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장소에서 직업을 찾고 삶의 터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지역을 닮은 조용하지만 따뜻한 문화예술 기획자로서 현장 중심의 활동으로 지역 공동체와 함께 느리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엿본다.

공공미술과 마주하다

유현우 대표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사실 디자인 회사에 취직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졸업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 시골 마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수도권에 있는 미술 전공 대학생들을 모아서 임시로 공동체를 만들었다.

별다른 홍보는 없었지만, 10여 개의 대학에서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방학을 앞두고 모였다.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지만, 자비를 보태야 하는 상황에서도 많은 친구가 뜻을 같이했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과 강원도에 내려가 열흘 동안 산골 마을에서 지내면서 벽화도 그리고, 그곳 아이들에게 미술 작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강원도 인제군 신월리에서 진행한 <마주보기>란 이름의 첫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이어졌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 보통 상업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생각할 텐데, 공공미술의 어떤 점에 끌리게 된 건가요? 디자인도 예술의 한 영역이잖아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너무 기술적인 부분만 알려 주니까 큰 매력을 못 느꼈죠. 그때 마침 <마주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있고, 그걸 계기로 단체나 기업에서 진행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일을 좀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같이 나누는 것이 즐거웠어요. 저는 개인과의 관계에선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데, 오히려 동네 주민들이나 어르신, 어린이들과 함께할 때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이에요. 이게 제 적성에 맞는 것 같더라고요.

지역 출신이 아닌데, 동해에서 활동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졸업 후에도 <마주보기>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해문화원 사무국장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마주보기> 프로젝트가 모 기업의 사외보에 소개된 적이 있거든요. 그걸 보시고 동해 등대마을에서도 공공미술을 활용한 마을을 조성하는 데 조언을 부탁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래서 저희 팀 몇 명이 2010년 5월쯤 동해로 내려와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 드렸어요. 사실 저희는 조언이나 아이디어만 드리려고 내려왔던 건데, 지역에 이 프로젝트를 소화하고 진행할 만한 활동 작가가 없어서 저희 팀에 작업 진행까지 제안해 주신 거예요. 갑자기 제안받은 거라 고민을 좀 했지만, 스케줄이 맞는 몇 명의 팀원들을 모아서 내려오게 됐고, 그해 11월까지 동해에서 지내면서 <논골담길>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진심을 다하는 게 답이다

벽화 작업을 진행할 때, 지역 주민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전체 프로젝트 기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과정이 서투르게 되고 결과도 좋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온 것처럼 최대한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일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논골담길> 프로젝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작업에 담고 싶었어요. 예전에 묵호라는 곳이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항구였대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지금은 이렇게 낙후된 마을이 되어 버렸는데, 여기 어르신들은 당시 추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세요. 과거에 잘나갔던 곳이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에게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으신 거죠. 그래서 부흥하던 그 시절, 지역 어르신들의 생활 문화와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 이어 가 보자 했고, 그렇게 2013년 <논골담길4>까지 했어요. 20대 후반 열심히 했던 프로젝트예요.

벽화 프로젝트를 지역에서 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시나요? 지역에선 벽화 프로젝트에 과도한 기대감이 있어요. 그런 걸 하면 바로 관광이 활성화되고 가시적 성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획자로서 작가들에게 제안하기 전에, 지역 주민을 만나거나 이야기하는 과정을 가급적 오래 가지려고 해요. 지역에서 벽화 그리는 데 생각보다 반감이 심하거든요. 그래서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늘 고민이 많지만, 결국 진심을 다하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좋은 제안을 하고 좋은 기획을 하는 것보다 우선적인 것은 좋은 마음가짐,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본격적으로 동해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후 진행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전에는 프로젝트를 하면 보통 서너 달을 동해에서 지내면서 작업했어요. 그렇게 동해를 알아 가다 보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4년 전쯤 동해로 내려올 결심을 하고 혼자 정착한 뒤로 작년에 결혼도 했고 지금은 부모님도 이곳으로 이주하셨죠. 제가 2009년에 ‘프로젝트 미터’라는 사업자 개념의 단체를 만들었거든요. 그 단체로 강원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모사업에 선정돼 2014년 <무코동블루스>와 2015년 를 진행했어요. 지역에 청년 기획자들이 많지 않아서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아쉽게도 쉬었지만, 올해 다시 하고 있어요. 레지던스 프로그램 외에 원도심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담고 지역을 닮은 기획자의 삶

이제 8년 차. 경험이 많지도 않지만 이론이나 지식보단 현장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역 문화예술은 아주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데 마을의 일상이나 사람들의 정서를 알지 못하면 기획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더라고요. 때문에 현장을 파악하고 많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제 나름대로 천천히 내실 있게 하자고 생각해요. 저는 지역과 닮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 겉으로만 이해하려는 외부적인 시각이 아닌, 지역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역 활동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하고 계신가요? 지역문화재단 사업이나 활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하진 않아요. 초기 단계라, 지역 기획 매개자나 단체가 많지 않으니, 경력에 비해 지원을 받거나 제안을 해 주시는 경우가 있죠. 사업을 해 보면서 경력과 경험이 생기게 되면 나름대로 지역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수 있어요. 그래도 지역에 와서 느끼는 것은 서울에선 좀 더 조급하거나 어렵게 생각했던 금전적인 부분이나 조건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해결해 볼 생각이에요.

올해 계획은 무엇이 있나요? 현재 문화 공간을 준비 중인데, 아직 이름은 못 정했어요. 지역에서 부족한 전시 콘텐츠를 위한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과 어울리는, 닮은 문화공간이었으면 해요. 당장 어떤 결과나 수익보단 그 공간에서 여러 성격이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 해요. 저는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최근 동해에 사진관 겸 카페, 독립 책방 등 몇몇 문화예술 공간이 생겨났는데, 외지에서 들어오신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과 동해에서 즐겁고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 가려 해요.

처음 지역에 왔을 때는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꿈을 가지면서 뭔가를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인데, 스스로 즐겁고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이 즐기며 하는 기획과 창작이 지역과 잘 어우러질 때, 지역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인생UP데이트

젊은 세대들은 도시에 집중된 삶만이 자신을 발전시킨다는 믿음이 있어 힘든 환경에서도 계속 고민하고 싸우며 방법을 찾으려 하는데, 저는 그 믿음과 열정이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청년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지역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역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는 것은 기획자나 예술가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나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가 던져주는 책무에 대해서만 감당해내려고 하지 말고, 아주 개인적인 삶의 모습에 집중하고 그것을 즐기고 대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현우 프로필
학력
- 서울예술대학 시각디자인 전공

주요 경력
- 現 프로젝트 미터 대표

주요 프로젝트
- 공공예술 프로젝트 <마주보기>
- 묵호-논골담길 프로젝트(2010~2016)
- 중소기업청 춘천 낭만시장 벽화 골목갤러리(2010)
- 경기문화재단 우리동네예술프로젝트 <다리네 예술잔치>(2012)
- 컬러풀묵호 공공미술 프로젝트 1, 2(2013~2014)
- 강원문화재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희희낙락>(2015)
- 강원문화재단 레지던스 프로그램 (2015)
- 강원도산업경제진흥원 북평민속시장 공공미술 프로젝트(2016)
- 강원문화재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티끌>(2016)
- 강원문화재단 레지던스 프로그램 <망상의 나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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