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문화예술계에 갓 발을 내민 새내기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몇 년 전 필자와 같이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그 막연함과 부딪혔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예비인력에게 이번 ‘2017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에 참가한 신진인력으로서 공연예술계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담아서 알려드리고자 한다.

지난 4월 25일(화) 광화문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 이야기’는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이 예비인력들에게 당부하는 말로 시작했다. 박재천 위원장은 오늘 있을 시간에 문화예술 예비인력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또 앞으로 일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세상은 계속해서 바뀌고 기획자들의 역량과 역할도 분명히 조금씩 변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비인력이 갖춰야 할 것, 아니 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꼭 진실한 기획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모든 기획에 작은 디테일까지 다 살려내어 아주 정교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교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앞으로 여러분이 선택하고, 준비하여 무대 위에 올리는 공연은 여러분만의 미학적인 관점, 그런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예비인력이 참가한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 이야기’ 많은 예비인력이 참가한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 이야기’
많은 예비인력이 참가한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 이야기’

공연예술계 직업이야기로 만난 첫 번째 선배는 마이크임팩트스퀘어의 문화콘텐츠기획자 겸 공간기획자인 이지은 매니저였다. 이지은 매니저는 “가치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을 추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시화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임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일을 하다 보면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떠한 가치를 좇아 일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 따른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거나, 조언을 듣거나, 명사들의 강연을 듣기도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나 스스로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나만의 철학, 가치관을 잡는 것이 앞으로 내가 일을 하면서도, 또 어떤 상황을 직면하더라도 더 빠른 해답을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지은 매니저도 “너의 철학은 뭐야?”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스스로의 철학을 만들어가며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그 일을 통해서 내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나의 목적과 신념이 맞는다면 조금 힘들다 하여도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것이 바로 그 나만의 철학이고, 내가 옳지 않은 선택을 할 때 그것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것도 본인의 신념인 것이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전공과는 무관하다고 언급했다. 오훈식 R&D WORKS 대표를 비롯하여 남윤일 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 김영훈 예술의전당 무대감독까지 예술 쪽 전공이 아니라고 해서 기죽을 필요가 없으며,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일에 대해 생각하고 뛰어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실하게 자기의 일을 해나가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것, 이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예술 분야를 닦아놓은 많은 선배를 찾아가서 두드리면 언제든지 길은 열려있을 거라고 위로와 도전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계명국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사무국장은 본인을 ‘음악 좋아하는 교회오빠’라고 소개하며 직업은 취미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계명국 사무국장은 대학시절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을 치우던 때가 가장 소중하고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말했다. 많은 선배들은 현장에 직접 가보고 일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 역시도 한 번쯤은 공연장에 어셔로, 때로는 축제 스태프로 참여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경험하기 전과 후는 내가 걸어가고 만들어갈 다음 스텝에 많은 도움을 주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특별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부딪혀보는 것을 추천한다.

취업과 관련된 이야기다 보니 여러 진중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결코 무겁지 않았다. 쉬는 시간 없이 다섯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매 순간이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기획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에 하나인 유머러스함을 모두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획자로서 재치와 유머는 꼭 필요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선배와 1:1로 진행된 스피드데이팅 선배와 1:1로 진행된 스피드데이팅 취업성공 꿀팁을 알려주는 신진인력 취업성공 꿀팁을 알려주는 신진인력

필자와 함께 박지은 플랫폼서클, 김다혜 대구문화재단, 이연지 스페이스오뉴월, 그리고 오민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패널로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문화예술계 취업성공 꿀팁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라운드테이블은 예비인력들에게 조금 더 자유롭고 허물없는 정보를 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 생각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신진인력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예비인력을 보니 너무 떨렸다. 신진인력이었던 우리가 가장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쩌면 이 모든 시간이 우리가 성장하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넘어지고 어려움을 겪는 시간들조차도 저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또 문화예술 분야에 새롭게 발을 내미는 예비인력들은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통해서 그런 시간을 축소할 수 있도록, 일종의 애정 가득한 팁을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듣고 전해준 모든 이야기가 정답이 될 수 없고 정답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망치라고 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고 힘들어도 남아있으라고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에 길은 스스로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싸워나가며 성장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응원하고 싶다.

  • 심예송
  • 필자소개

    심예송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컬쳐를 전공했으며,주필리핀 한국문화원을 거쳐 현재 연희컴퍼니 유희와 함께 유희를 즐기며 해외업무에 주력하며 활동하고 있다.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JOB이야기’는 문화예술계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원)생, 취업준비생, 문화예술계 신진인력을 대상으로 한 취업 컨설팅 프로그램이었다. 돌이켜보면 미술 분야의 취업을 고민했을 때 제일 막막했던 상황은 직업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일이었다. 단순히 직무의 나열로 직업을 소개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에 실제 현장과 맞물려서 직업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선배의 경험을 듣는 것이었고, 직업에 대해 모호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보다 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시각예술 분야의 직업정보를 알려준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 시각예술 분야의 직업정보를 알려준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

분야를 막론하고 일을 하다 보면 학업의 필요성을 직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필자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업무와의 연관성도 무시할 순 없지만, 궁극적인 관심사를 학문을 통해 구체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다. 가령, 대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원을 가기도 하지만 뒤늦게 가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필요성을 당장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필자 역시도 같았다. 오히려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머물면서 학업의 지속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는 인맥과 같은 제반을 위한 유학 또는 대학원 진학을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뉴욕에서의 유학생활이 학업의 증대보다는 당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고 말하며, 오히려 현장에서 얻게 되는 인적가치와 여러 요소들이 직무에 대한 다각도의 이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경우 실무 경험이 사기관의 특징인 유연성과 자본의 흐름에 대한 인지의 가능성, 미술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답했다.

