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타스 슈틸리케(Felizitas Stilleke)는 베를린 공연예술 종사자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LAFT Berlin(Landesverband freie darstellende Künste Berlin, 이하 LAFT Berlin)의 멤버이자 프리랜서 드라마터그다. 2019년까지 베를린공연예술제(Performing Arts Festival Berlin)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4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파보리텐 연극제(NRW Theaterfestival FAVORITEN)의 공동 큐레이터, 2017년 임풀스 축제(Impulse Festival)의 드라마 어드바이저를 역임했다. 10월에 개최된 서울아트마켓(PAMS)에 방문한 펠리시타스 슈틸리케와의 인터뷰를 통해 LAFT Berlin의 미션과 비전, 운영 방식에 대해 물었다.

LAFT Berlin은 베를린의 예술가 및 공연 관계자들이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단체로 알고 있다. 어떠한 미션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독일은 각 주마다 독립적인 예술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LAFT Berlin은 2007년 베를린에서 조직된 비영리 단체다. 멤버십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극장, 예술단체, 독립예술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회비 외에 이사회와 회원들의 무급 봉사를 통해 유지해오고 있다. 우리의 주요 목표는 독립 공연예술 커뮤니티를 위한 견고한 네트워크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교류를 돕고, 베를린 공연 신(scene)의 정보를 공유하며,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과 사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LAFT Berlin이 다른 조직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연 관계자들이 연합해 국제적이고 정치적인 협력을 하고 있다.

예술가 간의 교류 외에도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단체 내에서 운영되는 주요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가?

LAFT Berlin은 워킹그룹, 멘토링 프로그램, 축제 플랫폼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은 멤버들이 관심사에 따라 워킹그룹 활동을 할 것을 독려한다. 공연예술계의 동향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워킹그룹은 각자에 관심사에 따라 기금, 문화정책, 청소년극 등으로 나눠져 있다. 워킹그룹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타 멤버들에게도 공유한다. 예를 들자면, 리허설 공간이 필요한 멤버들끼리 워킹그룹을 조직해 도시 내의 스튜디오 공간을 조사하고 연락처, 대관 조건 등을 리스트로 정리해 공유한다. 새로운 주제에 대해 리서치하고 싶다면 새로운 워킹그룹을 만들어 진행할 수도 있다.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의 공연 신(scene)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주요 사업이다. 이를 위해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거나, 베를린으로 창작 활동의 영역을 옮긴 신진 아티스트들은 실제로 공연장, 기금 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이들을 위해 베를린에서 자리를 잡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가 멘토로 참여해 창작과 예산 마련 및 운영, 그리고 극장의 제작 파트너와 관계를 조성하는 방식 등 전반적인 범위에 대해 멘토링을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보통 2년간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의 공연계의 트렌드는 많이 달라졌고 계속 변화할 것이다. 예술을 어렵다고 여기는 많은 이들을 위해 관객개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관객들이 예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프로덕션 하우스나 아티스트들의 요청을 받아 작품에 어울리는 워크숍, 공연 소개 프로그램, 관객과의 대화 등의 구성에 대해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현대 무용을 어려워하는 관객을 위한 움직임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관객 스스로 몸의 움직임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공연을 보게 되면 좀 더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축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베를린 국제예술제(Performing Arts Festival Berlin)는 베를린 전역의 공연계 동향을 알리고 나누는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2016년부터 시작했다. 문화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예술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예산은 시에서 지원하고, 헤벨 암 우퍼(Hebbel am Ufer, HAU),ᅠ소피엔젤레(Sophiensæle), 발하우스 오스트(Ballhaus Ost), 테아터디스카운터(Theaterdiscounter) 네 개의 극장이 공간과 기술에 대해 지원한다. 축제 프로그램은 네 개의 극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 전역의 극장과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오픈콜 형식으로 진행된다. 헤벨 암 우퍼(HAU)와 같은 극장들은 자체 예산으로 작품 제작이 가능하지만 다른 독립 극장들은 운영비 정도만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의 극장들 역시 자신들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예산과 기획력이 부족해 창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과 아티스트가 하나의 조직이 되어 움직인다면 시너지가 생길 것이다. 우리 축제는 그들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한다. 모든 공연은 협력(co-production) 형식으로 진행되고, 상호 간의 대관료・공연료 등 금전적인 보상은 없다. 축제라는 플랫폼을 통해 독립극장과 예술가들이 하나의 조직된 예술계를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인 혹은 개별 단체의 목소리가 문화정책자들에게 전달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이고 목소리를 낸다면 문화정책 결정권자들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2019 베를린공연예술제(Performing Arts Festival Berlin) 현장 출처: PAF 페이스북 코2019 베를린공연예술제(Performing Arts Festival Berlin) 현장 출처: PAF 페이스북
2019 베를린공연예술제(Performing Arts Festival Berlin) 현장
출처: PAF 페이스북

지난 3년간 베를린 국제예술제의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어떠한 작업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나는 '인트로듀싱…(Introducing…)'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는 앞서 말한 네 곳의 극장이 연합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축제 프로그램 가운데 아티스트에게 유일하게 공연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여기서 새로운 아티스트는 단순히 '젊은' 아티스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베를린으로 이주해 창작 활동을 시작한 아티스트도 포함된다. 선정된 아티스트들은 작품의 성격에 맞는 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게 된다. 다만 새로운 아티스트를 베를린 내에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기도 해서, 극장이 원할 경우 아티스트가 젊지 않거나 베를린 비거주자일 경우에도 협력할 수 있다. 발하우스 오스트(Ballhaus Ost)는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브라질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했다. 초청 아티스트와 베를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와의 네트워킹도 함께 진행된다.
작업 중에는 큐레이터로서 프로그래밍의 방향성과 결정이 베를린 공연 신에서 어떤 담론을 형성할 수 있을지, 오픈콜의 형식을 만들어가면서도 어떤 어젠다와 비전을 보여줄 것인지 항상 고민했다.

