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화창한 계절에 걸맞은 축제의 달이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서울, 서울재즈페스티벌이 모두 5월에 열린다.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로부터 20년,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은 숫자도 많아지고 축제를 즐기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페스티벌은 음악 신(scene)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을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음악 페스티벌을 후원하는 기업과 지자체들은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나. 음악 페스티벌의 전문 인력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 전문가들과 함께한 좌담을 통해 국내 음악 페스티벌의 지금 여기를 짚어봤다.

일시/장소 : 2019. 5. 3.(금) / 예술경영지원센터 회의실
진행 :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 김미소(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상임이사)
김형군(더 텔 테일 하트 대표)
설동준(웹진 편집위원,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임희윤(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한익수(VU엔터테인먼트 대표)

안태호 아티스트, 페스티벌 기획, 언론 등 각자 활동하는 분야가 다른 분들을 모셨다. 페스티벌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들을 들어 보고 음악 축제의 향후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한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한익수 VU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며 모두 여섯 개의 페스티벌을 하고 있다. 대표로서 콘셉트를 잡고, 라인업을 구성하는 등 전반적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예전에는 페스티벌에서 현장 조율 업무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파트너사에 그 업무가 쪼개지고, 주최사는 마케팅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EDM 위주의 페스티벌을 많이 해 왔다. EDM 콘셉트가 많아지는 추세인데,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취지로 ‘스타디움(5TARDIUM)’ 축제를 만들었다. 또 자라섬에서 열리는 ‘레인보우 페스티벌(Rainbow Festivla)’을 9년째 하고 있고, ‘워터밤(WATERBOMB)’이라는 물을 활용하는 페스티벌도 한다. 내일은 코엑스에서 3년째 진행하고 있는 ‘패션 컨퍼런스 팝업 페스티벌’, 연말에는 8년 차 페스티벌인 ‘더파이널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을 하고 있다. 올해는 새로 ‘썸비치’라는 휴양지 콘셉트의 페스티벌을 8월에 론칭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안태호 한익수 대표님은 디제잉을 하면서 축제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한익수 그때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 보니 환경이 척박했다. 친구들이 돈은 안 내고 작업실에 와서 술을 먹으니까 술값을 받던 게 발전해서 클럽이 되었다.(웃음) 홍대에서 클럽을 운영하던 중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에서 서브 콘텐츠, 즉 디제이 파티 등을 하면서 축제에 발을 들이게 됐다.

임희윤 2005년 대중음악 담당 기자가 되어 2006년 펜타포트를 리뷰하면서 페스티벌 취재를 시작했다. 펜타포트나 지산 락 페스티벌의 경우 개근하다시피 매년 참가하고, 여러 차례 해외 취재의 기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이하 SXSW)’ 페스티벌이 앞으로 큰 자양분이 될 것 같고 축제로서도 배울 점이 항상 많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2006년에 갔었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이하 코첼라)’도 인상적이었고, 작년에 다녀온 핀란드 ‘플로우 페스티벌(Flow Festival)’은 북유럽의 코첼라 같았다. 친환경 콘셉트에, 켄드릭 라마부터 재즈 장르까지 포괄하는 라인업 등이 인상적이었다.

김형군 밴드 잠비나이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투어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꽤 많은 페스티벌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페스티벌을 살펴보는 사람, 관찰자라고 해도 좋겠다. 관객보다는 아티스트 입장에서 프로세스를 보게 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네임 밸류가 높은 페스티벌은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더라. 얼마 전에 코첼라에 다녀왔는데, 프로덕션이 세분화 되어있으면서도 굉장히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있었다. 간혹 소통의 부재로 인해 세분화된 프로덕션이 오히려 페스티벌 참여자들과 아티스트들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코첼라의 경우는 각 프로덕션 파트 간의 유기적 결합과 소통이 잘 이루어져, 전체적인 구조를 효율적으로 증강하는 면이 인상적이었다.

김미소 국악을 전공하고 매니지먼트에 관계하다가 축제 쪽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0년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아티스트 발굴 영역에서 일을 시작해, 에이팜(APaM)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잔다리페스타도 거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공에서 만드는 음악 페스티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작년에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이하 피스트레인)’이 만들어지면서 제안을 받아 함께하게 되었다. 피스트레인은 음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하자, 동시대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선택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공공 음악 페스티벌로 강원도와 철원군에서 보조금을 받아 진행된다. 참고로 피스트레인은 올해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상태이다.

