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하 프린지)은 한국 공연계에서 ‘꿈의 무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PMC의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가 큰 역할을 했다.

1997년 초연된 <난타>는 1999년 한국 공연으로는 처음 프린지에 참가해 현지 언론들로부터 최고 평점인 별 5개를 받았다. 그리고 호평을 발판으로 이듬해 서울에 전용관을 마련하는 한편 2004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해 아시아 작품으로는 처음 전용관을 열고 1년 6개월간 공연했다. 현재는 서울에 3개, 제주도에 1개, 태국 방콕에 1개, 중국 광저우에 1개 등 총 6개의 전용관을 두고 상설공연 중이다.

이후 <난타>는 한국 공연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단체들은 <난타>의 해외진출 경로를 따라 프린지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 <난타> 이후 지난해까지 프린지에 참가한 한국 작품은 모두 109개다(중복 참가 포함). 1999년 1, 2001년 1, 2002년 3, 2005년 4, 2006년 7, 2007년 16, 2008년 14, 2009년 3, 2010년 7, 2011년 6, 2012년 6, 2013년 9, 2014년 8, 2015년 8, 2016년 16개 순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난타> 이후 프린지에서 수익을 내거나 이후 다른 투어로 연결되는 성과를 거둔 작품은 예감의 <점프>,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밤의 꿈>, 극단 초인의 <기차> <선녀와 나무꾼>, 브러쉬씨어터의 <브러쉬>,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몽연> <강아지똥>, 코미디 그룹 옹알스의 <옹알스>, 국악그룹 <타고> 등 10편 남짓이다. 역대 한국 작품 전체로 보면 10% 안팎인 셈이다.

한국 작품이 양적으로 증가한 것과 비교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월 23일(목)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세미나 ‘에든버러 프린지, 해외 진출을 위한 거점시장인가?-프린지 생존전략’은 그동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조언을 들려줬다. 이날 세미나는 김신아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산업진흥실장의 진행으로 레이첼 생어(Rachel Sanger) 프린지 사무국 참가지원 총괄책임자, 해미시 모로우(Hamish Morrow) 플레상스 극장(Pleasance Theatre) 총괄 매니저, 한경아 쇼앤아츠 대표, 이길준 브러쉬씨어터 대표, 김준영 아이러브스테이지 운영감독이 발표에 나섰다. 이들은 하나같이 프린지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열린 축제지만 참가 단체 스스로 생존전략을 치밀하게 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지난 2월 23일 에든버러 프린지 진출을 위한 워크숍이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지난 2월 23일 에든버러 프린지 진출을 위한 워크숍이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프린지는 매년 8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축제다. 지난해의 경우 48개국에서 3,269편의 작품이 참가했다. 교회, 식당 등을 개조해서 만든 294개 임시극장에서 5만266회의 공연이 펼쳐졌다. 티켓 판매량은 약 250만 장이다.

1947년 제1회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8개 팀이 주변부에서 무허가로 공연한 데서 시작된 프린지가 이렇게 크게 성장한 것은 ‘자유 이용 정책(Open Access)’ 덕분이다. 초청으로 이뤄지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달리 프린지는 단체 스스로 참가비를 내야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참가비는 96파운드(약 13만 원). 프린지 사무국이 단체들을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법 등 106개에 달하는 워크숍을 열지만, 기본적으로 단체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첫 발표자로 나선 레이첼 생어는 “프린지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트 플랫폼이다. 사무국엔 작품을 선정하거나 공연을 기획하는 예술감독도 없다”면서 “참가자는 누구나 환영받는 것이 바로 프린지의 특징이자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더라도 목표는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밀하게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레이챌 생어는 넌버벌 퍼포먼스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전했다. 그는 “프린지에 오는 관객들은 영어로 된 작품이 아니면 대사가 없는 작품을 선호한다”면서 “한국 단체들의 목표가 투어 기회를 잡는 것이라면 작품을 영어로 만들거나 현지 배우들로 제작하는 것을 권한다. 한국어 공연일 경우 외국 관객들의 공감을 어떻게 해야 얻어낼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미시 모로우 플레상스 극장 총괄 매니저는 1985년 설립된 플레상스 극장 그룹을 소개했다. 23개의 극장을 지닌 플레상스는 어셈블리, 언더벨리, 길디드벌룬 등과 함께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활약하는 대형 극장 그룹이다. 지난해엔 플레상스에서 160개의 공연이 올라갔다. 올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과 협약을 맺고 축제 기간 아르바이트 요원으로 한국 학생들도 고용할 예정이다.