큐레이터 외에 드라마터그, 드라마 어드바이저 등의 다양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나는 주립극장의 드라마터그로 공연계에 첫발을 들였다. 극장에서의 내 업무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주로 대본의 내용과 길이를 조율하는 것이었다. 이후 무용으로 작업을 확장했다. 콘셉트가 중심이 되는 작업이었고 대본을 고쳐야 할 일도 없었지만, 작품의 주제와 큰 그림을 창작자들과 함께 만든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다. 드라마 어드바이저의 역할도 비슷하다.

본격적인 큐레이터 활동은 동료와 함께 작은 독립 축제를 운영하며 시작했다. 400개의 공연을 관람하고 그중 10개의 작품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 드라마터그는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주며 창작 과정을 함께하지만, 큐레이터는 이미 창작된 작품을 봐야 하기 때문에, 창작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보고, 듣고, 읽어내는 게 중요했다. 드라마터그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작품 자체에만 집중한다. 큐레이터는 축제의 프레임워크, 장애 요소 등 전반적인 것들을 고민해야 하기에, 나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예술가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어떤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하여 선정한 주제를 통해 축제를 프로그래밍한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터그로 작업을 시작했고 여전히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협업자로서의 큐레이터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축제를 만드는 것은 아티스트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관객들에게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이라는 지역과 사회를 들여다보고 전체의 공연 신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독일에서의 드라마터그와 드라마 어드바이저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드라마터그는 창작의 과정에서 창작자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또한 홍보, 작품 소개 등 전체의 프로덕션 과정을 책임지게 된다. 그렇기에 그 역할에 걸맞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드라마 어드바이저의 경우 고문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할 때 드라마 어드바이저가 필요할 수 있다. 내 경우엔 공연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왔고,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작업도 다수 해 왔기에, 관련된 작품에 드라마 어드바이저로 참여하기도 한다. 다만 드라마 어드바이저는 전체의 창작 과정에 참여하기보다는 리허설을 몇 차례 참관하고 의견을 나누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참여도가 높지 않은 만큼 사례비가 높지 않다. 명망 있는 드라마터그와 작업을 하고 싶지만 충분한 제작 예산이 있지 않은 경우, 드라마 어드바이저의 역할을 의뢰하고 조언을 구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독일의 드라마터그의 역할에 대해 덧붙이자면, 극장의 드라마터그는 극장의 여러 인프라를 활용하며 작품 창작에 관여한다. 독립 예술 신(scene)의 드라마터그는 예술적 조언자의 역할과 더불어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립극장에서 드라마터그로 근무를 하며 느꼈던 건 내가 마치 경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창작 과정이 수직적으로 운영된다고 느꼈고, 작품을 볼 때 드라마터그로서 나의 관점보다 극장의 관점을 전달해야 했다. '우리' 극장의 '관객'이 어떠한 작품에 관심을 보일지에 집중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LAFT Berlin이 베를린의 예술가들을 위해 최근 어떤 것들에 집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LAFT Berlin은 독립 예술 신(scene)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예술의 가치, 사회에서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해 정책자들이 이해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예술계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예를 들자면 독립 아티스트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의 문제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창작 예산이 프로덕션 하우스로 흘러 들어간다. 프로덕션 하우스는 이 예산을 받아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자신들이 관심 있는 아티스트를 지원한다. 이런 방식을 벗어나 아티스트가 직접 정부 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또한 시에서 관광 부처의 예산 등으로 편성한 예산을 예술계의 프로젝트와 연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5년간 원로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정책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로운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원로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역시 소홀해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창작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원로 예술가들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창작에 집중하는 국가의 예술지원 정책도 중요하지만 창작 외에도 다방면으로 예술가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공연계의 강점은 소통과 단합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각 지역마다 LAFT Berlin과 같이 독립 예술 신(scene)을 지원하는 엄브렐러 조직이 있다. 이들이 협력할 때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 이희진
  • 필자소개

    이희진은 프로듀서그룹 도트의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한국 공연예술의 해외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극단 여행자, 크리에이티브 바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등 한국 공연예술 단체의 해외투어매니지먼트를 비롯하여 한국-인도 공동제작 <바후차라마타(2014)>, 한국-독일 공동제작 <이방인 이피게니에(2016)>, 한국-영국 공동제작 <미인:MIIN(2017)>, 한국-호주 공동제작 <낯선 이웃들(2017)> 등의 해외공동제작 작품을 프로듀싱하였다. 최근 해외 작업 외에도 국내의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해 나가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1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스튀케마르크트(Stuckemarkt) 한국 포커스 프로그램의 큐레이터,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sia Producers’ Platform) 멤버 등 공연예술의 국제교류를 활발하게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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