설동준 정가악회에서 문화예술 기획을 시작했다가 2016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예술 교육 분야의 일을 주로 하다가 페스티벌 일을 하고 있다. 콘텐츠 측면보다는 원래 했던 일이 예술 단체에서 조직경영을 담당했던 터라, 피스트레인에서도 사무국장으로 행정 구조 세팅을 담당하고 있다.

안태호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음악 축제의 개념부터 확인하고 가자.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음악 페스티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내에는 몇 개 정도의 페스티벌이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임희윤 일단 숫자로만 보자면, 페스티벌은 해가 다르게 많이 생기고 있다. 성격이나 범위도 매우 포괄적이다. 현재 월미도에서는 상인회가 운영하는 `월미도뮤직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일반 대중이 음악 페스티벌을 인식하는 선에서 봤을 때 복수의 무대, 이틀 이상의 운영 기간이란 조건은 무조건 들어갈 것 같다. 이런 조건으로 판단한다면 수십 개의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설동준 페스티벌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는 참여 아티스트들의 라인업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한익수 해외 재즈 페스티벌의 경우 탈장르를 내세우며 R&B까지 다루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들이 즐기는 축제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스티벌 초창기에는 록 음악 위주였지만 이제 세대가 바뀌고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다른 시대가 되었다. 공연 관람 외에 음식도 먹고 돗자리도 깔고 앉는다. 공연과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는 게 중요하다. 콘서트는 아티스트에만 집중하는 방식이라면, 페스티벌은 여기에 다양한 경험을 추가하는 것이다.

김미소 음악 페스티벌에는 세 가지 축이 있다고 본다. 공연기획자들이 주체가 되는 형식, 지자체가 지역 브랜딩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방식, 마지막으로 대형 브랜드들이 광고나 마케팅을 목적으로 만드는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김미소 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상임이사 김미소 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상임이사

안태호 초기에 비해 확실히 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접근이 편안해졌다. 그렇다면 대중음악 산업이나 음악 신(Scene)과의 연결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음반시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라이브 공연이 활성화되었다는 분석을 본 기억이 난다.

임희윤 음원이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면서 이제 LP도 CD도 없고, 무형에 가까운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얼마 전 가수 김창완 선생님을 인터뷰했는데, “음악이 너무 좋아서 편하게 들으려다 보니 디지털 형태의 음악이 보급되었고, 예전의 경험을 대체할 유형의 무엇을 찾게 된 것이다”라고 하시더라. 굿즈 시장도 커지고 있고, 아이돌의 경우 CD가 오히려 더 팔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제 음악을 듣는 건 공기나 수돗물 같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담은 행위가 아니다. 자기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콘서트나 축제에 가서 SNS에 전시하는 상황이 보편화되면서 공연시장이 커지지 않았나 싶다.

한익수 페스티벌 산업이 수차례 바뀌어 왔다. 이전에는 마니아들 위주의 리그였다면, 지금은 투자자들도 산업적으로 체계화되었다. 미디어도, 마켓도 고정 고객들이 있다. 점점 이것이 넓어지는 추세이고, 전자음악 성향이 많아지고 있는 경향이다. 그걸 만든 것은 주변 투자자들이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이전에는 매우 까다로웠는데 최근 2년 정도는 이상하게 섭외가 잘되고 한국에 오려고 하더라.

김미소 산업적 성과를 무엇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지점인 것 같다. 수익성이나 투자자 활성화도 있지만 음악인의 생태계에 관심이 많다. 페스티벌은 아티스트들에게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어느 순간 인디 신(scene)이 비대해지고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면서 뮤지션 수가 무척 많아졌다. 페스티벌이 뮤지션들에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채널인 것은 맞다. 특정 페스티벌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증 과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게 봤을 때 페스티벌 개체 수가 많아지면서 인디 뮤지션이 많아지고 생계를 해결하거나 자기 브랜드를 알리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안태호 국내외 페스티벌 참여가 아티스트의 인지도나 활동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

