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아방가르드를 집중 조명하는 국제 세미나 ‘아시아 아방가르드: 그 이념과 실천’(Asian Avant-Garde and Its Practice)이 홍콩 아시아소사이어티(Asia Society)에서 5월 26일(금) 열렸다. 동북아시아 내 서로 다른 지역과 시기의 전위예술을 한데 펼쳐놓은 이 세미나는, 한국의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주홍콩대한민국영사관이 공동 주관하고, 아시아소사이어티와 아시아 위크 홍콩(Asia Week Hong Kong)이 협력기관으로 참여했다.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 정도련 홍콩 M+ 미술관 부관장, 토시오 쉬미즈 가쿠슈인대 교수,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문영민 미국 매사추세츠-엠허스트대 교수, 필립 티나리 베이징 UCCA 미술관 관장, 리우 딩 중국 큐레이터 및 작가가 이 진지한 학술행사를 위해 각국에서 모인 참여자들이다. 이날 뜨겁게 달궈진 논의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아시아 위크 홍콩 및 크리스티 20세기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가 열리는 홍콩 미술 주간의 하이라이트로서, 홍콩의 미술계 종사자를 비롯한 140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세미나 1부 ‘한국과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의 모더레이터이자, 이 세미나를 조직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맡은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화두를 다음과 같이 던졌다. 아시아 아방가르드는 미술사적 영역을 넘어 ‘정치적, 문화적 영역에서 비평적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이용우 관장은 아방가르드의 출현을 가능케한 아시아의 정치적, 문화적 토양을 면밀히 살필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는, 아시아 미술이 처한 서구 모더니즘과의 불가피한 영향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아방가르드를 온전한 ‘자주적 미술 운동’으로 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인지 1부 ‘한국과 일본의 아방가르드’와 2부 ‘한국과 중국의 폴리티컬 아트’로 이루어진 세미나 내내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공유되었다. 종전과 천안문 사태 등 각국의 역사적 분기점이 되는 연도들은 끊임없이 발제자들의 입에 올랐고, 서구와의 영향 관계를 살피기 위한 동-서 비교 및 사실 확인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주지하다시피 전후의 아시아 아방가르드는 당사자인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서구의 주류 미술관을 통해서도 중요하게 연구되고 전시되어 온 주제다. 아주 가까운 예로는 2016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열린 한·중·일 아방가르드 특별전과 세미나, 2015년 소더비의 <아방가르드 아시아> 전을 떠올릴 수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의 뉴욕현대미술관의 <도쿄 1955-1970> 전 및 2013년 구겐하임미술관의 <구타이> 전, 맥락을 더 확장시켜 보자면 일본 1960년대 실험미술 운동인 모노하와 함께 거론되는 한국 이우환 작가의 2011년 구겐하임미술관 개인전, 영국 테이트모던의 <퍼포먼스 이후의 회화> 전에 참여한 60년대 한국 실험미술 운동의 리더 김구림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세미나 1부의 주제는 ‘한국과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로,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이 모더레이터를 맡고, 정연심 홍익대 교수와 토시오 쉬미즈 가쿠슈인대 교수의 발제, 정도련 M+ 부관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1부의 두 발제는 10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 일본과 한국, 두 국가의 실험미술 운동 그룹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1960~70년대 한국 실험 작가들의 소그룹 운동, 그리고 전후 1950~70년대 일본의 전위 예술을 다뤘다.

한국의 정연심 교수는, 전후 한국에서 앵포르멜과 단색화로 대표되는 추상미술이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던 시기, 이와는 전혀 다른 ‘안티 추상’의 형식적 실험을 행한 젊은 세대 미술 그룹을 소개했다. 오리진, ST그룹, AG 그룹 등 이들 소그룹은 산업화로 변화하는 도시환경을 작품에 반영하거나, 1960년 4·19 혁명을 경험한 세대로서 갖는 암울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식, 또한 부패한 미술계에 대한 저항의식 등을 해프닝, 신체미술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했다.

