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Federation for Asian Cultural Promotion)은 아시아 지역 내의 문화 교류 및 아시아문화 확산을 위해 1981년 설립된 비영리기구이다. 연례총회에서 각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산업 및 교육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시대 문제에 대한 최신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통해 문화예술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올해로 36회를 맞이하는 이번 총회는 지난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총 4일간, 부산문화회관이 주최하고 (사)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가 주관 하여 개최되었다. 2015년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렸던 제33회 총회에 이어 3년 만에 한국에서 진행한 이번 총회는 ‘문화예술산업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2개의 주제강연과 5개의 주제토론을 통해 아시아지역 문화예술 동향 및 문화 교류 활성화를 논의하였다. 공연예술과 관련한 폭넓은 주제를 다룬 이번 총회에는 국내외에서 약 200여명이 참가하였다.

먼저 주제강연에는 송승환 PMC프로덕션의 예술총감독과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스쿨의 대표인 앨런 플레쳐(Alan Fletcher)가 주제강연을 맡았다. 총회의 첫 강연을 맡은 송승환 예술감독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의 스토리텔링과 이를 위해 사용된 기술을 소개하였다. 개막식은 과거로 통하는 동굴을 발견한 다섯 아이의 탐험을 중심으로 고대와 근현대, 미래를 키워드로 삼고 각각의 무대는 ‘평화의 땅’(고대)· ‘아리랑: 시간의 강’(근현대)· ‘모두를 위한 미래’(미래)를 주제로 꾸며졌다. 홀로그램, VR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곳곳에 활용하면서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소통과 사람이라는 주제를 담았다. 실재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천상열차분야지도)와 반딧불이 등은 VR을 이용한 기술로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알렌 플레처는 미국의 작은 휴양지인 아스펜이 어떻게 세계적인 명성의 대규모 음악축제를 만들고 운영하는지 설명하였는데, 공연예술분야 중에서도 특히 클래식음악분야 종사자들이 많은 참가자들의 특성상 높은 관심과 집중도를 보였다.

그리고 5개의 주제토론을 위해 초청한 총 16명의 국내외 연사들은 공연장·음악 축제·문화산업·재원조성에 대해 풍성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4차산업 : 문화산업의 기회, 또는 위기

이번 총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무엇보다 그 내용이 기대되면서도 우려했던 세션이 ‘4차 산업혁명: 문화산업의 기회, 혹은 위기’였다. 주제를 준비하면서 진행된 몇 차례의 회의에서 각 국가들 간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명백하게 공유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션의 서문을 연 것은 이화여자대학교 여운승 교수였다. ‘컴퓨터의 창작 혹은 제작물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사람이 만든 것인가, 기계가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며, 통찰력과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설명하였다. 예술 영역을 ‘인간 고유의 창작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음에도, 현재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사전에 제공된 자료와 원칙을 바탕으로 사람이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창작활동을 할 수 있으며, ‘미(美)’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예술의 기본이 상호이해와 교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창작활동은 인공지능과 컴퓨터 기술을 ‘이용’할 뿐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것으로 전망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큐레이션이 활용되었던 전시 경험을 통해, 이러한 방식이 관람객 맞춤형의 전시를 만들 수 있을지라도 여전히 인간이 할 수 밖에 없는 활동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다수의 큐레이터 스스로는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교육자이자 예술가로 여기며, 자신의 선택활동을 기반으로 예술활동을 펼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로 그는 ‘과연 인간은 왜 위기를 느끼면서 인공지능에게 예술창작활동을 하도록 하는가?’의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며 발표를 마쳤다.