김형군 상당히 도움이 된다. 해외에 진출하면서 상층에서부터 확산 전략을 짰다. 중요한 페스티벌 위주로 관계자들에게 어필을 했다. 그들의 능력을 이용해 여러 페스티벌에 서고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은 후, 활동을 지속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잠비나이가 코첼라에 간다’, ‘잠비나이가 헬페스트에 간다’는 화제성 덕분에 최소한의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본다. 유명 페스티벌에 참여하면 촬영한 영상이 남고, 매체의 리뷰가 남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관심을 환기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의 노출이 잇따른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조회 수가 몇 만 정도에 그친다면, 잠비나이가 포함된 코첼라의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은 지난해 기준 4,000만 뷰 이상이었다. 코첼라 주간에 공개했던 잠비나이의 CJ아지트 라이브 영상은 3-4일 사이에 10만 뷰를 웃돌았다. 이러한 이력들은 우리가 향후의 행보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누군가에게 노크를 하고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판단하는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90년대 후반 냅스터 이후로 음악 시장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티스트들에게는 그것이 공연시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해외 유명 밴드들이 한국에 공연하러 오는 게 엄청난 이슈였지만, 요즘은 그들이 먼저 한국을 찾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의 해외 진출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본다.

김형군 더 텔 테일 하트 대표 김형군 더 텔 테일 하트 대표

안태호 그런 지점에서 국내 페스티벌의 마켓 효과는 어떤지 궁금하다.

김미소 뮤콘, 에이팜, 잔다리페스타가 그런 역할의 일부를 해 보려고 만든 페스티벌인데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과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마켓이 늘어나고 한국 팀들이 참여하면서 해외 진출의 기회가 증가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에 꾸준히 투어링을 하는 팀은 5팀 내외 정도나 될까, 많지 않은 숫자다. 해외 에이전트나 레이블과 계약하고 활동을 확장하는 게 쉽지 않다. 현재 지원사업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건 항공권 정도고, 해외에서의 협업에 대해서는 제한이 많다. 정책과 재원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설동준 페스티벌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본다면 이 사이사이의 순환에는 한계가 있다. 그 이후는 무엇이냐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디렉터 입장에서 3-4년 하다 보면 괜찮다 싶은 팀은 다 무대에 세우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전체 콘셉트를 바꾸지 않으면 소위 우려먹기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신생 팀이 없다기보다는 플랫폼을 다 돈 이후의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해외시장이 신(Scene)의 층위가 두텁다 보니 진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설동준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웹진 편집위원 설동준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웹진 편집위원

임희윤 오프라인 페어나 마켓, 쇼케이스의 의미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SXSW만 해도 워낙에 규모가 크니까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당장 해외에서 우리나라 인디 팀의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연락해 오는 일이 생긴다. 여러 형식의 플랫폼들 중 오프라인 마켓의 필요성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김미소 마켓으로만 봐도, 국제 교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프라인으로 꼭 만나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안태호 그렇다면 음악 페스티벌의 수익은 좀 어떤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축제에서 수익을 낸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인데.

한익수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 시장이 커졌고, 산업이 성장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페스티벌들 중에서도 수익이 나는 건 절반이 채 되지 않을 거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페스티벌 사업으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안태호앞서 국내 음악 페스티벌이 초기 록 페스티벌 일변도에서 접근성이나 참여가 매우 편안해졌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라인업 전쟁’도 예전에 비해 좀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관객들의 요구와 축제 현장의 대응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임희윤 국내는 피크닉이 큰 이슈다. 데미안 라이스가 서울재즈페스티벌에 3년 연속 나왔는데 한번은 돗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던 무리가 가 나오니 그제야 무대를 보며 ‘아는 노래가 나왔다’고 반색하더라. 음악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장소와 분위기가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라인업에 따라 페스티벌 장소가 조금 멀어도 투덜대며 따라다니곤 했는데, 그것도 달라졌다. ‘울트라 코리아(UMF Korea)’가 잠실 경기장 재정비 문제로 용인 에버랜드로 장소 이전을 발표했더니 장소 접근성에 불편을 토로하는 관객들이 바로 나왔다. 거리 접근성, 분위기 등이 출연진에 비해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한익수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차선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까.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졌다. 아티스트는 40% 정도라면, 그 외의 콘텐츠들의 중요도는 60%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김미소 피스트레인에서도 돗자리 존을 구성할지 말지 치열하게 내부 논의를 거쳤다.(웃음) 이 경향에 발맞출지 말지는 각 페스티벌의 취사선택이지만, 마니아적인 감성과 편안한 관람 문화의 밸런스를 맞추고 서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한익수 푸드 존이나 부대 서비스를 꼭 음악적 스피릿과 연결해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페스티벌에는 너무 여러 부류의 사람이 참여한다. 다양한 음악적 취향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관객이 온다. 만 명이 오면 만 명의 니즈가 발생한다. 이제는 나도 모르게 다른 축제에 갈 때마다 스탠딩 존과 돗자리 존의 구분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살펴보게 된다.(웃음)

