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악(FIAC)은 프랑스에서 출범한 국제 아트페어, 즉 미술품 장터다. 스위스 아트바젤, 영국 프리즈 아트페어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힌다. 1974년에 시작되어 유럽의 주요 아트페어로 성장했으나, 93년 유럽에 불어 닥친 불황과 영국 프리즈와 같은 신생 아트페어의 돌풍에 쇠락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매년 피악이 열렸던 파리 그랑팔레(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미술관)가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페어 장소조차 파리 외곽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프랑스 예술 전문지 ‘보자르 (Beaux Art)’는 피악 30주년을 맞은 2003년 ‘피악 30주년: 생일인가 장례날인가’라는 특집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위기를 느낀 피악은 2003년 뉴질랜드 출신 아트딜러이자 갤러리스트였던 제니퍼 프레이(Jennifer Flay)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피악(FIAC) © Marc Domage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피악(FIAC) © Marc Domage 2003년 예술 전문지 보자르에서 피악의 위기를 다룬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2003년 예술 전문지 보자르에서 피악의 위기를 다룬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프레이는 취임하자마자 갤러리 선정위원회부터 수술했다. 과거 친분이 있는 갤러리스트들끼리 짬짜미로 참여, 갤러리를 정하던 걸 주최 측이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 그 결과 2003년 이전까지 참여했던 갤러리 가운데 20%만 남고 나머지는 대부분 물갈이됐다. 그러자 피악을 떠났던 명문 갤러리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2006년 재개장한 그랑팔레도 피악을 다시 선택하면서 세계 3대 아트페어란 명성도 되찾았다. 프레이는 그 공로로 2010년 피악 총감독으로 승진했고 2012년엔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2015년엔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2013년과 2014년 예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파워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세계 27개국, 186개 갤러리가 참가한 2016년 피악(FIAC)에는 1만 2,000여 명의 VIP관람객을 비롯, 7만 2,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국에서는 국제 갤러리와 PKM갤러리가 참여했다. 주행사장인 그랑팔레와 프티팔레 사이의 도로에도 차량 통행을 막고 작품을 설치, 축제 분위기를 더했고, 튈르리 정원, 방돔 광장 등 곳곳의 명소에도 야외 조각이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정식명칭은 ‘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국제현대미술전시회)‘. 그 머리글자를 따서 흔히 FIAC이라 부른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2016 프로젝트 비아 결과 공유 세미나: 비아 살롱(ViA Salon)'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제니퍼 프레이를 인터뷰했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피악(FIAC)에서의 본인의 역할과 성과를 소개해달라 지난 14년간 피악의 총감독을 맡아왔다. 곧 15년이 된다. 꽤 오랜 시간이다. 처음에는 예술감독직으로 팀에 합류했고, 2010년 피악 총감독으로 승진했다. 이 기간 동안 조직과 함께 피악을 세계 미술 시장을 선도하는 국제적인 페어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당신은 이미 파리의 안정적인 갤러리 오너였다. 위기에 빠졌던 피악의 수장 자리를 어떻게 맡았나 사실 99년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 온몸은 물론 뇌 손상으로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을 정도로 심각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고,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넉 달 후 어느 정도 회복이 돼 소파 겸 침대에 누워 갤러리에서 일을 보기 시작했지만, 결국 2003년 7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예술이 없는 삶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우울증도 겪었다. 그런데 그해 프랑스 예술잡지 보자르가 피악의 위기에 대한 특집기사를 냈다. 다급해진 피악 주최회사 ‘리드 익시비션스(Reed Exhibitions)’가 수소문하다 마침 내가 갤러리 일을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나도 끔찍한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만큼 나의 예술인생을 만들어준 프랑스에 뭔가 보답하고 싶어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당신은 피악 예술감독이 된 뒤 막강했던 갤러리 선정위원회에 대한 지원을 끊고 어떤 컬렉터에게도 호텔이나 항공 등의 추가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2003년 피악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강력한 도덕적 원칙이 필요했다. 원하는 갤러리나 컬렉터를 초대하기 위해 당근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다. 컬렉터들을 초대해 따뜻한 환영과 함께 최고의 프랑스 미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오고 싶다고 느껴서 와야 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매우 터프한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는걸 안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국제적인 행사에 걸맞은 질적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뉴질랜드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독보적인 리더십을 보여줬고 현재 세계 아트페어계에서 가장 장수한 디렉터인데 이런 리더십에 비결이 있다면 나는 갤러리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오랫동안 갤러리스트로 일했다. 피악의 수장으로 결정을 내릴 때도 늘 갤러리스트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현대미술계의 여교황’이란 별명도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난 매우 유연하고 열려있는 사람이다. 다만 예술이란 건 어떤 탁월함(excellence)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질적인 면에 있어서 타협이 불가능한 지점이 있고 이걸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니퍼 프레이(Jennifer Flay) FIAC 제니퍼 프레이(Jennifer Flay) FIAC 총감독

