드 뮤직 공연, 연극 마스터클래스, 국내외 희곡낭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미 선보였거나 준비 중이고, 이러한 활동은 특히 젊고 재능 있는 신진예술가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펑차오 극장은 연출가의 말처럼 가볍게 부유하는 이 시대에 젊은 예술가들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꿈의 무대가 될 것이다.


장혜원

필자소개
장혜원은 중국의 중앙희극학원에서 연극학 박사학위를 받고 &lsquo;2007 한중교류의 해-한국공연예술제&rsquo;(베이징 개최) 프로듀서 등 한국과 중국 간의 공연예술 교류를 위한 활동들을 벌여왔다. 현재 원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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