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 범주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소비하는 관객은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이다. 새로운 관객 유치가 쉽지 않은 현 공연예술계에서 장르간 관객 이동이나 장르 확대를 염두에 둔 마케팅 전략은 관계자들에게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때문에 관객이 어떤 선호에 따라, 장르 너머의 공연을 선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공연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슨은 순수예술뿐 아니라 대중문화까지 모두 애호하고 소비하는 이들을 ‘옴니보어(잡식동물)’로 규정했다. 이러한 경향이 처음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발견됐지만, 이후 후속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중상층으로 확대됐다. 계층에 관계없이 옴니보어는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뿐 아니라 록이나 힙합 같은 장르까지 광범위하게 수용하는 형태를 보인다.

개인과 특정 집단의 기호와 성향을 파악하는데 있어 지난 몇 년 사이 주목받고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빅데이터 기반 마케팅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개인이 내놓는 흩어진 데이터들을 모으고 묶어 유형화시키고, 분석을 통해 소비자의 패턴이나 취향을 파악하고, 상황을 예측하거나 유도하는 등 객관적인 자료 분석을 통해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공연예술계 관계자들이 적극 활용하기 위해선 공연예술정보 통합관리시스템인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방대한 데이터 수집을 통해 정성, 정량 분석이 가능한 성숙기에 접어들게 된다면 관계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연예술 생태계 조성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향한 작은 발걸음으로, 공연예술계에서 소비자(관객)는 어떤 이유로 공연과 장르를 선택하고 움직이는지,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기호와 취향은 무엇인지를 데이터를 기초로 살펴보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좀 더 세분화시키는 작업을 (재)세종문화회관과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가졌다. 2016/2017 세종 시즌제 회원 중, 두 종류 이상의 장르 공연을 관람한 관객, 즉 장르 교집합 현상을 보이는 관객의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음악+스토리텔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지만 기간·빈도·방식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오페라·뮤지컬 장르를 모두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을 만나, 하나의 장르에서 시작해 다른 장르로 관람을 확대하게 된 계기와 그들이 체감하는 현장 분위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음악&스토리’가 낳은 장르 교집합 관객

지난 10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2016/2017 세종 시즌 회원제 그룹 인터뷰가 이뤄졌다. 참석한 회원 3명(이동원, 정성진, 이명은)의 연간 공연 관람 편수는 최소 10편 내외부터 최대 200편까지 다양했지만, 세종 시즌제를 중심으로 뮤지컬·오페라 장르 내 각각의 공연을 2건 이상 관람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각자 처음 경험한 공연 장르는 달랐지만, ‘음악+스토리텔링’ 공연을 좋아하는 공통된 성향을 갖고 있었고, 때문에 오페라-뮤지컬 간 장르 전환도 어렵지 않게 이뤄진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음악 장르는 거의 좋아합니다. 대중음악이나 클래식 음악 크게 가리지 않는 편인데, 오페라나 뮤지컬은 서사 덕분에 감정이입하기 편해서 특히 선호하는 공연 장르예요. 뮤지컬은 멜로디가 귀에 익숙한 느낌이고 쉬운 스토리 때문에, 반면 오페라는 일상 속 이벤트로 본다는 느낌이 크죠. 그 때문인지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고, 특별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오페라를 좀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이동원(30대/남/은행업)

“오페라를 선호하지만, 더 많이 보는 건 뮤지컬이에요. 오페라 자체가 공연 횟수가 많지 않고, 공연 기간도 짧아 쉽게 접하기 힘들거든요. 사전에 알아야 하는 정보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죠. 반면 뮤지컬은 대극장부터 소극장까지 규모도 다양하고 공연도 자주 열리잖아요. 사전지식 없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서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정성진(40대/여/교직)

“시작은 뮤지컬이었어요. 이후에 연극, 창극, 오페라로 장르를 넓혀가게 됐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 두루 보는 편입니다. 스토리와 노래가 있는 공연이면 장르 불문하고 좋아하다 보니, 한 달에 20편정도 공연을 보고 있어요.”

