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악대는 음악을 통하여 군 장병들의 사기 진작과 정서를 함양하기 위해 편성된 악대를 말한다. 트롬본을 전공한 김호진 소령은 학사장교로 임관 후 20년 동안 군악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간 3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며 위문 공연과 문화 소외 지역의 문화 행사에도 참여했고, 2003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파병되어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이라크 국민에게 군악을 통해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군악대장이 되어 힘차게 음악을 지휘하는 사람, 한결같은 김호진 소령을 만났다.

맑은 소리로 노래하던 소년의 꿈

“이선희 씨의 ‘J에게’를 잘 불렀어요.” 소년이 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어른들은 “호진이는 나중에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칭찬으로 화답했다. 김호진 소령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어버이날 행사, 기념일 등 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고, 음악상을 휩쓸었다. 음악에 자질이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음악을 평생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이고 숙부가 군악대장을 지낸 군인 장교 집안이라, 군대에서 음악을 하는 군악대장이야말로 자신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시절의 꿈을, 단 한 번도 바꾸거나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한길만 걸었다.

김호진 소령은 고등학교 때 악대부에 들어가서 트롬본을 배웠다. 군악대장을 하려면 배우는 게 좋다고 추천을 받았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지만 악기를 정식으로 배운 것은 처음이었다. “악기를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마우스피스를 들고 다니면서 버스에서도 불었다”라는 말처럼, 중저음의 트롬본 소리는 김 소령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몇 년 배웠으니 다른 입시생에 비해서 실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 결국 연습뿐이다. “서울대 부근에 위치한 교회에서 협주단으로 활동할 때 서울대 음대에 다니는 선배들이 와서 가르쳐 줬는데, 선배들을 잡아 놓고 새벽 2시까지 연습했어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전공하면서 꿈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계속 그 꿈을 가지셨네요 단박에 기악과에 입학해서는 오직 악기만 바라보면서 살았어요. 수업 듣고 연습실에 들어가 종일 악기를 연주했고, 유명 오케스트라 객원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죠. 더욱이 군악대장에게는 지휘 실력이 있어야 하므로 지휘 공부도 따로 하면서요. 친구들이 “왜 굳이 군대에 가려고 하냐?”, “같이 유학을 가서 솔리스트 연주자가 되자”라고 자주 말했죠.

그러나 군악대장을 하기로 한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장교로 가고 음악도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때 학사장교에 지원했고 졸업 후에 바로 소위로 임관했다. 다른 친구들이 화려한 불빛에 싸인 도시에서 살아갈 때,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임관한 사람 중에 기악 전공자는 자신뿐이었다.

기악을 전공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군악대에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은 얼마 되지 않아요. 드럼, 기타 등 실용음악을 한 사람들이 많아서 군악대에 오면 직접 연주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군악대는 금관악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트럼펫, 호른, 튜바 등 다른 악기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전공자이니 직접 가르칠 수 있죠. 또한 연주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노력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내와 끈기를 악기를 통해 배웠다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군악대장으로의 성장과 변화

군악대장이 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소위로 임관한 다음 해인 98년 중위일 때, 군악대의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으니 말이다. 기악을 전공했고 지휘까지 공부했으므로 좋은 점수를 얻어 수월하게 합격했다. 그러나 군악대장이 되어 처음 3년간은 너무 힘들었다. 음악적 능력, 리더십, 행정 능력 등 다방면에서 훌륭히 수행해 내기를 요구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악대장은 어쨌든 군인이잖아요. 이 글을 읽는 많은 예비 예술인이 낯설게 느낄 것 같은데요. 군악대장으로서의 업무가 궁금합니다. 사실 군악대장의 하루는 빠듯해요. 보통 군악대는 30인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는데 이 인원의 숙식 등 일상생활을 관리해야 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직접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300회 정도의 행사와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가정의 달 5월과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주말 내내 근무하며 하루도 쉬지 못할 때도 있었죠. 군대뿐만 아니라 전방에 있는 문화 소외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 행사를 펼치기도 합니다.