안태호 지자체와 보조를 맞춰 페스티벌을 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기획자들이 지자체 행정의 경직성에 답답함을 느낀다는 토로가 적지 않았다.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이 있을 듯한데, 공유를 부탁드린다.

김미소 피스트레인의 경우 신기할 정도로 협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극히 드문 케이스라 이걸 잘 지켜내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페스티벌에서 지자체와 불화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느라 그런 맥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되돌아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피스트레인은 아이템을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을 보고 지자체가 지원한 경우다. 당시 강원도는 올림픽 이슈와 후속 사업 아이템이 절실했다. 정작 행사가 진행되는 철원에서는 ‘왜 이걸 협조하고 공간을 내줘야 하냐’는 식의 완고함이 있었는데, 작년 행사가 잘 되고 나니 지역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해 지원을 늘렸다. 일반적으로 예술감독이 행정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서툰 경우가 많은데, 이걸 소화해 내는 능력이 꽤 중요하다. 지자체와 행정을 아는 사람들이 이 밸런스를 가져가면서 지역과 호흡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관의 질서를 잘 아는 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쌓고 교류하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한익수 피스트레인은 남북 관계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잘 맞물린 사례다. 인천 펜타포트의 경우 인천 개발과 국제화 도시 추진에 맞춰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차원이 있었다. 자라섬의 경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잘 맞아떨어져 센터가 생기고 조직이 제대로 세팅되었다. 지속적인 조직이 없으면 지자체 축제가 자리 잡기 쉽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이나 단체장이 바뀌면서 축제가 없어지거나, 여론 정치로 자리를 유지하려는 찌그러진 행사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익수 VU엔터테인먼트 대표 한익수 VU엔터테인먼트 대표

안태호 기업 파트너십의 경우는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하다.

한익수 기업의 경우 목적이 뚜렷하고 선이 명확하다. 절세 효과가 됐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 됐든, 심지어 카드 회사 포인트를 환원하는 일이 되더라도 축제를 지원할 때 무엇을 얻어 갈지 입장이 분명하다. 기업은 일반적으로 페스티벌 위에 자기들을 위치시켜 오히려 행사 퀄리티를 저하시키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다. 파트너십의 조건이 과다한 경우에는 행사의 취지가 왜곡되어 페스티벌의 중요한 콘셉트를 유지하는 데 혼선이 생길 수 있다.

안태호 지자체나 기업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그렇고, 페스티벌 전체의 콘셉트를 짜고 구현하는 것도 결국 축제를 준비하는 전문 인력들이다. 관람객들 입장에서야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들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들을 섭외하고 일정을 맞춰 넣고 무대의 위와 아래를 준비하는 것도 축제 종사자들이다. 축제기획자들의 훈련이나 공급은 원활한가?

한익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기획자들이 관객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공연기획 전문가였던 사람은 많지 않다. 아티스트가 좋아서 따라다니다 음악 하는 경우도 봤고, 발레 하던 사람이 축제기획자가 되는 경우도 만났다.

김미소 페스티벌에 대한 경험 지식이 쌓인 세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축제 스태프를 알음알음으로 채용하다가 공개 채용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합류하게 됐다. 상근 조직이 적다 보니 몇 개월 단위로 축제 판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프로젝트 베이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단기 인력으로 소모되고 없어지는 것은 문제이다. 하나의 직업군으로, 전문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와 조직을 생각해 봐야 한다.

