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서든 정상에 서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가리켜 ‘1만 시간의 법칙’이라 한다. 간절히 원하던 꿈에서 돌아가는 길에서 조우한 사진을 매체로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가능성으로 모아 독특한 작업을 하는 나승열의 1만 시간을 들여다본다.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어릴 때부터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다. 부모님도 순수 음악을 하시긴 했지만, 집안 형편상 음악보다는 미술 쪽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조소과는 미술대학에서도 그나마 돈이 덜 드는 전공이었다.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나름대로 조각 전공에 만족하며 지냈지만, 좀처럼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음악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졌다. “더 늦기 전에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은 지금 시작하는 건 너무 늦다고 반대하셨죠. 그래도 저는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꼭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클래식 기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4학년 때 휴학을 했다. 국내 음악대학으로 편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스페인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7년을 공부했다.

클래식 기타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셨는데, 포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결혼까지 해서 스물아홉 살에 유학을 간 거라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했죠. 중간 과정 졸업 때 최고 점수로 인정도 받았고요. 그런데 손가락에 이상이 생겨서 최고연주자 과정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어린 친구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잘못된 자세로 너무 무리하게 연습했던 거예요. 손가락은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는데 기타줄 위에서가 문제였죠. 좀 쉬면 나아질까 해서 기타를 잠시 접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행 가이드를 했어요. 그러고 다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죠. 미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경제적 이유로 못하고, 결국 2005년 겨울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귀국 후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셨나요? 그때는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왔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괴롭게 지내던 중에 스페인에서 여행하다가 만난 사진작가 형님이 제게 큰 도움을 주셨죠. 나중에 한국 오면 놀러오라는 말만 믿고 연락드렸는데 스튜디오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찾아가서 제 사정을 얘기했더니 사진을 한번 해 보라고 권하시더군요. 당시 저는 사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사진을 하고 싶다거나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형님은 “지금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사진 찍으면서 생각해 봐도 되지 않겠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사진을 시작하게 됐어요.

조각과 클래식 기타를 공부한 것이 공연예술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남들이 봤을 때는 꽤 화려한 이력처럼 보이지만, 깊게 공부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지금도 사진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조각을 했기 때문에 무대라는 공간과 연주자라는 입체에 대한 구조적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는 음악의 흐름을 파악하고 연주자들의 생각과 정서 등을 이해하며 좋은 타이밍을 잘 캐치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저만의 시선이 생겼어요.

시행착오라 여겼던 것들이 기회가 되다

스페인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차라리 영어권으로 유학을 다녀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했다. 그런데 EBS <세계테마기행> 측으로부터 여행 작가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남미 여행 작가로 여러 차례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자신이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 필요도 없는데 이런 걸 왜 했을까 생각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제가 스페인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여행 가이드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세계테마기행>에 출연할 수 있었어요. 특히 생계를 위해 가이드를 했던 경험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할 수 있게 해줬죠.” 조각을 했던 것도 사실 후회는 많았는데, 사진을 하다 보니 조각을 전공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진작가로서 경력은 어떻게 쌓으셨나요? 사진작가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작가라고 불리는 게 어색해요. 저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가장으로서 장남으로서 돈을 벌어야 할 책임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초반 2~3년은 거의 돈을 벌지 못하고, 아는 사람들 찍고 결혼식이나 행사에 가고 그랬어요. 아무래도 클래식 기타 전공이다 보니 클래식 연주자의 사진을 찍는 일이 생겼고, 그로 인해 일거리들이 늘어났어요.

촬영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작업은 스튜디오보다 실제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 있을 때 제일 멋있잖아요. 공연장에서 사진작가의 위치는 제일 끝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이 연주자, 그다음이 관객이고 저는 맨 끝이죠. 공연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 리허설 촬영을 할 때가 많고 본 공연 때도 제일 뒤에서 촬영하곤 하죠. 그렇게 촬영해서 공연이 끝나면 다시 그 공연의 느낌과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공연예술 사진작가로서의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은 만큼 열심히 달려온 1만 시간의 노력

2005년에 사진을 시작해 1~2년의 연습 기간을 거쳐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한때는 이 길을 가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심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만약 사진을 못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무엇이라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의 시간을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10년 동안 일을 대하는 생각이나 마음가짐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작년에 체코에서 열린 ‘재즈 월드 포토 ’에 재즈를 워낙 좋아해서 지원했는데, 2등을 했어요. 돌이켜 보면 1등은 못 하고 늘 2등을 했던 것 같아요. 1등을 못 한 아쉬움보다는 계속해도 되는 신호인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고 큰 힘이 됐어요. 나만의 전문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시작할 때부터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만약 사진을 전공했었다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10년 전쯤 했을 테죠. 느리게 가고 있지만, 제 사진을 좋아해 주고 제게 의뢰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꾸준히 해 나갈 겁니다. 만약 앞으로 다른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나를 넘어서기 위해 뭔가에 도전한다는 의미가 강할 겁니다. 저는 아직까지 청년이니까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는 나이는 많지만 경력은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꾸준히 해 가고 싶어요. 2년 전에 전시를 해서 올해쯤에는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구상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요. 저도 미술을 하다가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듯이, 자기 안의 다른 꿈을 사진으로 재현해 보는 프로젝트예요. 예를 들어 지금은 연주자로 있지만 원래 꿈이 농사짓는 일이라고 하면, 그 사람을 농부로 만들어서 사진에 담아 보는 거죠. 그리고 음악의 길을 가지 않았지만 원래 꿈이 오케스트라 무대에 서 보는 것이 꿈인 사람이라면 무대 위에 직접 세워서 사진 작업을 해 보는 거죠. 그들이 이루지 못한 다른 꿈을 사진으로 재현해 보고 싶어요.

고정 수입이 없긴 하지만,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는 직장인보다 생각과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돈에 집중해서 억울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유라는 게 예술가가 가진 특권이지 않은가? 돈이 없어도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고, 그 자유로움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작품으로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자유를 진짜 자유롭게 쓰는 것으로부터 천재적인 예술가도 나온다.

인생UP데이트

한 가지에 올인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성공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유와 연결되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은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데 거기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잘못 판단하거나 착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도 자유와 연관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급적 외국으로 나가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나가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로 생각의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해요. 떠나기 전에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되고 고민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가 보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세요!

나승열 프로필
학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교 조소학과 중퇴
- Conservatorio Joaquin Turina de Madrid , SPAIN 클래식기타학과 졸업(2003)

주요 경력
- EMPATHIE (갤러리 이즈, 서울) 개인전(2011)
- EMPATHIE (에스프레소하우스, 서울) 개인전(2011)
- HARMONIZE (가회동60, 서울) 개인전(2013)
- 체코 재즈월드포토 공모전 은상 수상(2016)
- 現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 국립국악원, 국립극단, 전통공연예술 진흥재단 공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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