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보다는 건설 산업계에 몸담으며 공간을 계획하는 일을 하고 있는 터라, 사실은 어떤 이야기를 무슨 말로 시작할지 망설였다. 일단 패는 무를 수 없으니 묻고 더블로 가야겠다. 5년간 50조 500곳이라는 후덜덜한 물량으로 쾌속 중인 국토부 도시재생뉴딜 사업 외에도 농림부에서 진행 중인 각종 농촌지역개발사업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산림청 등의 중앙정부에서 무수히 지역개발(재생,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들은 공모 기관은 다르지만 공공사업이라는 측면과 주민 참여가 결부된 사업이라는 부분에서 유사하다. 위 부처들에서 추진 중인 크고 작은 사업의 초기 단계부터 진행되는 과정에서 용역사로 참여해 왔다. 어쩌다 올라탄 설국열차 안에서 고민한 지점들을 늘어놓으려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또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다양한 지역개발 사업들 중에서도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실행도 함께하고 운영 관리까지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 유형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담아야 되는 입장인 나도 쉽지 않지만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도 만들고 마을기업까지 인증받고 그렇게 열차에 탑승한다. “정말로 주민 주도 사업이 가능한가?” 묻는다면 세모다. ‘참여’는 가능하지만 ‘주도‘를 하기는 경제권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비는 각 지자체에서 쥐고 있어 용돈을 타 쓰는 구조와 같다. 사업의 참여 범위도 제한적이다. 계획 단계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역량 강화 사업에 참여하고 소규모 실행 사업까진 함께할 수 있지만, 건물이 지어지고 굵직굵직한 단위 사업들이 만들어지는 조성 단계로 오면서는 주민들과의 거리가 점차 멀어진다.

광주 송정동에서 참여자 모집을 위해 진행한 도시재생 현장 홍보부스 광주 송정동에서 참여자 모집을 위해 진행한 도시재생 현장 홍보부스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 주민 워크숍 현장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 주민 워크숍 현장

2019년 10월 기준 국토부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 중인 사업지는 총 311곳이다. 숫자 자체도 놀랍지만, 그중 직간접적으로 내가 발을 담근 현장이 6곳이 되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사업비를 확보하기 위해 당시에 사회적 경제를 버무리는 과정에서 A4에 적어갔던 마을기업도 지금은 현실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국토부 도시재생 사업은 아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사업지에서는 마을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시설을 만들고,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최종적으로 마을기업을 만드는 미션을 수행 중이다. 주민들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법인 설립을 지원하는 과정은 고행에 가깝다. 지난 5년간 회사를 운영해오며 굴리는 공은 커졌지만 여전히 힘들다. 예전보다 지역사업을 계획하는 일들이 조심스럽다.

공공사업에서 행정메커니즘의 이해

공공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관심이 생긴 부분이다. 공공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왜 이렇게 안 될까?‘, ’왜 이렇게 될까?‘ 같은 의문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사업 추진 단계에서 간극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 가령 어떤 사업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만들어서 마을기업 사업장으로 운영한다고 해보자. 이 같은 경우가 공공사업에서 실현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해당 시설을 만들 건물에 대한 부지 매입이 필요하다. 부지 매입을 위해 토지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가 선행된다. 그다음 행정기관과 소유주가 선정한 2~3개 감정평가 기관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소유주와 매매 협의를 진행한다. 위 절차까지 적절한 부지를 검토하고 감정평가를 할 대상 건물들을 한데 모아 감정평가 기관에 발주를 위한 기간과 업무가 수반된다. 그 후 계약을 하고 해당 지자체로 소유권을 이전해야 건물에 대한 설계가 진행되며, 설계를 마치고 공사가 진행된다. 물론 설계와 공사발주는 계약 심사를 걸쳐 나라장터에 공고되고 선정된 업체가 진행하게 된다. 아직 행정재산 위탁관리에 따른 마을기업 위탁계약은 차례가 오지도 않았다.

