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학원의 창문 너머로 들리는 악기 소리를 듣고 홀려 버렸다. ‘저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에 사로잡혀 엄마를 졸라 그 학원을 찾아갔고, 아쟁을 만났다. 그렇게 국악기와 함께 연주자로 10여 년을 살다가 한국 공연계의 1세대인 인재진 대표를 만나 15년간 일하며 재즈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재즈페스티벌을 시도하고 성공을 이루어 내며 제2의 커리어를 만들게 되었다. 그녀는 다양한 공연 및 페스티벌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매니지먼트를 하며 공연계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소녀 같은 앳됨과 밝은 에너지를 지닌 김사희 팀장

실패의 기록들, 젊음은 찌글찌글한 축제

15년이다. 예술계의 이직률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 높다. 특히 축제 분야의 이직률은, 다른 예술 분야와 견줘서도 높은 편이다. 밤샘 작업이 이어지는 노동 강도에, 고용은 불안정하고, 한 곳에 정박하니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며, 이곳에서 오래 일할 수는 없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고 떠난다. 합당하고 일리 있는 말들이, 왜 이 사람에게는 비껴간 것일까? 김사희 팀장을 마주하며 이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누군가에게 힘든 상황이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 것이 매력

UP: 어떻게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고, 인재진 감독과 일하게 됐나요 김사희: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타악그룹 푸리’를 좋아해서 공연을 많이 봤어요. 공연현장이 좋아서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텝으로 일하다가, 인재진 대표님네 회사에서 일하던 친구의 소개로 입사하게 됐어요. 재즈공연을 주로 하는 회사였어요. 처음에는 재즈가 뭔지 잘 몰랐지만 듣다보니 음악이 좋았어요. 입사 2년 후에 시작한 재즈페스티벌이 13회가 됐으니 벌써 15년이 됐네요. 주위 사람들이 저보고 한곳에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있느냐고 하는데 그렇게 물어볼만 하네요.

UP: 재즈페스티벌의 초기 모습은 어땠나요 김사희: 초기에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18개월 동안 직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어요. 그때는 회사가 많이 어려워서 인재진 대표님이 강연을 하고 벌어 오신 돈으로 밥값을 충당했죠. 대표님이 ‘강연에 가야 하는데 차비 좀 줘’라고 하면, 우리가 주머니를 막 뒤져서 가지고 있는 돈을 털어 2만 원을 드렸죠. 현장에서 강연비를 받아 돌아올 차비로 쓰고, 나머지는 ‘밥 사 먹어라’ 하면서 봉투째 주셨어요. 안 준 게 아니라, 진짜 돈이 없었으니 억울하거나 속상할 일도 없었어요.

UP: 다시 국악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나요 김사희: 그냥 음악이 좋았어요. 인재진 대표님이 만드는 공연의 무대는 퀄리티가 남달랐어요. ‘이건 언젠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알아볼 거다’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힘들었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저는 별로 안 힘들고 재미났어요. 물론 어렸으니 그랬다 싶지만, 마음에는 좋은 음악에 대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참 희한한 상황, 지금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며, 아이러니하게 모든 게 재미나던 그때를 회상하며 소리 내어 웃기 시작한다. 그들이 무대에 올린 음악은 시대를 앞서갔고 공연시장은 무르익지 않아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다. 다들 떠났는데 월급을 받지 않고서도 일하겠다고 한 사람이 김사희 팀장이다. 다른 공연의 스태프로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그 시절을 버텼다. 인재진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젊음은 찌글찌글한 축제”라고 했는데, 김사희 팀장은 가장 찌글찌글한 젊음으로 자신의 곁을 지켰다.

아쟁에서 시작해 세상을 바꾸는 음악축제를 기획하다

김사희 팀장은 아쟁을 전공했다. 어느 날 음악 학원의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악기소리를 듣고 열병을 앓았다. ‘저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엄마를 졸라 학원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아쟁을 만났다. 가야금처럼 생겼는데 받침대 위에 머리 부분을 비스듬하게 걸친 채 활대로 줄을 그어 연주한다. 그녀는 아쟁의 묵직하고 낮은 소리를 듣는 순간 반해 버렸다.

UP: 아쟁을 전공한 것이 재즈페스티벌의 진행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김사희: 국악은 재즈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재즈는 기본 코드 안에서 개인 기량이 돋보이는 장르인데, 국악의 시나위도 기본 틀 안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악기를 전공했으니 아무래도 연주가들의 예민함을 이해하고, 무대에 서 봤으니 실전 능력이 좋죠. 크고 작은 돌발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이 좋다는 건, 축제 제작자에게는 유리해요. 재즈나 국악은 크게 보면 음악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있으니, 아쟁은 좋은 음악이 무엇인 선별할 수 있는 듣는 귀를 가지게 해주었죠.

