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을 전공했다. 그러나 학교 다닐 때부터 가야금 연주보다 공연을 보고 사람들을 무대에 세우는 게 더 즐거웠다. 박봉의 월급을 받아도 공연을 보는 데 모두 쏟아부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30대 초반 창업을 했다. 6년 차 플레이온컴퍼니에는 6년을 함께 보낸 직원이 있다. 직원들이 떠나지 않는 회사의 대표, 클라이언트가 함께 일하고 싶은 문화기획자, 사진전시회를 여는 사진작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정세화 대표를 만났다.

함께 있는 사람도 덩달아 즐겁게 만드는 정세화 대표

무대 뒤가 더 즐거운, 가야금을 잘 튕기는 아이

창덕궁의 지붕 기와가 내려다보이는 북촌에 위치한 플레이온컴퍼니 사무실. 5층 건물의 계단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발 매트는 아침에 털어 놓아 말끔하다. 정성 어린 손길이 다녀간 계단은 남달랐다. 플레이온컴퍼니의 미팅용 테이블 위에는 생수 한 잔과 박카스 한 병, 바구니에 다소곳이 담긴 과자와 정세화 대표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달력이 선물로 놓여 있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세심한 것들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정세화 대표는 국악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 악장을 할 정도로 연주실력이 뛰어났지만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공연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본인은 무대 공포증이라 우기지만, 판을 만들고 사람들을 올리는 기획자로서의 자질은, 가야금을 전공하던 때부터 발휘되고 있었다.

UP: 가야금을 전공하다 공연기획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정세화: 무대 뒤의 떨림이 더 짜릿하다고 할까요? 국악계의 선생님들 따라다니며 대기실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어요. 무대 뒤에서 지켜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만들었을 텐데’, ‘관객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무대 뒤에서 훔쳐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죠. 함께 하는 스태프들이 좋아서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UP: 공연기획에 빠져들게 된 다른 계기가 있었나요 정세화: 고등학교 2학년 때 ‘타악그룹 푸리’의 민영치 선생에게 장구를 배웠는데, 당시 푸리의 공연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국악공연에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아이돌이었죠. ‘아… 우리 국악도 저리 될 수 있구나.’ 이후에 푸리 팬클럽 활동을 자처했어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으로 전화를 모두 돌려서 공연 티켓을 구매할 건지 일일이 물어보면서 티켓 예매를 받았어요. 130만 원어치를 판매한 것 같아요. 당시 티켓 가격이 일반은 삼만 원, 학생이 만 오천 원이었으니 열정이 대단했죠.

푸리에 대한 관심은 슬기둥, 김용우, 양방언 등의 아티스트로 이어져 공연을 보러 전국을 다녔고, 심지어 일본까지 따라가서 공연을 보고 왔다. 한예종의 1학년 때부터 공연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야금을 연주해서 알바비를 받으면 그 돈으로 무조건 공연을 봤다. 그 시절 봤던 수백편의 공연은 문화기획자로 살아가는 현재를 만든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프로젝트로 그간 쌓은 경험을 융·복합 예술 프로젝트로 풀어내고 있다.

짠 내 나는 시절, 밑바닥을 다져라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처음으로 공연기획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소리꾼 김용우의 ‘모개비’ 음반 출시 기념 콘서트였다. 두 달을 매일 출근하고 50만 원을 받았는데 초보 아르바이트생에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었다. 그러나 가야금 레슨을 하면 한 시간에 5만 원, 한 달에 8번만 레슨을 해도 40만 원의 돈이 주어지는데 산술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꾸준히 공연을 보러다니자 ‘공연장에만 가면 나타나는 학생’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공연기획자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연주자가 아닌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은 커져갔다. 졸업 후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는 ‘자라섬 페스티벌’의 수장인 인재진 대표가 만든 회사였다.

이제는 책상에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는 베테랑 기획자이지만, 막내로 불리며 짠 내 나게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넌 뭐 믿고 그리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용감했고,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음악과 공연에 미친 나날이었다. 계산하지 않았고, 순진했고 순수했다.

UP: 국악을 전공하고 재즈기획사에 취직했는데 회사생활은 어땠나요 정세화: 재즈공연을 주로 하는 회사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어요. 졸업 전인 1월에 취직을 했는데 3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공연을 앞두고 있었어요. 핀란드 재즈밴드 ‘트리오 토이킷’의 공연이었는데, 국악을 전공했으니 재즈는 전혀 모르면서 24살의 나이에 의욕만 앞섰어요. 이후 작은 조직의 막내로 일하게 됐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A~Z까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할 수밖에 없었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몰라서 용감했기에 닥치는 대로 다했던 것 같아요.

