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PD는 호기심과 실행력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서 이동하고, 그곳에서 남다른 가치를 발견했다. 중학교와 대학교는 신설된 학교였고, 인턴을 했던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서울돈화문국악당도 새롭게 생긴 곳이었다. 호기심과 실행력으로 낯섦을 즐기는 사람, 창가에 햇살이 잘 드는 돈화문국악당의 카페에서 최민호 PD를 만났다.

좋은 공연 보는 눈을 기르다

누나가 피아노를 전공하고 예원학교에 입학하는 걸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친숙해 보였다. 국악중학교가 처음 생긴다는 말을 듣고는 귀가 솔깃했고, 그곳에 입학 후 처음으로 대금을 손에 쥐었다. 국악고등학교로 진학해 대금을 계속 불었지만, 대학 전공은 예술학을 선택했다. 악기 연주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신 예술학을 이해하는 징검다리로 삼았다. 대학교 전공도 신설된 곳이라 궁금한 것은 직접 찾아서 알아채는 수밖에 없었다.

전공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대학에서 한국예술학을 전공한 이유요? 아티스트를 보고 자란 환경에서 보니 한국의 문화가 소외되는 것이 아쉬웠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 속에 더 깊이 자리매김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막연하지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에 가서도 교수님과 항상 깊게 토론하면서 방법을 모색했어요. 물론 지금도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그때의 논의와 제 다짐은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인턴으로 취직한 곳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었어요.. 개관할 때라 개관 전 프로그램을 세팅하느라 분주했고, 새로운 극장에 맞는 작품을 창작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3개월 동안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지원했는데, 차비를 빼고 밥 사 먹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월급을 받으면서 오직 열정 하나만 믿고 일했던 시기였어요. 이후 정식으로 취업한 곳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였습니다. 이곳에서 창작산실사업(창작팩토리)을 하면서 창작자들을 단계별로 발전시키고 대본 발굴, 쇼케이스 지원, 제작 지원 등을 통해 예술가와 세상을 연결했습니다. 또한 좋은 공연을 선정하고 선별하여 지역의 문예회관으로 내려 보내는 일도 했고요.

소외 지역의 문화 향유 기회를 높이는 국가사업이었다. 문화예술 레퍼토리와 공연들은 안정적인 유통망을 통해 수익을 남기고 소외 지역 주민들은 양질의 문화예술을 관람할 기회를 얻는 윈윈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 일은 웬만히 강한 호기심과 실행력이 없으면 불가했다. 공연이 잘 됐는지 가서 봐야 하는 게 주업이라 전국이 당일 생활권이었다. 몸은 고되었으나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며 문화예술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근거를 키워 나갔다. 5년을 근무하며 대학로 콘서트, 뮤지컬, 국악, 연극, 클래식 등 대부분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일을 하면서 얻은 기쁨이었다. 이를 통해 좋은 공연을 선별하는 눈이 길러졌으니 학습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기획자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직장 생활 6년 차,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댔다. 엄밀히 말하면 창작에 대한 욕구였다. 공연을 관람하며 가장 끌리던 장르가 무용이었는데, 마침 친구가 무용단을 만들어서 작품을 제작한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딱히 무엇을 이루겠다거나 이 일을 통해 평생의 직업을 찾아보자는 마음보다는 호기심과 끌림으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홍은예술창작센터(서울무용센터의 전신)가 처음 개관할 때라 사무실 공간을 지원받고, 1년 반 정도 레지던시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필드(현장)로 나가려고 하니 막막했는데, 그 시간이 직장인에서 사회로 나오기 위한 완충지대가 되었죠.” 그리고 한국공연예술센터 스튜디오를 창작 공간으로 재단장할 때 PM으로 투입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곳에서 다시 직장인으로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찾아서 모험을 떠났으므로 멈추지 않기로 했다. 혼자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가 뜻이 맞는 선배들과 창업을 한 것이다.

해외예술인 초청 워크숍에서 최민호 PD
해외예술인 초청 워크숍에서 최민호 PD

창업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2012년 11월 사업자를 내고, 5명이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모였어요. 이곳에서 무용 관련 프로젝트를 할 때, 무용 팀을 데리고 4주간 콜롬비아의 시골에 위치한 레지던시로 떠났는데 보고타에서도 비행길로 한 시간 들어가는 시골이었어요. 예술과 자연만 있다고 할 정도의 시골에서 예술을 깊이 탐구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그리고 수익을 내야 하니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예술명예교사 사업 등 국가 수주사업도 수행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내도 경상비로 나가게 되니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는 어려웠어요. 공회전이었죠. 창업을 통해서 공연 프로그램과 운영 구조를 같이 봐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힘들었지만 직장 생활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알았기 때문에 인생에서 꼭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단연코, 인생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기회니까요.