뒤이어 토시오 쉬미즈 일본 가쿠슈인대 교수가 스카이프를 통해 전후의 일본 실험미술을 개괄했다. 서구와의 동시적 교류 속에서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이 사조의 전개에 있어, 1955년 구타이 저널이 처음 발행되고, 구타이 그룹의 중심 작가 요시하라 지로가 ‘기존하는 미술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과거 형식주의 미술을 벗어난 행위와 오브제를 선보였다. 발제의 후반부에서 토시오 쉬미즈는 전후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떻게 이 미술 운동의 배경이 되었는지 언급했다. ‘비교적 간섭받지 않고 발전해 온’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2차 대전 패전으로 일대의 역사적 변곡점을 겪고, 이 전후의 혼란은 대대적인 실험미술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토시오 쉬미즈는 그 에너지의 출처가 죽음과 전쟁의 실상을 경험한 일본 젊은 세대의 회의, 즉 ‘부모 세대와의 결별’이라고 언급했다.

1부가 해프닝, 바디아트 등 기성 미술 형식을 파괴하는 전위예술을 다뤘다면, 2부의 주제는 그 내용에서 사회 비판 등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미술로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 1990년대 중국의 냉소적 리얼리즘에 대해 논의했다.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의 진행으로, 문영민 미국 매사추세츠-엠허스트대 교수, 필립 티나리 UCCA 관장의 발제와 리우 딩 큐레이터의 패널 참여로 진행되었다.

세미나의 2부는 한국의 민중미술과 중국의 냉소적 리얼리즘 모두 내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출발한 리얼리즘이라는 공통점 아래에서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 미술을 나란히 두고 사고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의 민중미술은 근래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단색화에 대응하는 또 다른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심 줄기로서 국내 유수의 갤러리와 아트페어를 통해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이다.

2부의 첫 발제를 맡은 문영민 교수는 회화뿐 아니라 걸개그림과 판화 등을 통해, 분단된 민중과 농촌의 현실을 담은 리얼리즘 미술 사조인 한국의 민중미술을 소개했다. 외세와 자본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을 철저히 배격하고 민족 고유의 표현을 찾고자한 민중미술은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를 비롯한 비판적 현실인식을 작품에 담았다. 문영민 교수는 오윤, 두렁, 신학철 등 민중미술의 주요 작가들의 계보를 설명하였다. 또한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급격한 도시환경 개발, 이주노동 등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조명하는 플라잉시티, 믹스라이스, 박찬경 등 보다 근래의 작가들의 사례도 함께 다뤘다.

‘중국 미술이 몰려 온다’는 문구와 함께 1993년 뉴욕 타임스 표지를 장식한 팡 리준의 그림으로 시작한 필립 티나리 관장의 발제는 1993 베를린에서 열린 <중국 아방가르드> 전, 같은 해 홍콩에서 열린 < China’s New Art, Post 1989 > 전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 기념비적인 두 전시는 해당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이후 전개된 중국의 냉소적 리얼리즘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폴리티컬 팝’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현대미술은 다양한 언어로 서구권에 소개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 세계 미술시장 1위의 중국 미술 열풍을 이끌었다.

세미나에서 살펴본 아시아에서 펼쳐졌던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은 아시아 전체 혹은 각국의 정치 문화적 정세 속에서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아방가르드와 중국의 냉소적 리얼리즘은 세미나를 찾은 관객들에게 어쩌면 보다 더 익숙한 것이고, 또 한국의 아방가르드와 민중미술은 비교적 새로운 정보였을 수도 있다. 이번 세미나가 아방가르드라는 급진적으로 창의적인 미술운동에 대해 논의하는 데 있어 각 나라의 사례를 한데 모아 그 관계를 살피고, 또 각각을 세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아시아 아방가르드에 또 다른 ‘맥락’을 부여하는 하나의 기회가 되었으리라고 본다.

  • 김수영
  • 필자소개

    김수영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지원팀에서 한국미술 글로벌 플랫폼 '더아트로'(www.theartro.kr)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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