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플레이는 장애인을 위한 필기 보조 기구를 3D 프린트로 만드는 회사다. 채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어떤 누구도 뛰어들지 않았던 분야다. 그러나 조각 전공자로서의 디자인 능력과 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이준상 대표의 발을 낯선 분야로 내딛게 만들었다. 회사의 신사업으로 VR 콘텐츠(Virtual Reality)도 제작하고 있는데, 아직은 태동기인 사업 분야에 뛰어들어 쉬운 게임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차근차근 넓혀 가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힌 그립플레이의 사무실 벽면, 그리고 이준상 대표

발로 뛰는 예술, 조각에서 배운 문제해결능력

이준상 대표의 이력은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다. 외길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시절에는 조각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에서 공연을 만들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검찰청 검찰방송국에 입사하여 제작 PD로 3년을 일했다. 지금은 그립플레이의 대표가 되어 장애인용 필기구를 맞춤 제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순간의 선택들이 진로를 바꿨다고 하더라도,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조각’이라고 단언한다.

UP: 조각의 어떤 점이 좋아서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나요 이준상: 어려서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평생 제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재능의 유무를 떠나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조각을 선택했어요. 아주 사소한 선택이었지만 제 인생을 바꿨고 공부해보니 미술의 여러 장르 중에 조각이 제 성향과 가장 맞았어요. 조각을 발로 뛰는 스포츠에 비유하거든요. 평면으로 스케치했던 작품을 입체로 만들 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기는데 계속 수정, 보완해가면서 두려워도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조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었기에 3D프린트 회사도 차릴 수 있었죠.

지금이야 능숙한 솜씨로 컴퓨터를 다루지만, 군대 가기 전에는 초등학생도 한다는 한글 프로그램도 다룰 줄 몰랐다. 예술가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그게 예술가의 삶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군대에서 어찌하다 컴퓨터를 할 줄 안다고 둘러댔는데 거짓말이 안 되게 하려고 자판을 하나하나 눌러가면서 한글프로그램과 포토샵을 마스터해 버렸다.

“아, 기술이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된 이후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립플레이를 창업하기 전에는 유투브에 나오는 영상들을 보면서 3D모델링 프로그램인 Cinema4D, 3D MAX, 123D 등을 마스터했다. 학원을 한두 달 다닌 적은 있지만 인터넷만 서치해도 유용한 자료가 넘쳐나니 독학으로 심화학습했다. 대학교 졸업할 때만 해도 기획서 한 장 쓰지 못했던 사람치고는 장족의 발전이다.

마당 한편에 놓인 3D 프린트

UP: 예술 전공자들이 기술을 배우는데 어려워할까요 이준상: 예술가는 IT기술을 배우는 데 소극적이고 겁을 먹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조각에 3D프린팅을 결합하면 아이디어를 모델링하는 작업이 편리해져서 공정이 1/3으로 줄어들어요. IT기술은 예술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인 것 같아요.

UP: 전공에서 벗어나 PD, 연극인, 벤처회사 CEO 등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준상: 제가 했던 일들이 조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사물을 관찰하고 해석해서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이고, 연극연출가, PD 등도 나만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직업이에요. 더욱이 조각을 하면서 순간순간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웠던 것이 업무를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PD로 일할 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PD는 문제해결능력이 있어야 성공하는 직업이거든요. 촬영현장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이준상 대표는 2010년도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됐는데,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체적 제약을 넘어 경험을 확장시켜주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우연히 접하게 된 3D프린트는 조각전공자인 이준상 대표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기술이 돈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닿을 수 있도록 돕는 회사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장애아동용 필기보조기구를 디자인 하는 모습

작은 즐거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준상 대표는 2015년 그립플레이를 창업했다. 중소기업청 이공계꿈나무 육성 R&D, 사회적기업가 우수 육성팀에 선정되며 창업 초기부터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고 지원금으로 지금의 사무실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2015년 가을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디자인 싱킹 과정(Standford Uinversity Design Thingking)을 단기 수료했고, 지금은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미디어공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움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좋은 일도 실력 없이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UP: 그립플레이(Grip paly)는 어떤 뜻인가요 이준상: 자동차, 비행기, 우주 비행선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작은 손잡이(grip)입니다. 그립플레이는 아주 작은 즐거움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착안된 이름이에요. 작은 기술이지만 소외된 계층이 이 기술을 이용해 자신만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 첫 번째 사업이 플레이그립입니다. 장애아동용 필기 보조기구를 3D프린터를 이용해 맞춤제작을 하고 있는데, 기업의 채산성의 이유로 제작하지 않던 분야였어요.