홍콩에서 독립 영상제작자로 활동하는 모리스 라이(Maurice Lai)는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 형식으로서 비디오댄스의 발전을 소개하였다. 과거의 비디오댄스는 공연 실황을 녹화하여 이를 보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 잡아, 그 자체로 서사와 주제를 가지고 있는 비디오댄스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상을 안무가가 보다 효과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전 세계의 알릴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하였다. 영상기술과 인터넷의 발전은 공연예술이 특징 중 하나인 현장성과 일회성을 점점 약화시키며 공연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세션의 마지막은 국민일보 장지영 기자의 ‘4차 산업이 문화예술의 유통과 창작에 미치는 영향과 전망’에 대한 강연으로 마무리되었다. 유통에 있어서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 중계나 영상화 작업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으며, 국내에서도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는 이러한 시도가 공연예술의 유통플랫폼을 확장시키기는 했지만, 과연 이것을 공연관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신작을 제작하기보다 영상물 상영을 선호하는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창작분야에 있어서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였는데, 로봇이 직접 무대 위에 등장한 일본 극단 청년단의 <사요나라>, 독일 코미쉐 오퍼 베를린의 <마이 스퀘어 레이디>, 인공지능이 작곡과 대본을 맡은 영국 뮤지컬 <비욘드 더 펜스>, 홀로그램 뮤지컬 <스쿨 오브 오즈>, 일본의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 등의 작품을 영상과 함께 소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작품이 시도되었는데, 대부분 ‘예술’보다는 ‘기술’이 우선시되는 단발성 시도라는 점에서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변화에 대한 고민과 시도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참가자들에게도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었던 세션이었다고 평가된다.

문화예술의 자금조달 및 후원유치를 위한 노력

또 하나의 인상적인 세션은 마지막 세션이었던 <문화예술의 자금조달 및 후원 유치를 위한 노력>이었다. 본 세션은 필리핀과 대만의 성공적인 자금조달 사례에 이어 호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글로벌 필란스로픽(Global Philanthropic)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인 제퍼 닉(Jaffer Nick)의 강연으로 마무리 되었다. 글로벌 필란스로픽은 싱가포르국립갤러리, 시드니심포니오케스트라, V&A뮤지엄 등 다수의 문화예술단체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이다.

글로벌 필란스로픽(Global Philanthropic)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 제퍼 닉(Jaffer Nick)의 강연 현장 글로벌 필란스로픽(Global Philanthropic)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 제퍼 닉(Jaffer Nick)의 강연 현장
글로벌 필란스로픽(Global Philanthropic)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 제퍼 닉(Jaffer Nick)의 강연 현장

수치를 통해 살펴본 투자자들의 가장 큰 투자요인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직접적인 이익이 아닌 사업(기관)의 비전과 미션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도움의 필요성, 의무감, 영향력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결국 투자자들은 하나의 ‘기관’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을 통해 그들이 속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기관이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수요가 그 기관의 사업과 부합하기 때문에 모금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러한 활동은 공동의 가치관에 기반을 둔다. 결국, 모금은 돈의 문제가 아닌 공동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결국 자금조달을 위해 해야 할 것은 ‘가치’를 제안하는 것이라는 그의 결론에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하며 경청하였다.

이 외에도 그간 소개되지 않았던 아시아지역의 공연장을 살펴보는 <아시아의 숨은 공연장: 몽골, 베트남, 인도>, 한중일 3국의 문화산업을 비교하는 <한중일 문화예술산업의 현황과 과제: 하얼빈, 가나자와, 부산>, 국내외 음악축제의 운영현황과 미래 전략을 살펴본 <음악축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등의 세션도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총회는 ITC강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의 강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제강연을 시작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한국의 두 연사의 강연이 전반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 문화예술산업의 방향성과 과제를 제시해주었다. 또한 예술가나 행정가가 아닌 투자자, 교수진 등이 연사로 참여하며, 사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동시에 참가자들간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는데 기여하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우리 사회, 그리고 문화예술 산업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문화예술산업은 이러한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그 속에서 발전 가능성과 위협을 직시하고 대응해야할 것이다. 30여 년을 넘게 이어온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은 최근 구성원의 고령화와 그에 따른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예술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본 이번 총회가 과거의 세대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대의 연결고리이자 상호 이해를 돕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래본다.

차기 총회는 내년으로 개관 50주년을 맞이하는 필리핀문화센터(Cultural Center of Philippines)의 주최로 2019년 9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 김혜리
  • 필자소개

    김혜리는 ㈜뮤지컬해븐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이후 (재)한국국제교류재단과 (재)고양문화재단을 거쳐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재)부산문화회관에서 국제 업무 및 공연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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