보통 전공자는 미술계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편이지만, 비전공자는 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비전공자로서 시각예술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건 현장일 것이다. 그간 만났던 동료 중에 미술 비전공자는 대체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아트프로젝트 렌의 신지현 대표는 케이옥션 중국 지사의 옥셔니스트이자 스페셜리스트였다. 미술 관련 전공이 아니었지만, 일반 기업체에 근무하던 중 갤러리와의 협업이 계기가 되어 미술계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미술시장이 활발히 요동치는 현지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현장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갤러리현대 중국 지사의 기반을 닦는 시기에 참여하게 된 당시의 경험에 대해 그는 비전공자로서 미술과 전시기획을 직접 체감할 수 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의 직업 선택을 하다 보면 영리와 비영리 기관 사이에서 고민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기본적으로 안정된 직업환경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아 택일하기도 하지만, 환경과 직무에 대한 이해는 별개일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겪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영리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는 프랑스에서 박사 수료 중 당시 개관을 앞둔 백남준아트센터의 인턴으로 참여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기관의 행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이후 인천아트플랫폼의 개관준비팀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문화정책과 지원제도, 타기관과의 관계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비영리기관과는 반대인 기획사에서도 근무했는데 상반되는 두 기관에서의 근무를 통해 사기관과 공기관의 차이를 재단운용의 유연성 유무로 꼽았다.

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 신지현 아트프로젝트렌 대표 박경린 독립큐레이터
이영리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양지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
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 신지현 아트프로젝트렌 대표, 박경린 독립큐레이터, 이영리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양지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

국제교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활동 가능한 물리적인 면적도 광범위해지고 있다. 양지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는 기획자로서 대안공간 루프에서의 2년을 마치고, 네덜란드 데아펠 큐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의 경험이 유럽의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의 상이한 구조를 체감하게 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또한, 데아펠의 경험을 국제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료와 교류하고, 동시대 큐레이터의 직무와 정체성을 탐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은 또 다른 환경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인 박경린 기획자는 대학생이었던 시기에 겪게 되는 특수한 시대적 분위기와 통찰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또한, 실무경험을 막론하고 기획자이자 비평가로서 끊임없는 자기고민의 필요성과 우리 시대의 미학적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방법론에 대한 훈련의 필요성을 말했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로 대학원 입학과 학문에 대한 자기고민이 중요함을 밝혔는데, 이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박경린 기획자의 이야기는 참여자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고민이 많을수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분명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면서 기획을 포함해 미술계에서 일하는 데에 자기 생각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선배 5명의 이야기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 만큼 깊이 있는 얘기를 다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경력을 중심으로 각자의 직업군을 소개하는 것은 참여자들에게 시각예술계에서의 현실적인 직무환경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선배와의 1:1 질의응답과 진로상담 프로그램인 ‘선배와의 스피드데이팅’이 좀 더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미술계의 ‘신진 인력’으로 참여했지만, 이 타이틀이 이름 앞에 놓일 거라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미술계에 있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도 갈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정하고 난 뒤에는 이곳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이 질문은 나를 꽤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갓 지난 지금 서류상으로는 경력이 여러 줄 채워졌지만, 여전히 실감은 없다. 단지 한 해 동안 일한 목록으로 다가올 뿐이다. 시간을 되짚어 보면서 내 위치와 앞으로 무엇을 목전에 두고 가야 할 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일 년은 현장에 적응하는 시기였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학교에 맞춰져 있던 감각들을 하나둘 현장으로 옮겨왔다. 곧장 대학원으로 가지 않고 일로 뛰어든 계기는 미술계 안에서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고 그런 의미에서 실무 경험이 당시 나에겐 우선순위였다. 이번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일을 하는 동안 잊고 있던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학교 졸업을 마침표로 두고 다시 새로운 시작점을 찍은 상태지만, 지금의 나는 앞으로 미술계의 어떤 곳을 바라보고 가게 될지 혹은 얼마큼 나아가게 될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지 여전히 막연하다. 그럼에도 5명의 선배들과 주위의 선배들도 나와 같은 비슷한 시기를 거쳤을 거로 생각한다면 지금의 막막함이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함께 프로그램을 참여한 사람들과 주위의 동료들에게도 이 시기가 불분명한 두려움만으로 남지 않고 유의미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 이연지
  • 필자소개

    이연지는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큐레이터학을 공부했다. 미술생태계의 회복을 위한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스페이스 오뉴월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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