이라크에서 김호진 소령
이라크에서 김호진 소령

군악대장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었지만 힘에 부치는 순간에 ‘왜 군대에서 음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을 준 계기가 있었다. 바로 자이툰 부대의 파병과 롤모델과의 만남이었다. 2006년 자이툰 부대의 파병은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 군악대가 파병된 것으로 김 소령이 자청해서 가게 됐다.

자이툰 부대로 군악대가 파병되었을 때, 가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6개월간 이라크에 머물면서 공연을 했어요. 부대 안의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도 좋았지만 피폭된 도시를 재건한 뒤에 축제를 열 때 군악대가 했던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음악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그때 살이 20kg이 빠질 정도였는데 매일 공연 프로그램을 짜느라 잠을 설쳐가면서 궁리하고 또 궁리했어요.

꿈꾸던 일도 직접 하면 힘들 수 있죠. 위기를 돌파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행정 업무가 너무 많고 리더십도 발휘해야 한다고 하니 힘들었어요. 군악대장이 연주자보다는 관리자의 역량이 더 크다는 걸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시기였어요. 2003년에 육군본부에 왔을 때 성악전공의 ROTC 출신인 소령님 한 분을 만났어요. 행정 업무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고,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있었죠. 그 뒤부터는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서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평생의 꿈,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김호진 소령은 지금까지 화천, 부산, 창원, 가평, 서울, 대전까지 전국의 각지에 배치되었고, 그때마다 가족을 데리고 함께 삶의 터전을 옮겼다. 지금은 대전에 위치한 육군본부 정훈공보실 문화영상과의 군악지원장교로 있다. 군악지원장교란 군악장교·부사관 선발 및 교육, 행사, 공연예술 지원, 군가 제작, 보급 등으로 군악대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제반 사항을 통솔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평생을 이끄는 삶의 목표가 있다.

2008년 환송 작은음악회에서 김호진 소령
2008년 환송 작은음악회에서 김호진 소령

군대에서 군악대 활동을 하면서 어떤 것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음악 하던 사람들이 군대에 와서 2년 정도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것은 자기 계발에 치명적인 기간이죠. 하지만 많은 음악 전공자들을 군악대에서 수용하기는 규모가 너무 작은 것이 현실입니다. 군악대를 국군체육부대처럼 키워 문화예술부대를 만들고, 연주뿐만 아니라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을 기획, 연출하고 싶어요. 그래서 공연예술 전공자들의 취업 범위를 확대하고 전문성 향상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음악 전공자라서 그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하나씩 바꿔 가야죠.

그는 군악지원장교로서 군가도 제작하고 있는데 “100년 갈 히트작”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웃는다. 군악대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다. 누군가는 평생 하나의 꿈만 꾸고 현실에서 이뤄 버리면 단조롭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참아야 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너무 많은 꿈을 꾸고 쉽게 좌절하는 시대, 한 일(一) 자로 담담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이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인생UP데이트

가끔 대학교의 취업 멘토링 행사에 가서 후배들을 만나 보면 군악대장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가 설명을 듣고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정보를 찾아보면 음악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 기회가 있어요. 군악대처럼 말이죠.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플레이어로서의 인생만 기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돌리면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게 있습니다.

김호진 프로필
학력
-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
-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화관리학과 졸업

주요 경력
- 육군학사장교 소위 임관(1996)
- 前 육군본부 군악대 군악대장
- 前 이라크 자이툰 사단 군악대장
- 前 국방부 군악대대 운영과장
- 現 육군본부 정훈공보실 군악지원장교

주요 활동
- 일본 자위대 국제 음악 페스티벌 지휘(2003)
- 태평양 아시아 국제 관악제 지휘(2004)
- 원주국제따뚜 참가(2004~2005)
- 한·베트남 수교 20주년 초청 공연 참가(2012)
-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식 시민대표 선정(2013)
- 국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愛 콘서트 연출(2015~2016)
- 오만 국제 군악제 참가(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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