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일이다. 대학로에 발 들여 놓은 후 16년 동안 동종업계의 동료들과 관계자들에게 요즘처럼 유별난 챙김을 받아 본 적이 없다. 하루에 몇 번씩 안부를 묻는 이가 있고 모임에 꼭 나오라는 당부전화를 받고, 한두 명씩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는다. 두어 달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안 나서고, 전화기를 꺼 놓은 시간도 비교적 많았던 탓인데 난 나름 ‘신비마케팅’이라 했고 주위에선 그 정도면 ‘잠수’라 했다.


이제야 우리가 좀 유난한 것을 몸소 체험한다. 공연계 특히 대학로에 일터를 둔 사람들은 다른 분야 보다 타인에 삶에 껴들기도 좋아하고 타인에 대한 영향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와, 정말이다. 관심에 감사도 하지만 걱정해 주시는 것에 부담도 되니 점점 더 쑥스러운 생각이 크다. ‘언제 이런 관심을 받아 봤어야지 익숙하지...’ 이런 와중에 20-30대 여성 후배 기획자들이 침체되고 표류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니 그들을 위한 따뜻한 격려든 따끔한 질책이든 해 주는 선배로서 칼럼을 메워달라는 웹진 담당자의 얘기에 고개 끄덕끄덕 하는 나의 모습에 그동안에 본인의 오지랖도 만만치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게감 있게 다가올지 자신은 없지만 현재 겪고 있는 나의 ‘가라앉은 시기’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원고를 수락하였다. 원고 덕에 새삼 최근 나의 모습을 바라보니 주위 분들의 관심에 익숙하게 불쌍한 척, 힘든 척, 사연 있는 척 참 ‘~척,~척’ 잘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오랜 시간동안 나는 ‘~척~척 도사’였다. 잘하는 척, 씩씩한 척, 알고 있는 척, 해결할 수 있는 척, 상처 안 받은 척... 그렇게 ‘~척~척’하며 살았다. 남들의 눈보다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하는 무대책이 나 자신을 척척 밀어 붙였다고 하는 것이 맞다.


‘~척~척’도 능력이다. 남보다 책임질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도 많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 없는 것 가리지 않고 동원하게 마련이고 한두 번 어렵게 해결한 뒤엔 그 일이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휴 안 겪어봤으면 말을 말어~~’ 하는 유행어처럼 말이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어느새 성장한 나의 역량을 안팎으로 인정하게 된다. 분야의 특성상 기본역량이 생기게 되면 소위 ‘담당 업무’가 반복된다. 프로젝트는 달라도 담당자에게 주어진 무게는 긴장하게 할 만큼은 아니다. 적당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고 함께하는 협력자 중에 흥미로운 사람들도 생기지만 ‘내가 이걸 하고 싶어 했던가?’ 하는 허전함이 밀려온다. 밤을 새워도 힘들어도 무언가 쌓여가던 때와 달리 많은 시간을 뭔가 특별한 일이 없을까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보내게 되는 때가 찾아온다. 나는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척하는 그래서 어느 땐가 본인에게 생길 그 특별한 일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척 하는 후배들을 만나왔다. 난 대부분 그 지난한 시기를 보내는 후배들을 무엇으로든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을 내는 좋은 선배이고자 했었던 것 같은데 결국은 이해하는 척이었다.

필자가 기획에 참여한 주문진 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 모습



타이밍이 좋았다. 나는 때가 좋았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벌이는 것이 당연한 시기에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가 내가 할 일이고 어디까지가 남이 할 일인지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어떻게든 해결하고 볼 일들 틈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그곳에 내가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맨땅에 헤딩’하면서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었던 사람이다. 아무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도전하는 초기의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비교대상이 없거나 적으니 타인과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는 평가의 경험이 적다는 것이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일이 추진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가 추진 동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가를 생각하니 무조건 해결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된다. 그러다 마침내 낯선 역경에 대한 내성도 강해져서 잠재 해결역량 울트라 짱 ‘척척도사’가 진짜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배짱이 생겨버리는 것은 유의해야 할 부작용이다.


먼저 시작해서 미안하다. 선배들은 마땅히 칭찬받을 만큼 똑똑하고 능력 있고 성실한 후배들을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쑥스러워 한다. 나 좋아 벌렸던 일에 다른 사람들이 높이 평가한다며 치켜세워주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칭찬하는 것이 낯간지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번 원고를 정리하며 ‘후배들에게 보내야 할 질책과 위로’가 가장 크게 나에게 왔음을 알았다. ‘신비마케팅’이던 ‘잠수’라고 부르던 나는 새로운 맨땅을 찾고 있었다. 내가 찾고 싶었던 그 새로운 맨땅들에 먼저 헤딩하고 있는 후배들도 있을 것이다. 난 ‘~척~척’ 도사였으므로 내 방식대로 부딪혀 볼 테니 개의치 말고 그대는 그대의 방식대로 부딪혀라 .

“아직 그것을 시작하지 않은 후배들아~~ 니들이 고생이 많다. 맨땅이 많이 남지 않아 찾기 힘들 테니.”
“찾을 생각도 없었다고?”
“난 찾았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김의숙

필자소개
김의숙은 대학로에서 배포 큰 선배님 덕분에 일찍 독립하여 94년부터 ‘공연기획 이다’를 5년간 운영했으며 우연히 런던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런던시티대학에서 예술경영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주)파임커뮤니케이션즈라는 조직을 거점으로 공연예술에 한 발을 딛고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의, 여행, 사람만나기를 겸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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