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겠다!”

실천의 근거이자 동기로 그 한마디면 충분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지루한 세상을 향해 재미난 복수를 해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는 서로의 기준을 이해하고 공감해 가는 과정을 쌓아 가며 조금씩 단체로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운영에 참여했던 주요 구성원들은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 열심히 살고 있던 다양한 장르의 독립문화 작가들과 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토론을 통해 결정된 재미난 활동은 개인적으로도 가능한 일보다는 함께하기 때문에 해볼 수 있는 활동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매매특별법 1주년 기념행사 Q&A 성매매특별법 1주년 기념행사 Q&A 문화적 공간 보존에 대한 제안 ‘프로젝트 극장전’ 문화적 공간 보존에 대한 제안 ‘프로젝트 극장전’

라이브 클럽으로 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디든 무대가 되는 축제 같은 해프닝을 만들어 내고, 성매매 집결지를 일시적으로 점거한 후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문화적 경험을 제안하는 일. 사회적 예술로서의 그라피티를 작가들과 함께 생각하고 지역 내에서 실험하는 활동, 지하철역과 같은 공공장소를 일정 기간 동안 문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작업, 철거가 예정된 극장을 대관해 지역의 문화 현장이 보존되어야 할 필요를 찾고 제안을 던지는 전시 등 쉬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옮겨 냈다.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각각의 활동이 진행된 현장은 어느새 우리에게 학교가 되었다. 제안자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가능한 학습의 매력을 알았다.

프로젝트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가 거점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조성했던 공간 운영의 경험도 소중했다. 독립문화공간 ‘아지트’는 투박하기는 했으나 녹음실과 갤러리, 합주실 등의 공간이 지역 작가들에게 무료, 또는 저렴하게 제공되었고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심사와 조건 없이 수용한다는 원칙하에 공간 내에 있던 3개의 게스트룸은 다른 지역의 작가들이 부산을 방문하고 체류하는 통로이자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이었지만 국내 여러 지역을 비롯해 해외에서 찾아온 작가들이 항상 섞여 있었고,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무언가를 도모했다. 학습은 공간에서도 계속되었고, 지역 내에서 새로운 자극을 원했던 사람들은 교류 과정에서 동기 부여의 지점을 꾸준하게 발견해 갔다.

독립문화공간을 운영하며 구체화된 국제 교류는 지역 내 다른 단체 활동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부분과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던 흐름에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대만 등 주된 교류 대상국의 친구들은 독립적인 구조의 운영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끝내 만들어 낸 현실적 대안, 그리고 역할을 찾고 선언하고 실행하는 다양한 전개가 그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기획 실행 인력이 부산에 일정 기간 체류하며 현실적인 지원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교류를 통해 가능한 효과를 체감하면서 더 많은 파트너를 찾고 싶어 리서치 여행을 가기도 했다. 3개월 동안 4개 나라를 돌며 활동 간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제안하는 작업을 했었다. 여행에는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 문화연구자였던 일본 친구1)와 라이브하우스를 운영하던 뮤지션 겸 기획자 홍콩 친구2)가 동행을 했고 리서치 이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결과와 관계를 공유하는 활동3)을 진행했다. 그리고 협력을 통해 가능한 다음 단계를 꾸준하게 논의하고 있다.

1) Kenichiro Egami / art space tetra (Fukuoka, Japan)
2) Ahkok Wong / Hidden Agenda live house (Hong Kong)
3) Kenichiro Egami는 Art Bridge Institute의 필진 중 한 명으로 참여하며 리서치 결과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함

