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여러 가지 장르의 예술, 다양한 혼종의 예술을 꽃피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 의미를 찾을만한 것을 꼽자면 역시 퍼포먼스 아트가 아닐까 싶다. 사전을 참조하면 퍼포먼스는 "회화·조각 등이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신체를 이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내는"(두산백과, '퍼포먼스·행위예술') 것이라 설명된다. 여기서 핵심은 '신체'와 '시간'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지난 100년의 시간 동안 철학이 내놓은 현대성에 관한 나름의 요약이기도 하다. 즉, 퍼포먼스는 우리를 지배해 온 존재론에 대해 인식론적인 반격을 수행하는 예술이다. 베트남 전쟁이 촉발한 전지구적 시위의 현장에서, 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1968년 5월 유럽에서, 체제의 부조리에 맞서 세상을 바꾸려는 열기는 몸짓을 통해 정치적으로 발화했다. 이른바, '되기' 위한 신체들. 퍼포먼스는 시민주체가 현대의 역사를 수행하는 방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꼭 전문적인 예술가의 작업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집회 현장에 어김없이 '퍼포먼스'가 등장하는 데엔 이러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면, 그럼에도 퍼포먼스는 어렵고 난해한 예술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생각이 비단 우리들만의 것은 아니어서, 퍼포먼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요셉 보이스, 백남준, 존 케이지 같은 거장들 역시 '전위적'이라는 모호한 찬사에 직면하곤 했다. 물론 이들에 대한 다수의 평가는 전통으로부터의 생경함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반대로 퍼포먼스가 아직 낯선 무언가로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이를 제대로 접하고 감상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퍼포먼스는 많은 예술의 장르들 틈에서 소수적인 입장에 놓여 있고, 여전히 스스로를 둘러싼 선입견, 그리고 몰이해와 싸우는 중이다. 동시대의 서울이 배경이 된다면 특히 더 그렇다. 퍼포먼스가 공연되는 플랫폼을 단순히 양적으로 산술할 때 '신체'와 '시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연장이 미국에는 최소 200여 곳, 영국에는 100여 곳이 자리한 반면, 한국에서는 그나마 서울을 중심으로 1-2곳이 손에 꼽힐 정도다. 인접한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일본에는 30여 곳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작은 씬을 가진 대만에선 5-6곳 내외의 공간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퍼포먼스를 수행할 예술가나 유관 전문가에 비해 이를 관객에게 소개하고 씬의 저변을 넓혀갈 플랫폼이 우리에게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물론 퍼포먼스는 어디서든 선보여질 수 있지만, 현대미술의 규칙 위에서 이것을 제대로 감상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제법 까다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기록과 보존, 언어적 재현이 어려운 현장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연희동에서 열린 <퍼폼 플레이스> 사전오픈 행사 지난 5월 연희동에서 열린 <퍼폼 플레이스> 사전오픈 행사
지난 5월 연희동에서 열린 <퍼폼 플레이스> 사전오픈 행사

'라이브 아트 플랫폼'으로서 퍼폼 플레이스는 이런 당위 속에 생겨났다. 좁은 의미에서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영상작업과 같은 비물질 시각예술 전반을 다룰 예정이다. 퍼폼 플레이스가 들어선 연희동 353-77(연희로 52-6)은 젊은 예술소비자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연남동·동진시장과 길 하나를 맞댄 꽤 괜찮은 입지조건을 가졌다. 입구로 들어서 계단 몇 개를 내려가면 발권과 대기가 가능한 작은 라운지가 있다. 다시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해 맞닥뜨리는 공연 공간은 동선에 구애받지 않고 퍼포머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수행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프로젝터와 음향시설이 설치된 벽을 지나, 플라스틱 팔레트를 개조해 만든 좌석은 50여 명의 관객을 넉넉히 수용한다. 사방이 검게 칠해진 벽이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나는 이것을 '화이트큐브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무언의 선언으로 이해했다.

사실 미술계의 동향에 밝은 사람이라면 퍼폼 플레이스의 시작점이라고 할만한 «퍼폼 2016»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퍼폼 2016»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사업을 통해 작년 12월 진행된 프로젝트로, 비물질 시각예술 작품들이 거래되는 메타-마켓을 표방해 이목을 끌었다. 이 행사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비물질 예술의 교환가치에 대해 무척 근본적인 질문을 환기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회화는 사거나 파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고, 구매 후에도 큰 고민 없이 벽에 걸 수 있다. 조각이나 설치, 기타 오브제 역시 부피와 질량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물리적 문제들을 해결한다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출품된 작업이 영상이라면, 혹은 움직임이나 행위 그 자체라면 어떨까? 『2016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회화(서양화)는 국내 아트페어 판매작품의 장르별 집계에서 무려 71%의 비율을 차지했다. 이 목록에서 비물질 시각예술은 '기타' 항목에조차 포함되지 못했는데, 현대미술에서 비물질 작업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가고 있음에도 이를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이 교환가치를 계량할 수 있기는 한지, 의미 있는 상상력이 부재한 것이 지금의 당면한 현실이다. «퍼폼 2016»의 실험이 퍼폼 플레이스로 이어지는 과정에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소가 연결고리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기대를 가지게 한다.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다원을 망라한 그간의 퍼포먼스 플랫폼들은 예외 없이 축제의 형태로 기획되어 왔다.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제반 여건 속의 타협점이었겠지만, 다음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분명 상설 물리 공간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통해 수익모델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성공으로서든 실패로서든 구체적인 경험을 누적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개최한 퍼포먼스 아트마켓 <퍼폼2016>사 지난해 개최한 퍼포먼스 아트마켓 <퍼폼2016>
지난해 개최한 퍼포먼스 아트마켓 <퍼폼2016>

지난 5월 13일, 퍼폼 플레이스는 «퍼폼 2016» 참여작가들과 몇몇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전오픈 행사를 진행했다. '라이브 아트 플랫폼'답게 흥미로운 영상으로 공간과 프로젝트를 소개받고, 코딩 중인 홈페이지 화면을 프로젝션하며 운영에 관한 피드백을 나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는 하반기부터는 뉴욕의 '더 키친', 요코하마의 'TPAM' 등을 레퍼런스로 다양한 비물질 예술의 기획, 공연(상연), 오픈콜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내부 펀딩을 주제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장기적으로는 이런 시스템이 제작과 유통(배급)이라는 문제에 있어 보다 미술에 적합한 대안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이날 퍼폼 플레이스는 행사에 초대된 이들에게 공간을 무료로 빌려주는 일일 이용권을 1인 1매씩 카드 형태로 증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심지어 공짜로) 빌릴 수 있다니, 게다가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니,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하루라는 정해진 시간 안에 현장성을 가진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기획자들과 작가들 사이에선 이 카드를 어떻게 쓸 수 있을지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오갔다. 몇 가지 괜찮은 아이디어가 유닛이 되어 뭉치는(이 이용권은 양도가 불가능하다) 이상한 현장을 목격하며, 분명 선물을 받았는데 왠지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찜찜한 뒷맛을 느꼈다. 퍼폼 플레이스에서, 이미 우리는 어떤 종류의 퍼폼을 선보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 심예송
  • 필자소개

    윤율리는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비평적 텍스트와 기획을 생산하는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아카이브 봄을 통해 젊은 미술작가들의 전시를 제작해 왔으며, 현재 한성대학교 대학원에 출강 중이다. 미디어버스에서 『메타유니버스: 2000년대 한국 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2015, 공저)를 펴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