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수 대표는 우리나라 조명계에서 역사를 써 내려간 인물이다. 전 세종문화회관의 소속 조명 디자이너였고, 국가적인 대형 행사와 연극, 무용, 뮤지컬, 오페라 등 300여 편 이상의 작품에서 조명을 디자인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 때까지 물어보고 끝없이 탐구하며 자신만의 개척해 왔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컴퓨터를 배우던 시절

민경수 대표의 첫 번째 전공은 전자계산학이었다. 그때는 애플 컴퓨터, IBM 퍼스널 컴퓨터가 막 나오기 전인 때로 컴퓨터가 미래 산업으로 관심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사실 어려운 형편에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는데,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의 월급이 더 많은 것을 보고 힘들더라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조명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회생활을 하다 2년 늦게 야간대학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업무 특성상, 회사의 분위기상 일찍 퇴근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공무원이 되면 학교를 지금보다 편히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어요. 직업을 바꿔서라도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서울시 10급 기능직 시험에 합격하고, 공무원이 되어 처음 발령받은 곳이 세종문화회관 조명실이었어요. 순전히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이직한 곳에서 천직을 만났으니 인생이 아이러니하네요.(웃음)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컴퓨터가 막 태동하던 때에 전자계산학과에서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배웠어요. 당시 독일 시멘스사에서 컴퓨터로 제어하는 조명 콘솔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무나 못 만지게 했어요. 워낙 고가의 장비인데다 잘못하면 고장 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이것저것 작동하고 응용해서 활용도 할 수 있으니 대단하게 보더라고요. 컴퓨터로 제일 먼저 도면을 쳤어요. 최신 조명 장비를 잘 다루니 더 재미도 있고 조명 디자이너로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죠.

조명은 나중에 보니 딱 맞는 천직이었지만 인생의 초반에는 그만둘까 갈등도 많았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년 전에 열리는 문화 축전 행사로 공연이 정신없이 이어지던 때였다. 고층 사다리에 올라가 조명 포커싱 작업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4층 높이인 9m에서 수직으로 추락해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양쪽 발목의 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으나 다행히 다른 곳은 멀쩡했다. 민 대표는 깁스를 하고 병원에 있으니 자신의 삶과 직업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됐다고 한다. 어쩌다 하게 된 일인데 앞으로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어떤 점이 조명을 천직으로 삼게 만들었나요? 조명은 다른 사람에게 간섭받지 않는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작업이라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또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노는 게 재미있었어요. 돌이켜 보니 어린 시절 KBS 방송국의 공개방송에 갔을 때 흑백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방송 무대가 실제로는 현란한 조명으로 가득했던 것이 참 신기했고 그것이 조명과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아요. 해외 유명 공연단의 순방 공연을 보면 빛으로 그려진 장면과 장면이 어떤 사람이 봐도 매료가 될 정도로 황홀했죠. 조명을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하니, 이대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몰입의 시간, 배움의 시간

조명을 천직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지만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에는 일본 조명 서적을 번역한 것이 한 권 있었는데 수준이 조악했다. 그래서 서점으로 가서 해외의 조명에 관련된 책을 세 권 주문했다. 책을 사는 데 월급의 삼분의 일을 투자했다. 그 세 권 중의 한 권이 ‘리처드 필브로의 스테이지 라이트(Stage Light)’였고, 원서를 더듬더듬 번역해 가면서 조명에 대한 개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3개의 스탠드로 작은 조명 기구를 만들어 실전을 연습했다.

어떻게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지식 체계를 확립해 갔나요?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을 더하면서 어떤 색깔이 나오는지 궁금했어요. 색을 비췄을 때 사물이 어찌 변하는지도 궁금했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작은 스탠드를 세 개 놓고, 색 필터를 끼워 가면서 조명 기구 삼아 연습을 했어요. 하늘색이라고 해도 옅은 하늘색(day blue), 짙은 하늘색(sky blue)처럼 색이 다르고 밝기에 따라 변해 가는 느낌이 달라요. 제 눈으로 확인하고 색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게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어서 공부를 계속했어요.

