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예술인 심리상담이 시작된 것은 2014년부터이다. 작년까지 1,750명의 예술인이 심리상담을 받았다.1) 예술 분야 전체 종사자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여건상 1,750명이라는 숫자가 많은 것인지, 혹은 적은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예술인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관심을 갖기 충분한 숫자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션은 ‘예술현장의 자생력 제고’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목표와 과제에 ‘예술인’에 대한 부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예술가 없는 예술 현장은 성립할 수 있는가? 질문 자체가 웃프다. 이번 인터뷰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예술에 대한 정책과 지원 제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정교해지고 있는데, 예술가의 삶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지원 제도가 가시적 결과물로서의 ‘예술 작품’을 향해 있고, 정작 그 토대가 되는 예술가의 존재, 혹은 예술가의 삶에 대한 고려는 특정 기관의 전담 업무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예술 생태계를 말하는 많은 기관과 전략과 보고서는 과연 ‘예술인’을 알고 있는 것인지?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는 격으로 예술 현장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싶었다. 예술인 심리상담이 혹 예술인의 존재와 삶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조현섭 교수를 만났다. 조현섭 교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심리상담 사업을 조직하고, 현장에서 실제로 상담을 진행해온 상담사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통해 예술인을 명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한 것이 예술인이라고 해도 내담자들의 보편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즐 조각을 흩어만 놓은 것은 아니다. 단 몇 개의 조각이라도 예술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앞으로 고민해 봐야 할 과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조현섭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상담을 처음 만들 때,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무엇인가?

예술인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도박, 알코올 등 중독 치료 관련 센터를 전국적으로 구성하는 활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 활동이 계기가 되어 예술인복지재단과 연을 맺었다. 재단에서 예술인 상담을 시작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고민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재원의 한계를 고려할 때, 전국에 물리적인 상담 센터를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독재활센터처럼 상담 외 기능을 부가적으로 제공해야 하는가도 고민이었다. 중독재활센터의 경우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예술인의 경우 당장은 상담 기능만으로 시작해도 되겠다 싶었다. 이런 현실적 조건에서 현재 상담소를 운영하는 상담사와 연계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쪽을 택했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어떤 상담사에게 이 업무를 맡길 것인가였다. 현재 한국에 상담 관련 자격증이 7천 개다. 난립하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정부 공인 자격증 소지자로 제한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보건복지부가 인증하는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소지자2) 이상으로 제한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가장 중요했던 결정이었다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저런 상담사들이 왜 나는 케이스를 받지 못하냐고 아우성을 치는 이권 다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초반 설계 시점에 이런 식의 민원을 개인적으로 꽤 받기도 했었다.

서울(12개소) 경기권(8개소) 충청권(3개소)
그랑조행복찾기 심리상담센터
다움심리상담센터
마음산책심리상담센터
마음의숲심리상담센터
새봄심리상담연구소
세인임상심리연구소
이수심리상담센터
이화심리상담센터
심리상담연구소 함께
임선영 심리상담연구소
새미래심리건강연구소
한국상담임상교육센터
경인심리건강센터
과천임상심리연구소
로뎀심리학습상담센터
세움심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 폭신폭신
심리클리닉 아이진
이든샘가족아동청소년상담소
파크심리상담센터
손애리심리연구소
학습&마음심리상담센터
휴심리상담소
전라권(3개소) 경상권(3개소)
심리건강연구소
최영미마음상담센터
온다라심리교육상담실
강박사심리센터
새미래심리건강연구소
참마음심리상담센터
강원(2개소) 제주(1개소)
지우심리상담센터
심리상담센터아낌
내마음의펭귄

<2019년 현재 예술인 심리상담센터 지정 현황>
출처 : 조현섭(2019). 『예술인 심리상담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 연기예술연구 Vol.15, 141-161

예술인 심리상담의 특징적인 부분이 있는가?

