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역량에서 매니지먼트와 시스템의 기반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 주연화 디렉터는 작가들의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위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기획자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철학에서 미술로, 현장에서 MBA로

원래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가족의 권유로 철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의류직물학을 복수전공했다. 하지만 4학년 1학기 때, 현장 종사자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패션 디자이너의 길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의상 수업 대신 남은 학기에 미술사학과 미학 수업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철학이 가진 인문학적 기반에 시각예술이 더해지니 그 매력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됐다.

현장 경험은 어떤 방법으로 쌓으셨나요? 미술사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 현장 경험이라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비슷할 거예요. 갤러리 도슨트, 전시 도록 편집 보조, 인턴십 등을 경험했죠. 논문을 쓰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행정고시를 준비했어요. 그러다가 교수님 추천으로 면접을 보게 된 곳이 아라리오갤러리였죠. 저는 주로 컬렉션 수집관리 업무를 담당했어요.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컬렉션하든지, 아니면 경제 논리에 따라 미술 작품의 상품성을 분석해 의사 결정하는 일을 했죠.

갤러리를 그만두시고 MBA를 공부하셨는데,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갤러리에서 소장품 관련 일과 함께 전시도 진행하다 보니 모든 예산을 관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매일 보는 건 갤러리의 재무제표였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르는 부분에서 실수가 생기고 그것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계속 일을 해 나가다 보니 디렉터로서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스트레스도 많았죠. 그래서 전문 재무 지식이나 매니지먼트 노하우를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술경영이나 예술경영학과를 갈 수도 있었지만, 저는 이미 현장 경험도 있고 미술사를 공부한 터라, 현장에 적용 가능한 경영 방법론과 매지니먼트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MBA과정을 선택했죠.

MBA에서 배운 것들이 하시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나요? 사실 MBA에서 배운 지식의 99%는 미술계에서 일하는 데 불필요한 지식이었지만, 굉장히 중요한 1%의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 1%는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의 잘못된 부분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내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 그 사람이 나쁘고 안 나쁘고를 떠나서 커뮤니케이션과 시스템의 운영·경영에 관한 문제였던 거예요.

모든 매니지먼트에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그는 함께 일하는 조직원들에게 하고자 하는 일의 명확한 방향성과 목적성을 심어 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항상 직원들한테 전시 계획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전시의 목적이 평판인지, 경제적 가치인지, 홍보인지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전시가 끝난 후에 우리의 전시가 계획했던 목적을 달성했는지 평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와 플래닝할 수 있는 능력 역시 MBA과정에서 배워 온 것이다.

갤러리 매니지먼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갤러리를 운영할 때 예산, 조직 등 자산을 어떻게 관리해서 전시나 사업을 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할지가 중요하죠. 크든 작든, 갤러리가 내부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해요. 조직 구성원 간의 니즈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업무를 분장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는 매니지먼트가 필요한데, 그런 모든 매니지먼트에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죠. 그리고 전략적인 플래닝이 필요해요. 좀 더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충실한 실행을 해야 한다고 봐요. 서류상 혹은 자기 합리화된 목표와 성과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시장 가치가 적은 작가의 경우, 미술사적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목표를 잡는 거죠. 수익성 혹은 홍보를 목표로 삼았다면, 거기에 집중한 성과로 피드백하면 된다고 봐요.

갤러리 디렉터로서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시장은 단순히 작품이 사고팔리는 유통의 과정이라기보다 작가의 창의성(creativity)과 그 창작의 결과인 작품이 소비되고 유통되는 유·무형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상업적 영역에서 토양을 만들고 그 위에서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지금 아시아 상업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괄 디렉터로서의 많은 고민과 노력

디렉터로서 그는 작가와 갤러리와의 안정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돈인 만큼, 그것을 자연스러운 조건이라 여기고 작가들과 솔직하게 소통하려 한다. “제가 일하는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고, 미술사적 가치가 있고 좋은 재능을 가진 분들이죠. 그분들이 작업을 하고 먹고사는 순환 구조를 위해 저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 집중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일해 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2014년 8월에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를 오픈한 걸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라리오가 천안에서 베이징, 그리고 상하이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매니지먼트나 시스템 운영에 미숙한 부분이 있었어요. 아라리오 베이징이 실패한 이후에 여기저기에서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있었고요.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피로했는데, 아라리오 상하이가 2015년 ‘상하이 최고 갤러리’에 선정된 거예요. 100여 개 이상의 중국 갤러리를 제치고 1년 만에 이뤄 낸 큰 성과였죠. 그동안의 고민과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서 정말 기뻤습니다.

이 직업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장에 대한 아시아 작가의 욕구는 높으나, 아직 아시아 컬렉터들이 서구 작품을 더 선호한다는 점은 아쉽기도 하고 업무를 해 나가는 데 어려운 점이기도 해요. 그리고 미술 시장 활동 영역이 세계화되어 가다 보니 개인 생활환경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도 아쉽죠. 하지만 저는 성격상 어려운 점이 있어도 조금 더 견뎌 보자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국제적 시장 영역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문성을 위해 박사 학위를 취득하긴 했지만, 학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미술사나 철학 등은 학위보다는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어학은 정말 중요해요. 특히 영어나 중국어 등이 능숙해야 하는데, 점수만을 위한 어학 공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갤러리 디렉터라는 직업의 매력은 미술이 가진 이상과 현실 중에 현실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계에서 미술 시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 보면, 앞으로 미술계의 역학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고,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세계 주요 미술관 디렉터의 매니지먼트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매니지먼트를 잘하는 기획자의 역할이 더욱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UP데이트

사회도 그렇고 미술계도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그래서 현장 경험을 할 때 기존 시스템 때문에 실망하게 되더라도, 자신 있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으면 해요. 그래야 예측하지 못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젊은 시기에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세요.

주연화 프로필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대학원 졸업
- 성균관대학교 Global MBA 졸업
- 서울대학교 미술경영 협동과정 박사 졸업

주요 경력
- 前 Arario Gallery, Cheonan, Director(2003~2008)
- 前 SPACE DA, Founder(2008~2009)
- 前 Gallery Hyundai, Deputy Director of Exhibition Department(2010~2013)
- 現 Arario Gallery Shanghai·Seoul·Cheonan Director

주요 전시
- 전시: Sigmar Polke, Neo Rauch, Damien Hirst, Gormley, Trace Emin, Subodh Gupta, Kohei Nawa, Ai Weiwei, Alice Neel, Michael Craig-Martin, 김구림, 이승택, 윤명로 등 국제적으로 알려진 수많은 국내외 작가들의 개인전 및 그룹전 약 100여 회 감독 및 진행
-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오픈 외 해외 아트페어 진출 등 해외 사업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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