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 심사 우대국) 제외 조치부터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 섹션 중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지까지, 2019년 8월의 한일 간 기류는 급속도로 냉각 상태에 빠졌다. 정치적 관계 악화는 곧장 두 나라의 문화예술 교류 행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교류에도 당분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에 공연예술분야 국제 문화교류 전문가인 마루오카 히로미에게 현안에 대해 서면으로 의견을 들어보았다.

-웹진《예술경영》편집팀


웹진《예술경영》은 그동안 기사를 통해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 이하 TPAM)를 비롯해 공연예술 국제 교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마루오카 히로미 이사장님의 한일 간 예술 교류 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일본 사회와 국제 사회를 제 나름대로 관찰하면서, TPAM의 구조와 프로그램을 조금씩 바꿔왔습니다. 그 외에는 국제공연예술교류센터(Pacific Basin Arts Communication, 이하 PARC)에서 사운드라이브도쿄(Sound Live Tokyo)라는 페스티벌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개최하기도 했고, 공연예술 제작자 네트워크 조직인 ‘공연예술제작자오픈네트워크(영문명 Open Network for Performing Arts Management, 약칭 ON-PAM)’의 설립에도 참여해 현재 부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과는 정금형 작가나 정은영 작가 같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가들을 일본에 소개하고, 2014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서 ON-PAM 회의를 개최했으며, 최규석‧박지선 프로듀서를 비롯해 한국, 대만, 호주, 일본의 프로듀서들이 모여 시작한 ‘아시아프로듀서스플랫폼(Asia Producers’s Platform) 캠프’의 지속적인 운영, 고주영 프로듀서가 큐레이션한 TPAM의 공연 프로그램 등, 서울아트마켓(이하 PAMS)에서 만나 추진한 교류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한, 이규석 예술경영지원센터 초대 대표로부터 동아시아 공연예술 국제플랫폼을 운영하는 동료로서, 참고할 만한 소중한 의견을 많이 받았고, 김성희 전 페스티벌 봄, 전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예술감독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국제공연예술교류 전문가로서, 국가 간 문화예술 교류의 의미와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재미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교류를 통해 각 나라 사람들의 이해력과 감수성을 풍요롭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을 테고요. 그리고, 정치적인 대립이나 알력 다툼이 일어나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백업 장치 같은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공공기관들이 일정한 자율성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2016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에 참여한
김민기, 김민정, 무브먼트 당당의 <2016공장의 불빛>Ⓒ히데토 마에자와

과거에 천재지변이나 정치적 이슈 등으로 국제 예술교류가 난항을 겪었던 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한일 관계와 같이 정치적 문제로 교류에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까? 사례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기 상황 전체에 대해 냉정하고 통합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원고 형태로 우정과 연대를 보여주신 데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운 좋게도 저는 재난이나 정치적 문제로 인해 국제 교류가 어려워졌던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한일 관계 문제도, 대화를 어렵게 한다기보다는 보다 깊은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국제 관계와 문화 교류가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령 어느 한 나라의 정부가 역사 인식을 바꾸는 데는 100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예술가라면 단 1초 만에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어긋남을 운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저희의 일이 아닐까요. 따라서, 계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국과 일본 간의 예술 교류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나갈 예정입니다.

2018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에 참여한 
                                    구자혜 연출의 <여기는 당연히, 극장> 공 연장면Ⓒ히데토 마에자와 2018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에 참여한
구자혜 연출의 <여기는 당연히, 극장> 공 연장면Ⓒ히데토 마에자와

현재 한국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공연, 전시, 행사 등이 취소‧연기되는 사례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행사의 경우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현지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주변의 동료 예술가들과 관객(국민)이 이 사태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분위기’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자금으로 ‘일본에 불리’한 주장을 하는 듯한 예술 행위를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분위기’. 분명히 말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최악입니다. 일본에서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한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의 중단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전시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전시 중단에 의해 패전과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인이 마땅히 해야 할 반성과 수렴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공적인 행사는 국민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그 ‘국민감정’이라는 것이, 죄책감이나 열등감의 이면에 존재하는 차별, 배제, 공격이라는 성격의 것이라면, 이를 비판하는 것 역시 공적 행사의 사명입니다. 한편, 저는 일본의 예술가나 예술 애호가 중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가, 예술 애호가들이 일본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점 역시 중대한 문제입니다.

2019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 회의 모습Ⓒ 유리 아마다 2019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 회의 모습Ⓒ 유리 아마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연관되는 부분이 많은 나라입니다. 두 나라 간의 문화예술 교류가 갖는 특수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베트남에서 태어난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는 1987년 발표한 『에밀리 엘(Emily L)』이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말의 공포는 일본에서 일어날 거야. 세계의 파멸, 그건 한국에서 시작돼.” 알코올 중독인 작가의 이 환시적인 예언이 가르쳐주는 것은, 적어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양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양국의 관계가 어떤 수렁에 빠져 있는지, 우리는 그 역사적인 경위를 알고 있지만, 나아가 세계가 위기감을 갖고 이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올해 2019 서울아트마켓(PAMS)에도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일 관계가 10월에는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일본 참여자로서 한국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한국의 공연예술 관계자들과 처음으로 함께 일한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본어 현대연극을 공식적으로 공연했던 때로 기억합니다. 굉장히 긴장했었지만 한국 공연예술 관계자들 모두가 놀라울 정도로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공연예술 관계자가 우호적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같은 공연계 종사자 동료로서, 평화를 기원하는 개인으로서 교류할 수 있었던 점에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 마루오카 히로미
  • 필자소개

    마루오카 히로미(Hiromi Maruoka, 丸岡ひろみ)는 국제공연예술교류센터(PARC) 이사장,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 디렉터, 공연예술제작자네트워크(ON-PAM) 부이사장. 2003년, 포스트메인스트림퍼포밍아츠페스티벌(PPAF)을 창설, PME-ART, 포스드엔터테인먼트(Forced Entertainment), 메종달보네마(MaisonDahlBonnema), 호텔 모던(Hotel Modern) 등을 일본에 소개했다. TPAM과 동시 개최로 IETM 아시아위성회의(2008년, 2011년), 아시아 프로듀서가 모인 ‘공연예술제작자네트워크회의’(2009)를 개최. 2012년에는 페스티벌 ‘사운드 라이브 도쿄’를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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