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션 월드와이드(이하 이노션)는 현대자동차그룹 광고 계열사로 글로벌 마케팅 컴퍼니이다. 김재신 국장은 대기업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음대 출신으로, 2017년 1월 국장으로 승진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플루트를 전공한 광고인, 그에게 음악을 전공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강남에 위치한 이노션의 사무실에서 김 국장을 만났다.

음악이 아니라면 나는 뭘 할까?

“피아노는 치기 싫어서 도망 다녔어요. 어머니가 그럼 뭘 배우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플루트라고 답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방송사 문화센터에 다니면서 플루트를 배웠고, 대학교 전공으로 이어졌다. 대학 시절 동아콩쿠르에 나갔는데 예선에서 딱 떨어져 버렸다. “역시 1%만 생존하는구나. 탑이 될 수 없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김재신 국장은 악기를 업으로 삼기에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깨닫고, 악기를 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군장교(ROTC)에 지원한 건, 플루트가 여성적인 악기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으니 학군장교에 가서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도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00년 임관한 ROTC 장교 중에 유일한 음대생이기도 했다.

어떤 계기로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나요? ROTC에 지원해서 타과 친구들과 더 많이 어울렸어요. 그러니 전역 후 취업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더 많아졌죠. ‘왕성하게 활동하는 30, 40대를 지나서 과연 60대에는 무엇을 할까?’ 같은 고민도 하고요. 그때는 3, 4학년이 되어도 진로에 대해서 별로 고민이 없었는데 현실적으로 미래를 빨리 그려 본 거죠. 그런데 ROTC를 하면서 음악을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음악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마침 예술경영 분야가 신설된 걸 알게 됐고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습니다.

음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는데요. 이후 어떤 일을 하셨나요? ROTC 전역 후 대학원에 다니면서 ‘바탕골 예술관’이라는 작은 공연장에서 일했어요. 그곳에서 공연장 청소, 좌석 관리부터 공연기획서 작성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바닥부터 내공을 다지며 실전에서 뛸 수 있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이론과 실전을 병행하면서 해외 문화예술 사이트, 아트매니지먼트 사이트, 페스티벌 사이트를 공부하다 보니 다른 쪽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직접 아티스트를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2003년에 ‘유유클래식(YuYu Classic)’을 설립했습니다. 바비 맥퍼린, 자크 루시에 트리오,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등 클래식과 재즈의 유명 아티스트를 초청하며 입지를 다졌죠. 클래식 공연기획부터 재즈, 크로스오버 등의 수준 높은 연주 단체들의 초청 공연 진행까지 나름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로 인정받았습니다.

음악으로 실패하고 음악으로 일어서다

유유클래식이 5주년 되던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는 태평양을 건너 청년 사업가에게 나비효과처럼 큰 영향을 미쳤다. “유유가 5주년이 되는 해라서 아티스트들을 대거 초청해서 성공의 기반을 다지려고 했죠. 초청할 때 유로화로 계약하는데 금융 위기로 환율이 엄청나게 뛰었어요. 도저히 적자를 견뎌 내기가 힘들었어요.” 이번 위기를 이겨 내면 더 잘될 것이니 힘내라는 응원의 말도 있었지만, 결국 큰 빚을 지고 회사를 접어야 했다.

유유클래식 회사를 접으면서 불안함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곳은 ‘통영국제음악제’입니다. 숙소에서 밤새 회의를 하고 나면 바다 저 너머에서 해가 떴어요. 그러면 조금 있다가 아티스트들을 픽업하러 부산공항, 인천공항, 사천공항으로 뛰어다녀야 했지요. 봄 시즌, 가을 시즌을 준비하며 1년을 보냈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이후, 대원문화재단의 기획팀장, 2013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개폐막식 팀장을 지냈고요.

클래식이 결합된 ‘뮤직앤컬처(Music&Culture)’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컬처 이벤트를 경험했고, 올림픽의 개·폐막식을 진행하면서 메가 이벤트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다. 그리고 일곱 번의 이직 끝에 광고계로 왔다. 현대자동차그룹 광고 계열사인 글로벌 마케팅 컴퍼니 ‘이노션’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주로 대형 행사(BTL:Below the Line, 대면 커뮤니케이션)들을 담당하고 있다.

