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 작가의 꿈을 접고 고미술 경매사가 되다

원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예고를 나오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하지만 작가가 되는 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열 명에 한 명 정도가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말까 한데, 스스로 천재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마침 가나아트에서 신진 작가 공모전이 있어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러 갔다가 한쪽 벽에 붙어 있던 경매회사 직원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래도 뽑아 주면 다녀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붙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경매에서 고미술과 컨템퍼러리 미술이 나뉘어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술품 경매팀 소속에서 잡무부터 시작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자꾸 고미술 쪽의 업무로 치우치게 된 것이다. 사이즈를 재고 재질을 확인하고, 그걸 1년 정도 꾸준히 했다. “저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저를 자연스럽게 고미술 업무를 해오던 사람이라고 인식했고, 계속해서 그쪽 업무만 진행하게 됐죠.” 그렇게 2년이 지나서 그는 사내 경매사 아카데미에 지원했다. 회사에서 해마다 경매사를 희망하는 기존 직원이나 신입 직원을 모집해서 교육하고 오디션 형태로 경매사를 뽑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용기를 냈고 합격했다. 그때쯤 회사에서 고미술과 근현대미술 경매로 사업 영역이 나뉘던 시기였고, 그는 고미술 경매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현대 미술 전공자로서 고미술 경매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쌓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사실 취직을 하고 나니 당장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하나의 벽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실질적으로 ‘컬렉터들이 어떤 관점에서 고미술 작업을 소장하는가’, ‘어떤 작품이 컬렉터들에게 어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 봤어요. 그리고 한자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1~2년 정도 고미술 관련 잡무를 하면서 고미술에 대한 친밀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좀 더 다가갈 수 있었지요.

고미술 관련해서 따로 공부하셨던 건 있었나요? 대학원처럼 공부할 수는 없었고, 회사에서 강압적으로 진행했던 건 원고를 써 오라는 것이었어요. 선배들이 경매에 나오는 고미술 작품에 대한 원고를 몇 줄 이상 써오라고 했어요. 경매가 작품에 대한 미를 추구하거나 감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거래를 위한 것이니까, 거기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책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조사해서 글을 썼지요. 처음엔 짜깁기 수준이었는데, 1~2년 계속하다 보니 나름 전문성이 생기더라고요.

실기 전공자로서 고미술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데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제 전공과 이 업무는 괴리감이 컸어요. 처음 1여 년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보니 ‘미’라는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조소를 통해서 느꼈던 것 같아요. 미에 대해서 공부했던 것이 고미술 작품을 다양한 미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서울옥션 경매 현장에서 음정우 경매사 서울옥션 경매 현장에서 음정우 경매사

경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뜨리는 일

고미술 경매에서 다루는 ‘고미술’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그리고 구한말까지의 골동품 등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모든 오브제 그리고 근대 동양화까지다. 보통 도자기, 서화, 공예품까지 광범위한 시대와 매체를 포함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술의 관점과 경매사들이 생각하는 미술이라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다. 그가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건, 작가를 지향했던 사람으로서 ‘순수미술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무래도 경매가 ‘돈’이라는 것에 집중되는 면이 있어 순수미술 전공자로서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처음엔 좀 괴리감이 컸어요. 작가를 하려던 저로선 순수한 미를 추구하는 일을 하려다 미를 돈으로 환산해서 거래하는 일을 하려니까 힘들었죠. 그때 선배들이 단호하게 말해 준 것이 있었어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미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중에 세속적인 목적이나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옛날부터 다산이나 풍작,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팔아서 먹고살았던 소위 ‘그림쟁이’라 불리던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때부터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일반인들이 경매에 갖는 선입견은 문화면 기사의 최고가 금액이나 스캔들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경매사 활동이 가진 사회적 의미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일반인들이 보기에 경매사가 매우 세속적인 일을 한다고 보겠지만, 적어도 고미술의 경우에는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경매를 통해 국내로 반입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봐요. 해외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약탈된 것도 아니고, 소장자가 한국으로 돌려주고자 한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가져오는 것 역시 고미술 경매의 역할이죠. 그리고 문화산업을 이끄는 데 중요한 자본을 마치 주식시장처럼 투명하고 가시적인 거래로 직시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역시 미술시장의 역량을 위해 경매가 가진 의미라고 봐요.