예술품 거래엔 다양한 스캔들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이우환 작가의 위작 논란이 큰 이슈가 되었다. 검찰의 수사결과 위작이란 결론이 나왔고 범인도 자백했지만 정작 작가는 이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위작의 역사는 길고 새로운 일도 아니다. 더욱이 작가 본인이 논란이 된 작품을 진품이라고 주장하면 이를 반박하기는 참 어렵다. 아트시장에서 가격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작품의 진위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엄중해야 한다. 피악에선 논란이 된 작품은 바로 내리도록 조치한다.

이번 방문 기간 동안 10여 개의 화랑과 1개의 미술관을 방문했다. 한국 미술 시장의 침체기라 하는데, 한국 미술에 대한 당신의 인상은 어떠한가 침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문화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진 매우 역동적인 미술 씬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켓의 침체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으로 전체 거래량의 25%가 감소했다. 사실 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 대해 보다 넓게 이해하게 됐다. 한국 미술계는 아시아 미술계 중 가장 현대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뛰어난 기업 컬렉션과 개인 컬렉터들이 뒷받침하고 있고, 30년 이상 된 갤러리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단색화는 매주 중요한 사조이고, 이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관심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학고재 갤러리의 윤석남 작가와 같은 “민중미술” 사조, 현대갤러리의 이승택 작가와 같은 한국의 초기 “개념미술” 사조에 대한 국제적인 재조명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모두 매우 훌륭한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원앤제이 갤러리, 바통갤러리와 같이 좀 더 젊은 갤러리의 해외 진출 역시 필요하고, 이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갤러리에게 해외 진출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국제 미술시장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훌륭한 작품과 작가에 대해 늘 열려있다. 유럽 컬렉터의 특정 취향에 맞추기보다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 여러 해 피악에 참여한 국제갤러리와 지난해 처음 참여한 PKM갤러리 모두 탁월한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VIA 살롱에 참여한 소감은 다른 문화권 간의 적극적인 교류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비아 프로젝트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우수한 기획 프로젝트로, 국제 미술계에 한국 미술에 대한 지식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이번 방한 동안 참여한 비아 살롱은 운영과 내용 모두 매우 훌륭한 진행이었다.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된 걸 매우 감사히 여긴다. 프로젝트 비아와 같은 프로그램이 해외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유럽순수예술재단(TEFAF)아트프라이스닷컴 등에서 나온 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아트페어는 2010년 이후 거래 규모가 49% 증가했고, 전체 미술품 거래량의 40%(2014년 기준)를 책임지는, 그야말로 아트마켓의 메인 플랫폼이다. 더구나 아트페어는 갤러리, 작가, 옥셔너, 평론가, 딜러, 미술관, 컬렉터, 매스컴 등 예술계 전반에 걸친 다양한 관련자가 매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인 만큼, 정보 공유와 네트워킹, 프로젝트 개발에 최적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10월 피악 기간 파리에 진출한다는 것은,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벨기에, 독일, 스위스 등 유럽 내 컬렉터 및 기관 큐레이터, 민간 예술재단, 국제 미술계 언론에 노출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간 유럽 내 미술계 관계자들과 적극적인 네트워킹과 교류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한국 현대미술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를 희망한다.

  • 제니퍼 프레이(Jennifer Flay)

    1980년 프랑스 파리 유학 - 미술사
    1982년~ 1991년 프랑스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 갤러리 인턴
    다니엘 템플론(Daniel Templon) 아트딜러와 지슬랭 위스노(chislaine Hussenot) 어시스턴트 활동
    1991년 Galerie Jennifer Flay(파리 마레지구) 운영
    1990년대 중반 심한 교통사고로 갤러리 활동 중단
    1997년 갤러리 재오픈
    2003년 피악 공동 아트 디렉터 임명
    2010년 피악 총감독 임명
    2012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 훈장(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수상
    2013, 2014년 ArtReview의 Power 100인 선정
    2015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수상

  • 김주원
  • 필자소개

    김주원(Joanne Kim)은 매년 10월 피악(FIAC) 기간 파리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부티크아트페어 “ASIA NOW – PARIS ASIAN ART FAIR”의 런칭멤버이자 컨설팅 큐레이터로 교육프로그램과 특별전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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