- 이명은(30대/여/IT업)

김선영 프로듀서(가운데)와 세종 시즌제 회원 정성진, 이동원, 이명은(좌측부터 시계방향) 김선영 프로듀서(가운데)와 세종 시즌제 회원 정성진, 이동원, 이명은(좌측부터 시계방향)

여러 장르의 공연을 넘나드는 관객의 행동을 ‘전환행동’으로 명명하고, 클래식 음악 관객과 발레 관객 1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안성아의 「공연 장르 간 전환행동 연구」를 통해서는 각기 다른 경로로 선호 장르가 변화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관객은 발레에 비해 대중음악을 듣다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비율이 높았고, 발레 관객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다가 발레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았다. (중략) 취향 형성 후 선호 장르에 대해서는 클래식 음악 관객은 오페라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고, 발레 관객 중에는 클래식 음악과 현대무용 비율이 높았다. (중략) 각 장르마다 헤비유저일수록 선호하는 장르의 속성과 유사한 공연으로 전환하였고, 라이트유저는 대중적인 공연으로의 전환율이 높았다. 또한 공연의 소비량이 많을수록 다중 카테고리 소비자로 전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 안성아, 「공연 장르 간 전환행동 연구」, 한국문화경제학회 『문화경제연구』 제15권 제3호, 2012.

‘창작진&배우’에 따라 이동하는 장르 교집합 관객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 배우나 창작진, 제작진이 교차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 배우를 쫓아, 또는 저 연출가를 따라 새로운 장르를 탐험하는 장르 교집합 관객의 특징도 이번 좌담 가운데 발견됐다. 최근 몇 년 간 공연예술계에서 이러한 양상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예로 연출가 고선웅을 꼽을 수 있다. 처음 연극 극작 및 연출로 이름을 알린 고선웅이 특히 지난 2, 3년간 연출을 맡은 초연작들은 공연예술계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중이다.

- 2015년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시작>, 뮤지컬 <아리랑>
- 2016년 연극 <산허구리> <곰의 아내> <탈출, 날숨의 시간들>, 오페라<맥베드>
- 2017년 창극 <흥보씨>, 연극 <라 빠르트망>

2015년 뮤지컬 아리랑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시작 2017년 창극 흥보씨
고선웅 연출의 작품들_2015년 뮤지컬 <아리랑>,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시작>, 2017년 창극 <흥보씨>

온라인상에선 고선웅 연출의 연극을 재밌게 본 경험을 기초로, 그가 맡은 뮤지컬 또는 오페라, 창극을 관람했다는 했다는 관객 리뷰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관객이 특정 예술가를 쫓아 다양한 장르 간 이동을 감행(?)하는 경우는 연극-뮤지컬 장르 사이를 오가는 배우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예술가’를 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현상을 소비자의 ‘기호’로 치환해 분석해 볼 필요도 있다.

‘시즌제 패키지’가 불러온 장르 교집합 관객

일정기간 동안 연간 공연 전체를 일괄 공개하는 동시에, 묶음으로 구매할 경우 큰 폭의 할인율을 적용해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시즌제 패키지’는 관객과 극장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은 미리 계획을 세워, 연간 공연 일정과 자신의 스케줄을 맞출 수 있고, 극장은 공연에 대한 사전 홍보 및 마케팅을 통해 일정한 관객을 선점하게 된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공연)이 한눈에 보기 좋게 진열된 매장에서,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환경까지 조성될 때, 소비자(관객)는 자신이 미처 몰랐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품을 그리 어렵지 않게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오페라 공연 티켓이 워낙 비싸서 시즌 패키지로 30~40% 할인만 받아도 다른 장르 공연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구입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덕분에 발레나 연극 공연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어요. 시즌 패키지 구성 중에 외부 단체와 공동제작하거나 대관인 공연들도 일부 포함된 것도 좋았습니다.”

-이동원

“각 공연장 별 시즌제 패키지 티켓으로 공연을 관람해요. 대구오페라페스티벌이나 의정부음악극축제 같은 경우에도 패키지 티켓을 구매하죠. 그래서 극장마다 시즌 패키지를 공개할 때면 조기예매와 시즌 패키지 티켓 중 어느 쪽이 합리적일지 늘 고민하면서 모든 예매 사이트를 다 살펴봐요. 이번 시즌 세종에선 서울시극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오페라단 각각의 패키지 티켓을 구입했어요.”

