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9살 조카와 경복궁에 갈 기회가 있었다. 9살 꼬맹이에게 고궁은 지루한 곳이다. 따분해 하는 아이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이 있을 것 같아서 몇 개의 앱을 내려받았다.

증강현실이나 게임픽케이션을 구현한 앱을 기대했지만 동영상으로 고궁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앱들뿐이었다. 왜 없을까? 의구심이 들면서 실망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일까? 고궁에서의 아쉬움을 해결하고 싶은 팀을 지난 2월 25일(토)에 만났다.

새로 오픈한 글로벌 코워킹 스페이스인 위워크(WeWork) 을지로지점에 도착했을 때에는 12개의 해커톤 참가팀들이 이미 팀별로 동그랗게 모여서 의견을 한창 나누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후끈거리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코워킹 스페이스 위워크에서 열린 ‘예술 해커톤 : 예술 데이터 편’ 코워킹 스페이스 위워크에서 열린 ‘예술 해커톤 : 예술 데이터 편’
코워킹 스페이스 위워크에서 열린 ‘예술 해커톤 : 예술 데이터 편’

이번 해커톤의 주제는 “예술 해커톤 : 예술 데이터”이다. 1박 2일 동안 참가자들은 공공 및 문화예술 분야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를 발굴하여 상품개발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로 구성된 팀도 있었고 이전 해커톤에서 만난 인연으로 만들어진 팀도 있다.

12개 팀의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필자는 12개 팀 중에 6개 팀을 직접 만나서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멘토링에 참여했다. 어떤 팀은 필자도 신이 나서 팀원들과 함께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기도 했지만, 어떤 팀은 아이디어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막막하기도 했다.

필자가 경험했던 단조로운 고궁 앱의 아쉬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팀이 6개 팀 중에 있었다. 학생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많이 방문하는데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관람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마치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듯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해당 유물과 관련된 게임을 풀면서 자연스럽게 유물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시키는 앱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해커톤 행사 전에 박물관을 방문해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팀원들과 구체적인 게임을 설계하고 있었다.

또 다른 팀은 바쁘고 지쳐있는 사람들을 문화예술로 치료해 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했다. 예를 들어서 우울해 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공연, 워크숍, 전시 등을 추천하는 것이다. 그 외에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국악 음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팀도 있었고, 센서 조명을 활용하고 싶은 팀들도 있었다.

멘토링을 하면서 ‘핵심 타깃은 누구인지?’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 방법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만한 참고 사이트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답을 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져서 제안한 아이디어가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도왔다.

다양한 문화예술 일자리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예술경영 취업 상담 부스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있는 멘토와 참가자들 다양한 문화예술 일자리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예술경영 취업 상담 부스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그림을 만드는 과정

짧은 만남이었지만 도움을 주려고 간 자리에서 오히려 넘치는 에너지의 기운을 역으로 받았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처음엔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은 주말을 온전히 반납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코딩 다빈치’라는 유럽의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EU프로젝트로서 유럽의 오래된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해 CSV 파일, 메타데이터, 3D 샘플링 등 다양한 데이터 포맷으로 공개한 것이다. 공개된 데이터, 콘텐츠를 활용하여 IT기술을 접목시키는 일종의 경진대회였다. 공개된 고흐의 작품을 활용해서 ‘숨은 그림 찾기 앱’이 만들어졌고 중세의 도시 설계도는 게임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잠자고 있던 거대한 유럽의 문화예술은 IT기술과 만나서 새로운 가치가 된 것이다. 창작의 재료가 된 것이다. ‘코딩 다빈치’는 12주 동안에 걸쳐 열렸다. 참가팀들의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완성도 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바로 런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결과물들이 만들어졌다.

‘예술 해커톤 : 예술 데이터 편’ 참가자들
‘예술 해커톤 : 예술 데이터 편’ 참가자들

2016년부터 꾸준히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해커톤을 개최해 왔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1박 2일 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면 더욱더 실질적인 의미 있는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 강현숙
  • 필자소개

    강현숙은 9년 동안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비영리단체인 (사)코드의 이사다. 기술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는 활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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