행정-주민-민간-공기업-전문가-용역사 등등 최소 3인 4각으로 진행되는 공공사업에서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 특히 복합 커뮤니티 센터 등 하나의 단위사업이 아닌 복잡한 구조의 종합개발사업은 더더욱 그렇다. 도시재생 사업비 집행률이 30%밖에 되지 않는다는 기사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기다리다 지쳐 설국열차에서 내린 주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복합 문화센터나 공공 임대주택 등 공공 영역에 가까운 단일 사업 위주로 간소화해서 추진하면서 경제 활성화 등 민첩한 대응이 필요한 사업들은 민간의 영역에 넘겨주는 것이 어떨까 한다. 현재 진행되는 다양한 공공사업에서 부지 매입에 대한 비율은 총 사업비의 30% 등으로 제한을 두고 있지만, 오히려 미래 세대를 위해 토지와 건물을 확보를 우선적으로 하는 것도 제안해 보고 싶다.

그래도 하나씩만 더 해보자

요즘 주민 참여형 공공사업에서 주민을 모으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모으기보다는 모시기란 표현이 어울린다. 동일한 지자체에서 유사한 사업이 반복되면서 기대감과 회의감이 동시에 주민들 사이에 퍼졌다. 초기에 관심을 갖던 주민은 떨어져 나갔거나 새로 생긴 중간 지원 조직에서 한글과 엑셀을 만지기도 한다.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함께 진행하는 업무가 수반된다. 농림부의 사업 유형 중에는 기본계획 수립 6개월에 사업 종료 시까지의 약 3년간 역량강화(SW)의 일들을 한데 묶어 발주하기도 한다. 주민들과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심정으로 뿌린 씨앗들을 하나씩 거두고 있다.

빈집 철거 안내판 빈집 철거 안내판
빈집 철거 안내판
마을회관 공동 청소함 마을회관 공동 청소함
마을회관 공동 청소함

주민들과는 대개 주민센터 2층 다목적회의실이란 이름의 공간에서 마주하게 된다. 동네를 같이 바꾸어보자고 만나는 자리이기에 만나는 공간부터 바꿔보자 생각했다. ‘안전’을 주제로 한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라, 첫 만남 때 이케아 노란색 샤워커튼을 테이블에 덮어봤다. 다음 만남엔 다과로 바나나와 오렌지 주스를 노란색 종이컵과 함께 준비했다. 증빙에 필요한 방명록 딱판에는 반사 테이프를 붙이면서 하나씩 더해갔다. 다른 사업에서는 빈집 철거가 2월에 완료된다더니 이제 4월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이냐는 원성에 철거 대상인 빈집들 앞에 철거 예정일 문구와 함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해 주세요”라고 함께 적은 안내판을 놓았다. 날선 감정이 깎이길 바라면서. 사업에 선정되어도 사업비가 집행되고 실제로 건물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주민들 입장에서 너무나도 길기에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만드는 것들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시간 서울100 프로젝트를 해오며 고민했던 커뮤니티 디자인을 조금씩 녹여내고 있다.

적다 보면 정리도 되겠지 하며 시작한 글쓰기가 밑장 빼기가 된 것 같아 머쓱한 기분만 맴돈다. 각자의 상황에서 하나씩 더하고 있는 경험과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와 밀도 높은 대화를 고대하며 고대웅에게 바통을 넘긴다.


WHO’S NEXT?
R3028 고대웅 작가를 추천한다. 일면식 이후 한동안 마주하진 못했지만 을지로에서 그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행보를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다. 을지로가 지닌 흔적과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과 만들어 가는 그 친구의 힙지로 라이프가 궁금하다

  • 장시형
  • 필자소개

    정성빈은 한국에서 조경을 네덜란드에서 도시건축을 전공했다. 2014년 서울100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마이너스플러스백(Miners+100)이라는 사무소를 만들었다. 플래너(Planer)와 플레이어(Player) 사이를 오가며 공공에서 진행하는 지역개발(재생)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익숙한 일과 익숙하진 않지만 해볼 수 있는 일들을 지속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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