프린지에서 성공작으로 꼽히는 <점프>의 한경아 대표와 <브러쉬>의 이길준 대표는 이날 자신들의 경험담을 솔직히 들려줬다. 한경아 대표는 “프린지에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극장 선정이다. 많은 극장이 있지만, 자신의 공연과 가장 어울리는 공간을 선택하는 것에서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점프>의 경우 코미디를 많이 하는 어셈블리홀을 선택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돈 문제는 한국 단체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배우 및 스태프의 항공료, 숙박비, 극장 대관료 등 빠듯하게 잡아도 단체마다 한 달간 1억 원 남짓 든다. 2014년부터 프린지에 계속 참여해 온 극단 하땅세의 경우 8명 기준으로 한 달에 약 8,000만 원이 소요됐다고 한다. 지원금 2,000~2,500만 원을 받는다고 해도 여러 단체가 프린지 참가 후 빚더미에 오를 수 있다

한경아 대표는 물론 이길준 대표가 이날 공통으로 언급한 것은 현지 언론의 리뷰를 받는 어려움이었다. 축제 초반 현지 언론에 좋은 리뷰가 실려야 공연 기획자들과 관객들이 찾기 때문이다. 한경아 대표는 “프린지에선 첫째 주에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에 공연을 먼저 보이는 게 필수적이다”면서 “하지만 에든버러에 처음 참가했던 첫해에는 <점프>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언론을 극장까지 오게 만드는 게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첫 주에 스태프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을 오게끔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듬해 <점프>가 두 번째로 프린지에 갔을 때는 이미 전년도에 좋은 평가가 나왔던 만큼 홍보나 마케팅이 수월했다. 어셈블리 극장 앞에 관객이 줄지어 서는 등 매진도 잇따랐다”고 덧붙였다.

프린지 진출을 위한 1:1 컨설팅도 마련되었다. 프린지 진출을 위한 1:1 컨설팅도 마련되었다.

‘에든버러 진출의 허와 실’ 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준영 아이러브스테이지 감독 ‘에든버러 진출의 허와 실’ 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준영 아이러브스테이지 감독

이날 발제자들 가운데 런던에서 공연 제작 및 유통 회사 ‘아이러브스테이지’를 운영하는 김준영 감독은 가장 쓴소리를 남겼다. 10년 넘게 프린지를 꾸준히 다닌 김준영 감독은 “한국 단체들이 꿈에 부풀어 에든버러에 오지만 대부분 빚을 진 채 돌아간다. 무엇보다 프로듀서나 대표가 프린지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준비가 빈약했기 때문이다”면서 “프린지에서는 작품에 맞는 극장을 빌리는 것이 성패를 좌우하는데, 극장을 제대로 모른 채 계약을 해버린다. 또 원래 공연장이 아니었던 곳을 축제 기간에 공연장으로 쓰는 경우가 95%인데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기대했다가 낭패를 겪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첫 주에 현지 언론의 좋은 리뷰가 나오지 않으면 이미 승부는 끝났는데, 한국 단체들은 언론 대응책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지 정서에 맞지 않는 제목이나 자막을 사용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런 한국 단체들 가운데는 관객이 회당 평균 10명도 안 되는 경우, 현지 언론의 리뷰가 별 1개로 최악이 나와 1주 만에 접은 경우도 있었다.

김준영 감독은 “프린지에 참가하려는 단체들은 3월부터 꾸준히 사무국이나 현지 홍보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프린지가 시작된 후 언론이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서도 기억하고 올 수 있다. 이를 위해 프린지에서 성공 사례로 꼽히는 단체 또는 개인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 단체들이 프린지에서 얻으려는 목표가 막연한 것과 함께 투어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프린지에서 리뷰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투어로 연결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막상 공연이 판매될 때 필요한 매뉴얼을 만들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준영 감독은 “프린지에 참가하려는 목표에 대해 먼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작품에 대한 확신이 서면 프린지에 대한 사전조사를 해라. 단 누구에게 편하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단체의 대표나 프로듀서가 직접 프린지를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 장지영
  • 필자소개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미술사 전공)을 졸업했고,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공연예술과 문화예술정책을 담당했으며, 2009년 9월부터 1년간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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