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나운서 출신이다. 그러나 공연과 무대가 좋았다. 한예종에서 만난 친구들과 뮤지컬 전문 팟캐스트 <자리주삼>을 시작했고 뮤지컬 토크콘서트와 갈라콘서트를 열었다. 시각장애인들도 수신기와 앱을 통해 뮤지컬을 즐기게 했고, 창업 후에는 농어촌·산촌 지역에서 예술교육도 진행한다. 이 모든 시도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가 스튜디오뮤지컬의 신념으로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속의 판타지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고은령 대표를 만났다.

※ 배리어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녹음 마이크 앞에서 인터뷰 중인 스튜디오뮤지컬의 고은령 대표

결핍은 자유의 다른 이름

고은령 대표는 어려서부터 공연을 좋아해서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아나운서라는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했고, 공연계에 발을 디디고 싶었지만 이론적 기반이 부족하다 느꼈다. 한계였다. 그래서 서른 즈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늦깎이 학생이 되어 ‘이론비평’을 공부하며 비평가의 꿈을 꿨다.

UP: 고은령 대표에게 결핍과 자유는 무엇이었나요 고은령: 한국에서 예술계 분들을 만나면, ‘전공’과 ‘직업’을 물어보세요. 듣고 나면 ‘전문가가 아니네’, ‘공연을 한다고 하는데 얼마 못 가겠네’라고 판단을 하셨죠.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공연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요. 스튜디오뮤지컬은 이런 자유로움에서 탄생했습니다.

UP: 많은 장르 중에서 왜 비평을 선택했나요 고은령: 입학할 때는 소위 현장 경험과 제작 능력이 없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비평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어요. 제 가능성에 대해 미리 벽을 쌓고 정해 놓고 있었던 거죠.

고은령 대표와 스튜디오뮤지컬의 사업 범위와 비전이 적혀 있는 부스

그러나 그 벽을 한번 넘어 보기로 했다. 어찌하면 현장에서 더 빨리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한 후, DSLR 카메라를 들고 연극 현장으로 들어가 모든 순간을 기록했다. 교수님이 시킨 것도 아닌, 순전히 자발적인 의지였다. 공연이 무대에 올리기까지 스태프들이 흘린 땀방울과 하얗게 지새운 밤들이 막이 내리고 나면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고, 비전공자로서 하드트레이닝을 겸한 공부가 필요했다. 연극의 전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공연의 기초를 배우고, 현장에서 인맥도 쌓을 수 있었다.

UP: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고은령: 한예종에서 만난 친구들과 국내에서 처음으로 뮤지컬 전문 팟캐스트 <자리주삼>을 시작했어요. 이는 ‘뮤지컬을 왜 꼭 공연장에서만 봐야 할까’, ‘비싼 티켓, 시공간의 제약 때문에 못 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죠. 2012년 1월 시작 당시 팟캐스트는 대안 매체로서 영향력이 있었고, 적은 자본으로 제작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아나운서 출신이라 전달력이 좋으니 음성 매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어폰만 꽂으면 어디든 극장이 된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UP: 처음에는 어떤 형식으로 제작이 되었나요 고은령: 처음에 팟캐스트는 사비를 털어서 해본다는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뮤지컬을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채널1. 자리주삼’은 기존 창작뮤지컬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해서 제작했고, 시간이 좀 지나 ‘채널2. 2013 창작프로젝트’는 직접 뮤지컬을 창작해서 방송했어요. 지금은 인지도가 쌓여서 뮤지컬 배우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하세요.

스튜디오뮤지컬의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박칼린 감독과 최재림 배우
윤동주, 달을 쏘다 녹음 현장

판타지의 뮤지컬은 행복한 꿈이자, 숨 쉴 틈

한때 고은령 대표의 업(業)은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KBS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은 누군가에게는 꿈이었고, 방송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도 컸다.

UP: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누구에게는 꿈의 직장 아닌가요 고은령: 아나운서를 앵무새라고 부르죠. 그건 나쁜 말도 좋은 말도 아니에요. 업(業)의 본질이에요. 작가, PD 등 여러 사람이 공들여 준비한 것을 제대로 전달할 사람이 꼭 필요한데, 그 사람이 아나운서예요. 멋지죠. 그러나 제게 맞지는 않았어요. 틀에 짜이고 정해진 일보다는 스스로 창작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고 싶었어요.

