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에 쏠리는 관심

한국은 지금 문화도시 열병을 앓고 있다. 2018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10개의 도시를 문화도시로 예비 선정한 이후,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기 위한 예비 도시들의 노력이 치열하다. 이뿐만 아니다. 올해 2차 예비도시에는 25개 지자체가 신청을 했고, 추가로 30여 개 도시가 문화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숫자는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화도시는 지역문화진흥법 제4장에 근거한 법정도시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바탕으로 향후 5년간 꾸려갈 문화도시 조성 계획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하면 평가와 컨설팅 그리고 심의를 거쳐 예비도시로 지정한다. 이후 1년간 예비사업 수행 후 최종 심의를 통과하면 법정 문화도시로 최대 200억의 사업비를 지원받게 된다. 법정 문화도시라는 지위, 200억 원이라는 사업비, 거버넌스와 시민 협력을 중요시하는 체계적인 과정 설계 등이 문화도시 사업에 쏠리는 관심의 이유로 꼽힌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는 시민들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당연명제를 현실화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각자가 꿈꾸는 행복의 가치척도 역시 제각각임은 당연한 일이다. 도시가(시민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이런 시민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여건과 환경을 갖춘다는 의미가 아닐까? 문화도시는 어쩌면 법정 지정된다는 결과로서의 의미보다는 개인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게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로서의 가치가 크다. 행복이란 개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거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총체가 문화이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문화도시를 고민하는 데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다.

제1차 문화도시 예시사업 추진도시 제1차 문화도시 예시사업 추진도시

문화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지역에서의 삶을 꿈꾸고 시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무엇이 좋아 대도시의 편리를 버리고 불편을 감내하며 지역살이를 준비하는가? 그 이유를 들춰 보면 문화도시의 지향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살이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쁘고 빠듯하기만 한 일상을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을 갖추는 것, 자신을 위한 시간의 투자가 가능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지역살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 삶의 전환을 도모하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본능의 발현이라고 할 때, 행복의 실현을 위해 전환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삶의 전환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가치의 전환이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기준이 바로 서야 진정한 삶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문화도시의 지향점과 구체적 내용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부의 축적만을 목표 삼지 않고, 누구나 일할 수 있는(먹고 살 만한) 일자리가 있는 도시. 일은 각각의 취미와 능력에 맞춰 있으며, 노동의 강도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준이 아닌 적절한 정도를 갖춘 도시.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서면 쾌적한 환경과 자연이 있고 마을을 돌아보면 어디든 유물이 있고 일상이 놀이가 되는 도시.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해 배움과 학습이 제공되고, 함께 나누며 서로 보듬는 질서가 자리 잡고 있는 그런 마을과 이를 즐기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문화도시의 실체가 아닐까?

물론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전제조건과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한 문화도시의 미래상에 대해 공유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정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각각의 제안된 실천사업이 잘 돌아갈 수 있는 민관 거버넌스 체계도 갖추어야 한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정책 영역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시민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당연하게도, 과거의 방식처럼 정책사업으로서 문화도시를 가져오겠다는 생각으로 탑다운 방식의 일방향적인 접근은 곤란하다.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사업 중심의 접근을 멈춰야 한다. 다소 추상적일지라도 어떠한 문화도시를 함께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지향점을 공유해야 한다.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도시의 미래상을 꿈꾸며 장기적 도시발전 전략으로서의 문화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도시를 구성하고 살아온 시민들의 관점에서 역사적 맥락과 생태계 중심의 관계성을 기저에 두고 함께할 과제를 도출하고 운영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광의의 문화도시가 문화예술 영역에서만 가능할 리 없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문화도시에는 도시의 모든 요소가 필요하다. 경제, 복지, 교통, 환경,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가 문화예술과 협력하고 도시를 재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화도시 정책 비전과 목표>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문화도시 정책 비전과 목표>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문화도시 사업의 의미와 과제