고미술의 숨은 가치와 매력을 알리다

경매를 통해 투명성이 더욱 강화되고 거래의 이력이 보증된다는 건 굉장히 반길 만한 일이다. 직관적으로 금액을 발표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마켓을 마련함으로써 우리 미술시장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매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모든 미술의 영역은 물질적인 것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경매사는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진행했던 경매 중 기억에 남는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2013년에 작가 미상의 <해상군선도>가 경매에 출품되었죠. 개항 시대 제물포의 세창양행의 지사장으로 부임했던 칼 볼터가 고종에게 하사받았던 병풍으로 딸과 손녀에게 상속되었다가 소장자가 한국에 돌려주는 방법을 알아보던 중, 경매가 이루어져 국내 기업을 통해 환수되었어요. 고미술의 경우,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가 많기 때문에 경매가 민간 영역에서 나름대로 환수 역할을 할 수 있어 의미가 있고, 계속 관심을 갖고 추진하려 해요. 대부분 경매 카탈로그에 서양미술이 표지였는데, 이 작품이 15여 년 만에 처음 고미술로 표지가 된 거라 더 기억에 남아요.

고미술 경매는 현대미술보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분야가 아닐까 싶은데, 고미술 경매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을 시작했을 때는 서구 미술보다 낯설어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듯했는데, 고미술에 대한 아주 작은 일부터 하면서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봤던 정서적인 친밀감 같은 게 생겼어요. 고미술은 바닥 시장으로 해서 평가 절하된 시장이니 아직 잠재력이 크다고 봐요. 무엇보다 인프라가 적기 때문에 레드오션인 컨템퍼러리나 디자인 쪽보다는 조금씩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경로로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고미술 컬렉팅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추천할 만한 방법이 있나요? 처음 최소 6개월 동안은 아무것도 사지 말고 보러 다니세요. 그런 후에 비싸지 않은 것으로 십여 개 사면서 본인의 취향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본격적인 컬렉팅은 그 이후에 시작하는 것을 권해드려요.

그는 인생에서 딱 한 가지 길만 생각하지 않았다. 가나아트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나올 때 채용 공고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하나는 ‘난 아무런 전문 지식이 없는데 과연 이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였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작가의 길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에 넣어 봐도 손해될 건 없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과감히 후자를 택했고, 그의 용기 있는 결정은 지금의 자리로 그를 이끌었다.

인생UP데이트

제 경우로 말씀드리면, 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너무 배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도해 봤으면 해요. 기회는 다양하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취업을 할 때 스펙이나 대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안 쓰기 쉽지 않은 시대이긴 한데,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해요. 예를 들어 우리 회사의 경우 면접을 보면, 고미술에 대한 이런저런 지식과 정보는 알면서 정작 우리 회사가 지난달에 경매한 작품이나 내용은 모르는 지원자가 있어요. 이 직업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부가 필요해요.

음정우 프로필
학력
-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조소과 졸업

주요 경력
- 아우디코리아 A8런칭 행사 경매 진행(2010)
- 월드비젼 아이티 자선경매 진행(2010)
- SM엔터테인먼트 코엑스 행사기념 경매 진행(2012)
- 더 글렌리벗 런칭기념 경매 진행(2013)
- Operation Smile Korea in Hyatt 경매 진행(2013)
- Colombo 5월 신제품 런칭 기념 경매 진행(2014)
- 미래회 ‘나눔의 밤’ 자선 경매 진행(2015)
- 現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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