UP: 기술을 고루 나눠 가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이준상: 세상에는 첨단기술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기술이 돈이 있는 곳을 향해서만 흘러가잖아요. 예를 들어 VR 기술은, HDM(Head Mounted Display, 머리 부분을 탑재형 디스플레이)을 이용해 소아암 아동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고 싶어요. 그립플레이는 “기술이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서 너르게 쓰이게 하고 싶다”는 가치를 바탕에 두고 창업했어요. 힘들어도 지켜야할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3D 프린트로 맞춤 제작한 장애인용 필기 보조 기구

그립플레이는 크게 2개의 사업부가 구성되는데 오른쪽 방은 3D 프린트의 작업실이고, 반대편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을 연구하는 곳이다. 벽면에는 장애 아동용 필기구의 주문서가 붙어 있었다. OO초등학교 어머니, OO사회복지관 등 주문이 전국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별 맞춤 제작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매뉴얼화해서 효율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니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올해가 수익을 내는 사업의 첫해이다.

얼마 전에 정식 직원이 2명 들어왔고, 인턴 직원까지 있으니 총 4명이 근무 중이다. 또 하나의 가족인 3D 프린트기도 마당 한편에서 맹렬히 일하는 중이었다. 보라색 액체가 튜브관에서 나오며 물품을 만드는데, 프로그래밍의 명령을 받아, 딴청 한 번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3D 프린팅이 새로운 시대의 먹거리로 인식되는 이유는, 미래에는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은 무너지고, 개인의 까다로운 요구를 수용하는 맞춤제작의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아직 성숙되지 않은 3D프린트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은 마련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이다. 이준상 대표는 ‘헬로메이커스’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주문을 받아 개인맞춤형 디자인을 생산해주고, 3D프린트를 이용하는 창의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해 기업체에서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UP: 3D프린트, 미래의 그립플레이는 어떻게 성장할까요 이준상: 다품종 소량 생산이 3D 프린팅의 전부는 아니에요. 개개인에 필요한 제품들을 어떻게 잘 만들어 내는가가 핵심입니다. 그 사람이 왜 이 제품이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립플레이가 3D프린팅을 통해 제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 소외된 사람을 위한 제품이 아닙니다. 사람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UP: 그립플레이,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이준상: 회사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지만, 생존은 필수조건이에요. 아직은 사업상 풀어야할 문제점이 많아요. 저는 지금 그립플레이라는 회사를 조각하고 있어요. 스케치대로 작품이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만하지 말고, 멘토들을 찾아다니면서 묻고 답을 들으면서,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원래 몇 백 억짜리 회사를 차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내 힘으로 풀고자 했던 것이니 너무 서두르지 않고 뜻을 지키며 회사를 운영해 보겠습니다.

‘조각’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인생의 문제점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우리나라에서는 불모지인 3D 프린트까지 오게 만든 힘이었다. 20살,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에는 10년이 지난 회사를 창업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정보완하면서 나아가는 힘, 실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조각을 공부하며 배웠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예술 전공생들은 1년-5년의 입시 준비 기간을 가지죠. 대입 이후에도 뭘 하며 살까 고민을 하더라도 ‘걸어온 삶을 기반’으로 생각을 하기에 선택지가 한정적입니다. 조각 전공자가 3D 프린트 사업을 한다고 하니, 지금 직업이 전공과는 무관해 보이겠지만 저는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야는 달라도 조각을 했기에 지금 3D 프린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을 버리고 다른 것을 준비한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전공에서 얻은 실력과 관점을 바탕으로 세상에 도전한다면, 이룰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입니다. 환경과 관계없이 가급적 많은 경험을, 자신에게 선물해 주세요.

이준상 대표 프로필 - 가천대학교 환경조각과 졸업
-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미디어공학 전공 재학
- Standford Uinversity Design Thingking 과정 교육 수료
- KAIST SE MBA 사회적기업가 양성 단기과정 교육 수료
- 사회적기업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 대검찰청 대변인실 검찰방송 제작 PD
- (주)그립플레이 대표
-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VR전문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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