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영 본부장은 클래식 마니아다. 그리고 사랑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100명이 넘는 해외 오케스트라의 국내 공연을 기획하고, 홍보·마케팅을 진행하며, 음악적 교감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매니지먼트까지 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아도, 좋아하는 일이기에 즐겁게 일하면서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공연 리뷰 글에서 음반 제작까지

송재영 본부장은 클래식 전공자가 아니다.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하신 덕분인지 어려서부터 텔레비전에 클래식 곡이 나오면 그렇게 좋았다. 가요 음악이 대세였는데도 말이다. 아버지가 음악 전집을 사줬는데 바이블처럼 여기면서 연주자와 곡에 대해서 꼼꼼히 공부했다. 용돈이 생기면 음반이나 테이프를 사는 데 다 쓸 정도로 하루 종일 클래식을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특히 100명의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하모니를 내는 오케스트라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디에 가면 클래식 공연을 더 많이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무 살 때 큰 도시 서울로 올라왔다. 송 본부장은 “독일어를 전공한 것도, 베토벤, 브람스, 하이든 등 독일 쪽 작곡가를 많이 보다 보니까 친숙해서 자연스럽게 전공까지 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독일어를 전공했는데, 전공이 아닌 다른 과정을 택하셨네요. 대학에 와서 ‘목요음악반’이라는 클래식 감상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클래식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수두룩하게 모인 곳으로 온종일 클래식을 듣고 모여서 품평을 하는, 그야말로 꿈꾸던 지상낙원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선후배들이 많았는데 ‘클래식 해설가’로 유명한 장일범 음악평론가도 그곳에서 만난 선배예요. 선배들의 소개로 대학 시절부터 클래식 음반 리뷰 글을 쓰면서 용돈벌이를 시작했고, 그러다 오페라의 조연출 등 아르바이트 업무를 했는데 말이 조연출이지 시다였습니다. 허드렛일을 담당하면서 공연의 생태를 익혔죠. 이후 졸업 후에는 BMG뮤직코리아(현 소니뮤직 코리아)에서 클래식 음반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다, 클래식 공연기획사인 빈체로에 오게 됐습니다.

독일어를 전공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나요? 독일어는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선택했고 클래식을 좋아하면서 더 친숙해진 언어입니다. 당연하게도 독일어를 전공했으니 외국의 아티스트를 초대할 때 편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분들께 독일어를 하면 좋아하죠. 또 자료 조사를 할 때는 독일 쪽의 참고 문헌도 볼 수 있으니까 내용이 더 풍성해졌죠.

리뷰, 클래식 음반 마케팅 등의 업무가 지금 일과 어떻게 연관이 되나요? 클래식 음반은 마니아가 듣지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어떻게 포장을 잘해야 팔릴까?” 하고 끝없이 마케팅과 홍보에 대해 고민했어요. 절판된 음반들의 곡들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해서 CD로 만들었던 적도 있고요. 음반 가게에서 아직도 제가 만들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면 반갑죠. 결국 트렌드에 밀려 CD의 판매 매출이 저조해지면서 퇴사하기는 했지만, 클래식이 어떻게 대중에게 사랑받을 것인가를 치밀하게 연구한 시기였습니다.

오래가기 위한 푸른색 열정

송재영 본부장은 클래식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직이 잦고 여자의 비율이 높은 업계에서 14년을 있었으니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12년 동안 3번의 내한을 했던 <토마스 합창단&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처럼 해외 뮤지션들과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체로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2017년에는 런던심포니, 김선욱 리사이틀을 거쳐,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첫 내한 공연 등이 예정되어 있다.

클래식 공연을 기획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공연 스케줄은 1년 전에 확정이 되는 만큼 그사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환율이 폭등할 수도 있고,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릴 수도 있어요. 결국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익에 대한 엄격한 예측과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공연의 홍보·마케팅과 세일즈까지, 지속 가능한 공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또 분석해요. 그래서 기업체, 공연장, 홍보 대행사, 언론사 등 바쁠 때는 하루 120통의 전화가 걸려 올 때도 있습니다.

다른 길을 가지 않고 오로지 클래식 공연 기획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익이 난다고 하고, 적자가 난다고 안 하면 누가 우리를 믿어 주고 계속 신뢰하겠어요. 사전 기획한 공연은 추후 손해가 난다 하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이니 절대 저버리지 않아야 하죠. 7~8년 전쯤 클래식 기획사들이 힘들 때, 회사의 대표님과 계속 클래식을 해야 하냐, 우리도 뮤지컬 제작이나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를 두고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갈 길 가자, 오로지 클래식만 하자”가 저희가 내린 답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공연 기획자는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할까요? 좋아하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기획자는 예술가, 공연장, 기업체(스폰서)의 사이에서 적정선을 두고 항상 타협하면서 현실과 명분 사이에서도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니 본인이 아무리 클래식에 조예가 깊더라도 공공성이나 대중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비즈니스적 마인드가 부족한 것입니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거 같아요. 예술적 안목, 커뮤니케이션 능력, 네트워크는 필요조건입니다.

송재영 송재영
연주자와 송재영 본부장

음악적 교감 능력이 기획자의 큰 자산

송 본부장은 클래식 분야가 보기와 달리 인내해야 할 것이 많다고 조언한다. 그는 “자기가 연주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라면서 “화려함을 좇는 사람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공연 기획자는 아티스트가 최상의 공연을 만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고, 주목받지 않는다.

때로는 연주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기분 좋게 최고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그림자처럼 붙어서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주자가 배고플 것 같으면 도시락을 사다가 직접 세팅한다. 그리고 100명의 오케스트라단이 오면, “버스는 어떨까?”, “체구가 큰데 호텔의 침대는 불편하지 않을까?” 등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신경 쓴다. 모든 것이 공연의 퀄리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티스트와 교감하고 세세하게 배려하는 것이 매니지먼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백건우, 김선욱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매니지먼트하고 있는데 백건우 선생님은 6년째 함께하고 있어요. 매니지먼트의 기본은 대화, 즉 소통인 것 같아요.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절대 돈만 보고 공연을 기획하지 않아요. 공연을 보고 필요한 것을 얘기하고, 다음 공연에서 하면 더 나을 것들을 제안하면 연주자도 귀를 기울여 줍니다. 그렇게 호흡을 맞춰 가면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는 거죠.

“기획자는 을의 마인드를 가지되 절대 비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송 본부장은 이 중용을 지키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이 일이 급여를 많이 받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니까, 클래식이 너무너무 좋으니까 평생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기에 한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 그의 우직한 행복론을 배워 본다.

인생UP데이트

현장에 나오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업무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만일 평생 음악만 해왔다면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연주자, 기획자, 홍보 담당자, 무대 스태프 등 모든 사람은 관객이 원하는 멋진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협업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꼭 무대가 아니라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곳에서 당신은 누구보다 빛이 날 것입니다.

송재영 프로필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졸업

주요 경력
- 2011년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젊은 기획자상 수상
- 前 BMG뮤직코리아(現 소니뮤직코리아) 클래식 마케팅 담당
- 現 공연기획사 (주)빈체로 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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