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필자가 예술과 과학 기술의 협업에 기반을 둔 예술 프로그램의 기획과 제작에 종사하기 때문인지 지난 10월 6일(목) 서울아트마켓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비록 1시간 10분가량 압축적으로 진행한 행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청된 연사들의 개별 사례 발표와 전체적인 토론의 진행 방향은 애초 예술경영지원센터 측에서 설정한 주제에서 더 나아가서 기대 이상의 풍부한 시사점들이 도출되었다. 제시된 사례들의 파급효과와 사회적 기여의 가능성 등 실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밝혀진 현실적인 내용이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의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내용을 정리하여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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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온 첫 번째 발표자인 조셉 페렐로(Josep Perelló) 오픈시스템즈(Open Systems) 대표는 자신을 물리학자로 소개했다. 지난 2015년 서울아트마켓 협력행사 중 하나인 한국-스페인 커넥션 살롱에서도 이 도시 출신의 ‘예술,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 5명을 초청해서 컨퍼런스와 전시를 개최했다. 하몬 시모 그렉 페스티벌 디렉터, 리엑터블 개발자이자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골든 니카 수상자인 세르지 요다(Sergi Jordà) 등 바르셀로나에서 온 예술과 과학 기술 연계 활동가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인구 170만 명 규모의 도시에서 얼마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졌던 기억이 난다.

페렐로 대표는 바르셀로나 대학과 함께 진행 중인 오픈시스템즈의 연구와 전시회를 더 유용하고 의미 있는,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소개하였다. 그는 이런 공간을 예술가들이 과학자의 관점으로 작업하고 시제 구현을 위해 과학자들이 중재하여 상호작용 작품을 구현하는 ‘대화의 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예술로의 지향점보다는 소통과 참여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전략 기반으로 과학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가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로 시민들이 방문하는 공공장소와 행위, 머무르는 시간, 습관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데이터를 다층위적인 지도로 표시하도록 한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useo de Arte Contemporáneo de Barcelona)과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전시 발표를 넘어 공익을 위한 공공의 데이터로 제공되는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그는 행동경제학의 게임이론 중 죄수의 딜레마에서 착안하여 스스로의 이익과 공공이익의 균형을 찾는, 즉 협력과 적절한 보상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6인 참여형 협력 구도의 게임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한 예로 기후변화를 소재로 전 세계에 걸친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익과 공동이익 사이의 균형에서 협력을 늘려가며 문제를 공동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가치 있는 데이터를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여기서 도출된 흥미로운 결과 한 가지는, 가장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관대하고 공공선을 이루는 노력에 더 협력적이라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기서 자발적으로 게임 예술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사용자이자 과학적 실험의 피실험자이기도 하다.

페렐로의 발표에서 중요한 시사점은 연구과제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실험 설계, 다양한 재능자들의 협업을 위한 팀 구성 과정은 일반적인 과학실험의 프로세스와 같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구자 외에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합류하여 공연 또는 전시의 형태로 예술작품을 제작하여 실행한다.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와 실험 결과,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은 공공위원회에 전해져서, 다시 공익에 기여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영국 브리스틀(Bristol)의 워터세드(Watershed) 프로듀서인 딕 페니(Dick Penny)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환경에 대한 설명으로 발표를 시작하였다. 물이 풍부한 곳인 만큼 그가 일하는 워터쉐드의 의미가 ‘물가’라는 점을 인상 깊게 심어주었다. 이곳은 1982년 설립 당시에는 아트센터였으나, 1990년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영상포토그래피센터로 탈바꿈하여 고유한 아카이브를 구축하였고 2000년대 들어 디지털센터로 탈바꿈하여 창의적인 다학제의 분야에서 과학기술과 예술의 혼성에 전문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만나기 어려운 참여자들을 한곳에 모아 협력하며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는 도전의 기회를 마련하여 진정한 혁신을 이루게 돕는 것이 그의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전의 페렐로의 발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게임의 참여자들이 제로섬이 아닌 모두가 승자가 되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력이 실현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자신이 정리한 창조와 혁신을 위한 프로세스와 조건을 제시했는데,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을 꼽자면, 서로 다른 영역에서 온 참여자들 사이에서 위험을 분담할 수 있는 신뢰와 목적의식의 공유, 새로운 상상에 대한 열려있는 태도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능력, 다른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 등이다. 또한, 그는 예술가가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 사이의 균형감을 잘 잡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유용한 아이디어로 이런 선순환의 구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익 창출 모델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독립기획자 최재원의 마지막 발표는 보다 더 시사적이다. 그는 융·복합 영역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기금 위주나 창조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단기 성과에 집중하고 있고, 대부분 결과도 좋지 않았음을 비판하였다. 그러한 시행착오 극복을 위한 중장기적 프로그램으로 고등과학원의 초학제프로젝트와 더불어 이 프로젝트 책임연구자이자 최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CERN)와 스코틀랜드의 팩트(FACT)가 주관하는 콜라이드 상(COLLIDE International Award)을 받은 김윤철의 사례를 들어 예술도 과학도 아닌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기 위한 협업이 얼마나 어려운 시도인지 설명했다. 기관 대 기관, 기관 대 아티스트, 과학기술, 인문, 예술의 협업 등의 플랫폼들이 꼭 생산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빠른 성과보다는 협업의 체계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방식과 관점에 적응하고 이해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이 집중하는 것을 새로운 프로세스로, 총학제간 교류의 시발점으로써 공유하기를 제안하였다. 이것은 아티스틱 리서치의 접근 방식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토론의 자리에서 발표를 한 각 3인에게 예술과 과학 기술의 협업이 더 나은 결과를 낳기 위한 의견과 이 협업이 긍정적인 사회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제공해야 하는 점은 무엇인지를 질문하였다. 결과적으로 협업의 전제는 이해와 신뢰, 책임감이라는 정신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먼저 확인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융·복합 분야 기금 지원 사업의 경우, 성과, 기여도, 파급효과 등 결과에 대하여 기존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가치 기준의 평가 방식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토론의 공감대가 있었다.

  • 최흥철
  • 필자소개

    최흥철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현대미술과 미디어 아트 부문의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기획해 오고 있다. 최근 기획한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호주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뉴 로맨스>, <인터플레이>(2015)와 <초자연>(2014), 고흥 남포미술관의 <은하철도의 밤>(2013), 그리고 아르코미술관의 <몹쓸 낭만주의>(2012) 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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