리차드 보나의 제안으로 자원활동가와 함께한 무대

진심이 통한 것일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성공한 축제다. 현재 8회째 진행되며 아시아 최대 음악 축제로 성장했다. 매년 10월, 경기도 가평군의 자라섬 일대에서 열리는데 축제 기간이 되면 폭증하는 교통량이 인기를 방증한다. “인천에서 9시에 출발했는데 오후 4시에 도착했어. 내년에는 아침 6시에 출발하겠어”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곳이다.

사실 지역 축제는 레드오션이다. 초창기에는 “지역에 축제를 또 만든다고?”, “주민들이 좋아하기나 하겠어?”, “예산 낭비 아냐?”와 같은 부정적인 물음이 많았다. 지역마다 비슷한 내용의 축제가 많으니 사람들에게 새롭게 인식되기가 어려웠고, 독보적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2009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조형물과
불꽃놀이 모습
재즈아일랜드 무대와 관객

UP: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사희: 재즈는 열렬한 마니아층이 있는 음악이에요. 마니아층이 있으니 수요가 있고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죠. 처음 자라섬에 갔을 때 규모가 예상보다 좀 작지 않나 싶었지만 운치가 남달라서 선택하게 됐어요. 영국의 음악페스티벌에서 받았던 느낌과 추억이 오버랩 되면서, 인공적인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를 살린 축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역발상이 통한 거죠.

해외 재즈페스티벌을 직접 참관하면서 자라섬에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벤치마킹했다. 가평의 자연환경과 지역 여건이 비슷한 핀란드의 ‘포리 재즈 페스티벌(Pori Jazz Festival)’을 비롯해 유명 재즈페스티벌과 MOU를 맺어 아티스트들을 교류했다. 더욱이 내실을 기르려면 내부 인력의 전문화가 필요했다. 운영 전담 조직을 두었고 축제가 일관된 색깔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자체인 가평군과의 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 축제의 색깔과 퀄리티를 유지하게 하는 제1 원칙이다. 지역 주민과의 상생도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가평의 막걸리 제조업체와는 재즈막걸리를 만들고 가평 영농조합과는 가평 와인을 활용한 자라섬 뱅쇼를 공동 개발해서 판매하는 등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며 가평 군민들의 애정을 이끌어 냈다.

원더랜드, 그건 만드는거야

회사를 이직할 마음이 있냐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어디 가서 이렇게 스트레스 없고 인간적인 회사를 만나겠냐며, ‘회사와의 일심동체’를 외쳤다. 가평에 위치한 사무국은 맑은 공기 속에 자란 무공해 야채들로 파티를 할 수 있고, 동료들과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니 싸울 일 없고, 음악 얘기를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직장인의 무릉도원이다. “회사가 버리지 않는 한 지금처럼 살고 싶다”라며 지금이 딱 좋다고 말한다.

UP: 아쟁을 연주할 때보다 재즈축제에서 일하는 지금이 더 행복한가요 김사희: 2015년에는 평택시에서 열린 ‘뮤직런-경기도가 음악으로 달린다’의 운영을 맡았어요. 메르스로 인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축제였어요. 음악을 매개체로 사람들의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해서, 삶을 이겨나갈 힘을 준 행사였어요. 저는 음악이 가진 힘을 믿어요. 그리고 축제의 힘을 믿어요. 아쟁은 음악의 세계로 저를 이끌고 음악 안에서 살게 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자라섬국제제즈페스티벌을 1회에서 10회까지 함께한 스태프들(좌측에서 다섯 번째 김사희 팀장)

김사희 팀장은 동화를 좋아해서 가끔 찾아서 읽어 본다. 동화는 아이들의 원더랜드이다. 그녀가 어른인 이유는, 원더랜드를 상상으로만 그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행복함이 값진 이유는, 오랜 시간을 거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빠른 시대, 모든 것이 쉽게 변하는 시대, 어떤 것이 정답인지 흔들리는 시대에, 내면의 소리를 듣고 우직하게 걸어가는 그녀에게 삶의 한 수를 배웠다. 우공이산이다.

인생UP데이트 멘토링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세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고, 상황이 열악해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죠. 그 행복함을 자신만 가지고 있으면 아까우니 남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좋아해야 잘할 수 있어요.

김사희 팀장 프로필 - 서울예술대학, 용인대학교 국악과 졸업
-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교육/운영팀장
-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 매니지먼트
- 인력양성프로그램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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