어찌 보면 다소 원론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향이 뚜렷하지 않은 결과가 있을 수는 없다. 문화도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다양하게 접하게 된 문화도시에 대한 기대와 현장 경험을 토대로 현재 진행 중인 정책사업으로서의 문화도시 사업의 의미와 과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문화도시 사업은 그 과정에서 분권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지금껏 대부분의 중앙정부 주도의 지원-정책사업들은 의미와 방향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책사업 설계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과 현장의 이야기를 수렴하는 절차가 존재했지만, 지역의 필요와 의지가 더 크게 반영되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도시 사업 역시 지금까지는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지역의 과제를 도출하고 도시의 미래상을 설계하면 이를 중앙정부가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상향식 정책수행의 의미를 가진다.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지역에서는 저마다의 고민을 토대로 도시의 미래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합의해 가며 비전을 설계한다.(문화도시 심의 과정에서는 이 과정이 얼마나 충실히 진행되었는가가 매우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아직 이 과정 자체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지역으로부터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업에 비해 분권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물론 현장에서의 의견은 너무 촘촘히 제시된 가이드라인이 지역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향후 현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수정 발전 시켜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예술지원, 여가문화, 문화복지 등 파편적으로 이야기되던 문화 담론들이 도시 차원의 의제로 상정되고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문화가 곧 삶이고 보면 도시 담론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논의는 큰 의미를 가진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도시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진단하며 논의가 확장되는 모습은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현장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자치 관점이다. 문화도시 지정 준비 과정에서 분권과 자치에 대한 실마리를 구해볼 수도 있다. 청주시의 경우 ‘문화10만인클럽’을 통해 약 3만 6천여 명의 구성원들이 실질적인 문화분야 참여예산제를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서귀포시는 마을 단위로 ‘문화도시 라운드테이블’을 열어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찾고 주민 주도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포항시 역시 민간과 현장의 필요에 의해 문화공영개발 논의를 시민과 함께 계획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양하게 시민 주도형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렇듯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현장의 움직임은 시민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시민력을 만들어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로 나아가는 데 분명히 기여하고 있다.
아직은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보면,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과거처럼 성과를 중시하는 도시 특화방안을 넘어, 의미 있는 실험들이 지역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도록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서귀포시 <문화도시 라운드테이블>(좌)와 포항시 <문화도시 콜로키움>(우) 개최모습 출처: 서귀포시·포항시 공식블로그 서귀포시 <문화도시 라운드테이블>(좌)와 포항시 <문화도시 콜로키움>(우) 개최모습 출처: 서귀포시·포항시 공식블로그
서귀포시 <문화도시 라운드테이블>(좌)와 포항시 <문화도시 콜로키움>(우) 개최모습
출처: 서귀포시·포항시 공식블로그

위에서 언급한 의미 외에도 문화 분권과 자치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 여전히 문화도시로 진입하기조차 어려운 소규모 시·군 단위에 대한 대응 방안, 문화분권 차원에서 시민들의 역할 구분과 참여 방식들이 그것이다.
현재 문화도시는 행정 단위로 신청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자칫 도시 간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향후 문화권 단위 신청이나 협력 관계로 풀어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예비 문화도시 지정 권한을 지역으로 이관하거나, 예비 문화도시 수를 확대해 더 많은 주체들이 지역 간 연계 협력을 준비하고 경험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중앙과 지역정부 차원에서도 문화도시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문화도시센터 운영을 실체화해야 할 것이다.

아직 문화도시는 초기 단계이고, 수정하고 보완해 나갈 시간은 충분하다. 1년 차 정책에 대한 성과와 의미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더 많은 도시가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 많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가깝게는 이러한 사항들을 현재 추진 중인 2기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에 반영해 볼 만하다. 물론, 이 많은 과제들은 정부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문화도시를 둘러싼 현장검토단, 컨설팅단, 심의위원 등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함께 준비해 온 현장의 시민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권순석
  • 필자소개

    권순석은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이자 (사)한국문화의집 협회 상임이사, 생활문화센터 컨설턴트이다. 전 춘천마임축제 운영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역문화재단 문화기관 단체를 대상으로 연구, 교육,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축제 기획 평가 컨설팅과 문화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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