아시아 리서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게더링’ 아시아 리서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게더링’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문화활동가 캠프가 논의를 통해 정리되고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사회 참여 활동을 진행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와 기획자, 연구자 등이 모여 사례 학습과 프로젝트 개발, 개최 장소를 대상으로 한 주제별 리서치, 활동가에게 필요한 지원을 찾고 연계시키는 프로그램 운영, 활동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전시나 공연, 상영 등의 이벤트 프로그램이 캠프 안에서 연례행사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획자 캠프에 대한 경험은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캠프(Asia Producers' Platform Camp)’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4년 동안 참여하며 활동 가치와 비전에 공감했고, 지난 가을 광주 ACC에서 열린 국제포럼 ‘RE-SETTING ASIAN CITIES, Artistic Activities in Urban Communities’에 참여했을 때 지속적인 교류 협력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결심을 조금 더 견고하게 다지기도 했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주체가 여러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참가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형태는 2016년 도쿄의 ‘No Limit 자치구’ 프로젝트 행사에 참여해 관찰하면서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 외에도 필요성을 느낀 계기와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는 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제안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여러 지역의 친구들이 가장 큰 힘이자 근거가 되었다.

문화활동가 캠프의 기본적인 구성에 대한 스케치 문화활동가 캠프의 기본적인 구성에 대한 스케치

캠프와 더불어 현장에 필요한 문화활동가와 문화활동가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현장을 연결하는 형태에 대한 구상도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부분은 꾸준하게 관리운영 전담인력을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예산 확보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의견이 많지만 구체적 필요를 이야기하는 곳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 때문에 현실적인 실행 모델을 조금 더 고민해 볼 계획이다.

문화활동가 현장 매개 프로그램 기본 구성도 문화활동가 현장 매개 프로그램 기본 구성도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는 결심이 조금 늦은 나이에 미술대 진학을 결정하게 했다. 전시 만드는 일로 기획을 시작해 우연인 듯 운명처럼 만난 여러 상황에 몸을 던지면서 역할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닌 결과가 다양한 활동의 경계를 오가는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정확한 소속을 가지고 경력과 관계를 견고하게 다져야 성공한다는 애정 어린 충고를 자주 받기도 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넓고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싶어 불안하고 고단한 생활을 선택했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으니 조금 힘들다고 불평을 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운이 좋았는지 나이가 들어가도 계속 즐거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 긍정의 언어로 다듬어야 겨우 다양한 경험을 가진 묘한 사람, 얼핏 보면 잡다한 배경의 정체 모를 사람일 뿐인데 잊지 못할 만큼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 여전히 기획자로 즐겁게 살고 있다.

받은 친절을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주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기획자로서의 친절이 가장 잘 발현되는 활동 중 하나가 매개와 조율이라고 보고 기획자 노트 원고 청탁을 받은 이후 그것과 연계된 사업을 하나 제안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꺼낸 것이 문화활동가 캠프와 매개 프로그램이다. 가볍게 대화를 하듯이 써도 된다고 들었지만 너무 투박한 제안을 꺼낸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글을 통해 사업의 구체화를 함께 고민해 보자는 연락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지난주 일본에서, 그리고 며칠 전 서울에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이 내용으로 함께 설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봄이니까 설레고 싶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기획자의 소중한 동력이라서 부푸는 기대를 애써 누르지 않았다.

은유 작가의 책에서 읽었던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불을 덮고 죽는다”라는 문장이 기억을 온통 헤집어 놓던 시간이 있었다. 애써 마주하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소환되며 반성과 후회를 근거로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삶의 대부분을 일로 채우고 있는 지금 덮고 갈 가볍고 포근한 이불 한 채를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만들고 나눌지 생각해 봐야겠다. 사람과 세상을 고민하는 문화활동가들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현장과 만나 어떻게 하면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열심히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WHO’S NEXT?
독립 큐레이터 최윤정을 추천한다. 깊고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여러 지역, 여러 연령대의 작가들 사이에서 막강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유쾌하게 일을 진행한다. 넘치는 에너지와 왕성한 호기심도 매력이다.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무조건 기대를 하게 되는 최고의 큐레이터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류성효

  • 류성효
  • 필자소개

    류성효는 미술을 전공하고 전시기획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2003년부터 10년 가까이 부산의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와 독립문화공간 아지트 예술감독으로 활동을 했다. 이후 공연, 축제, 전시 등의 기획활동을 비롯해 리서치와 컨설팅 등의 활동을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Asia Producers’ Platform의 한국 멤버로 참여하며 아시아 교류에 대한 구체적 고민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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