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 뿐인 미술관, 장사 수완에 능한 갤러리 화상, 점잖은 컬렉터, 늘 바쁜 큐레이터, 평론가 등이 이루어내는 정적인 순환구조의 국내 미술시장은 2005년을 분기점으로 급변했다. 미술시장은 점차 대형화 기업화 전문화 되어갔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미술계 종사자들이다. 미술계 사람들은 계곡에서 급류를 타듯 무언가의 힘에 떠밀려 멈출 수 없는 배를 탄 것처럼 행여나 누군가 나를 앞설까, 내가 뒤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마구 노를 젓게 되었다. 이들이 폭포를 만나게 될지, 그대로 표류하게 될 지, 아니면 이 물길을 따라 바다와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급변하는 미술시장만큼이나 다양한 매체들에서는 미술정책, 방향성, 시장 동향, 미술시장의 회생 가능성, 전시 소식, 경매 소식, 스타 작가들에 대한 조명 등 관련한 많은 기사와 평론, 인터뷰 등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홍수다. 이러한 상황에 필자의 부족한 머리로 보잘 것 없는 견해를 하나 보태느니 오히려 사람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대한 미술시장에서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특히 경매회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인맥들은 현재 미술시장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성원들이기 때문에 이 관계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현재 국내 미술시장의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옥션별 경매현장“저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에 입사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2000년도 초반에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 관련학과에 지원자들이 급증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요즘은 대학생들을 포함해 미술계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경매회사의 스페셜리스트에 주목한다. 명품으로 휘감은 엄친 딸, 수년간의 갤러리 큐레이터 경력자, 해외 유수의 대학 졸업자들부터 이력서 한 줄로 끝나는 새내기 졸업생까지 지원자들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몰려온다. 이들은 자신의 화려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인턴부터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매사, 스페셜리스트, 딜러가 되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몇 년 전에 한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 <옥션하우스>에나 등장할 법한 옥셔니어들을 상상한다. 다년간의 경력을 가진 상업갤러리 큐레이터 경력자들조차도 미술시장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 이내 말을 더듬거나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이 경험했던 미술시장은 단편적인 측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이들 중 다수가 딜러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등장하는 딜러에 대한 꿈은 수많은 지원서의 반을 훨씬 웃돈다.


지원서는 밀려들지만, 전문인력은 부족하다

물론 미술계에서의 활동영역이 다양해지고, 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해가는 것은 바람직하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언젠가는 우리 미술계도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서 인재들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활동해가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명함뿐인 딜러들을 무수히 만나온 필자가 지금 이 시점 바라보자면 아직 이를 위한 구체적인 뒷받침이 없다. 단지 개인에게 요구할 뿐이다. 때문에 경매회사는 넘쳐나는 지원자들에도 불구하고 늘 전문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옥션별 경매 프리뷰 전시 모습

경매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요건은 작품을 보는 눈이다. 현재 작가들이 직접 옥션에 참여하는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옥션의 본질은 좋은 작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을 시장과 연결시킬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현안이나 경제동향 외의 구체적인 제반 사항들까지 포괄하는 최신정보에 빨라야 하고, 계속 업데이트되는 가격지수에 대한 숙지는 기본이다. 나아가 관록 있는 갤러리 사장님들부터 컬렉터들까지 그 기호와 생리를 파악해가며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대하는 능력까지 요구된다. 국내의 경우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갖추어져야 하는데 전시기획력이다. 해외 미술시장에 비해 현저히 작은 규모의 국내 미술시장에서 경매회사의 순환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순수한 의미의 경매에 더하여 전시 판매 등의 다양한 기획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경매회사는 미술시장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위치한다. 상호 이해관계에 의해 작가, 작품, 갤러리, 미술관, 비평가, 딜러, 컬렉터가 한꺼번에 집결되는 시장이기에 이들을 주무를 수 있는 그야말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개인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부재한 국내 미술계 전반의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선진국에서의 제대로 일할 줄 아는 &lsquo;사람&rsquo;에 대한 경쟁들은 가히 놀랄만하다. 제대로 일할 줄 아는 &lsquo;사람&rsquo; 한 명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지금이야말로 에르메스 스카프를 우아하게 흩날리며 작품을 상품처럼 판매하는 &lsquo;사람&rsquo;들보다 작품에 문화를 덧입혀 냉철한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는 &lsquo;인재&rsquo;를 키워내기 위한 긴 호흡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은경

필자소개
이은경은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표갤러리 서울과 베이징에서 전시기획팀장으로 큐레이터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옥션별(AUCTIONBYUL)의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