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속 페스티벌을 직접 다녀오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그것을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 대상에 호감과 애정이 생기고, 때로는 그것이 집착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2013년 마케팅을 담당한 브랜드가 ‘페스티벌’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면서 접했던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Tomorrowland festival, 이하 투모로우랜드)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국내에도 페스티벌 문화가 자리 잡던 시점이었고, 사람들은 보다 더 즐겁고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원하고 있었다. 수많은 페스티벌을 리서치하는 도중 투모로우랜드의 애프터 무비를 보게 되었다. 세계 3대 페스티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축제는 다른 어떤 축제보다도 뚜렷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어 내게는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영상을 백 번, 천 번 보면서 이 축제를 더 이상 업무의 연장선상이 아닌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이곳에 참가하고 있다.

2018년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 전경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페이지  2018년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 전경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페이지

투모로우랜드 A to Z

투모로우랜드는 벨기에의 ‘봄(Boom)’이라는 도시에서 매년 7월 20일 전후, 2주 동안 열린다. ‘봄’은 수도인 브뤼셀에서 기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주 규모 100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페스티벌 운영은 네덜란드의 주관사 ID&T가 진행하지만, 성향 자체는 벨기에 지역 중심의 페스티벌에 가깝다.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마치 ‘봄’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1년 365일을 오직 이 페스티벌 기간을 기다리고, 마을을 만들고, 꾸미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관객들과 함께하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투모로우랜드는 지역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고, 마을 초입에는 “우리는 지역 주민을 배려합니다”라는 웰커밍 문구가 붙어 있으며,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창가에 투모로우랜드 국기를 걸어 놓기도 한다. 관객들 역시 지역 주민을 존중하는 분위기이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간은 ‘봄’ 지역 중에서도 축구장 150개의 너비에 해당하는 100헥타르(약 30만 평)를 차지한다. 이곳에 2주간 약 40만 명의 관객들이 군집해, 4박 5일간의 축제를 즐긴다. 현장에는 20여 개의 무대가 마련되고, 참여 아티스트 숫자만 해도 1,000명에 다다른다. 주요 장르는 일렉트로닉으로, 2005년에 시작해 올해로 15년간 이어지는, 전자음악 페스티벌로는 최장수급의 축제이다. 2017년 기준 세계 1위 페스티벌로 뽑혔다.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트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등 세계적으로 쟁쟁한 1, 2위의 페스티벌을 처음으로 넘어선 해였다.

투모로우랜드는 4일간의 페스티벌이 아닌 하나의 1년짜리 커다란 이야기 자체에 가깝다. 많은 페스티벌이 조명, 영상, 음향, 콘셉트 등에서 소위 ‘강-강-강’을 외칠 때, 투모로우랜드는 15년 전 동네 축제 규모일 때부터 스토리 중심의 ‘강-중-약’을 보여 주었다. 당시 라인업 중심의 아티스트 위주였던 페스티벌 시장에서 스토리에 기반한 페스티벌, 페스티벌 자체의 팬덤 생성을 추구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시도를 바탕으로 유튜브의 성장과 함께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투모로우랜드의 다양한 스테이지와 풍경, 스태프들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투모로우랜드의 다양한 스테이지와 풍경, 스태프들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투모로우랜드의 다양한 스테이지와 풍경, 스태프들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투모로우랜드의 다양한 스테이지와 풍경, 스태프들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투모로우랜드의 다양한 스테이지와 풍경, 스태프들 ⓒ 투모로우랜드 페이스북

최근 페스티벌은 무대를 뒤덮는 크기의 LED 화면과 수많은 조명, 음향 시스템으로 무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페스티벌 플레이어들의 경험치도 상당히 높아져, 어지간한 라인업이 아니고서는 티켓 구매를 위해 선뜻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경향이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고, 드러나 보이는 것들을 우선시하는 운영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투모로우 페스티벌이 먼 길을 어렵게 돌아 결국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 포인트들을 전달하고 싶다. 페스티벌 형성 초기부터 약 6-7년간의 무대들을 돌아본다면, 이 축제가 결코 여유로운 상황에서 ‘스토리 중심’의 페스티벌을 만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투모로우랜드는 사람들이 취향을 발견-발전-실현-확신하는 과정을 페스티벌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보여 주고 있다. 취향의 확신 이후에 형성되는 ‘투모로우랜드 팬덤’은 이 축제가 대체 불가능한 축제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Part 1. 취향의 발견

투모로우랜드는 한 해의 스토리 콘셉트를 잡고 그 콘셉트를 바탕으로 커다란 이야기를 만든다. 예를 들면 2018년은 ‘The story of Planaxis’, 2017년은 ‘Amicorum Spectaculum’이었다. 페스티벌이 끝나면 모든 과정이 담긴 한 편의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게시한다. 많은 이들이 이 영상을 시청하면서 지난 축제를 되새기고, 또 가고 싶은 페스티벌로 점찍는다. 이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페스티벌 애프터 무비로서는 흔치 않게 1억 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Part 2. 취향의 발전