- 이명은

국내에서 처음 패키지 티켓 제도를 실시한 곳은 LG아트센터이다. 2000년 극장 개관과 함께 패키지 티켓을 선보였고, 이듬해 시즌권 판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시즌제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가장 호응이 높은 ‘자유 패키지’ 외에 지난해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뮤직씨어터 패키지’, 기획공연 전편(11편)에 50% 할인율을 적용한 ‘궁극의 패키지’ 등을 출시했다.

3개의 전속단체를 보유한 국립극장은 2012년부터 시즌제를 시작했다. 지난 2016/2017 시즌에는 ‘프리 패키지’ 외에 재연·초연작을 올리는 특정 연출가에 대한 ‘집중 공략 패키지’, 각 소속단체별 ‘일편단심 패키지’ 등을 선보였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많은 전속단체(9개)를 보유한 세종문화회관은 처음 시즌제를 도입한 지난 2016/2017 시즌, 계절별, 타겟별(어린이·청소년·문화소외계층), 공연장별(대극장·체임버홀·M씨어터), 테마 스페셜(셰익스피어·서울·세종), 예술단 창작 초연 등 다양한 패키지를 내놓았다.

각 극장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연간 공연들을 특정한 때에, 일정기간 동안 동시 노출하는 프로세스 가운데 ‘시즌제 패키지’를 실시하고 있다. 패키지 타입을 나름 유형화해보면 1)단일예술단체중심구성 및 2)다장르(단체)·특정 테마에 따른 ‘공급자 중심’ 구성, 3)일정 수량의 공연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공급자-소비자 합의형’이 국내에 시즌제가 도입된 이래 10여년 사이의 양상으로 보여진다. 한편 최근 5년 사이 제작극장들이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4)축적된 협업을 통해 특정 예술가를 내세우는 등 ‘관객 기호’를 감안한 구성까지 극장 특성과 레퍼토리에 따라 시즌 패키지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진화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예술을 일상으로’ 이끄는 장르 교집합 관객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소비하는, 장르 교집합 관객의 탄생은 ‘소비량이 많을수록 다른 범주로 관심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고, 적극적인 소비자일수록 다양성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비자 행동에 대한 연구에 대한 방증인 동시에, 지난 10여년 사이 여러 극장과 예술단체들이 만들어 온 시즌제 가운데 빚어진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기존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보다 새로운 소비자를 유치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소요 되는 일반 마케팅론은 현 공연예술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입장벽을 높게 느끼는 소비자를 위해 문턱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빈번한 공연 소비 가운데 관심을 넓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관객 대상의 마케팅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장르 교집합 관객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공연 관계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장르로 경계를 넓혀가는 관객에겐 같은 비용으로, 또는 보다 합리적인 금액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연을 선택하는 기회가 마련된다. 이 가운데 쉽게 소비되는 트렌드로서의 공연이 아닌 안정적이고 종합적인 공연 계획과 경험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다 다양한 예술장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은 하나의 개별 장르에서 얻는 그것에 비해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다.

이러한 유익을 위해선, 공연관계자들의 보다 세심한 고민과 노력이 요구된다. 장르 교집합 관객의 취향이나 기호를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군을 제공하는 과정 가운데, 이들 관객이 장벽 너머의 예비 관객까지 자연스럽게 동반할 수 있는 마케팅 장치가 마련된다면 기존 고객의 소비 영역 확대뿐 아니라 신규 고객 창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관객과 관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개별 공연을 소개하는 단순 데이터 이상으로, 빅데이터에 기초한 관객 ‘기호(취향)’를 파악할 수 있는 분석된 정보가 공연관계자를 위해 열려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청사진의 기초모델은 현재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2016년부터 내놓고 있는 공연시장 활성화 및 정책 수립을 위한 공연 소비 행태 리포트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 해 신한카드와 함께 한 데 이어 올해 12월 중에는 BC카드와 함께 ‘카드 및 소셜 빅데이터로 살펴본 공연 트렌드 분석’이 배포될 예정이라고 하니, 소비자들이 여가생활 중 하나로 공연을 어떻게 인식하며 소비하는지, SNS 마케팅의 효과 등에 관한 분석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는 시도와 노력들을 통해 공연예술 시장의 성장 및 관객 저변 확대에 적극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선영
  • 필자소개

    김선영은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월간 <객석> 기자로 무대와 공연 뒤에 얽힌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글을 써 왔다. 현재 문화콘텐츠 기획&컨설팅 전문 회사 GROUND FLOOR X의 콘텐츠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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