한익수 배우고 싶은 열정이 가득하다고 해서 아티스트를 맡기거나 바로 일을 할 수는 없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예비 전력이 아니라 바로 달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은 과도기인 것 같다. 페스티벌이 점점 많아지고, 학교에서도 관련 전공들이 나오고 하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세대들이 성장해 갈 것으로 본다.

안태호기억에 남는 특이한 기획자나 페스티벌이 있다면?

임희윤 플로우페스티벌은 부부가 기획 운영하는 페스티벌이다. 원래는 업계 사람들끼리 염증을 느껴 조그맣게 시작한 것이 뜻밖에 커졌다고 한다. 한 분은 음반계·공연계 종사자였고 다른 한 분은 미술 쪽이었다. 3일 차 오후에는 2-5시에 패밀리데이를 운영한다. 놀이 시설도 있고, 구조물을 활용한 미술 체험도 있었다. 그게 끝나면 다시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어른들의 공간이 되지만.(웃음) 기획자 부부에게 아이가 생긴 후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을 고안하다 패밀리데이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김형군 영국 토트네스(Totnes) 마을에서 열리는 ‘씨 체인지 페스티벌(Sea Change Festival)’이 기억난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이 시골 마을에 드리프트라는 이름의 인디펜던트 레코드 숍이 있다. 숍의 오너인 루퍼트란 친구가 가족들과 운영하면서 페스티벌을 만든다. 지역 사람들에게 계속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잠비나이의 소속사인 벨라 유니언을 비롯한 영국 내에 여러 인디 레이블들이 이 페스티벌을 서포트하고 아티스트를 보내고 있다. 로컬 스토어가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한 지지라고 판단한다. 아무튼 축제 때만 되면 조그만 마을이 힙해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안태호 이야기를 갈무리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음악 페스티벌과 관련한 전망이나 혹은 과제가 있다면?

임희윤 좀 엉뚱한 진단일지 모르지만, 작년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라이브 에이드를 간접 경험한 사람이 천만에 육박한다. 당장 올해의 페스티벌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대형 야외 페스티벌은 지산과 펜타가 주관사가 바뀌면서 불안하고 하향세로 가는 추세인데, 두 대표 페스티벌이 어떻게 될지도 주목할 지점이다. EDM 페스티벌 중 문호를 개방한 일렉트로니컬 페스티벌을 여는 과천 서울랜드, 영종도 홀리데이랜드가 열리는 파라다이스시티, 워터밤이 열리는 인천 등 올해 전반적으로 대형 페스티벌의 스코어가 궁금해진다.

한익수 페스티벌 관련 회사끼리 교류가 전혀 없다. 각자 자기 것을 열심히 하며 남의 것을 신경 안 쓰는 아티스트 성향이 있다. 다른 행사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이러다 보니 SM 콘서트와 날짜가 겹치고 울트라와 월디페가 일주일 차이로 열리고, 심지어 날짜가 겹치는 축제도 셋이나 된다. 서로 교류가 되지 않으니 모르는 것이다. 록이나 인디 페스티벌은 서로 교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사람들 간에 커뮤니케이션 테이블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따로 협회가 있는 것도 아니니 협회를 만들어도 좋겠다. 최소한 개최 날짜나 장소를 좀 나누는 계기는 될 거라고 본다.

김미소 중요한 지적이다. 다른 공연예술 신(Scene)에서는 이슈가 있을 때 담합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이곳은 왜 그게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축제에 대한 기초 연구나 데이터 아카이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실제적으로 신 전체에 발전적일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임희윤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언론인으로서는 페스티벌 참여 관객 수가 궁금하다. 해외 페스티벌은 체감하는 관객 수가 다르다. 프레스룸에는 실시간으로 관객 수가 체크되어 통보된다. 글래스톤베리는 10명 단위로까지 체크가 된다고 들었다.

설동준 공공 페스티벌이다 보니 다른 고민들이 생긴다. 공공과 민간이 전문성을 놓고 협업할 때 민간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수익이 많이 나면 보조금은 구조상 보조금 비율을 깎게 된다. 가치가 생겼을 때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환류할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깎아버리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수익을 남기는 페스티벌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지자체는 지역 브랜딩에 몰두하느라 사실상 거버넌스는 없다고 봐야 할 정도다. 진정한 부가가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 안태호
  • 필자소개

    안태호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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