개론을 공부하고 나서 어떤 공부를 계속했나요? 개론을 공부하고 나니 미학적인 부분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당시 한국에 무대, 조명을 공부하는 전문교육학과가 없었어요. 마침 문예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에서 무대미술 아카데미를 개설한다는 공고가 신문에 났어요. 6년 차쯤이었는데 입학 원서를 냈어요. 주위에서는 기술인이 미학을 뭐 하러 배우냐고 반문했지만 벽제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직장 일을 오가는 우여곡절 끝에 1기를 졸업했어요.

공부를 할수록 작품을 보는 철학과 미학이 생기니 “민경수를 써야 한다”라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젊은 나이에 조명 디자이너로서 여러 장르의 작품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비 유학생으로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포트폴리오와 연수 계획서를 준비하고 해마다 지원했지만 낙방을 거듭했다. 마침내 6년 만에 일본의 문무성으로부터 장학생으로 합격했으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문화 교류 차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조명계 예술인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그곳에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유명 예술 단체를 돌며 연수를 계속했다. “보고 싶은 책은 다 보고 왔다”라고 할 정도로 배움에 목말라 있던 사람에게 단비가 되어 준 시간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

무용,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공연부터, 국가적 행사와 대형 콘서트, 그리고 경관 조명까지 조명으로 하는 일이라면 안 해 본 일이 없다. 이 정도라면 현장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책을 손에서 놓는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공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경희대 연극영화과에 편입해 띠동갑의 곱절이 넘는 후배들과 공부했다.

업계에서 인정을 받은 후 다시 편입을 했는데,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미학과 철학 등 전공 이외의 것과 카메라의 앵글 등 영화적인 요소를 공부했어요. 불치하문(不恥下問)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라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물어서 알게 된다면 나중에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마음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조명업계의 불편하고 힘든 점을 어떻게 바꾸려고 노력하셨나요? 큰 야외 행사의 경우, 밤에 일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남들이 자는 깜깜한 밤에 나가서 밤새 일해야 하니까요. 왜 이래야 할까? 낮에는 할 수 없을까?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지금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운용해서 낮에 완벽히 돌려볼 수 있도록 세팅을 해 놨어요.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점차 보완해 가면서 조명업계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죠.

조명으로 이끈 것은 모든 것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러나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것은 본인의 의지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척박하던 시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던 시절, 스스로 공부하고 개척하면서 길을 열었고 거장이라 불리는 자리에 올랐다. 실력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결코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때 앞으로 나아간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깊게 고민하고 탐구하는 힘. 백 세 인생의 절반을 넘었지만 민경수 대표의 눈빛은 아직도 빛난다.

인생UP데이트

대학에 무대예술과를 만들었지만 모두 이 분야에 취직해서 성공할 수는 없을 거예요. 무대예술을 공부한다면, 그쪽에만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시·디스플레이·이벤트·기획 등 다양한 방면으로 눈을 돌려 보세요. 백화점만 해도 쇼윈도의 조명이 달라져도 매출이 높아지니 분명 조명과 무대 전문가가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싶어요. 직업의 스펙트럼을 넓게 가지고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길 바랍니다. 그리고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묻고 요청해야 알려 줍니다. 두드려야 열릴 것입니다.

민경수 프로필
학력
- 명지전문대학교 전자계산학과 졸업
- 문예진흥원 문화학교 무대미술아카데미 수료
-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주요 경력
- 제7회 한국뮤지컬대상 무대기술상 수상(2001)
- 문화부장관상 수상(2002. 2004)
-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 조명상 수상(2011)
-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 무대미술상 수상(2012)
-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2016)br> - 무대예술전문인 1급 자격 취득
- 前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 조명 디자이너 겸 감독
- 現 해와달프로덕션 상임 디자이너

주요 활동
- 뮤지컬: <삼총사>, <올슉업>, <잭더리퍼>, <두 도시 이야기>, <햄릿>, <렌트>, <모차르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외 다수
- 극: <마를 부탁해>, <길 떠나는 가족>, <벚꽃동산> 외 다수
- 무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자유부인>, <불의 여행> 외 다수
- 오페라: <리골레토>, <마술피리>, <아이다>, <투란도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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