음악을 하던 사람이 광고계에 와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대기업 광고회사는 가만히 있으면 일을 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입사하고 8개월 동안 일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2년 계약직으로 왔으니 아무리 해도 정규직이 되지 못할 것이라면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죠.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제안서를 들고 끊임없이 클라이언트를 방문하면서 일을 수주했어요. 담배를 피우지도 않으면서 흡연실에서 앉아서 다른 팀의 이야기를 귀동냥했고요. 하루 종일 앉아 있다 보면 다른 팀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었거든요. 기회는 그러면서 잡게 됐습니다.

어떻게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맡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나요? 옆 팀의 동료 부장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프로모션, 메가 이벤트, 컬처 이벤트를 경험한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딱 들어보니 제가 적임자 같아서 찾아가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것이 현대자동차의 ‘브릴리언트 시리즈(Brilliant Series)’ 중 ‘모터페스티벌’이었어요.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몇 년째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신사옥 벽면에 쏜 미디어파사드 현대자동차 신사옥 벽면에 쏜 미디어파사드 브릴리언트 시리즈(Brilliant Series) 중 모터페스티벌 브릴리언트 시리즈(Brilliant Series) 중 모터페스티벌

음악 전공자로 꽃피운 영광의 프로젝트

김재신 국장은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결심했다.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브릴리언트 시리즈’다. 자동차를 체험하고 문화를 즐기는 플랫폼 기반의 브랜드 마케팅 행사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 한가운데에 자동차 경주용 서킷을 만들어 자동차 경주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가족이 함께 즐기는 음악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동시에 이뤄지는 메가 이벤트다.

가을에 벌어지는 행사를 위해서는 봄부터 일사불란하게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업무 강도는 높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한다. 12월 31일의 신년 카운트다운 행사는 원래 소규모로 하던 행사였는데 7차선의 영동대로를 막고 펼치는 대형 행사로 키웠다. 행사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음악 전공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발상의 프로젝트도 있었다.

모바일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는 어떤 내용인가요? 제가 음악 전공자이다 보니 오케스트라를 한번 만들어 봤어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 번도 국가가 울리지 않은 나라’라는 콘셉트로 모바일 오케스트라를 광고로 만들었어요. 지난 30년간 사람들의 손을 거쳐간 삐삐, 휴대폰 등 디바이스의 소리를 활용해서 시상대에서 한 번도 국가가 울리지 않은 나라들의 국가를 연주해 주는 거였어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주요 매체에도 소개되고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도 얻어서 그해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도 수상했으니 영광이었죠.

음악을 전공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음악은 사회생활과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어요. 우선 지휘자를 주목해야 하죠. 지휘자의 손끝에 따라서 연주자들이 움직이는데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 사람이 조금 뻔뻔해져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지 않고 웬만한 건 떨리지 않아요. 광고회사는 수없이 경쟁 프레젠테이션이나 브리핑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험이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섬세함과 꼼꼼함은 광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필수 항목인데 악기를 해서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습니다.

김재신 국장은 광고계의 몇 안 되는 음악 전공자로서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애정을 보였다. 좌절은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왔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면서 일할 정도로 촌각을 다투며 살아야 하지만,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하나 이뤄 가는 성취감이 대단하다. 최고의 것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 그는 오늘도 현장을 지휘한다. 열정적이고 섬세하게.

인생UP데이트

예술을 전공한 모든 사람들이 아티스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과 관련된, 아니 관련되지 않더라도 예술 전공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많은 직장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생각할 시간이 있을 때, 자원봉사나 인턴십을 통해 체험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끔 모교에서 3~4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 캠프에 초청받아 강의를 하곤 하는데, 제가 입학했던 20년 전과 지금 학생들의 상황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조금은 치열하게 살면서 주변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미래는 열려 있으니까요.

김재신 프로필
학력
- 서울시립대학교 음악학과_ 관현악전공(flute)
-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

주요 경력
- 前 (주)유유클래식 대표
- 前 (재)통영국제음악제 공연사업팀장
- 前 (재)대원문화재단 기획팀장
- 前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개폐막식팀장(2013)
- 現 이노션월드와이드 컨텐츠케스트본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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