가장 멋진 국악을 만나는 곳, 돈화문국악당에 자리를 틀다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으면 지칠 때가 있다.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을 때 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키우면서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아이의 이름은 ‘산해’인데 중국의 고서로 산과 바다의 모든 괴물을 수록해 놓은 책인 <산해경>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내를 회사에 보내고 첫 아이를 전담 육아하고 있을 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개관하는 돈화문국악당에서 기획자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성장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국악이 혁신과 도전을 시도해 보다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기를 원했으므로, 돈화문국악당의 존재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돈화문국악당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창덕궁 앞에 위치한 돈화문국악당은 2016년 9월 1일에 정식 개관한 새로운 형태의 국악전용극장이에요. 지하 1층에 위치한 국악전문공연장은 140석 규모로 ‘여음’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장 한국적인 색채를 띤 공연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돈화문국악당이 국악의 전통과 현대성을 맛볼 수 있고, 새로운 창작이 탄생하는 곳이 되도록 역량을 쏟고 있어요.

10월 ‘국악의 맛’, 11월 ‘미래의 명곡’, 12월 ‘산조시리즈’ 등이 진행됐고, 특히 ‘국악의 맛’은 국립국악원의 단원들이 전통 국악의 참맛을 전하고,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명인이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떠먹여 주듯 친근하고 담백한 해설을 선보였어요. 국악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융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국악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합니다. 개관 후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공연장의 결을 결정짓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고민하고 있어요.

돈화문국악당에 어떤 것들을 넣어서 색깔을 입히려고 하나요? 이곳은 서울의 창덕궁 앞이라는 위치적 상징성과 관광객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라 나들이 나왔다가 국악을 접할 기회가 높은 곳이라는 장점이 있어요. 지금의 국악 시장은 작잖아요. 돈화문국악당에 오면서 전통 예술과 국악이 시장을 확대하고 파이를 키워서 새로운 관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 마음이 작은 물건 하나, 포스터 하나에까지 담겨 있어요. 이제는 초기 세팅을 지나 2단계로 넘어가고 있어요. 제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숙제를 이곳에서 푸는 셈입니다.

그의 인생의 키워드 ‘실행력’이 이곳에서 미친 듯이 발휘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호기심 너머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다. 몰입! 호기심으로 채우고 몰입을 통해 깊이를 더한다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경험으로 시작의 문을 열었던 최민호 총괄PD. 국악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돈화문국악당에서 더 깊게 몰입하며, 그의 삶 2.0이 시작했다.

인생UP데이트

제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힘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실행’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예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만 있어도 한편으로 그 일을 다 할 수도 있지만, 기획자는 예술가와 세상을 연결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필요해요. 호기심을 갖는 것이 사람의 성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획자로 살고 싶다면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고, 예술가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상의 물건을 볼 때, “왜 그럴까?” 고민하는 호기심과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돌진하는 추진력을 가지기를 권합니다.

최민호 프로필
학력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 졸업

주요 경력
- 前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 인턴
- 前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사원
- 前 공연컨설팅그룹 비온뒤 마케팅 팀장
- 前 독립 프로듀서(렉나드댄스프로젝트, 안애순무용단, 고래야 등)
- 前 민 코퍼레이션 대표/엠버스어스 이사
- 現 세종문화회관 돈화문국악당 총괄 PD

주요 활동
- 복권기금 방방곡곡문화공감 사업, 창작팩토리 사업(현 창작산실) 운영
- 렉나드댄스프로젝트(What More, 30년 전, 동지섣달 꽃본 듯이, 홍은예술창작센터 및 콜롬비아, 브라질 레지던시 참가), 안애순무용단(강동아트센터 상주, S는P다, 거기에 쓰여있다, 플레이 굿), 고래야(에든버러 프린지 참가, 벨기에 스핑크스 믹스트 등 유럽 4개국 투어), 벼랑끝날다 ‘음악극 카르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예술 명예교사’ 등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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