비예술인과의 차이를 꼽자면 심리상담의 주요 내용으로 ‘자기 이해’가 1순위로 꼽힌다는 점이다. 자기 이해 욕구는 비예술인의 경우에도 거의 항상 포함되는 항목이지만, 1순위를 차지하는 내용은 대개 정신건강이다. 그런데 예술인의 경우에는 자기 이해에 대한 욕구가 비예술인에 비해 두드러진다. 그다음이 정신건강, 대인관계, 진로, 가족 문제, 경제문제 순이다. 이런 경향은 연기자를 예로 든다면, 타인의 삶에 정신적으로 몰입해야 하는 것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면서 겪는 혼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직접 관찰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아역 배우가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 연기의 전과 후에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사례가 있다고 알고 있다. 금전적 여유가 있는 영화배우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상담사를 고용해서 역할로 인해 조형된 인격을 원래 자신의 인격으로 되돌려 놓는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야 혼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농담 중에 성형 수술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거울 속 모습이 자기가 아니라는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형성되는 자기 이미지가 있는데, 이게 뒤틀릴 때, 나이지만 내가 아닌 경계 상황에 놓일 때,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심한 경우 이름을 바꿔서 새로운 인격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장르별 특수성이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예술인에게 두드러지는 인격 특성이 있나?

심리학자들이 분류하는 성격 분류에서 좀 특징적인 것이 있기는 하다. 정서 변화가 큰 것과 자기애적 성향이 대표적이다. 이런 성향이 불안 등의 심리적 상태와 연관이 어느 정도 있다. 다만, 이런 성향으로 인해 실제로 예술인이 자살, 약물 등을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닌데, 비예술인에 비해 언론에서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보니 하나의 편견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에 상담에서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과 관련하여 두드러지는 것이 있는가?

예상하다시피 경제문제가 있다. 경제문제는 순위는 낮지만 심각함의 정도로는 극단적인 수준인데, 상담으로 직접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내가 맡았던 경우에도 교통비가 없어서 상담을 받으러 오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인이 되겠다고 독립한 경우였는데, 건강, 생존, 고립 등의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 회복을 중재하였고, 다행히 부모의 지지를 받으면서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를 심리상담으로 직접 다루기 어렵다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불안을 다루는 힘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될 텐데,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불안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특성불안과 상태불안이다. 특성불안은 기질적인 것이고, 상태불안은 일시적인 것이다. 전자는 심리상담으로는 대응이 어렵고 주로 약물치료를 한다. 상태불안의 경우 심리상담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예술인의 경우에는 경제적 상황, 창작의 압박,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과정에서의 혼란 등으로 인한 불안인 경우가 많다.
이런 불안이 나타나는 방식은 다양한데, 예를 들어 연기를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 난독증이 생겨서 대본을 못 읽는 경우가 있었다. 배역을 포기해야 할지, 난독증 상태에서 버텨야 할지 혼자서 갈등하고 있었다. 어떻게 했겠나? 연출과 함께 이 문제를 풀도록 중재를 했다. 연기자의 심리적 압박감에 대해 본인도 경험해 본 연출이었기에 필요한 심리적 지지를 해 주었고, 한 달 정도 경과 후에 난독증이 사라졌다. 돌아보면 이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서 5년이 지났을 때였는데,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성공이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지각이 생기면서 두려움이 몰려온 사례이다.

그러한 불안 상태가 오면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게 보편적인 반응인가?

그런 편이다. 상담을 통해 보는 예술인의 행동반경은 넓지 않다. 쓸 수 있는 돈도 별로 없고, 인지도 등 사회적 지위에서도 내세울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또 친구들의 경우 직장을 다니면서 승진도 하고 뭔가 상승하는 것을 보는데, 자신의 경우 그런 전망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결국, 가족 관계도 나빠지고, 사회적 관계로부터 총체적인 고립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 외에 사회적 무력감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블랙리스트 사태의 경우 직접 피해자가 아니라도, 정부의 대응과 조치를 보면서 분노 혹은 무력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예술인 심리상담에서 드러나기도 하는가?

내 상담 사례에서는 없었고, 전국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상담사들이 매년 2차례 모이는 점검 자리에서도 콕 짚어 블랙리스트가 언급되는 경우는 없었다. 혹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불안함에 대해 말을 하지, 사건 자체는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문제는 블랙리스트 사건 같은 경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데, 한번 트라우마가 되면 치료도 어렵고 평생을 지배하는 악영향이 된다. 비극적인 일이다.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한 언급도 상담 현장에서 이루어지기도 하는가?