애프터 무비를 보고 축제 참가를 결심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티켓팅에 도전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라인업 공개도, 할인도 없는 상황에서 티켓은 1시간 안에 매진된다. 2개월간에 걸친 험난하고 치열한 티켓팅은 많은 이들의 도전 정신을 일깨우며 페스티벌을 ‘꼭 가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마치 솔드아웃을 앞둔 홈쇼핑 상품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이 과정에서 투모로우랜드는 독특하게 ’나라별 쿼터제‘를 도입했다. 티켓 구매 전에 구매를 위한 사전 예약 등록이 필요하고, 이때 각 나라별 IP로 일주일당 10명의 접속자를 선착순으로 선정한다. 선정된 이들에게는 각각 4장의 페스티벌 티켓을 확보해 준다. 이 제도 덕분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은 나라에서도 페스티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200여 개국에서 참여하는 다국적 페스티벌이라는 의의를 가지게 된다.

고난의 티켓팅 이후에 추최 측은 그해 축제의 메인 스테이지와 전체적인 콘셉트를 짐작할 만한 스포를 담은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선정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부터 홈페이지의 작은 글귀까지 섬세하고 위트 있게 작성해 투모로우랜드의 ‘이야기’를 전하며 참가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Part 3. 취향의 실현

온라인에서의 티켓팅과 소통의 과정을 3~4개월간 겪은 후에 참가자는 티켓 역할을 하는 팔찌인 ‘브레이슬릿패키지’를 배송받는다. 이 패키지는 그해의 콘셉트를 실감할 수 있는 최초의 오프라인 단서인데, 팔찌 자체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퀄리티가 매우 높다. 실제 축제 현장에서도 운영진의 디테일한 운영 노하우는 어느 페스티벌 팬들이 오더라도 만족할 만큼 수준이 높은 만듦새를 띠고 있다.

2017년 투모로우랜드 ‘브라이슬렛 패키지’ 2017년 투모로우랜드 ‘브레이슬릿패키지’

Part 4. 취향의 확신

4박 5일간의 페스티벌을 경험 후 관객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그해 나오는 애프터 무비를 끊임없이 돌려보며 다음해를 기약한다. 나 역시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참여한 이 축제를 4년 연속 참여하고 있다. 꾸준한 참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투모로우랜드는 공백기 없이 1년을 치밀하게 기획해 참여자의 취향에 깊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페스티벌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할지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팬덤을 형성한다. 페스티벌의 트렌드가 변화할 때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작은 동네 축제 규모일 때부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속해 결국은 자신들이 트렌드의 선두에 서서 세계 페스티벌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스토리텔링은 화려한 겉포장에 집중하는 요즘의 페스티벌 사이에서 더욱더 돋보이고 있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사랑하며, 영원히 연대하라
Live Today, Love Tomorrow, Unite forever

2018 투모로우랜드 애프터 무비에 등장한 슬로건 ⓒ 투모로우랜드 유투브 계정 2018 투모로우랜드 애프터 무비에 등장한 슬로건 ⓒ 투모로우랜드 유투브 계정

위와 같은 면에서 투모로우랜드는 해마다 크게 성장하거나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매번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해마다 전혀 다른 스토리를 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모로우랜드의 엔딩 무대는 메인 헤드라이너가 장식하는 여타 페스티벌과는 다르다. 그해의 콘셉트를 마무리하는 퍼포먼스를 별도로 준비하는데, 이때 주위를 둘러보면 열에 여섯은 눈물을 흘리거나 글썽이고 있다.

나는 25개국 이상을 여행하면서 온갖 레저와 액티비티를 경험했지만, 투모로우랜드는 마치 오감의 최고치를 동시에 경신하는 느낌이라고 말하곤 한다. 투모로우랜드는 참여자들에게 가슴 벅찬 순간을 매해 선사하는, 강력한 페스티벌이다. 이런 경험을 나누기 위해, 올해도 투모로우랜드를 간다. 축제의 슬로건처럼, 내일을 사랑하고(Love Tomorrow), 영원히 연대하기 위해(Unite forever), 올해는 혼자가 아닌 16명 크루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 이시우
  • 필자소개

    이시우는 9년 차 마케터로, 현재 블랭크코퍼레이션에서 마케팅/기획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8년 전 레드불, 로레알 등 브랜드 에이전시 업무를 하며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경험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였다. 경력 초기의 고민과 경험들이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쳐, 이후 다양한 장소, 국가의 오프라인 행사, 축제 등을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지금은 업이 아닌 취미로 즐기고 있다. 온라인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고객 접점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어 현재도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 현재 4년째 투모로우랜드를 참석하고 있으며, 처음 2명으로 시작해 지금 16명의 친구들과 함께 참석하는 크루를 결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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