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싯그룹(Tacit Group)은 21세기 새로운 예술을 만든다는 비전 아래 결성된 미디어아트 공연 그룹이다. 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서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멀티미디어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알고리즘 아트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태싯그룹은 2000년대 초 국내에 생경했던 사운드 아트 및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소리를 시각 이미지로 구현하다

LOSS(Life of Sounds)의 공연 무대.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이질적인 사운드가 연주되고 화면에서 붉은 색의 선들이 DNA 생명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리를 시각 이미지로 구현하는 새로운 예술이 펼쳐진다. 연주자의 즉흥적인 판단에 따라 컴퓨터로 연주되는 음악의 선율과 박자가 달라지고 소리와 반응하는 이미지들은 화면으로 투영된다.

태싯그룹은 컴퓨터 코딩을 통해 시스템을 만들고, 무대 위에서 그 시스템을 통해 즉흥적인 공연을 선보인다. 소리가 생산되는 시스템과 알고리즘을 만드는 그 자체에 주력하기 때문에 연주자들도 어떤 소리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태싯의 음악은 귀로 듣는 통상적인 즐거움을 향유하는 음악이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해 만들어진 청각과 시각의 소스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이 열린다.

‘태싯(Tacit)’은 침묵이라는 뜻으로 존 케이지(John Cage)의 작품 ‘4분 33초’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이름이다. 존 케이지는 미국의 작곡가로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한 ‘4분 33초’라는 곡으로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우연성과 불확실성은 작곡 기법의 하나로 널리 채용되었다. 프로그래밍을 통한 음악은 연주자도 예상할 수 없는 우연성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진원과 장재호는 예술과 기술,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러한 서로 다른 부분의 경계의 모호함을 실험하는 작업을 각자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작업이 이해하기 어려운 실험에서 끝나지 않고 관객들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 보자는 뜻에서 그룹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음악적 기반은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대학원생이었고, 한 사람은 그 과의 교수였다. 이진원은 미국에서 귀국 후, 가재발이라는 이름의 테크노 뮤지션으로 데뷔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영국 테크노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장재호는 대학에서 클래식 위주의 작곡을 전공했다.

UP: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고 태싯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진원: 친구들에게 녹음테이프 만들어 주다 시작했어요. 음악은 아주 체계적(systematic)이에요.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의 대부분이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구요. 대학 시절 녹음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는데 녹음, 프로덕션, 프로듀싱부터 CD 제작까지 전 과정을 섭렵했던 것은 지금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마 미술을 전공했다면 이런 작업은 못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장재호: 어렸을 때의 꿈은 원래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쇼팽의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 작곡과에 입학했어요. 지금 하는 분야가 클래식과는 다르지만 전공을 통해 음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식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음악과 공학에 둘 다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음악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방법을 바꾸면 다른 음악이 나온다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던 다빈치에게 컴퓨터가 주어졌고, 그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었다면 이랬을까? 태싯에게 컴퓨터는 음악을 해석하는 새로운 도구이자 무한한 가능성이다. 기존의 작곡가들이 완성된 결과물을 생각하면서 작곡을 했다면, 태싯그룹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환경에 주목한다. 즉흥 자체를 통해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업을 해 나가는 것이 태싯그룹의 방식이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한 알고리즘 아트로 불리지만 알고리즘은 태싯그룹이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실제로 멀티미디어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까지 표현 영역의 제한은 없다.

2008년 결성 후 공연장, 미술관, 건축물 등 다양한 장소에서 작품을 발표해 오며 음악계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2009년 여름 두산아트센터에서의 단독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미디어아트 공연계에 독창적인 그룹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2010년에는 팸스 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되고, 2011년 덴마크의 45년 역사를 가진 오르후스 페스티벌(Aarhus Festuge)에 초대되어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 겨울에는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MCA)과 뉴욕 링컨센터 등을 포함한 미국 투어를 성공리에 마쳤다.

UP: 국내외 다양한 공연 이력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의미가 있었던 공연은 어떤 것인가요? 2012년 시카고 현대미술관(MCA Chicago)과 뉴욕 링컨센터에서의 공연입니다. 2010년 만났던 미국의 한 아트 디렉터가 우리 작품을 기억해 두었다가 초청을 했고, 이 공연은 우리 작품이 해외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는 과거 존 케이지의 음향 엔지니어로 일했던 사람이 우리 공연의 음향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UP: 연주자가 없는 공연으로 큰 관심을 모은 <LOSS>는 소리를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로 설정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주로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시는지요? 작년 ‘tacit.perform[5]’ 공연 때 ‘Gesture & Texture’라는 사운드만 있는 작품을 공연했어요. 말 그대로 스태틱(static)한 소리에 제스처와 텍스처를 실시간으로 부여해서 다이내믹한 퍼포먼스를 한 거죠. 저희는 소리의 움직임에 항상 집중합니다. 소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감동을 주는지, 멋있게 들리는지 등을 연구하죠. 저희의 이러한 소리를 대하는 태도가 ‘소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스스로 소리를 만들게 하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나오게 만들었죠.

하다 보면 없던 길도 생긴다

이들은 태싯이라는 이름의 기원처럼 20세기에 이루어졌던 예술의 혁신성을 본받고 있으나, 예술이 혁신과 실험에서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의 작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재료들로부터 예술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 창조의 가치와 대중적 재미를 함께 추구한다.

UP: 소리와 영상을 통해 공존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등장하는데요. 관객들이 태싯의 음악을 받아들이길 바라나요 아직 관객들은 즐겁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태싯의 음악은 기존의 방식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태싯그룹의 작업은 주로 결과에 초점을 두는 기존의 예술 작품들과 달리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이것은 미니멀리즘과 알고리즘 아트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창작 방식입니다. 태싯그룹은 시스템을 만들고,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그 시스템을 사용하여 즉흥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영상은 화려하고 미적인 뭔가를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태싯그룹이 만든 시스템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공감케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관객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최종 결과를 그냥 즐기기를 원합니다.

태싯그룹이 탄생한 지 벌써 10년이다. “코딩하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라 힘들 때도 있어요.” 이진원은 보다 완벽한 곡을 위해서 전날까지 코딩을 한다고 말한다. ‘4분 33초’의 연주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을 위해, 더 깊게 공부하고, 더 치밀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예술가의 삶은 상당히 고단합니다.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깊이가 없으면 금방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훈련과 공부를 해야 합니다. 유행을 좇지 말고 자기 안의 예술적 본능을 좇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에 원래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21세기의 예술은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본인이 즐길 수 있는 길을 가기 바랍니다.

태싯그룹 프로필(가나다 순) ① 이진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음악테크놀로지과

② 장재호
- 서울대학교 작곡과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로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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