UP: 전공인 국악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도 진행했나요 정세화: 국악은 제 전공이니 인생에서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주제죠. 프리랜서로 푸리, 사계, 김용우 등 국악 뮤지션의 매니저를 병행했어요. 재즈, 락, 월드뮤직 등 동서양의 음악을 넘나들며 지평을 넓히고, 국악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게 되었어요.

플레이온- 즐거움이 열리는 문화기획사를 창업하다

회사의 대표가 개인사업자를 내고 프로젝트를 운영하라고 제안했다. 그때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사장이나 대표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미 일은 시작됐고, ‘한번 더 해 보면 잘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정세화 대표가 촬영한 사진과 캘리그래피 “까짓 한 번 인생 잘 놀다 가요, 우리”

플레이온컴퍼니! 이름처럼 즐겁게,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 사업의 모토다. 2011년에는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고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기획운영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반짝궁콘서트, 한화예술더하기,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문화예술 명예교사사업(특별한 하루) 등 문화를 재미있게 소화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사의 직원들은 6년째 함께 일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한번 오면 떠나지 않는다. 작은 회사이지만 클라이언트가 계속 찾는, 문화기획 분야에서는 인정받는 회사다.

문화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플레이온컴퍼니

UP: 예술 전공자로서 비즈니스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정세화: 대학졸업 때까지 연주자였기에 조금은 아티스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전공자이기에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것만큼 훌륭한 건 없어요. 내 전공이 아무리 싫어서 그만뒀다 하더라도 내 삶에 있어서 전공만큼 잘 아는 것도 없잖아요. 한때는 국악바닥이라는 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지금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가장 많이 아는 것도 국악이에요. 후배들도 절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몸 속에 남아있고, 그 걸로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정세화 대표의 취미는 사진 촬영이다. 전시회를 두 번이나 했으니 아마추어는 아니다. 달력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새벽 3시까지 일하면서 열심히 벌어서 전시회하고 달력 만드는 데 다 쓴다고 웃었다.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기록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UP: 사진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세화: 사진이 좋아서 개인전 두 번과 단체전을 한번 했어요. 공연의 현장에서 근 20년 가까이 살았잖아요. 그런데 좋은 공연들이 일회성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된 땀방울, 밤새우고 나서 지친 모습, 연습할 때의 치열함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었어요. 공연은 사라졌지만, 10년이 지나서 보면, ‘아 이렇게 멋진 공연이 있었지’ 하고 기억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도 남들을 위해서도, 기록의 중요성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은 정세화 대표가 사람과 공연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방법이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이고, 따뜻한 조언자이니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이 건물도 친구의 소개로 들어왔다. ‘임대료를 낼 수 있을까’ 망설였는데, 사무실을 보는 순간 “여기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들었고, 창밖의 창덕궁을 내다보며 “궁에서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다”라고 소원했더니, 첫 일이 창덕궁에서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행복한 회사, 플레이온컴퍼니

먼지 한톨 없는 건물의 계단은 아침마다 건물주가 쓸고 닦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 ‘유유상종+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것은 같은 것을 끌어당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인생의 70%를 지배하는 운은, 일과 사람을 통해서 나온다. 사람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매순간 맡겨진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감동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

정세화 대표가 걸어가는 인생의 매 순간마다 치열해서 아름다운 시나위 한판이 벌어진다. 완벽을 향해 숨은 1도까지 찾아내려는 그녀의 삶은 언제나 99도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중고등학교 때는 국악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팝송이 나쁜 음악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 이 세상에 멋진 음악이 많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요.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판단할 능력이 생겨요. 예술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면 그 일이 멋지기만 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해요. 현장은 살벌한 곳입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어요. 너무 잡다하게 많이 아는 것은, 오히려 독이에요. 경험 없는 지식만 쌓여 실제로 일했을 경우 알고 있는 상황과 다를 때 대처능력이 떨어지니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세요.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세화 대표 이력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졸업(음악과_가야금 전공)
- 前 백제예술대학교 매니지먼트학과 겸임교수
- (주)감자꽃스튜디오 문화예술교육 기획실장
- (주)엔돌프뮤직(양방언 기획사) 기획팀장
- (주)인더가든(재즈&락 기획사) 기획팀장

멘토링 - 2016 청년 문화창조융합 프로젝터 퍼실리테이터(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주최)
- 2014 소소한 상상 소소한 변화 아이디어 공모전(서울문화재단 주최)
- 2014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화 ‘위키 서울’ (서울시 주최)

프로젝트 - 2016 문화순회 도서산간 <신나는 예술여행>
- 2015~2016 반짝궁콘서트
- 2015~2016 한화예술더하기
- 2014 궁중문화축전시범사업/ 한양도성문화제
- 2013~2015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 2013~ 2015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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