내 경우에는 몇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확신할 수도 있었다. 구조적인 특수성이 성폭력 사건을 더 빈발하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상담 초반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신뢰 관계가 구축되고 나면 많은 경우 미투 문제를 호소한다.
솔직히 이 문제는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아주 강력한 법적 처벌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숱한 캠페인으로도 개선되지 않았던 공공장소 흡연 문제도 결국, 벌금을 위시한 법으로 개선되었다. 관계 안에서 해결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담 중에 미투 사건이 드러나면 법적 조치로 연계를 하는가?

두 번 신고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본인에게 신고 및 해결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본인 의사가 없다면 어찌할 수 없다. 미투 상담의 경우 대부분 총체적 무력감, 우울불안 등의 증상으로 찾아오지만,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결국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성폭력 상담으로 진행 내용을 전환하게 되고, 증거 수집, 신고 의사 등에 대해 중재하게 된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저항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자기를 문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무력감과 우울감의 원인이 된다. 살기 위해 어떻게든 이해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으니 결국,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는 이렇게 힘든데,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모습을 접하게 되면 다시금 혼란과 분노, 우울 등이 심화된다. 3년 전 즈음에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 긴급상담으로 찾아온 사례였는데, 가해자의 유명세가 더해질 때마다 정신적 충격이 재발했다.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긴급상담 방식으로 찾아오고 있다.

상담의 역할과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예술인 상담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심리적 위기 상황 극복을 돕는 것이 표면적인 목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담을 통한 창작 활동 지원을 추구한다. 다만 심리상담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어려운 것이 한계다. 그래서 창작 작업을 진행 중인 그룹 전체가 집단 상담의 형태로 신청하는 사례가 있기를 바랐었고, 홍보도 했었다. 최근에 실제로 이런 사례가 하나 생겼다. 정서적으로 꽤 무거운 작품을 창작 중인 극단 전체가 상담을 신청한 사례인데, 이 경우를 통해 창작 과정 안에서의 관계 이슈나,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의 다이내믹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상담이 실제로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 기대하는데, 아직 완료된 사례는 아니라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정신건강이라는 포괄적인 측면에서 보면 초반에 언급한 중독재활센터처럼 다면적 지원이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현재 예술인 심리상담으로 충분한 것이 맞는가?

사실 장기적으로는 사회복지사를 포함한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예산의 문제와 복지재단의 업무 조정 문제 등이 얽혀 있다고 본다. 실례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심리지원센터’ 같은 경우에는 심리상담사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의 전문가 그룹이 함께 작업을 하면서 통합적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런 모델로의 이동이 필요하다.

조현섭 교수와의 대화에서는 현장의 사례, 학술적 의견 등 다양한 얘기가 오갔다. 2019년 8월 발표된 <예술인 심리상담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에서도 본 인터뷰와 관련한 자료가 자세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남성 예술인의 경우 심리상담 신청 자체가 적은 편이며, 극단적 상태에 이르러서야 도움을 호소한다는 대목 등이 눈에 띈다.

그 외 고립의 문제가 커뮤니티, 네트워크 등 예술 생태계에서 왕왕 거론되는 키워드와 관련해서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할 주제라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술 지원 제도가 ‘작품’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고, 그 토대가 되는 예술가의 삶에 대한 이해는 상상적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본 인터뷰도 한계가 많은 시도이긴 하지만,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업을 비롯한 예술 생태계의 다양한 논의에서 예술가는 누구이며, 예술가의 삶을 무엇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성찰이 더해지길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1) 조현섭(2019). 『예술인 심리상담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 연기예술연구 Vol.15, 141-161
2) 현재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소지자는 1천 5백 명 정도이고, 상담소를 개소한 숫자는 이보다 적다.

  • 설동준
  • 필자소개

    설동준은 학부 때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후 아무 관련 없는 예술 분야에서 프리랜서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서른 살에 국악 단체에서 기획 및 단체경영 업무로 예술업에 발을 들였고, 예술, 과학기술, 신학 등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공학을 전공하면서 사람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문화, 인력양성, 문화예술교육 영역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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