UP: 스튜디오뮤지컬에서 ‘뮤지컬’은 회사명이 될 만큼 중요한 존재인가요 고은령: 아나운서로 입사만 하면 모든 것이 이뤄질 것처럼, 행복할 것처럼 굴었는데 왜 변했을까요?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에요. 바뀌지 않는 삶을 견디며 그래도 살아 나가야 할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틈이 판타지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뮤지컬은 등장인물이 달라도, 스토리는 달라도 모두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속에서 행복한 판타지를 주잖아요. 아나운서로 일하며 뮤지컬에 더 빠지게 되었고, 결국 공연계에 들어서게 만들었어요.

시각장애인이 뮤지컬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배리어프리 공연 모습

고은령 대표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윌리는 판타지 덕분에 힘든 삶을 견딜 수 있었으니, 뮤지컬 속의 판타지는 척박한 삶을 이길 행복한 꿈이자, 숨 쉴 틈이라는 것이다. 뮤지컬 작품들을 살펴보면 현실의 벽을 넘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희망차게 담아낸다.

UP: 장애인 청취자에 관심을 가진 건 어떤 이유였나요 고은령: 팟캐스트를 진행하던 중에 장애인 청취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분들은 뮤지컬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휴대폰의 앱으로 처음 뮤지컬을 만난 거죠. 신체적 한계를 넘어, 공연장의 문턱을 넘어, 처음으로 이들을 뮤지컬의 세계 안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팟캐스트-자리주삼>은 의미 있는 시도였어요.

UP: 실제 공연장에서 장애인들이 관람하는 일도 있나요 고은령: 이후 뮤지컬 토크콘서트와 갈라콘서트를 열었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서비스가 수반된 공연이었어요. 충무로뮤지컬영화제 때는 뮤지컬 전시회도 개최하며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시도해 보고 있어요.

※ 배리어프리 서비스(Barrier Free): 스마트폰 앱이나 별도 수신기를 통해 화면 해설을 들을 수 있거나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는 형태

예비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예술교육 프로그램 진행

예술을 통해 세상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고은령 대표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져서 2015년 스튜디오뮤지컬을 창업했다. ‘사회적기업가기업(소셜벤처)’으로 영리적 이익보다는 사회적으로 무엇을 나눌 것인가, 어떤 긍정적 변화를 불러으킬 것인가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2015년에는 ‘H-온드림’의 펠로우 인큐베이팅 부분에 선정되어 농어촌과 산촌에서 공연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농어촌·산촌의 학교에서 진행 중인 온드림스쿨

UP: 예술강사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고은령: 스튜디오뮤지컬에서 개발한 커리큘럼에 맞춰 예술 강사를 교육하고 학교로 파견하는데, 예술 강사는 1년간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 겨울에 발표회를 열게 됩니다. 참여하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본으로 작성하고 배역을 정해 연기 연습에 돌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꽁꽁 숨겨 뒀던 속마음을 친구들 앞에서 말해 보고, 친구의 마음도 찬찬히 들어 주면서 소통이 숨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배우고 있어요. 예술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해 가도록 돕는 프로젝트입니다.

UP: 스튜디오뮤지컬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고은령: 사업은 이제 시작이에요. 훗날에는 장애인들이 표를 사고 공연을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에게 유료 관람이 아닌 초대로만 공연을 관람하도록 하다 보니 시장 자체가 형성이 안 되어 있어요. 장애인들도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공연이 나왔다는 건, 공연시장도 존재하고, 좋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는 뜻이겠죠.

고은령 대표는 인생의 모토이자, 사업의 모토인 배리어프리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함께 노래하며 용기를 북돋는 뮤지컬에서 경계를 허무는 힘을 발견했고, 용기를 내어 오늘도 열심히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선 한번 저질러 보세요. 발을 한걸음 내딛어야, 다음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이게 정답이야’라고 하지만, 막상 가 보면 아닐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 최선의 선택을 해서 또 걸어가는 겁니다. 너무 겁먹지 마요. 세상에는 당신을 도와줄 멋진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고은령 대표 프로필 - 중앙대학교 영문과 전공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학 석사과정 수료
- 2005 KBS 아나운서
- 2015년 사회적기업가페스티벌 우수상
- 2015년 H-온드림 펠로우 인큐베이팅 부문 수상
- 現 스튜디오뮤지컬 대표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